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3부. 신화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3부. 신화

SooyangLim 2022. 11. 10. 19:02

 집에 도착하자 밀 메이커가 고양이의 발을 닦이며 언짢은 목소리로 혼냈다.

 "근데 책을 왜 찢어? 그러면 안 돼."
 "그건……. 음……. 아니다옹."

 밀 메이커의 말에 고양이는 자신은 신경 안 쓰고 자기들끼리만 대화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려다가 멈칫했다. 어찌 됐든 책을 찢은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미안한 마음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괜히 관심 있는 척 책으로 다가갔다.

 "책 읽어야겠다옹."

 고양이는 괜히 책을 읽으려 했다. 

「찢어진 우주의 낡은 신화들 -우펜자」

 고양이가 앞발로 책 표지를 넘겼다. 하지만 이내 고양이는 불만을 토로했다.

 "…읽기 힘들다옹."

 인간과 다른 몸구조 탓에 고양이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겨웠다.

 "여기. 여기 읽어달라옹."

 고양이가 밀 메이커에게 말했다.

 "그 책을?"

 어쩐지 밀 메이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여기?"

 밀 메이커는 고양이가 읽어달라는 부분을 보더니 더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화는 포장질이 심해."

 난데없이 디스를 하면서도, 밀 메이커는 고양이한테 읽어주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과대포장이 심해."
 "신화란 다 그런 거 아니겠냐옹."
 "근데 이거 오늘 다 읽어주기엔 너무 많아. 아마도 곧 해질 거야."
 "알겠다옹."
 "다 못 읽어줘."
 "알았으니 읽으라옹."
 "조금만 읽어줄 거야."
 "시끄럽고 읽어주기나 하라옹."

 다른 날 보다 읽기 전에 사족이 많은 밀 메이커에게 결국 고양이는 살짝 으르렁거렸다. 밀 메이커는 한숨을 쉬더니 읽기 시작했다.

 

 


찢어진 우주의 낡은 신화들

-우펜자


* * * * * * * * * * *

머리말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신화를 모은 책이 아니다. 과거 우주의 다른 구역의 식민 지배를 피해서 가장 큰 중립 구역인 우주 10구역, 바키 은하, 카티 행성계, 그 중 모요 행성에 숨어 살고 있던 이들 중심으로 기록하였다(현재 그들 중 다수는 고향인 우주 구역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즉, 모요 행성에 이주해서 있는 타 구역 우주인들을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그들의 고향의 신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모아서,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각각의 신화에 어디서 누가 말했는지 밝힐 수 있는 부분은 밝혔으며, 해석이 첨가된 부분도 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인데 다른 내용이 있을 시, 공통된 부분만을 표기하거나 비교와 분석을 해서 주석을 달아 놓기도 하였다.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신화를 말해 준 수많은 이들의 이름을 모두 이 머리말에 적지는 못함을 미리 말한다. 그 점에 독자들과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화를 이야기 해 준 것에 감사의 인사도 전한다. 

 마지막으로 신화의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후원을 해 준 토비아스 어리스토 로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근에 그가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들었는데, 부디 내가 다시 도착했을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주 1891구역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행성 마타마이니력 4332년, 우펜자- 


* * * * * * * * * * *

본문 원고 중 124쪽~129쪽

7장. 길가온 신화

 길가온 신화는 거의 진공상태(다들 알다시피 10구역 근처에 위치한 9구역 외곽을 제외하면, 찢어진 우주인 1~9구역은 거의 대부분 진공상태이므로 생명체가 없다)인 우주 1구역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들었다. 내가 술을 과다하게 먹은 그들에게서 술자리에 합석하고 들은 내용이 중심이다.

 나는 나중에 움막에서 발견한 한 여성형 우주인에게서도 이 신화를 들었다. 그리고 너무 늙어서 멸종 직전인 피난민들(그들은 우주의 어느 구역에서 왔는지 밝히지 않았고 자신들의 멸종에 대해서 아쉬워하지 않았으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특이한 이들이었다)에게서 들은 내용도 함께 기록하였다. 

 신화를 말해준 이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처음은 어느 술자리에서 3명의 우주인들이 해 준 이야기였다. 

 그들 중 하나는 자신이 3구역 출신의 헌터라고 말하는 부랑자였다. 그는 거의 넝마를 걸친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술자리 세 명의 우주인 중에서 가장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우주 7구역(우주가 찢어질 때 빠져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의 어느 행성에서 왔다고 하는 이였다. 그는 부랑자의 친구라고 했으며 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광대라고 불렸다. 그는 마치 노래하듯 신화를 읊기도 했다. 그는 내게 악기를 하나 선물해줬다.

 술자리 3인방 중 마지막 우주인은 9구역의 식민 지배 행태에 역겨움을 느껴 10구역으로 왔다고 했다. 그 역시 부랑자의 또 다른 친구였다. 그는 지팡이로 쓰는 막대기를 우주 어딘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엑스칼리버(9구역의 지명을 따서 만든 것 같지만)’라는 이름으로 불릴 거라며 엉성하게 휘두르곤 했다(사실 그 막대기는 그냥 이따금씩 벌레를 잡고 지팡이로 쓰는 용도였다). 그 우주인을 부랑자와 광대가 그 막대기의 이름을 따서 엑스칼리버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술자리 우주인 세 명은 한동안은 나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뒤에 만난 여성형 우주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나는 처음 길가온 신화는 술자리에서 지어낸 헛소리쯤으로 치부했다. 그래서 이 책에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 넣게 된 원인이 있었다.

 나는 술자리 3인방의 얘기를 듣고 얼마 뒤, 길가온 신화는 앞서 언급한 자신이 13구역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구역에서 온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여성형 우주인에게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는 그들과 여성형 우주인은 관련이 없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3구역 우주 출신이라고 우기는 부랑자와 한 패거리였다. 그녀는 우주인적이 드문 곳에서 초라한 움막을 지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부랑자와 꽤나 깊은 관계로 보였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 근처를 떠날 때 쯤, 어떤 몹쓸 놈들에게 험한 일을 당해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다. 그녀는 내가 신화를 수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죽기 전에 자신이 말해준 신화를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가장 마지막 유언은 부랑자에게 따로 한 것 같지만, 어쨌든 그것은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유언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길가온 신화는 책에 넣을 생각이 없었으나, 그녀의 유언과 뒤에 만난 늙은 피난민들 때문에 넣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길가온 신화를 전해준 아주 늙고 멸종 직전인 피난민들은 자신들이 어느 구역 출신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출신지역을 밝히길 꺼려했다. 그리도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며 내가 캐물어도 그저 웃기만 했다.

 늙은 피난민들이 해준 이야기가 앞서 만난 이들이 떠든 이야기들 보다 훨씬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사실 여성형 우주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책에 실을까 말까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늙은 피난민들 신화를 듣고서야, 길가온 신화가 술에 취해서 하는 헛소리들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싣게 되었다.

 나와 만난 이들은 모두 신기하게도 만약 이 신화가 실린다면 반드시 7장에 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때문에 나는 아마 그들이 모두 7과 관련된 구역에서 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늙은 피난민들의 말을 중심으로 하되, 나도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이는 주석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와 여성형 우주인의 말도 괄호 안의 주석과 추가 내용을 붙여 보충한다.

* * * * * * * * * * * 

 길가온 신화

 어느 날 어떤 창조가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창조를 한 이는 시작의 신이자 창조의 신이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신들의 이름은 감히 언급할 수 없기에 태초의 신들은 어느 날부터 이름이 불리지 않게 되었고, 결국 기억하는 이가 사라져서 태초의 신들의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냥 순서대로 불린다고 하였다. 나는 이 사실이 해당 문명의 소멸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술자리 3인방인 부랑자, 광대, 엑스칼리버의 말로는 부르는 말이 따로 있다는 말을 하긴 했으나 더 이상 이름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여성형 우주인은 신의 의지가 있어 이름을 세상에서 지웠으나 어딘가에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내 나름대로 신들을 순서대로 서수를 통해 구분을 해서 쓴다.


 시작의 신은 나는 언제나 여기 있음이니, 그대들이 나를 알게 하고 세상을 알게 하리라 라고 말하였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이를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후손들을 남기겠다는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여성형 우주인은 이 문장을 신의 은총이라며 기도 하는듯한 동작을 하였다(이 시점에서 나는 그녀가 정신이 나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술자리 3인방은 이 구절이 왜 이렇게 전승되어 내려오는지 모르겠다며, 말을 너무 비비 꼬아놔서 헛소리 밖에는 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작의 신의 말 이후에 시작의 신은 의지를 가지고 마음을 나누었다.
 마음을 나누자 또 다른 신이 생겨났다. 마음을 나누자 사랑이 생겨나고, 분노와 슬픔과 같은 감정이 생겨났다. 창조의 신이 하였듯 나눔이란 것이 생겼다.
 두 번째 신과 시작의 신은 이 때부터 이동과 한정된 자유를 선사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신이 사랑과 감정이라는 숭고한 것을 창조하는 고등 생명체에 관한 내용이라 하였다. 그들은 이 구절이 신의 후손들인 자신들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여성형 우주인은 너무나 아름답다며 신께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술자리 3인방은 그냥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만들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였다.
 마지막 문장은 누가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이 문장은 다른 이들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고, 술자리 인물들 중 한 명만 언급했다.


 시작의 신은 다시 새로움을 얻고자 했다.
 시작의 신이 두 번째 신에게 사랑을 말하였다. 그러자 세 번째 신이 탄생했다.
 세 번째 신이 탄생하자 세상이 창조되었다.
 세번째 신이 생겨나자 화합이 생겨나고 질투가 생겨나고 불공평이 존재하고 갈등이 탄생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이를 두고 세상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여성형 우주인은 ‘나에게는 이것이야 말로 사랑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술자리 3인방은 이 부분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말했다. 부랑자는 그냥 이때부터 없었어야 한다며 마치 신을 모욕 하는듯한 말했다.


 시작의 신은 이윽고 네 번째 신을 만들어냈다.
 네 번째 신은 이제 분리가 일어나고 새롭게 구성될 수 있었으며 덜어낼 수 있고 새로이 더해지기도 하는 등 무언가 고쳐지는 일이 생겼다.
 세상은 자유로워지고 또 자유로워졌다. 
 이제 세상은 언제나 자유롭게 되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제 신의 은총이 언제나 영원함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빠르게 일어났다.
 수용과 분석, 지혜와 기록의 다섯 번째 신이 생겼다.
 시작의 신의 능력을 이어서 모두를 도울 수 있는 여섯 번째 신이 생겼다.

-주석:이 부분은 술자리 3인방만 언급하였다. 다른 이들은 이 신들에 관한 부분은 언급 없이 그냥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신도 창조되었다고만 말했다.


 찬란하지만 모두를 벌벌 떨게 할 일곱 번째 신이 생겼다.

-주석:늙은 피난민들과 여성형 우주인은 일곱 번째 신은 신화에서는 멀고 무서워 보이지만, 신이라서 보이지는 않을 뿐 세상 어디에나 있는 가까운 신으로 여겨지고 숭배되었다고 한다.


 모두를 잠재우게 침묵하게 하지만 동시에 모두를 감싸고 영원과 순환을 의미하며 새로운 시작의 여덟 번째 신이 생겨났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여덟 번째 신은 자애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는 동안 힘들었어도 이 신을 믿으면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된다는 내세 세계관에 대해서 설명했다.
 여성형 우주인은 이 구절에서 신의 은총과 신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술자리 3인방은 반면 이 신이 공포와 강력한 힘의 신이라고 다른 해석과 의견을 제시했다.


 시작은 신은 드러나는 힘의 상징이자 세상의 끝과 멸함을 뜻하는 아홉 번째 신을 만들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아홉 번째 신이 공포와 힘을 상징하는 신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아홉 번째 신을 닮은 이들이 우주 10구역 근처에 우주 9구역에 있는 이들이라고 말하였다. 과거에 이들이 아홉 번째 신의 힘 때문에 그들이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고 많은 구역을 식민 지배하에 비탄과 고통 속에 살게 했었다고 말하였다.
 여성형 우주인은 아홉 번째 신이 있어 자신은 축복을 받았다고 아홉 번째 신은 축복이자 위대한 신이라며 중얼거렸다.
 술자리 3인방은 늙은 피난민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하였는데, 설사 힘이 있다고 한들 신이 설마 남을 해치고 다니라는 소리를 하겠냐고 말하였다. 그리고 신은 신이고 힘은 힘 일 뿐, 저들 스스로의 욕심에 그런 길을 택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도 이에 동감했다.



 신들은 그때서야 일을 멈추고 쉬기 시작했다.
 쉼이 시작되자 시작의 신은 그때 문득 자신의 이런 능력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때 그 의문에서 시작의 신과 모두의 안에 있던 강력한 능력이 분리되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이를 신의 안식이자 서로를 위한 나눔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무엇을 하든, 혹은 어떤 경과가 있던, 9번째 날 혹은 9가지를 채우고 나면 자축을 하거나, 같이 음식을 나누며 행복을 기원하거나, 축하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그 능력은 너무 강대했다.
 다행히 그 ‘능력’은 마음 속에서 피어오를 때에만 발휘되었다.
 능력은 신들 사이를 조율하였다. 

-주석:여성형 우주인은 자신의 삶과 탄생은 이 구절에서 자신의 탄생과 죽음, 모든 일은 신의 의지에 의한 축복이라며 또 눈물을 흘렸다.
 광대는 왜 굳이 힘을 나누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작의 신은 세상을 더 넓게 하면서도 동시에 내려놓을 필요를 느꼈다. 동시에 자신을 제한하고자 했다.
 시작의 신은 다른 신들에게 자신의 뜻을 정했고 그들과 함께 ‘능력’을 찾아갔다. 신들의 생각이 모아지고 모두의 힘을 내려놓겠다고 표명했다.
 ‘능력’은 그 마음을 받아들였고 드디어 마지막 태초의 신이 태어났다. 능력과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잠재우는 강력한 신이 태어났다.
 모두의 권능과 능력을 받아 태어난 마지막 태초의 신은 태어나는 순간, 시작의 신과 함께 그들의 권능을 빼닮은 새로운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새로운 순환의 신을 낳았다. 그 새로운 순환의 신을 필두로 세상의 폭발을 일으켜서 신의 자손들이 마구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모든 세상의 무한한 확장과 권능의 확대가 시작되었고 신의 후손들이 나타났다.
 이제 새로운 기준은 모두 마지막 태초의 신에게 집중되었고, 무한히 뻗어나가는 세계와 권능은 능력과 더불어 그들의 권능과 세상을 적절히 조율하며 조화롭게 마치 나선으로 뻗어나가는 것 마냥 순환하며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주석:늙은 피난민들은 신들이 신의 권능을 내려놓고 신의 후손들의 번성을 의미하며, 또한 신의 권능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은총을 내린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여성형 우주인은 이때 갑자기 흥분해서 마지막 태초의 신은 없었어야 했다며 모든 일의 원흉이라며 마치 신을 저주 하는듯한 말을 하더니 ‘태초의 신들에게 다시 힘을!’ 이라고 반복해서 소리쳤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후로 여성형 우주인과는 대화는 불가능하였다.
 

 태초의 신의 자손들로서 우리는 신의 은총 아래 이 신화를 대대손손 전하고 신을 모시기로 하였다. 

-주석:이 문장은 늙은 피난민들만 말했다.
 여성형 우주인은 이전에 대화가 종료됐으며, 술자리 3인방은 언급하지 않았다.


* * * * * * * * * * *

 이 뒷 내용은 원고가 유실되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아 책에 실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7장 길가온 신화편을 마무리한다.

 

 

 "…이상한 내용이다옹."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책 내용을 디스 했다.
 밀 메이커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렇지?"

 고양이는 몽롱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뭔가 익숙하다옹. 신화라서 그런 걸까옹?"

 밀 메이커는 고양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신화가 다 그렇지."
 "역시 그런걸까옹?"

 고양이가 이불 속에서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고양이는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밀 메이커는 그런 고양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잠은 오지만 기분이 좋은 듯 고로롱거렸다. 고양이는 고로롱거리다가 잠시 멈추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아쉽다옹."
 "뭐가?"
 "없어졌다는 부분 말이다옹."

 고양이의 말에 밀 메이커의 손이 잠시 멈췄다. 
 이제 고양이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무슨 내용일지 궁금하다옹."

 밀 메이커는 고양이의 말에 가만히 멈춰있었다.
 그러자 고양이가 다시 쓰다듬으라는 듯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듯이 움직였다. 고양이의 꼬리 움직임에 밀 메이커는 고양이를 다시 슬슬 쓰다듬기 시작했다. 
 
 밀 메이커는 내키지 않는 양 고양이를 쓰다듬지 않고 있는 다른 쪽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아빠진 종이를 미적거리며 꺼냈다. 밀 메이커는 종이를 손에 들고 고양이를 잠깐 바라봤다. 밀 메이커는 어쩐지 망설이는 듯했다. 밀 메이커는 종이를 가만히 쥐고만 있었다.
 밀 메이커는 이제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지 않고 가만히 고양이의 몸 위에 손을 뉘어 놓고만 있었다. 밀 메이커는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고양이의 호흡을 손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양에 맞춰, 고양이의 배 위에 올려둔 밀 메이커의 손도 따라 움직였다.

 밀 메이커는 이쪽을 봤다. 밀 메이커는 애써 시선을 피하듯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밀 메이커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가, 이번에는 피하듯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무엇들로부터 피했을까?

 밀 메이커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입에 무거운 추라도 달아놓은 듯 느리게 입을 뗐다.

 "…우펜자가 유실됐다고 했던 원고."




* * * * * * * * * * *

-여기서부터는 술자리 3인방들만 이야기 해준 내용들이다. 늙은 피난민들과 여성형 우주인은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 태초의 신은 어떤 이유로 다른 태초의 신들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주석: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어떤 이유'라는 말을 한 후에 셋 중 누군가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을 뿐더러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술 때문인 듯하다.


 마지막 태초의 신은 더욱 더 강한 권능을 원했다. 마지막 태초의 신은 ‘능력’과 다른 태초의 신들의 남아있는 권능을 얻고자 했다.

 그를 위해 마지막 태초의 신은 다른 태초의 신들을 먹어 치우고자 했다. 마지막 태초의 신에게 자신에게 권능을 준 다른 태초의 신들과 자손들은 방해물이자 자신의 권능을 키울 포식의 대상이었다. 

 마지막 태초의 신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행했다. 

-주석: 나는 생각을 실행했다는 말이 '반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앞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실행 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마지막 순환의 신은 마지막 태초의 신의 뜻을 알고 있었음에도 다른 태초의 신들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했다. 

 어떤 이유였을까? 이유가 어찌 됐든 침묵의 결과는 곧 찾아왔다.

-주석:나는 이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광대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꼈다('섬뜩함'까지는 느낄 필요가 없었는 데도). 아마도 이때부터 그가 악기 연주를 멈췄기 때문일 수도 있다(광대는 이때 내게 그 악기를 선물로 주며 전달 해달라고 했다). 아니면, 내가 그저 다음부터 나올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예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원고를 쓰면서 느낀 점은, 그의 표정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쩐지 나는 악기 연주를 멈추고 무반주로 부르기 시작한 광대의 모습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굳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섬뜩하다고 느꼈을까? 그는 술자리 내내 줄곧 흥겹게 웃고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은 대 혼란 속으로 던져졌다.
 세상의 멸망이 다가왔다. 

 그러나 멸망을 원하지 않았던 다른 태초의 신들은 마지막 태초의 신을 막고자 했다. 대부분의 신들의 자손들 또한 세상이 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마지막 태초의 신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태초의 신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마지막 순환의 신은, 이번에는 다른 태초의 신들과 그들을 따르는 신들의 자손의 생각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태초의 신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했다. 
 마지막 순환의 신의 두 번째 침묵의 대가 또한 곧 찾아왔다. 

 태초의 신들이 내려놨던 그 모든 것이자 이제 세상의 멸함과 존속을 판가름 짓는 ‘능력’을 앞에 두고 신들은 충돌했다. 그날이 재앙과 멸망, 그리고 고요의 날이라고 불리는 사건.

 찢어진 우주 사건. 

-주석: 개인적으로 나는 이 대목에서 찢어진 우주 사건이 언급이 되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길가온 신화에서 찢어진 우주 사건에 관한 언급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찢어진 우주 사건은 워낙 대사건이니 만큼 각 지역마다 끼워 맞추기 식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니, 아마도 이 언급도 그런 맥락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항상 신들의 뜻 그 자체대로만 움직이던 ‘능력’은, 서로 다른 신들끼리의 충돌에서 움직였다. 능력은 그들 중 한쪽만의 손잡았다.

 ‘능력’이 선택한 손은 놀랍게도 신들의 손이 아니었다. 어느 한 신의 자손의 손이었다.

 그 날 이후, 세상의 확장은 멈췄다.
 ‘능력’이 신의 자손을 선택한 이후로 태초의 신들과 ‘능력’은 세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신들은 그날부터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
 세상은 신의 자손인 우리 스스로에 의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주석: 나는 마지막 부분을 신을 믿는 종교적 문명 시대에서 다음 세대로 변화했다는 의미라고 본다. 아마 제정 분리 사회나 종교의 힘이 약화된 사회로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 * * * * * * * * * * 

 술자리 3인방은 이 대화의 말미에 지역마다 조금씩 전해 내려오는 신화가 다르다고 하였다. 길가온 신화에 관해 대화 나눴던 다른 이들과 다르게 술자리 3인방은 자신들이 이렇게 사는데 신의 자손일 리가 없다면서 신화는 믿을게 못된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신화는 미화와 알 수 없는 은유와 거짓말 덩어리니까 깊게 신경 쓸 것도 없고 믿지도 말라고 말하며 술을 진탕 먹고, 내게도 먹였다.

 나는 그들과 신화에 관해서 더 대화를 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술을 잔뜩 먹였기 때문에 나는 이내 취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다.



* * * * * * * * * * *

 "…잘 자, 고양이야."

 밀 메이커는 우펜자가 잃어버린 원고의 마지막 줄을 읽고는 고양이에게 굿나잇 인사를 했다. 그러자 고양이가 나른하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으며 말했다.

 "바보들."
 "아직 안 잤네."

 밀 메이커는 오래된 원고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고양이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졸린 눈으로 밀 메이커를 바라보며 말했다.

 "띄엄띄엄 들었다옹."
 "그래?"

 밀 메이커는 어쩐지 고양이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고양이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한심하다옹."
 "…흠. 한심해서 자손들의 손을 잡았으려나."

 밀 메이커는 고양이에게 이불을 더 폭 덮어주며 말했다. 고양이는 푹신한 이불에 잠긴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한심해서 다른 신들의 손을 안 잡아준 건 아닐 것 같다옹."

 이제 고양이는 거의 잠결이라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밀 메이커는 이불 위로 고양이를 천천히 두드려 주며 말했다.

 "그러면?"
 
 고양이는 잠에 취한 채 꿈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손이 맘에 들어서가 아닐까옹? 아마 자손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 않을까 싶다옹."

 고양이의 말에 밀 메이커는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고양이를 바라봤다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밀 메이커는 다시 고양이를 바라보고 물었다.

 "어떤 마음의 소리?"

 하지만 고양이는 이제 깊은 잠에 빠져든 뒤였다. 때문에 밀 메이커는 더 이상 고양이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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