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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왕자와의 만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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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왕자와의 만남

SooyangLim 2021. 7. 15. 19:01

 왕자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뗐다. 

 "…아버님과 산해의 그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지."

 왕자는 옥실과 장신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와 함께 다닌다던 키가 큰 묘령이 남자에 대해서 말이야. 몇 년 전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들은 적이 있지."

 옥실은 왕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왕자는 그들을 본 적도 없는데, 그들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 본 것이었다.

 "근데 지금 내 눈 앞에 나타났군."

 왕자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오게."

 그들은 왕자가 보고 있어서 지금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왕자의 손을 잡고 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왕자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따라오게."  
 
 왕자가 그들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이 얼떨결에 따라갔다. 옥실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집."
 "네?"
 "궁은 아니니 걱정 말게."
 
 왕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재촉해서 조금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장신의 남자과 옥실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일단 왕자를 따라갔다. 장신의 남자는 추워서 걷는 동안 입에서 하얀 연기가 나왔다. 그는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인지 매우 춥게 느껴졌다. 시간도 제법 늦은 시간인지 사방이 껌껌해진 밤 시간이라 더욱 춥게 느껴졌다.

 "어우, 추워."
 "조금만 참게."

 왕자가 그렇게 대꾸하고는 더 발걸음을 재촉했다.

 좀 걷다보니 갑자기 거리에 있던 이들 다들 분주하게 서두르는 게 보였다.
 장신의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옥실에게 말했다.

 "아직 통금이 있나?"
 "아직?"

 그 말을 들은 왕자가 피식 웃으며 조소하듯 말했다. 
 그때 9구역 출신들의 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빨리 들어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더 심해졌군."   

 장신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때 그들 근처에 있던 노인과 한 아이가 걸음이 느려 빠르게 걷지 못하자 군인이 때리려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왕자가 갑자기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왕자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군인에게 총을 겨눴다.

철컥

 "뭐냐!?"

 말단으로 보이는 군인이 왕자가 총을 겨누자 순간 깜짝 놀라 말했다. 군인은 9구역 공용어를 썼다.

 "학생?"

 군인이 왕자의 복색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왕자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관 학교 생도다."
 "뭐하는 짓이냐."
 "아버님의 명으로 현재 중요인물 압송중이다. 지금 시간에 강제 집행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을 함부로 대하는 건 안된다."

 그 말에 군인이 장신의 남자와 옥실을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느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책만 읽은 샌님이냐? 우리 국민은 무슨."

 군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노인과 아이를 휙 밀어서 보내며 소리쳤다.

 "빨리 들어가!"

 군인은 자리를 뜨며 말했다.

 "너도 빨리 가 봐.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고."
 
 그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되는 거에요?"

 왕자가 벗어놓은 외투를 건네며 옥실이 물었다.

 "난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될 인물이긴 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에요?"
 "우리 국민을 아끼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뜻이고, 그대들은 내가 필요해 데려가는 것이니 이 또한 아버님이 반대할 리 없지."
 
 왕자는 그렇게 말하며 외투를 입고는 다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곧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문 옆에 앉아있던 이가 왕자를 확인하고는 문을 열어줬다. 문을 여니 계단이 보였다. 그들은 계단을 여럿 올라갔다. 각 층의 계단마다 문이 또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층에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누군가 뭐라 중얼거렸다. 왕자 역시 뭐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왕자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에 있던 이가 문을 열어줬다. 

 그곳은 숙박업소처럼 긴 복도와 여러 개의 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 복도는 또한 미로처럼 꼬여 있었다. 그들은 그 복도에서도 한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거의 끝방이 아닐까 싶은 곳의 문 앞으로 들어갔다. 왕자가 열쇠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작은 복도가 나타났다. 문이 세 개가 있었다. 왕자는 제일 왼쪽의 문에 노크를 했다.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왕자가 이번에도 아까처럼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그 대답에 한 늙은이가 나왔다. 그 노인은 고개를 까딱하고는 방 안에서 나와 옆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들어오게."

 왕자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어두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그 안으로 들어가니 보기보다 꽤 넓은 공간이 있었다.

 "여긴…?"

 장신의 남자가 집 같지만 집 같이 생기지 않은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임시 숙소라네."
 
 왕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외투와 군복을 재빨리 벗어버렸다.

 "들어오게."

 왕자가 문을 열자 욕실과 연결된 침실이 보였다. 그곳엔 커튼에 가려진 창문이 보였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둥그런 테이블이 있었다,
 왕자는 침실에 옷을 걸어놓고는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앉지."

 둘은 군말 없이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왕자가 바로 물었다.

 "왜 온 건가?"
 "네?"

 뜬금 없는 질문에 장신의 남자가 반문을 했다.

 "난 자네들을 거처에까지 데려와서 지금 숨겨주고 있다네. 신뢰에 보답을 해줬으면 하네."
 "그건 그냥 우연히……." 
 "우연?"

 장신의 남자의 말에 왕자가 피식 비웃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왕자의 추궁에 장신의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옥실을 불렀다.

 "옥실아? 어떡하냐?"
 "…왕자님,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왕자가 옥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는 잠시 만날 이를 만나고 돌아가던 중에 이미 너무 많이 힘을 써서 기력이 다해 그 곳에 떨어졌습니다. 저희는 가장 안전해질 것을 최우선 목표로 비상 탈출해 온 곳이 왕자님 앞이었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왕자님이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났다?"

 왕자가 비꼬듯 말 끝을 올리며 말했다.
 옥실은 당황하지 않고 답변했다.

 "개인 항공선을 타고 가다가 불시착했습니다."
 "개인 항공선! 허허. 그렇다면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하는 건가, 아닌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갑자기 옥실이 왕자에게 거래를 걸었다.
 왕자는 옥실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은 믿지 않았고, 그들에게 들었을 때 그저 신묘하다 생각했네. 그런데 신묘한 것이 아니군."

 왕자는 깍지를 끼고 그들을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영리하다 했던 말이 맞았어."

 왕자는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물어 보면 대답을 피할 것이지?"
 "어떤 것은요."
 "어떤 것?"
 "말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해방에 대한 것이나 왕자님이 몰래 하고 계신 일들이요."

 옥실의 말에 왕자의 표정이 싹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저희는 아무도 모르게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도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지?"
 "어둡지만 밝아질 것입니다."
 "점쟁이 같은 소리를 하는군."

 왕자가 팔짱을 끼고 자세를 살짝 물렸다.
 옥실이 지지 않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인 건 어떨까요?"
 "구체적?"
 "지금 구레아가 흉흉한 것은 며칠 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닙니까? 저희는 그 일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해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왕자님께서도 바라시는 바라 생각됩니다."

 그 말에 왕자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장신의 남자에게 말했다.

 "…영리한 시종을 두었군. 아니, 그대를 지시한 이가 대단한 이 인가?"
 "이쪽은 저희 주인님의 아들 같으신 분입니다. 도둑놈이지만."

 옥실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 말에 어쩐지 장신의 남자가 놀라서 옥실을 바라봤다.

 "아들?"
 
 그 반응에 옥실은 태연하게 말했다.

 "본인은 모르지만요."
 "뭐, 그런 관계들이 있지."

 왕자는 어쩐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서로의 목적은 일치하는군. 근데, 난 그대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데."
 "그건 말해드릴 수가 없어요."

 옥실이 능구렁이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 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자가 장신의 남자에게 물었다.

 "네? 저요? 뭘요?"
 "더 말 할 것은 없는가?"
 "저야 뭐… 그냥 옥실이가 원하는 바가 제가 원하는 바죠."

 왕자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말했다.

 "…알겠네. 도와주도록 하지."

 그 말을 하고 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오게."

 왕자가 일어나 책장을 밀자 놀랍게도 책장이 열렸다. 그곳엔 아까 옆방으로 간 노인이 있었다.

 "이들을 부탁하네. 내일 산해로 보내주게."
 "분부 받들사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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