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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우펜자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우펜자

SooyangLim 2021. 1. 18. 14:51

행성 마타마이니

마타마이니 행성력

4257년



 신문을 얼굴이 다 가리게 넓게 펼치고 우펜자가 읽고 있었다.

 중절모를 쓰고 자켓을 잘 차려입은 특유의 처진 눈꼬리와 눈썹을 가진 우펜자는 집중해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의 첫 페이지에는 '전쟁 후 실업률 증가', '전쟁 영웅의 위기와 굶주림은 누구의 책임인가', '9구역과 조약 체결에 마타마이니 각국 나라들이 반발' 같은 전쟁 때만큼 참혹하진 않지만 우울한 헤드라인과 제목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신문의 맨 뒷 페이지는 우펜자가 지금 있는 국가인 아즈국 이름표가 붙은 투표함 사진과 '9구역 편입 마타마이니 시민들을 위한 완벽하게 공정한 선거!'라는 문구가 적힌 전면 광고가 실려 있었다.


 마타마이니 최강국가 아즈국은 우주의 9구역과 전쟁 후 조약 체결과 함께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행성 곳곳은 전쟁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위기와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
 
 우펜자가 보는 페이지 귀퉁이에는 '구레아국에 교육 기관을 설립해 주는 9구역 파견 통치자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작게 실려 있었다. 우펜자는 신문에 빠져있다가 시계를 봤다. 

 "앗! 벌써 시간이……."

 우펜자는 서둘러 신문을 접고 연구실로 갔다.

 우펜자 4남 2녀의 가난한 가정의 차남으로 고향에서 먼 도시로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우펜자의 학위 논문 준비는 약 6개월 정도 남았다. 학위를 따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윌슨 교수님."

 우펜자가 인사를 하며 연구실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일세. 잘 쉬고 왔는가, 우펜자."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머그컵을 노환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들고 우펜자에게 인사하는 이 노인의 이름은 윌슨 우즈이다.

 윌슨 우즈는 벌써 86살의 나이로 이 학교의 석좌교수이다. 그는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명망이 높다. 그는 나이 탓에 곧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넵. 잘 쉬었습니다. …토비아스는요? 어제 밤새었을 건데……."

 우펜자는 자신의 후배이자 이 연구실의 막내인 토비아스가 안 보이자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아……."

 자신의 뒤쪽에서 막 화장실에 다녀온 토비아스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비아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윌슨 교수의 마지막 제자가 된 토비아스가 넋이 나간 퀭 한 눈으로 기운 없이 이야기했다. 

 "며칠 작업한 거 다 날려서요……. 데이터 값에 오류가 있어요……."
 "으아악!"

 우펜자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힘들 때도 있지만, 우펜자는 자애로운 윌슨 교수 밑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지내고 있었다. 가끔 실수도 하지만 착한 토비아스와 윌슨 교수와 함께하는 그때를 우펜자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점심 먼저 먹고 오게. 올 때 커피도 사오고."
 "네에."  

 우펜자와 시들시들해진 토비아스 대답했다.
 

 


 "고마워, 토비아스. 네 덕에 또 맛있는 식사를 했네."
 "뭘요. 항상 많은 도움을 주시잖아요. 같이 맛있는 식당에 다녀올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하죠."
 "여기 맛있어서 좋은데 나중에 학위를 따고 나면 자주 못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쉽네."
 "나중에 잘 되고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토비아스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날 잊으면 안되지, 어리스토 로열가 도련님."

 토비아스가 손꼽히는 명문가 가문의 부잣집 아들인걸 알고 있기에 우펜자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토비아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휴... 그래봤자 저는……. 전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집에서는 닦달하는 데 학위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전 형님처럼 빨리는 못 할 것 같아요."

 토비아스는 풀이 죽어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어제 오늘 사고나 치고……. 전 아마 1~2년은 더 연장될 것 같아요."
 "아니야. 기운 내. 잘하고 있어."

 우펜자가 토비아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했다.

 "지금은 멀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끝이 보일 거야. 윌슨 교수님도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고 계시잖아. 우리를 마지막 제자로 받고 은퇴하시기 때문에 더 신경 써주고 계셔.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토비아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글쎄요.……. 이젠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어요. 실수투성이라……."

 우펜자는 어깨가 축 늘어진 토비아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영원히 학교에 있을 것도 아니잖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네……."

 토비아스가 그나마 좀 나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참, 커피 사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우펜자가 윌슨 교수의 부탁을 상기해냈다.

 "아 요앞에 카페에서 말이죠? 제가 사 올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아 그럴래? 그럼 부탁할게."

 적지 않은 나이에도 복숭아처럼 붉으스름하고 연갈색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소년미가 남아있는 토비아스가 오늘 본 모습 중 가장 밝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카페로 달려갔다.
 우펜자는 몇 살 차이 안나지만 그런 아직 10대 같은 토비아스를 귀여운 동생 보듯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연구실로 향했다.



 우펜자는 연구실 문 앞에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 안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그게 학교에 몸 담은 이사장이 할 소리인가!?"

 우펜자는 멈칫했다.


 '이사장?'

 "어차피 완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잖소?"

 이사장의 살살 구슬리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토비아스는 아직이오. 아무리 빨라도 내년은 되어야 한단 말이오! 차라리 우펜자를 빨리 학위를 주는 게 더 타당하오!"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우펜자의 동공이 커졌다.
 다시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말 아닙니까? 우펜자를 미루고 토비아스에게 먼저…"
 "어림없는 소리!" 

 윌슨 교수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왜 굳이 토비아스와 논문까지 바꾸게 하면서까지 앞당기려는 거요!? 지금도 토비아스는 그렇게 느린 게 아닌 게 왜 그러는 거요? 학위를 따면 누구보다 보장된 미래가 아니오? 로열가 장남인데!"
 "그래서요, 박사. 로열가니까."

  이사장의 차분한 말소리 들렸다.

 "이런 일은 그저 로열가에 독만 될 뿐이지 않소?"

 윌슨 교수가 반박했다.

 "돈에 굴복하지 말고 학자의 자존심을 지키시오, 이사장!"

 윌슨 교수가 분노와 안타까움이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돈에 굴복하지 말라? 학자의 자존심을 지키라?" 

땅!

 이사장이 참전용사 반지를 낀 손으로 허벅지 중간부터 절단한 다리를 대신해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잡고 바닥에 내려쳤다.


 "나는 우리 대학 식구들을 모두 고려해야 될 의무가 있단 말이오!"

 이사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목소리 크기는 낮추되, 아까처럼 구슬리는 느낌은 없이 막 내질렀다.

 "두 사람이 학위 따는 순서가 달라진다 해서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이사장!"
 "모두가 우펜자 그 녀석을 반대했는 데 나 혼자 그대를 믿고 밀어붙인 걸 잊었단 말입니까?"
 "그건 차별이었어! 그 위선적인 놈들의 빈곤과 출신에 대한 명백한 차별! 노력과 재능을 질투하고 열등감이 뭉친 집단적 무시!"

 우펜자는 땅에 박힌 듯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을 우두커니 서서 듣고 있었다.
 차라리 아까 도망이라도 쳤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40만 다르아(현재 한국 원화 가치로 70억)요."

 '40만!'

 우펜자는 갑자기 들린 금액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윌슨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정적을 깨고 입을 뗐다.
 
 "…당신이 내게 이런 언동을 할 지라도 내가 화라도 냈던 건, 당신이 정말로 인재를 위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오."
 
 윌슨 교수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실망이 묻어있었다.

 "내가 잘못 봤소."

 윌슨 교수가 단호하지만, 힘 없이 말했다.
 그 말에 이사장이 대꾸했다.

 "날 제대로 봤던 거요. 다만 나는 '모두'를 생각할 뿐이오."

 이사장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학교는 수 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소. 전쟁 후 이만큼이나 지원하는 학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사장은 잠깐 말을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지금껏 그대에게 유난히 유연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던 연구지원금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뤄질겁니다."
 "지금 날 협박하는게야!"

 윌슨 교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뚜벅뚜벅

 이사장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제안이 제안일 때 잘 생각해보시오."

 우펜자는 후다닥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는 그런 소리를 다 듣고도 한 마디 입도 뻥긋 못한 채 쥐새끼가 숨어버리는 것처럼 도망쳐버렸다.



 
 우펜자는 자리를 피해 계단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머리가 멍 했다.

 당황? 참담함? 분노? 서글픔? 억울함? 걱정? 혼란? 착잡함? 죄책감? 안타까움?

 뭐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40만… 현실감 없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와 닿는 건…….'

 우펜자의 머릿속에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가족이 아둥바둥하며 벌고 쓰는 한 달 생활비 때문일까……. 너무 현실적으로 체감되는 액수다…….'

 "어? 왜 여기 계세요?"

 토비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토비아스가 커피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다가 위쪽 계단에 앉아있는 우펜자를 발견하고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아직 안 들어 가셨어요?"
 "아 그게… 오면 같이 들어가려고 기다렸어."
 
 우펜자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토비아스를 내려보며 적당히 둘러댔다.
 토비아스가 계단을 올라왔다.

 "아이, 뭘 또 기다리시고……. 어서 들어가죠!"

 계단을 올라온 토비아스가 쭈그려 앉아있는 우펜자를 내려보며 말했다.
 우펜자는 계단을 올라와 커피를 든 토비아스를 올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커피를 새로 해줘서 좋았어요!" 
 "……."

 토비아스가 커피를 사 오면서 있었던 일을 즐겁게 재잘거렸다.

 우펜자는 커피를 들고 있는 토비아스의 손에 끼워진 어리스토 로열가 문장의 반지를 힐끗 봤다. 우펜자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토비아스, 요즘 아버님은 잘 지내고 계셔?"
 "아버지요? 아마도요?"

 토비아스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전하시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는 전화와서 제가 마치 어린아이인 마냥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니까요."

 토비아스는 씁쓸하게 말했다.

 "참 나. 제가 나이가 몇인데……. 마음이 급해지셨나 봐요. 아무래도 곧 선거가 있으니 신경이 예민해지신 거겠죠."

 토비아스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빨리 학위를 따야 마음도 편하고, 또 제가 도와야된다나 뭐래나……."

 하지만 다음 순간, 토비아스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입에서 나온 목소리와 말투는 지금껏 그가 보여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피를 토하는 듯한 비린내와 쓴 맛이 베어 나오는 듯한 말투와 더불어 표정은 얼음장같이 차갑게 얼어붙은 듯했다.

 "아마… 선거에 쓸 말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실테니까요."

 찰칵

 그들이 이야기 하면서 연구실 앞까지 가자 갑자기 문이 열렸다.
 윌슨 교수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식사 맛있게 하고 왔는가?"
 "네, 교수님!"
 "그래……. 토비아스군은 내가 손 봐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자료 정리하게나. 우펜자군은 잠시 나 좀 보세."

 우펜자는 속으로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네."
 "윗층에 504호 강의실이 비었으니 그리로 오게."

 그 말을 남기고 윌슨 교수는 먼저 504호로 갔다.
 윌슨의 뒷모습이 안보이자 토비아스는 걱정으로 사색이 되어 말했다.

 "…표정이 안 좋으신데 저 뭐 잘못 한 건 아니죠?"
 "아닐 거야. 걱정하지 마." 



 "식사는 잘 하고 왔는가?"
 "네, 맛있었어요."

 강의실 의자에 앉으며 우펜자가 대답했다.

 "내 자네를 이리 부른 이유는…"

 우펜자가 긴장과 큰 맘먹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부터 난 집에 가지 않고 자네들의 연구와 논문을 돕는 데 더 노력할 생각일세. 힘들겠지만 따라와 주었으면 하네."
 "…네?"
 
 예상하던 바와 전혀 다른 말을 듣자 우펜자는 약간 얼빠진 듯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자네도 거의 막바지로 들어섰고 들어섰고 토비아스군도 내가 시간을 더 내어 신경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네."

 '말도 안 돼……. 이건 너무 무리하시는 거잖아?'

 우펜자는 퍼뜩 윌슨 교수의 의도를 알아챘다.

 ' …설마 토비아스와 나를 같은 시기에 학위에 올리려고…?'

 나이 탓에 언제나 미세하게 몸이 떨리는 윌슨은 우펜자에게 굳은 의지를 전달했다. 
 그의 눈에 연로한 노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나이에 그렇게 무리하시면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

 "정진해주게 우펜자군."

 그 순간 우펜자는 그에게 걸린 모든 상황을 잊고 제멋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 논문에 그… 다양한 자료 조사와 그리고 음… 그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그… 졸업 전에 그, 그 아 구레아라는 나라에 가서 당분간 학생도 가르칠까 합니다."

 우펜자가 더듬더듬 거리며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냈다.

 "…그것이 진정 자네 뜻인가?"

 윌슨 교수가 우펜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마치 우펜자를 꿰뚫는 듯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잠시 우펜자를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게."
 "그럼 저는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아즈 공항-


 "갑자기 떠나신다니이이이 흐엥"

 토비아스가 공항에서 나잇값 못하고 애처럼 엉엉 울었다.

 "대체 왜 지금 떠나시는거에요오오오오"
 "우,울지마 토비아스…"

 우펜자는 토비아스가 너무 격하게 울어서 당황했다.

 "전쟁하러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슬퍼해……."

 우펜자는 엉엉 울고 있는 토비아스를 달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우펜자가 배웅하러 나온 윌슨 교수에게 인사했다.
 
 가족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족들에겐 알리지 않았으니까.
 
 "건강히 다녀오고, 가기 전에 이거 받게나."

 윌슨 교수가 노환으로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연구지원금일세."

 우펜자가 받아 들었다.

 "여비와 이번 달 조교 월급도 같이 넣었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가기 전에 은행에 가서 넣어 둘 수 있을 걸세."
 "…네."

 우펜자는 두툼한 봉투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 돈이 이렇게 두꺼울 리 없잖아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우펜자와 윌슨 교수 옆에 있던 토비아스가 그 봉투를 보며 놀라며 말했다.

 "엄청 두꺼운 것 같은데요, 형님?"

 고개를 숙인 윌슨 교수가 떨리는 약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하네."

 윌슨 교수는 무엇이 미안한 걸까.

 "난 괜찮으니 언제든 자료가 다 모아지면 돌아오게."
 "……. 네."



 우펜자는 은행에 들렀다.

 "입금 되었습니다. 명세표 발행해 드릴까요?"

 우펜자는 명세표를 받아 들었다.

 '…정말 기도 안 차는 액수다. 가족들에게 절반을 보내고도 1년 학비와 생활비를 합친 만큼이나 남다니.'

 "하."

 우펜자는 피식 비웃었다.

 "비참하네."




 저속 항공 기체는 하늘을 날아 높은 첨탑이 가득한 도시를 떠났다.
 우펜자는 아즈국을 떠나 구레아로 갔다.
  




 "네?"
 "학교로 가려면 어디로…아 이런."
 "?"

 우펜자는 구레아국의 공항에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큰일이네. 난 구레아국의 언어를 모르고 이 사람은 아즈어를 몰라!'

  우펜자는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우펜자 선생?"

 그때 서툴지만 분명한 아즈어로 누군가 우펜자를 불렀다.
 우펜자는 자신을 부른 쪽으로 돌아봤다.

 "어서오세요!"

 안경을 쓴 통통하고 땅딸막한 남자가 헐레벌떡 그에게 뛰어왔다.

 "학교까지 안내할 학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우펜자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주고 받으며 악수했다.
 학장은 반갑게 환영하며 말했다.

 "피곤하실텐데 숙소부터 갈까요? 아참, 오시면서 식사는 하셨나요?"
 "숙소로 가기 전에 우선 요기를 좀 했으면 합니다. 기체에 타기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시장하네요."
 "아니 타기 전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다구요!?"

 우펜자의 말에 학장은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는 우펜자가 정신없을 만큼 급하기 식당으로 끌고 갔다.

 "여기 빨리 국밥 한 그릇 말아줘요!"

 가게에 들어서며 학장이 무언가 외쳤고,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에 큼지막하고 두꺼운 그릇에 담긴 펄펄 끓는 스튜 같은 것을 내왔다.

 '엄청 많은데? 안에 든 건 뭐지? …이, 이건 설마 내장?'
 
 우펜자는 먹기 전에 음식의 비주얼에 겁을 먹었다.
 하지만 배가 워낙 고팠기에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펜자는 일단 조심스럽게 한 숟갈 들었다.

 "어?"

 먹어보니 괜찮은 맛이었다.
 우펜자는 시장했기에 후후 불어가며 열심히 먹었다.

 '모양 때문에 걱정했지만 다행히 맛있었어. 양이 무지 많았지만.' 

 우펜자가 트림을 하며 잠시 숨 좀 돌리려는데 학장이 말했다.

 "다 드셨습니까?"
 "아, 네. 잘 먹었습니다."
 "피곤하시죠? 뜨뜻하게 쉬셔야 하니 이제 숙소로 갈까요?"



 숙소 방에 들어가자 푹신한 요와 이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펜자는 바로 씻고 요를 깔고 누웠다. 하지만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방바닥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배려 해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너무 뜨겁고 더워서 잠이 안 와…….'

 하지만 긴 시간의 비행과 부른 배 때문인지 결국엔 잠이 들었다.

 

 똑똑똑

 "우펜자 선생~ 학생들한테 소개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시구려~"
 "네? 아, 네네."
 
 우펜자는 노크소리와 학장의 목소리에 일어났다.
 온몸이 땀범벅에 피부가 매끈해져 있었다.

 '덥긴 했지만 어쩐지 자고 나니 개운하긴 하다…….'

 우펜자는 일어나서 강의 준비를 해서 학장과 같이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분이 우펜자 선생입니다."
 
 학장이 직접 우펜자를 소개했다.
 뭔가 장황한 수식어가 붙었지만, 우펜자는 구레아어를 거의 몰랐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 간신히 알아들었다.
 학생들이 우펜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대단했다. 다들 눈빛이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눈빛이… 말도 잘 안 통할 텐데 학구열이 불타오르네…….'
 
 우펜자는 학생들의 눈빛과 부담스러울 정도의 학구열이 부담스러웠다.
 일단은 아즈어로 수업을 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못 알아듣는데도 뭘 그리 열심히 적고 듣고 바라보고 있는지 정말 적극적이었다. 

 '나도 딱히 아는 거 많이 없는데……. 난 윌슨 교수님처럼 대단하지도 않고 이 나라 언어도 잘 모르는데 이렇게 기대감에 찬 사람들을 내가 가르쳐도 되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펜자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부담스러워!'



 "으아아아아아아"

 우펜자가 바닥에 교재와 자료들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잘 접어놓은 요와 이불이 푹 파묻히듯 쓰러졌다.

 "윌슨 교수님은 어떻게 이런 생활을 몇십 년 동안이나 하신 걸까?"

 우펜자는 주머니에서 낡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와 벌써 저녁 시간이네."

 우펜자가 기운 없이 말했다.


 "저녁 때는 도서관에 잠시 가볼까?"

 우펜자는 그나마 익숙한 곳이나 가야겠다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

 문득 어제 오늘 일이 전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우펜자는 휘몰아치는 감정과 앞에 놓인 모든 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누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감춰지지 않았다.

 "벌써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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