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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오래 전의 고양이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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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오래 전의 고양이 3

SooyangLim 2022. 9. 12. 19:03

 고양이는 근처에서 풀을 뜯던 큰 뿔이 있는 산양에게 물었다. 산양은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겁이 없는 거양?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거양?"
 "뭘 말이냐옹?"
 "내 옆에 왜 있는 거양?"
 "그냥 있는 거다옹. 저길 넘으면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 보면서 말을 하는 거다옹."

 그 말에 양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겁이 없는 고양이구나양."
 "겁은 많다옹. 그냥 궁금한 것 뿐이다옹."

 고양이의 말에 산양이 대답했다.

 "저긴 너무 높아서 넘을 수 없다양. 얼마나 높은 지 산꼭대기에는 눈이 언제나 녹지 않는다양. 하지만 저 뒤에 뭐가 있는지는 안다양. 저 뒤에는 높고 풀이 많은 평지가 있다양. 꽤나 좋은 곳이다양."
 "넘을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아는 거냐옹?"
 "너는 예리한 질문을 하는 거양."

 양은 웃으며 말했다. 

 "돌아서 가면 된다양."
 "돌아서 갈 수 있는 거냐옹?"
 
 산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종종 절벽을 타며 풀을 뜯어 먹는다양. 하지만, 저렇게 언제나 눈 덮인 높은 산을 굳이 항상 넘지는 않는다양. 모든 일을 정면 승부를 할 필요는 없다양. 필요하다면 돌아가면 된다양. 어쩔 때는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다양. 나는 그걸 지혜라고 한다양."
 "너는 지혜로운 산양이구나옹."

 고양이의 칭찬에 산양은 괜히 풀을 뜯어먹었다. 산양은 고양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고양이양?"
 "연륜 있는 거북이가 말하기를 나는 서쪽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옹. 그래서 난 내가 온 곳의 반대인 땅의 동쪽 끝으로 가고 있다옹."
 "그럼 넌 동쪽으로 가는 거양?"
 "그렇다옹. 북쪽으로 간 뒤에 동쪽으로 갈 거다옹. 동쪽 끝까지 여행을 가려고 한다옹."
 
 고양이의 말에 산양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여행을 하는 거양?"
 "오래 사는 동물을 만나서 친구가 되고 영역을 만들고 싶어서 여행을 하고 있다옹."
 "오래 사는 동물 친구? 얼마나 오래 사는 친구가 필요하길래 찾는거양?"
 "난 수백 년을 살았다옹. 나랑 비슷하게 사는 친구를 만나려 한다옹."

 고양이의 대답에 산양이 놀라며 말했다.

 "수백년!?"
 "안 믿기겠지만, 거북이를 만나고 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옹."
 "고양이가 그렇게 오래 사는 게 가능한 거양?"
 "연륜이 있는 거북이의 말을 들어보니 오래 사는 동물들이 바다 속에는 꽤 있는 것 같았다옹. 바다 속에도 있는데 육지에도 있지 않겠냐옹? 내가 아마 그런 경우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옹."

 고양이의 말에 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납득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양은 또 물었다.

 "그래서 육지에서도 오래 사는 다른 동물을 찾는 거양?"
 "그렇다옹. 그래서 해가 뜨는 곳으로, 땅의 동쪽 끝, 아침이 시작되는 곳까지 가고 있다옹."
 "오래 사는 동물을 못 만나면 어쩔 거양?"
 "바다로 갈 거다옹."

 고양이의 대답에 산양은 말없이 우적우적 풀을 씹어 삼키고는 말했다.

 "고양이양. 산 뒤의 높은 땅이 궁금한 거지양? 그리고 동쪽으로 가고 싶은 거양?"
 "그렇다옹."
 "그럼 나랑 같이 가자양. 나는 너만큼 오래는 못 살지만, 잠깐 동안 길동무가 되어줄 수는 있다양."
 "그래 줄 수 있겠냐옹?"

 고양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산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동료 산양들과 같이 가면 될 것 같다양."

 고양이는 산양들과 함께 높은 산 옆을 돌아서 산 뒤의 높은 평지로 향했다. 그곳은 마치 세상의 지붕 같았다. 드넓은 고원을 고양이는 산양들과 함께 뛰어다니고, 고원 위의 작은 사냥감들을 사냥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눈표범이나 여우 같은 동물들이 있었기에 영역을 갖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오래 사는 친구를 만나지도 못했다. 그렇게 산양 무리와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잘가라양."

 처음 만났던 산양은 아주 오랜 예전에 죽고, 여러 대를 걸친 자손과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 산양들과 함께 한 시간을 못 잊을 거다양."
 "고마웠다옹, 지혜로운 산양 친구들양."

 고양이가 이제는 오래 들어서 익숙해진 산양의 말투로 말했다. 산양은 고양이에게 애정 어린 박치기를 하며 말했다.

 "언젠가는 네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양. 잘 가라양, 수천 년을 산 고양이양."

 고양이는 오랜 시간 함께 한 산양들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또 수년이 흘렀다. 고양이는 여전히 영역을 만들고 뺏기기를 반복하면서 이동해나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인간들이 사는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인간들이 만든 곳에 매여 있는 말들을 몇 마리 발견했다. 고양이는 말 들 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넌 말이구나옹. 아주 오래 전에 인간과 여행하면서 본 적이 있다옹."
 "히이이이힝! 안녕 고양이야!"

 말이 고양이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고양이는 말에게 물었다.

 "너희는 왜 매여 있냐옹?"
 "몰라. 나를 타고 다니는 인간, 나를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나의 주인이 매어놨어. 길을 가던 길에 잠이 와서 여기서 잠시 쉬는 걸 거야. 아마도 아침이 되면 떠나겠지?"
 "어디 가는 길이었냐옹?"
 "몰라. 난 그냥 시키는 대로 달리는 것 뿐이야."

 그 말을 들은 고양이가 말했다.

 "시키는 대로 말고 그냥 가고 싶은 곳은 없냐옹?"
 "글쎄. 나는 그냥 마음대로 달리고 싶어. 근데 곧 그렇게 될지도 몰라."
 "인간이 풀어주냐옹?"
 "아니. 이제 나를 타고 달릴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들었어. 서쪽에서 자동차와 기차라는 것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달리는 쇳덩이인데, 그게 있으면 내가 필요가 없다고 해. 내가 필요가 없어지면 풀어주겠지? 그럼 난 자유롭게 달릴 거야!"

 말은 상상만으로도 기쁜지 히히힝 하고 웃었다.
 고양이가 말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서쪽에 그런 것도 생겼냐옹!? 신기한 일이다옹. 예전에는 그런 건 없었는데 말이다옹. 역시 인간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옹."
 "서쪽을 가봤니?"
 "나는 서쪽에서 왔다옹. 나는 동쪽으로 가고 있다옹."
 "동쪽? 네가 온 서쪽은 어떤 곳이야?"

 말은 고양이에게 여러 이야기들을 꼬치꼬치 물었다.
 고양이는 자신이 겪은 것, 들은 것, 본 것들을 이야기 해 줬다. 그리고 왜 동쪽으로 가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줬다.

 "우와! 넌 정말 멋진 고양이구나! 나는 그냥 쉬지 않고 앞으로만 달리기만 했는데! 네 말을 들으니까 나는 의미 없이 달리기만 한 것 같아……. 몇 년 살지는 않았지만……."

 한껏 친해진 말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고양이는 어느새 친해진 말의 등 위에 올라탄 채 말했다.

 "그렇지 않다옹. 넌 열심히 산 말이다옹. 네가 지나온 여정 동안 네가 같이 다니는 인간을 도왔지 않냐옹?"
 "그렇지만……."
 "내가 길게 말하긴 했지만, 나는 언제나 열심히 살지 않았다옹.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오는 기간 동안 쉬기도 쉬고, 멈추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남의 수레를 타고 오기도 하면서 살아왔다옹. 게다가 언제나 영역을 뺏기기만 했다옹."

 고양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위해 따뜻한 말투로 말을 했다.

 "너는 네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지 않냐옹? 그냥 너와 나는 살아온 방식이 다를 뿐이다옹. 의기소침해지지 말라옹."

 고양이의 말에 말이 푸르르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고양이야."
 "너를 믿어라옹. 지금껏 열심히 달려 본 적이 있지않냐옹? 언젠가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달리게 될 때 너는 달려본 경험을 기억하면서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 거다옹."
 "히이이잉! 고마워, 고양이야! 네 친구가 되어서 정말 기뻐!"

 말의 말에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꼬리를 올리고 휙휙 움직였다. 
 말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너와 친구가 되고 보니, 나도 동쪽으로 달려보고 싶어. 너와 함께하면 그 시간이 즐거울 것 같아. 그거 아니? 나의 주인도 좋은 인간이야. 언제나 나에게 먹을 것을 줘."
 "좋은 주인구나옹."
 "맞아. 내일은 도시에 가기로 했어. 그러니 일찍 자야겠어. 잘 자, 고양이 친구야."

 말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앉아서 그대로 잠들었다.

 고양이는 조용히 말의 등에서 내려서 말의 주인을 구경하러 갔다. 말이 좋아하는 주인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말을 매어놓은 곳 옆의 작은 건물로 다가갔다. 그곳은 말의 주인이 기거한다는 객잔이었다. 고양이는 창문 옆으로 다가갔다. 마침 주인의 목소리가 창문을 통해 흘러나왔다.

 "값을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말 5마리 정도면 차를 살 만큼은 되겠지?"
 "견적을 내봐야 압니다, 어르신. 경주용으로는 힘들 테고, 아마 고기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으니……."
 "아이, 그래도 한두 마리는 쓸 만 해~"

 대화를 들은 고양이는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슬프게도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검은 말이랑 흰 말, 긴 갈기 갈색 말은 경주마로 팔 수 있겠지?"
 "긴 갈기 갈색 말은 힘듭니다. 바로 도살장으로 보내는 게 그나마 값을 더 받을 겁니다."

 거기까지 들은 고양이는 다급하게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새로 사귄 말 친구가 바로 갈색의 긴 갈기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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