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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그녀 설, 화, 참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그녀 설, 화, 참

SooyangLim 2021. 7. 22. 19:03

마타마이니력 4252년-

 이른봄이라면 이른 봄이고, 늦은 겨울이라면 늦은 겨울이랄 수 있는 계절. 뒤늦게 눈이 와서 쌓인 설산과 설원을 배경으로, 쌓인 눈 못지 않게 눈부시게 아름답고 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설화가 활을 쏘고 있었다.

휙- 퉁

휙- 퉁

 화살이 과녁에 한 발 한 발 꽂히고 있었다.
 화살이 다 떨어지자 몇 발자국 움직여 옆의 작은 과녁이 여러개 늘어서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여기 계셨습니까?"

 그때 홍화가 자신의 호위를 데리고 오며 말했다.

 "오늘 의랑(意浪) 언니가 오시는데 이만 가는 게 어떻습니까?" 
 
 홍화 이월향이 구레아 제일미이자 제일지(智)로 통하는 의랑 주목지가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알고 있다." 

 설화는 특이하게 생긴 총을 꺼냈다. 총이 이상 없는지 점검하고는 우주 9구역제의 총알을 하나씩 장전하고 배터리도 장전했다.

 "무사라도 되실 생각입니까?"



 대답 대신 총성이 울렸다.
 곧이어 배터리가 윙-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설경에  그러고 계시니 참으로 그림 같으십니다. 무예를 익히는 모습마저도 멋드러지는군요."

피융



 신기한 소리를 내며 발사된 빛은 그대로 과녁에 구멍을 냈다. 

 "어째서 그리도 열심히 무예를 익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다시 배터리가 윙-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저의 호위 무사보다도 더 무사 같으십니다."

피융



 또 구멍이 났다.

 "가끔보면 참 아쉽습니다."



 "남편이 되어달라고 말하지 못해서요."

피융



 이제껏 입 다물고 있던 설화가 입을 열었다.

 "…은근짜라도 되실 생각입니까?"
 


 "서방으로 들이고 싶지만, 설화 언니라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요."
 
피융



 "제 마음을 얻고 싶으시면 그런 말은 삼가는 게 좋을 겁니다."
 


 "내래 그냥 그러겠습니까? 세상이 변해 혼탁하니 기댈 데가 언니 밖에 없는 것이지요."

 홍화가 약간은 장난스럽게 사투리 섞인 말을 하며 말했다.

피융



 "세상이 혼탁하면,"



 "맑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철컥

 설향이 홍화에게 총을 겨눴다.
 홍화 옆에 있던 호위 무사가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호위무사는 칼을 쥐고 있었다.

 설화가 방아쇠를 당겼다.

 틱

 총알이 없었다.

 "몇 발 남았는지 기억 하는 건 기본이다."

 호위무사가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무장하고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때,

피융

 "끄악!"

파삭

 설화가 호위무사가 들고 있던 칼에 쏴버렸다. 칼이 번쩍거리며 진동하더니 부서져 버렸다.
 호위 무사는 전기가 통한 것 처럼 부르르 떨다가 몇 초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칼자루를 놓쳐버렸다.

 "몇 발 남았는지 기억 하는 건 기본이라 하였다."

 설화가 그 말을 하며 호위 무사 앞으로 다가가 칼자루를 발로 차버렸다.

 "총을 익혀라."

 그 말을 하고 자신의 총을 손에 쥐어주었다.

 "세상이 변했다.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지킬 수 없다면 가진 것을 모두 잃게 될 거다."
 
 설화가 허리 춤에 끼고 있던 칼을 풀며 말했다.
 
 "그동안은 너무나 당연해서 가진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 마저 잃게 될 거다."

 설화가 칼집에서 칼을 천천히 꺼내 호위 무사의 목에 갖다대며 말했다.

 호위무사가 칼을 쳐내며 뒤로 몸을 뺐다.
 몸을 아래로 숙여 다리를 누렸다.

 설화가 다리를 뒤로 빼면서도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게, 마치 춤을 추듯 몸을 휙 돌렸다.
 반대쪽 팔로 호위무사의 몸을 짚고는 반대쪽으로 펄쩍 뛰어 올랐다.

 호위 무사가 설화의 흩날리는 옷깃을 잡았다.



 그 순간 설화가 칼 손잡이의 끝으로 총을 쥐고 있는 호위 무사 손을 가격했다.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호위무사가 옷깃을 쥐고 있던 손으로 이번에는 설화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좀 전까지 총을 쥔 손을 목쪽으로 손을 뻗었다.



 설화가 쥐고 있던 칼이 날카로운 은빛 궤적을 그렸다.
 설원이 녹지 않은 날씨, 서늘한 칼의 감촉이 목에 닿았다.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칼든 사람의 무장부터 해제시켰어야지."    

 목이 졸린 소리로 설화가 말했다.

 어느새 칼은, 차가운 느낌만 남긴 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호위무사의 손아귀에도 힘이 풀어졌다.

 "한 수 배웠습니다."

 호위 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호위 무사와 그리 크게 키 차이도 나지 않을 만큼 키가 큰 설화는, 자신의 키를 본따기라도 한 듯한 긴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설화가 칼을 호위무사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호위 무사가 칼을 받아들었다.

 "지금은 홍화를 지키지만, 언젠가는 더 큰 것을 지켜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설화가 말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름답고 이지적인 목소리에 홍화가 뒤돌아봤다.
 설화가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어디 있나 했더니 무예를 닦고 계셨군요."

 의랑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시서화, 학문, 예술에… 이젠 무예까지 섭렵했군요."
 "천하의 의랑 언니가 하실 말씀입니까?"

 설화가 의랑에게 약간은 칭얼대듯 말했다. 

 "그리고 소리나 춤은 저보다는 홍화가 더 곱습니다."
 "아이, 참. 언니도. 겸손하시기는."

 홍화는 설화의 칭찬에 괜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뭐, 어쨌거나 무예를 익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지킬 것이 많아 비겁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비겁하더라도 비겁하게 죽지 않으려 노력 하고 있습니다."

 의랑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는 설화의 총을 만지다가 총알과 배터리를 갈아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소문을 하나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입니까?"

 의랑이 능숙하게 총을 만지는 모습에 설화가 약간은 놀란 모습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곧 대비하고 결심해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그것이 무슨…?"

 의랑의 심상치 않은 말에 설화가 긴장하며 물었다.  

 "구레아는 우주 9구역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선언을 할 것이라 합니다."


  
 의랑이 과녁을 향해 쐈다.
 정중앙에 총알이 꽂혔다.

 "누가 선언을 합니까?"

 설화가 물었다.
 설화의 물음이 의랑이 성화를 보고 싱긋 웃더니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총을 겨눴다.

피융

 긴 빛줄기가 하늘로 일직선을 길게 그리며 사라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의랑이 말했다. 
 
 "독립을 열망 하는 이들이요."



 그 날이 있고 얼마 뒤, 초하루 날이었다.
 설화가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시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큰일났습니다요!"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이냐?"
 "거리에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있습니다요!"
 "왜?"
 "학생들이 대표들에게서 받은 독립선언서를 받아 읽고 광장에서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합니다."
 
 시종의 말에 설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생들이? 대표들에게서 받았다?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시종이 허둥지둥 하고 있는데 홍화가 시종들과 호위무사와 함께 집에 왔다.

 "언니."
 "여긴 어인 일이냐?"
 "만세 운동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방금 막 소식을 들었다.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다만."

 설화의 말에 홍화가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광장에서 읽기로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의랑 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 중에 한 곳에서 9구역으로부터의 독립에 뜻을 모은 이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었다합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신고로 그들은 연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언서를 따로 받아 낭독하고 만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홍화의 말에 설화가 책을 덮었다.

 "의랑 언니가 말한 때가 이때로구나."
 "역시 언니는 알고 있었을까요?"
 
 설화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는 역시 뜻을 같이 하실 생각이군요."
 "나의 뜻은 그런 것이고, 나의 절개는 그런 것이다."
 "역시 한겨울 얼음이 속 피어나는 눈꽃 다우십니다."

 설화는 나가기 위해 옷을 가다듬고 채비를 하며 홍화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홍화야."
 "네."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너도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서겠지."
 "그렇습니다."
 "너는 오지 말 거라."
 "네?"

 뜻밖의 말에 홍화는 깜짝 놀랐다.

 "죽을 수 있다. 너는 살아서 독립을 보아라."
 "싫습니다! 이건 저의 의지입니다! 이미 기녀들도 이미 뜻을 모았습니다. 저는…"
 "그래서이다. 그래서 더더욱 너는 나를 따라오면 안된다. 의랑 언니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네가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아닙니다! 제가 무슨…! 언니께서…"
 "너는 언젠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지.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고. 또 그렇게 사랑 하는 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다고."

 갑자기 설화가 따뜻하면서도 서글픈듯한 미소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하고는 옆에 있는 호위무사와 시종들에게 호령하듯 말했다.

 "홍화를 막아라."
 "네!"

 그들이 일제히 홍화의 주변으로 모였다.

 "언니! 설화 언니! 이거 놔라! 놔!"
  
 설화는 홀로 문 밖으로 나섰다.
 설화의 집 앞에는 기녀들 무리가 있었다.

 "설화 언니!"
 "홍화는요?"
 
 설화가 입을 열었다.

 "최악의 수를 생각 했다. 홍화는 내가 막았다. 다들 내 뜻을 따르겠는가?"
 
 다들 잠깐 웅성이는듯 했지만 곧 납득했다.

 "따르겠습니다."



 마른 초원에 확 일어나는 들불처럼 만세 운동이 퍼져나갔다.
 광장으로,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곧 총성과 빛에 난자 당하기 시작했다.
 피와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추억을 함께한 지인이 다치고 잡혀가고 죽고 있었다.
 누군가와 웃고 떠들고 싸웠던 친구가 다치고 잡혀가고 죽고 있었다.
 누군가와 일생을 함께했던 가족이 다치고 잡혀가고 죽고 있었다.
 수 많은 목숨이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낫에 쓸린 꽃밭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만하시지요."
 
 그때 갑자기 9구역 경찰들의 총칼 앞에 의랑이 막아섰다.
 
 "드디어 나타났군. 그 식당의 주인!"

 경찰이 소리쳤다.
 경찰들은 의랑이 나타나자 일제히 진압을 멈췄다.

 의랑이 기녀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돌아가라."
 "언니?"

 의랑의 호령에 다들 깜짝 놀랐다.

 "이들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가 그러도록 시켰습니다."
 
 의랑은 그리 말하며 선두에 서있던 설화에게로 다가왔다.
 설화는 총에 스쳐 팔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피가 많이 나오는구나. 내 이 어린 아이들과 벗들에게 몹쓸 짓을 시켰구나."

 의랑이 설화의 상처에 자신의 큼직한 손수건을 감아주었다.

 "그렇지?" 
 "언…니?"

 설화는 자신들의 의지라고 외치려다가 손수건 속으로 느껴지는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느낌에 말을 멈추었다.
 의랑이 설화를 안아주며 귓가에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비겁하지만 비겁하게 죽지 않으려한다."
 "네?"

 의랑은 뒤도는 순간 미소를 지으며 경찰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는 9구역의 지배를 지지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뿐사뿐 요염하게 다가갔다.

 "굳이 대립각 세울 필요는 없잖아요? 돈도 돈인데." 

 그녀의 말에 기녀들이 웅성거렸다. 종종 탄식과 분노에 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찰들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고관으로 보이는 자가 손을 들었다. 
 주변에 만세 운동이 들려오는 와중에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의랑 주목지. 맞나?"
 "네, 그렇습니다. 이 친구들은 이만 보내주시지요."
 
 그는 옆사람에게 뭔가를 귓속말로 얘기하고는 갑자기 자리를 떴다.
 남은 경찰들이 뭔가 얘기를 하더니 소리쳤다.

 "돌아가!"

 기녀들이 반발했다.
 설화가 말했다.

 "…돌아가자."
 "네?" 

 주변의 기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언니!?"
 "일단 돌아가자."
 
 기녀들은 웅성거리며 설화를 따라갔다.
 설화의 집에 기녀들이 모두 모였다.
 
 설화가 집에 도착해서 팔에 묶인 손수건을 풀어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의랑 언니가 비겁하지만 비겁하게 죽지 않으려 한다고 내게 말하며 이걸 줬습니다."



 의랑은 고관으로 보이는 경찰을 따라가다가 말했다.

 "그래도 구레아 제일 기녀의 처음인데 풍경이 보이는 곳을 가고 싶습니다."
 "뭐… 나쁘지 않지."

 그는 의랑의 말에 경찰 건물로 들어갔다.
 경찰 건물 앞도 그랬지만 건물 안쪽도 난리였다.

 의랑은 고층인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은 닫자 의랑은 그의 가슴팍을 팍 쳐서 밀었다. 사무실 책상 위로 그가 앉혀졌다.   
 의랑은 웃옷을 한꺼풀 벗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바지 단추를 풀었다.

 "천천히 즐겨보죠."

 의랑은 입을 맞추며 창가 쪽으로 몰아갔다. 의랑이 그를 꽉 안았다.
 그리고…



와장창

 창문이 깨지며 두 사람이 떨어졌다. 
 


 며칠 뒤 구레아에 9구역 지배자가 박물관을 세웠다.
 그리고 그 박물관에는 토막난 의랑 주목지의 신체가 보존 용액에 담긴 채로 전시가 됐다.

 그녀의 시체가 전시된 곳 앞에서 기녀들 몇몇이 서있었다.
 홍화는 차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자."

 설화가 씁쓸하게 보다가 말했다.
 
 홍화는 눈물을 흘리며 설화의 집으로 같이 들어왔다.
 홍화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오열을 했다. 
 설화는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오열하던 홍화는 방에 들어간 설화가 한동안 잠잠하자 살며시 문을 열었다.

 "어,언니!? 무슨, 무슨 짓이에요!?"

 홍화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설화는 자신의 긴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 바닥에는 잘린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부로 설화라는 기명을 버릴 것이다."
 "네…?"
 "독립군에 들어갈 것이야."
  
 기녀 설화는 기명을 버리고 군인 설참이 되었다.

 

 "독립군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다. 도간(지명)에 독립군들이 있다 들었다. 그리로 갈 것이다."

 홍화가 미리 준비해 둔 짐을 들고 당장 나갈 채비를 하는 설참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 군사 교육 한 번 받지 않으신 분이 군대에 들어가겠다는 말입니까?"

 홍화의 말에 설참은 멈칫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도간에는 가야겠구나. 거기 무관학교가 있으니."
 "설화 언니, 너무 성급하십니다! 좀 더 찬찬히 생각을…"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의랑 언니의 쪽지를 받고 더 확고해진 생각일 뿐이다. 아참, 이미 가산도 다 정리가 되었다. 당장 필요한 것 외에는 전부 네게 넘겨놓았다. 잘 쓰도록 하렴. 그리고 장재비를 미리 네게 건네 놓을 것이니 내 장례, 설화의 장례를 치러다오."
 "네?"
 
 장례라는 말에 홍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난 이제부터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려 한다. 아무래도 그게 활동하기 편하지 않겠느냐. 어차피 죽을 목숨 미리 장례를 치르는 사치를 누리게 해준다 생각해다오."
 "저는… 저는 못합니다. 저는 그런 거 못합니다……."

 결연하고 담담한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홍화의 눈가가 젖어들어갔다.

 "혹여나 살아서 다시 보게 되면 설참이라 하겠다." 

 설참은 마당에 자신의 옷가지와 약간과 생전 의랑에게서 선물 받은 옷가지 하나를 내어 놓고는 불을 붙였다.
 홍화가 멍하니 불타고 있는 설화의 옷가지를 바라봤다. 

 "잘 지내렴."   

 설참이 홍화를 마지막으로 안아주고 그 길로 떠나버렸다.
 마당에 연기가 높게 치솟았다.

 연기가 잦아든 설화의 집에서는 의랑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목 매 자살한 일패기생 설화의 장례가 치러졌다. 시신은 그 자리에서 유언에 따라 의랑에게 선물 받은 옷가지와 함께 태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잦아든 연기와는 다르게 세간에는 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이 모든 걸 봤던 홍화에 대한 소문이었다. 설화를 홍화가 죽이고 증거인멸을 위해 태웠다는 소문. 이 소문에는 설화의 재산이 홍화에게 대부분 넘어갔다는 것과, 홍화에게 누가 물어도 아무 대답 없이 입을 다물었다는 점, 그리고 그녀의 변절해버린 모습이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런 소문들이 살살 불지펴지고 자신의 장례가 막 끝날 때쯤, 설참은 도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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