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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完. 오래 전의 고양이 6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完. 오래 전의 고양이 6

SooyangLim 2022. 9. 19. 19:01

 고양이는 헤엄쳐서 온 고라니가 뭍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헤엄을 잘 치는 걸 보니 부럽다옹."
 "그러게. 다행이야. 내 친구는 뭔가를 밟고 다리가 잘려서 강을 넘어오지 못했거든."
 "다리가 잘렸다고!? 덫에 걸렸냐옹!?"

 고양이가 깜짝 놀라며 묻자 고라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인간들이 땅에 설치한 무언가를 밟았어. 뜨거운 불이 터졌지. 다리가 잘리고 몸도 터지고, 큰 화상을 입고……."
 "그놈의 불! 요즘 인간들은 불을 너무 위험하게 쓴다옹. 예전 인간들은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 때나 썼는데 말이다옹."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니, 고양이야……. 지금의 인간들은 서로 죽이는데 불을 써."
 "나는 아주 오래 살았다옹. 내가 예전에 같이 여행한 인간이 그랬다는 거다옹. 불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는 했다옹."

 고양이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에휴……. 가는 곳마다 큰 소리가 나고, 엄청난 불이 터지고……. 내 꿈을 이루기 전에 타죽겠다옹."
 "꿈이 뭔데?"
 "오래 사는 동물을 찾아서 친구를 하고 내 영역을 만들거다옹. 그 꿈을 위해서 동쪽 땅 끝까지 가는 중이다옹. 그리고 거기까지 가도 없으면 바다에 들어갈 거다옹."
 
 고양이의 말에 고라니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래 사는 동물? 인간?"
 "아니. 훨씬 더 오래사는 동물을 찾는 중이다옹. 예전에 만난 거북이가 바다에는 아주 오래 사는 동물들이 있다고 했다옹."
 "그럼 넌 결국은 바다를 가는 거야?"
 "육지에서 찾아서 없으면 바다로 들어갈 거다옹. 나는 서쪽에서부터 왔다옹. 해가 뜨는 곳인 동쪽 끝까지 찾아봤는데도 없으면 없는 거 아니겠냐옹."

 그 말에 고라니는 눈 앞의 잔잔한 물을 보며 말했다.

 "육지에서 못 찾는다면 너는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겠네. 고양이는 물 속에서는 살 수 없으니까."
 "응?"

 고양이가 퍼뜩 이해하지 못해서 고라니를 바라봤다. 
 고라니가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 안의 오래 사는 친구와 만나려면 너는 물에 떠다니면서 헤엄을 쳐야 되지 않을까?"
 "바다 안인데 왜 헤엄을 치냐옹?"
 "헤엄을 칠 수 있으면 친구를 만나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가 있잖아. 아님 그 친구는 물 안에 있고, 너는 헤엄을 치면서 물 위에 떠 있으면 되고."

 고라니의 말에 고양이는 눈이 반짝였다.

 "너 천재 아니냐옹!?"
 "하하."
 "네가 나한테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냐옹?"
 "내가?"
 "방금 헤엄을 쳐왔지 않냐옹?"

 고양이의 말에 고라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헤엄 치는 건 간단해. 물 위에 떠서 발과 다리를 그냥 이런 식으로 휘저으면 되는 거야."

 고양이는 용기내서 물에 살짝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질겁을 했다.

 "캬우우웅!! 역시 난 물이 무섭고 싫다옹!!!"
 "물이 싫은데 왜 그렇게까지 바다에 가려는 거야?"
 "오래 사는 동물이 있으니까. 친구가 되고 싶다옹. 그리고 바다가 영역인 고양이는 없지 않냐옹? 거기라면 다른 고양이들이 영역을 뺏지 않을 거 아니냐옹? 난 작아서 언제나 영역을 뺏긴다옹."

 고양이의 말을 들은 고라니가 서글픈 눈빛으로 말했다.

 "너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구나."
 "그래도 나름 멋진 여행을 하고있다옹. 까마귀가 내 여행은 반짝인다고 했다옹." 

 고양이가 다시 몸을 물에 담궈보려는 시도를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고양이의 여러 번의 시도를 지켜보던 고라니가 말했다.

 "일단은 내 등에 타. 강을 건너줄게. 오늘 강을 건너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오늘 건너지 않으면 왜 위험하냐옹?"
 
 고라니가 말했다.

 "곧 전쟁이 끝난다는 인간들의 말을 들었어.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터지는 불을 쏟아부을 거래.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이동하지도 못 할 거고. 그 전에 빨리 가는 게 좋겠어."
 "그 놈의 불. 무섭다옹."
 "그런 소리 할 시간이 없어. 어서 타. 나는 다시 또 강을 건너야 되니까."

 고양이는 고라니의 등을 타고 강을 건넜다. 비록 털이 좀 많이 젖기는 했지만, 무사히 강을 건넜다.

 "잘 가, 고양이야. 가능하면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오래 사는 동물을 찾길 바랄게."
 "고맙다옹. 잘 가라옹."

 고양이는 고라니와 헤어지고 또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과연 고라니의 말처럼 멈추지 않는 천둥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휴.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옹."

 고양이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고양이는 계속 걸었다. 잿더미가 된 땅은 순식간에 숲과 인간들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계속 영역 싸움을 하고, 오래 사는 동물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걷고, 찾고, 또 걸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드디어 땅의 동쪽 끝에 도달했다.

쏴아아
철썩

 파도가 쳤다.

 "……."

 바다 앞까지 도착했지만, 고양이는 자신만큼 오래 사는 동물을 결국은 찾지 못했다. 고양이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파도가 치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새벽 바다의 파도는 꽤나 거칠었다.

 "무섭다옹."

 고양이가 바다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여전히 물이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마지막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들어가야겠다옹."

 고양이가 아직 어두워서 검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니, 하늘이 천천히 밝아왔다. 이제 곧 해가 보일 것이다. 

저벅

저벅

 그 때 고양이 등 뒤의 어둠을 헤치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는 이제 누가 옆에 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고양이야."

 인간의 목소리였다.

 "널 찾아왔어."

 하지만 고양이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해 뜨는 것만 바라봤다.
 인간은 계속 말을 걸었다.

 "밥 좀 먹을래?"
 "싫다옹. 이제 곧 바다에 들어갈 거다옹."

 계속된 말걸기에 고양이가 드디어 대꾸했다.
 어차피 알아들을 리가 없었지만.

 "바다에는 왜?"

 그런데, 생전 처음으로, 인간이, 고양이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답을 했다.

 그제야 고양이가 뒤에 있는 인간을 뒤돌아 봤다.
 그 인간은 이마에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흉흉한 복장을 하고 네모난 기계를 들고 하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인간은 동그란 눈 같은 것이 달린 기계를 내리고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지 않나?"
 "맞다옹."
 "근데 왜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는 거지?"

 고양이는 대답없이 그 인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냐옹?"
 "응."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아는 거냐옹?"
 "응."
 "어떻게?"
 "그럼 너는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데?"

 그 말에 고양이는 말 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고양이가 말했다.

 "너는 특이한 인간이다옹."
 "네가 특이한 고양이겠지."
 "웃기는 인간이다옹."
 "난 네가 안 웃겨."

 그 인간의 말에 고양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처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간이 하마터면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이라서 안타깝다옹."
 "난 기쁜데."
 "말하지 말라옹."
 "왜? 처음으로 말 통하는 인간 만났다며."
 "짜증난다옹."

 한 마디씩 주고 받는 사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간을 만나서 기뻤다옹. 하지만 이제 해가 떠오르고 있다옹. 나는 바다에 들어가야겠다옹."
 "바다에 왜 들어가는데?"
 "내 꿈이고 소원이다옹."
 "왜 그런 꿈과 소원이 생겼는데? 언제부터?"
 "오래 사는 동물을 만나서 친구가 되고, 내 영역을 만들 거다옹. 예전에 거북이한테 들었다옹. 바다에는 오래 사는 동물이 있다고. 그리고 바다는 다른 고양이들이 없으니까 내 영역을 뺏길 일도 없을거라옹."

 고양이의 말을 들은 인간이 물었다.

 "그 영역이 꼭 바다여야만 돼?"
 "그건 아니다옹."
 "넓어야 돼?"
 "넓으면 좋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옹. 그냥 뺏기지 않는 내 영역을 갖고 싶다옹."
 "흠."

 인간은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고양이가 서글픈 눈으로 바다를 보며 말했다.

 "난 작아서 다른 고양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었다옹. 저 먼 서쪽에서 여기 동쪽 끝까지 수십, 수백 년, 수 천년…….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하고 영역을 만들려 했지만, 나는 언제나 영역을 뺏겼다옹"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그 말에 고양이가 인간을 바라봤다.

 "거긴 네 영역이지 않냐옹?"
 "네가 내 친구가 되서 거길 네 영역으로 삼고 같이 쓰면 되잖아. 그리고 그 정도 여행을 했으면, 그냥 온 세상이 네 영역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 인간의 말에 고양이의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하지만 다시 스르르 내려가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오래 살지 못한다옹. 나는 오래 사는 동물을 찾고 있다옹. 나는 아주 오래 살았다옹. 아까 말했듯이 수백, 수천 년은 살았다옹. 하지만 인간은 얼마 못 산다옹."
 "아닐껄."

 인간은 뜨는 해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만나러 아주 오랜 시간을 찾아왔어. 네가 오랜 시간을 살았던 만큼. 네가 오래 사는 것처럼 나도 아주 오래 살았어."

 인간의 말에 고양이는 불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말라옹. 인간은 오래 못산다옹."
 "그럼 너도 거짓말 아냐? 고양이는 오래 못 사니까."
 "나는 오래 살았다옹."
 "너 같은 예외가 있다면 나 같은 예외도 있겠지."

 그 말에 고양이의 꼬리가 다시 스르르 올라갔다.

 "그럼 날 만나러 왔다는 말도 진짜냐옹?"
 "그러니까 여기 있겠지. "
 "너는 내 소원과 꿈을 이뤄주려고 왔냐옹?"
 "네 꿈과 소원이 나로 인해서 이뤄진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인간이 이제 완전히 뜬 해를 보며 흉흉한 옷에 있는 주머니에 네모난 기계를 넣었다.
 그 말에 고양이가 꼬리를 높이 올리고 말했다. 

 "그거 아냐옹?"

 인간이 고양이를 바라봤다.

 "네가 내 여행의 끝을 더 반짝이게 만들어줬다옹!"

 고양이가 환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는 고양이 쪽을 바라보며, 단 한번도 변하지 않은 무표정을 한 인간이 말했다.

 "더 반짝이게 밥 좀 먹을래?"
 "좋다옹!"

 그 인간이 주머니에서 'MEAL'이라고 쓰인 밀폐용기를 꺼냈다. 고양이가 물었다.

 "뭐라고 쓰인 거냐옹?"
 "밀(MEAL). 대충 끼니, 밥이라는 뜻이지."
 "…뭔가를 만드는 것을 뭐라고 하냐옹? 여기 적힌 언어로 말이다옹."
 "만드는 것? 글쎄……. 메이커라고 하려나? 음, 이건 약간 브랜드 같은 느낌인데……."

 밀 메이커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고양이가 말했다.

 "널 밀 메이커라고 부르겠다옹."
 "그것 참 적절하면서도 굴욕적이기 그지없네."

 밀 메이커가 뚜껑을 열어서 가져 온 밥을 고양이에게 주며 말했다.

 "난 지금 네가 고양이니까 고양이라고 부를게."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냐옹? 인간한테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랑 뭐가 다르냐옹?"
 "내 맘이야. 너도 네 맘대로 날 부르잖아."
 "맘에 안 든다옹."
 "난 네가 지어준 이름이 맘에 들어보도록 노력할래."
 "넌 정말 맘에 안 든다옹."
 
 밀 메이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흉흉한 옷에서 책을 꺼내며 말했다.

 "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책 읽어줄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이랑, 토비아스의 '경영과 경제, 그리고 사상과 신념'이라는 책이랑, 우펜자 자서전도 있고……. 이것도 우펜자 책인데 '찢어진 우주의 낡은 신화들'이라는 책도 있고……. 아, 그리고 우펜자의 '생명체와 우주의 존재적 고찰과 나의 철학적 신념의 사유'라는 책은 엄청나게……."
 "…넌 같이 살면 지루할 것 같다옹."

 고양이가 밀 메이커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밀 메이커는 이름이 가장 긴 책의 표지를 펼치며 말했다.

 "왜? 책 재밌는데."
 "책은 넣어두라옹. 책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다옹."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서 책을 든 밀 메이커의 손을 살짝 밀며 말했다.
 그러자 밀 메이커는 책을 집어 넣으며 말했다. 

 "그럼 지루하지 않게 집에 가는 동안 네가 한 여행 이야기라도 해 줘."
 "그럴까옹?"

 고양이는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고양이는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고양이에게 밀 메이커를 처음 만났던 날은 언제나 꼬리와 입꼬리가 올라가는 추억이었다.

 고양이는 밥을 하는 밀 메이커의 뒷모습을 보며 꼬리를 살랑였다. 하지만 갑자기 다시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살까?'

 그 때 밀 메이커가 뒤돌아서 고양이 앞에 밥을 내려놨다.

 "밥 먹자."   

 고양이는 한 입 먹고는 밀 메이커를 바라봤다. 고양이의 꼬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고양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밀 메이커를 바라봤다.

 '…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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