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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소설(Novel) (192)
수양림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치는 거대한 폭발은 한꺼번에 모든 걸 태워버리고 힘이 빠진 듯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선배님!!!" 지훈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가려했다. 지훈은 급한 대로 차 안에 있던 생수를 뒤집어썼다. "뭐하는겁니까?" 김 순경이 지훈의 팔을 잡았다. 김 순경은 여느 때보다 급하고 빠르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위험합니다! 119도 불렀으니…" "불길이 잦아들었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지훈도 한 시가 급하다고 생각해서 김순경을 뿌리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2차 폭발이 있을 수 있잖습니까? 감정에 앞서지 말라고요!" 김 순경의 언성이 높아졌다. "방금 전 폭발은 탱크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터진겁니다. 그래서 지금 다 연소하고 잦아드는 겁니다." 지훈이 먼저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고 김 순..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미경에겐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흘렀다. 그리고 그 슬로우 모션이 채 끝나기 전에 미경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 잡아!" 고글을 쓰고 있던 연구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미경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뭐라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안 요원들과 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젠장! 무음으로 해 놓는 걸 까먹다니……!’ 미경은 무음으로 해놓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자책하며 뛰었다. 미경은 급히 뛰어나왔지만, 이미 저 멀리 공장 입구의 문이 내려가고 있었다. ‘뛰면 저 문 사이로 나갈 수 있…아냐, 안 돼. 이렇게 된 이상 외부로 연결된 창문 빠져나가야…응?’ 「제한구역」 다른 곳과 달리 제한구역이라고 써 붙여진 문..
"자, 하나, 둘, 셋!" 우수 경찰 표창장 수여식이 끝나고, 다들 잘 꾸며진 강당을 배경 삼아 상장을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경도 같은 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창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반장의 주머니에서 구수한 트로트 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여보. 어어. 그래, 받았어." 반장은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선배인가?’ 미경은 지금은 반장의 아내이자 과거에 자신의 선배인 현숙의 전화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반장은 미경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받아봐." "어, 나야 선배-" "아이고! 우리 미경이!!!!" 전화기를 뚫고 나오는 엄청난 호들갑에 미경은 순간적으로 놀라서 귀에서 휴대폰은 떨어뜨렸다. ‘와, 귀 멀어버리는 줄.’ "아이고! 세상에, 마상에,..
아직 해가 제대로 뜨기도 전인 추운 겨울의 이른 아침, 김미경은 아침 운동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신의 철제 라커를 열었다. 거기엔 오늘 있을 훈장 수여식을 위해 준비해놓은 경찰 정복이 빳빳하게 다려진 채 놓여 있었다. 그 뒤엔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찍은 사진도 보였다. 옷을 갈아입는 중에 라커 문에 붙여진 작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어느새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48살 김미경의 얼굴이 보였다. 더 나은 자리들을 마다하고 현역으로 뛰기 위해 분주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지난 날의 노력을 반증하듯 경찰 김미경의 쇳덩이 같은 단단한 몸에는 갖은 상처와 부상의 흔적, 흉터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과 인내의 결과로 김미경은 아직도 활발히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작은 거울 속으로 누구..
행성 마타마이니 마타마이니 행성력 4257년 신문을 얼굴이 다 가리게 넓게 펼치고 우펜자가 읽고 있었다. 중절모를 쓰고 자켓을 잘 차려입은 특유의 처진 눈꼬리와 눈썹을 가진 우펜자는 집중해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의 첫 페이지에는 '전쟁 후 실업률 증가', '전쟁 영웅의 위기와 굶주림은 누구의 책임인가', '9구역과 조약 체결에 마타마이니 각국 나라들이 반발' 같은 전쟁 때만큼 참혹하진 않지만 우울한 헤드라인과 제목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신문의 맨 뒷 페이지는 우펜자가 지금 있는 국가인 아즈국 이름표가 붙은 투표함 사진과 '9구역 편입 마타마이니 시민들을 위한 완벽하게 공정한 선거!'라는 문구가 적힌 전면 광고가 실려 있었다. 마타마이니 최강국가 아즈국은 우주의 9구역과 전쟁 후 조약 체결과 함께..
잠시 일기장 밖, 중년의 여자와 노인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곳 다른 날. 밀 메이커의 집 텔레비전에서 다큐가 방영되고 있었다. 「은하 독립과 해방의 영웅 우펜자, 그의 헌신과 행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서거 후 발간된 폭로에 가까운 그의 자서전으로 더욱 상세히 알 수 있죠.」 안경을 낀 사회자가 옆의 책상에 우펜자의 자서전을 갖다 놓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구구절절 상세한 기록 가운데 딱 한 부분! 바로 2장, 그의 학위 수여 직전 떠난 해외 유학 시절 갑자기 왜 다시 돌아오게 됐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는 말이 없습니다.」 사회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가 겪은 사건들의 다른 원인은 그렇게 자세히 써놨으면서, 유독 그 시기만은 납득이 안 갈 정..
장신의 남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빨리 와요!"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요!" 고개를 들자 옥실이가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한결 풀린 표정으로 옥실에게 다가갔다. "옷은 또 언제 가져온 거야?" 옥실의 한쪽 손에 들린 외투와 모자를 보며 말했다. "헤헤······." 옥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 차림이니 다들 쳐다보더라구요. 아무래도 따뜻하게 보이는 게 좋겠다 싶어서요." 아무래도 쌀쌀한 날씨에 셔츠만 입고 있어서인지 시선을 인식한 것 같았다. "옷 살 여유도 있었던 것 보면 일찍 나왔나 보네." 장신의 남자는 미소를 띠며 말했지만, 약간은 뼈가 있는 듯한 말을 했다. "···어떻게 한 거야?" "아 그거야 뭐··· 여러 가지 ..
행성 마타마이니 4332년의 마지막 날, 그 날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요양 병원의 1인실에 중년의 여인이 익숙한 듯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다가 노인이 의식을 갖고 깨어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노인이 깨어 있음에 감격해서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와 나이에 비해 주름이 얼마 없는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일어나 계시네요? 좀 어떠세요?" 중년의 여인은 목도리를 풀며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 병실 침대 옆 탁자 위에 웬 낡은 책 같은 것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일기장이에요?" "···지금 읽어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고." 여전히 새어나오듯 약한 목소리이지만, 의식이 흐렸을 때와 달리 노인은 나름 단호하고 힘 있게 말했다. 그런 노인의 말에 ‘굳이?’ 라는 생각과 ..
어느 늦은 밤, 자고 있던 고양이는 방 밖에서 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고양이는 비몽사몽 해서 비틀거리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거실로 나가보니 밀 메이커가 큰 망토를 입고 문 밖을 나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고양이는 머릿속에 의문이 잔뜩 피어올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어딜 가는 것일까옹? 수상하기 그지 없다옹.' 이런 의문들의 끝에 고양이는 눈을 반짝이며 결심했다. "따라가봐야겠다옹!" 고양이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밀 메이커의 뒤를 따라나섰다. 고양이는 '진짜 캣워크'로 기척을 죽이고 빠르게 이동하는 밀 메이커의 뒤를 밟았다. 그때, 휙 밀 메이커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 밀 메이커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밀 메이커, 벌써 자냐옹?" 어느 날 저녁, 거실에서 밀 메이커는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그런 밀 메이커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텔레비전에는 다른 집에서는 안 나오는 뉴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펜자 서거 후 우주 정세가······." "안 자." 밀 메이커는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고양이는 누워있는 밀 메이커 앞에 놓인 텔레비전 리모컨 쪽으로 다가왔다. "···한편 16 구역에서는 투표가···" 고양이는 리모컨을 꾹 눌렀다. "···우주 구역 대선···삑! 샤인 데이의 컴백무대!" 고양이는 음악 채널로 돌려버리고는 밀 메이커 눈 앞에 식빵 자세를 하고 앉아버렸다. 덕분에 밀 메이커는 고양이의 엉덩이만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