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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오래 전의 고양이 1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오래 전의 고양이 1

SooyangLim 2022. 9. 7. 19:01

 다음 날 아침-
 집에 돌아온 고양이는 어제 만난 엑스칼리버를 떠올리며 여느 때처럼 밥을 하고 있는 밀메이커를 지그시 바라봤다. 

 '도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하나 같이 주변이 다 수상한 것일까옹?'

 고양이가 몹시도 수상해 하는 눈빛으로 밀 메이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하기야 밀 메이커를 처음 만났을 때는…….'



* * *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 주기적으로 강이 범람하는 나라. 모래가 많은 곳. 이곳에서 고양이가 기억하는 첫 기억이 시작됐다. 

 고양이는 4남매 중에 막내였다. 엄마 고양이는 자신의 새끼들을 열심히 핥아줬다. 열렬한 그루밍 끝에 고양이는 작은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했다.

 엄마 고양이는 처음으로 낳은 4남매를 돌보는 것이 서툴렀지만, 그 엄마 고양이의 어미가 엄마 고양이에게 그러했듯 최선을 다했다. 엄마 고양이의 통통하던 몸이 네 마리의 새끼들을 먹이고 돌보느라 비쩍 말라버릴 정도였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 한 덕분에, 엄마 고양이는 유난히 작았던 막내인 고양이까지도 죽는 일 없이 무사히 길러냈다.

 어린 시절 고양이는 작았던 탓에 늘상 먹이 경쟁에서 밀리기 일수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남매들과 잘 지냈다. 먹이 사냥을 가든, 놀러를 가든 언제나 고양이 4남매들과 함께였다.

 엄마 고양이는 4남매들이 자라남에 따라 거처를 옮기곤 했다. 고양이 가족이 2번째로 거처를 옮겼을 때였다. 그 때 즈음에 고양이는 처음으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엄마 고양이는 이따금씩 두 발로 걸어다니는 영리한 동물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오곤 했다. 고양이 4남매는 그런 엄마 고양이를 먼발치에서 숨어서 보고 있곤 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다른 남매들과는 달리 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들의 말을 알 수 있었다. 

 고양이는 의식 하든 안 하든 분명히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 고양이나 다른 남매 고양이들이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분명히 달랐다.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 주는 이도 없는데, 고양이는 그들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에 고양이는 안다고 해도 그에 대해 무언가 사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커가면서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의 말을 자주 듣고 관찰하고는 데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내 완벽한 의미와 의도를 알게 되고 사고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오옹~"

 하지만 그게 다였다. 고양이는 이따금씩 두 발로 걷는 동물들 곁에 다가가서 말을 걸어봤지만, 그들은 고양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소통해 보려고 해도 언제나 실패했다. 고양이는 자신이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겐 그저 고양이의 울음소리로만 들리는 모양이었다.  

 이때쯤부터는 고양이는 인간들의 언어로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걸까?'

 고양이는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밥을 주는 두 발로 걷는 동물에게 기쁘다고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들이 내는 소리와 비슷하게 내보려고 시도도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소리를 내면, 어떤 두 발 달린 동물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어 피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고양이는 어리둥절 했지만, 다시 고양이 소리를 내면 안심하곤 했다.
 묘한 공포가 서린 표정을 남긴 채.

 고양이가 두 발 달린 동물들과는 더 친해지고 말을 더 잘 이해하면 할수록,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멀어졌다. 애석하게도, 이 문제는 고양이가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의 말을 이해하고 말고 와는 연관된 문제는 아니었다.

 타고나기를 작게 태어난 고양이는 성체가 되어도, 독립할 때가 되어도, 여전히 몸집이 작았다. 몸집이 작다는 의미는 싸움에 불리하다는 의미이다. 그 말인 즉은, 영역 싸움에서 밀리는 것을 의미했다.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지는 쪽이었다. 고양이의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을 찾아 독립해 떠났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딜 가나 패하고 밀리기만 했다. 그렇게 굶는 날이 잦아졌다. 

 그 날도 굶주렸던 고양이는 어디선가 흘러오는 맛있는 냄새에 코를 씰룩였다. 고양이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큰 수레가 여러 대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냄새였다. 수레 주변에는 이미 다른 고양이 몇 마리도 냄새를 맡고 몰려와 있었다.
 
 "왜 보고만 있냐옹?"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에게 물었다.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포기한 거다옹. 다들 수레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옹. 인간들이 아주 꼼꼼하게 포장해놨다옹."

 까만 털을 가진 고양이가 대답했다. 그 말에 고양이는 수레 위를 쳐다봤다. 수레에는 동물들의 침입을 막으려는 듯 천이 덮어져 있고, 그 안에는 단단하고 두터운 격자가 둘러져 있었다.

 배가 고팠던 고양이는 다들 실패한 것을 알면서도 수레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천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격자에 막혀 더 들어갈 수는 없었다. 격자 안에는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두 발 달린 동물들이 고기를 요리한 음식이었다. 고양이는 가녀린 앞발을 격자 안으로 밀어 넣으며 노력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드륵

 그 순간, 수레가 움직였다.

 "캬옹?"

 고양이는 수레가 움직이자 깜짝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때문에 앞 발을 빼고 수레 아래로 뛰어내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수레는 점차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빨라진 속도 때문에 완전히 겁에 질려버렸다. 고양이는 그저 천에 덮여진 채 격자를 붙잡고 수레가 멈추길 바라며 버티고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만에야 수레가 멈춰 섰다. 고양이는 이제 뛰어내리면 되려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천이 벗겨지고 고양이가 드러났다. 주변은 완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이 곳을 어디일까? 늘 보던 모래는 온 데 간데 없었다.

 고양이가 타고 있던 수레 앞에는 거대한 덩치의 두 발로 걷는 동물이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한 마리가 숨어들었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꺄웅!!"

 고양이는 발버둥쳤다. 발톱을 세우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목덜미가 잡혀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새끼인가? 귀엽네."

 그는 고양이를 자기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배고팠니?"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고양이는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어이쿠? 알아 듣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이 더 주름지고 깊어졌다. 그리고는 품 안에 고양이 안아 들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자, 밥 먹어라."

 그는 자신의 밥을 내어주며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배가 고팠던 고양이는 허겁지겁 그가 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밥 먹는 중인 고양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 큼직하고 늙구수레한 손이 자신을 쓰다듬는 것이 참으로 따스하게 느껴졌다.

 "고로롱"

 고양이는 고로롱거리며 그의 손에 열심히 머리를 부비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행동은 통하니까.

 "허허!"

 그는 환한 얼굴로 너털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에게 부비대는 고양이가 퍽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양이를 책임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품 안에 고양이를 안으며 말했다.

 "같이 가자."

 외로운 두 발로 걷는 동물과, 외로운 고양이는 그 날부터 함께 많은 곳을 여행 다녔다. 그렇게 많이 떠돌아다녔지만, 역설적으로 고양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역을 가졌다. 그가 바로 고양이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고양이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처음 만났던 날에도 이미 얼굴에는 많은 주름이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 보다 오래 살았다. 

 "이야오옹……. 이야오옹……."
 "그렇게 울지 말아라, 이 녀석아. 무슨 사람 우는 것처럼 울고 있어?"
 
 구슬픈 소리를 내는 고양이에게 그가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이제 그의 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 가고 나면 어쩔꼬?"

 그는 그 말을 하며 손을 올려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너는 귀여워서 누구든 좋아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의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슬퍼말아라."

 그의 손길이 멈췄다.

 "슬퍼말아라."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숨소리는 멈췄다. 그때까지는 그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양이는 계속 그에게 고양이의 유일한 소원을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양이의 바람을 알아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두 발로 걷는 다른 동물들이 고양이와 함께한 그의 장례를 치러줬다. 그의 장례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그 자리를 지켰다.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고양이는 석상처럼 가만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몇몇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은 그런 고양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곤 했다.

 그리고, 고양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아니, 정확히는 감춰질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몸집이 작은 고양이는, 다시 또 영역을 뺏긴 것이었다.

휘이잉

 찬바람이 불어왔다. 고양이는 다시 새로운 영역을 찾으러 떠났다. 고양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계속 걷고 걸을 뿐이었다. 새 영역을 찾아 낮밤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계속……. 그러나 새 영역은 만들 때마다 번번이 뺏기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넌 뭐냐옹?"

 정처 없이 떠돌던 고양이에게 난생 처음 보는 털이 길고 거대한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그 이질적인 외모에 깜짝 놀랐다. 그 고양이는 털이 길고 몸집이 컸다. 고양이는 털 긴 고양이에게 대답했다.

 "난 고양이다옹."
 "나도 고양이다옹. 넌 어디서왔냐옹?"
 
 털 긴 고양이의 물음에 고양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다옹. 걷다 보니 여기에 왔다옹. 너도 고양이라고 했냐옹?"
 "그렇다옹."
 "넌 왜 그렇게 털이 기냐옹?"
 
 고양이의 질문에 털 긴 고양이가 대답했다.

 "지금은 길지 않은데 무슨 소리냐옹?"
 "길지 않다니?"
 "겨울이 오면 더 길어질거라옹."

 그 말에 고양이는 깜짝 놀랐다.

 "더 길어진다니! 넌 참 특이한 고양이다옹."
 "특이한 고양이? 그럼 우리 가족들도 다 특이한 고양이라는 것이냐옹?"
 
 털 긴 고양이의 말에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가족들이 다 털이 기냐옹?"
 "그렇다옹. 생각해보니, 주변에 있는 모든 고양이들이 다 특이한 고양이인 것 같다옹."
 "그 말은… 여긴 다들 털이 긴 고양이들 뿐이라는 말이냐옹?"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털 긴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옹. 이 위로 가면 다 그렇다옹. 우리 엄마 고양이, 이모 고양이, 첫째 이모네 삼 남매, 둘째 이모네 형제, 옆 동네 고양이들, 모두 다 털이 길다옹."

 털 긴 고양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고양이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는 물었다.

 "…너 성묘가 아니냐옹?"
 "아니라옹."
 "그럼 더 큰 고양이가 있다는 말이냐옹?"
 "내가 사는 곳에 있는 고양이들은 그렇다옹."

 그 대답을 들은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난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옹.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내 영역이 없을 것 같다옹."
 "너는 아기인데 벌써 영역을 찾냐옹? 엄마 고양이는 어디 갔냐옹?"
 "…난 독립했다옹."
 "벌써 독립을? 너무 독립적인 거 아니냐옹? 뭐, 어쨌든 행운을 빈다옹. 잘 가라옹!"

 털 긴 고양이는 고양이가 자신보다 더 어린 아기 고양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털 긴 고양이는 고양이의 행운을 빌어주며 인사를 했다.

 고양이는 지금까지 걷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수 많은 야생동물들의 위협을 피해 도망치고, 살기 위해 사냥을 하고, 정처 없이 걸었다. 고양이의 영역을 찾기 위한 여행은 계속됐다.

 여러 계절이 수십 번은 지났다. 주변의 풍경도 여러 번 바뀌었다. 

 하지만 여느 고양이들처럼 고양이는 더 이상 죽지도 않고 크지도 않았고, 늙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자신이 특이한 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영역이 없었기 때문에 한 자리에 정착해서 주변 고양이들을 살필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는 그저 영역을 찾아 계속, 계속 걸어나갔다.

 그런 고양이가 오랜만에 걸음을 멈추게 된 계기는 그리 좋은 계기는 아니었다.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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