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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오래 전의 고양이 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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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오래 전의 고양이 5

SooyangLim 2022. 9. 16. 19:01

 고양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허……."

 약쟁이가 늘어진 채로 손을 휘적거리다가 고양이를 만진 것이었다. 그는 눈이 풀린 채로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었다.

 "으어."



 그는 그러고는 다시 온몸에 힘이 탁 풀린 듯 축 늘어져버렸다.
 고양이는 땡그래진 눈으로 멈춰서 있다가, 감시원들을 다시 한 번 봤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다른 곳에 향한 것을 확인했다. 상황 파악을 마친 고양이는 재빨리 달렸다.

 '다시는 이런 짓 하나 봐라!' 

 고양이는 묵직한 보라색 주머니를 물고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달렸다.

덜컥

 고양이는 작게 열린 틈 사이로 몸을 한껏 구겨넣어 빠져나왔다.

철그럭

 고양이가 입에서 주머니를 내려놨다. 까마귀는 기쁜 듯 날개를 푸득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머리를 처박고는 물건을 확인했다.

 "잘했다, 고양이! 깍깍! 아주 영롱해!"

 고양이는 냄새를 털어내고 싶은 듯 물기를 털어낼 때 하는 동작으로 온몸을 털어냈다. 그리고 약쟁이의 손이 닿았던 부분의 털을 다 뽑아낼 기세로 혓바닥으로 쓸어서 그루밍을 하며 말했다.

 "자, 그럼 어서 동쪽으로 보내달라옹."
 "일단 이거 물고 따라 와. 말이 있는 곳까지 가야지."

 고양이는 다시 보라색 주머니를 물고 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말 들아. 일어나라, 깍깍. 동이 트기 전에 움직여야 안전하다. 까-악-."
 "으응……. 성공 했어?"

 말들이 피곤에 지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말들은 어느새 까마귀가 발에 쥐고 있는 보라색 주머니를 발견하고는 기쁜 웃음을 지었다.

 "푸르르르! 성공했구나! 해낼 줄 알았어!"
 "끔찍했다옹. 다시는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옹."
 
 고양이가 말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까마귀가 말했다.
 
 "넌 동쪽으로 가지?"
 "그렇다옹. 해가 뜨는 방향, 아침이 시작되는 곳으로 다고 있다옹."
 "동쪽이 어딘지 알려주는 것 말고도 내가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을 알려주마, 고양이야. 깍깍."
 "그게 뭐나옹?"

 까마귀는 동쪽을 보더니 말했다.

 "인간들이 이따금씩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대륙의 동쪽 끝에 인간들이 사는 나라 이름을 들었지. 너는 그곳의 이름이 뭔지 아니? 깍깍."
 "모른다옹."
 "조선. 해가 뜨는 나라, 아침의 나라, 아사달. 그리고 그 땅의 끝에는, 먼 옛날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반짝이는 금을 바른 집들이 있던 곳. 금빛의 동쪽 넓은 땅, 서라벌. 깍깍깍! 그 땅에서 온 까치들도 가끔씩 이야기하고, 까마귀들 사이에는 환상처럼 내려오는 전설이지, 깍깍. 온통 반짝거리는 곳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니? 깍깍."
 
 까마귀는 그윽한 눈빛으로 시를 외듯 말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반짝거리는 것에는 영 심드렁해 보였다.

 "온통 반짝거리면 뭐가 좋냐옹? 숨을 데도 없어서 위험할 거 같다옹."
 "낭만이 없는 고양이 같으니. 뭐, 내 것을 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건 맘에 드네. 깍깍깍."

 까마귀는 웃으며 동쪽을 향해 날아오르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의 거래는 끝난 것 같구나. 이쪽이 동쪽이야. 계속 가면 돼. 잘 가, 말과 고양이야. 그리고 오래 산 고양이야, 그곳에서는 너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랄게. 깍깍."
 "고맙다옹."
 "고마워, 까마귀야~"

 말들은 고양이와 함께 해가 뜨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말들은 누군가의 명령 없이 자신의 뜻대로 달렸다. 그들은 고양이와 함께 여행했다. 말들은 동쪽으로 가며 맛있는 과일을 따먹기도 하고, 때로는 굶주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싱그러운 풀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을 같이 하던 말들 중에는 또 다른 자유를 찾아 헤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고양이와 말은 높은 산 근처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앉아있었다.

 "푸르르르. 고양이야. 너와의 여행은 정말 즐거웠어."
 "나도 즐거웠다옹."

 말은 이제 아주 많이 늙었다. 고양이는 말이 처음 봤던 그때 그 모습이지만, 말은 그렇지 않았다.

 "너는 정말로 오래 사는 고양이구나. 고양이야, 너는 친구들을 몇 번이나 떠나보냈니?"
 "모르겠다옹. 한 번은 아니다옹."

 그 말을 들은 말은 눈을 감고 고양이에게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미안해."
 "왜 미안하냐옹?"
 "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게 만들어서. 너는 언제나 떠나보냈어야만 했구나."

 고양이도 가만히 말에게 몸을 기대며 거짓말을 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옹. 난 괜찮다옹."
 "고양이야."

 이제 말의 목소리는 아주 약해졌다.

 "이제 네 소원이 이해가 돼."
 
 말은 고양이의 복실복실하고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애정 어리게 문지르며 말했다.

 "오래 사는 친구를 만나고 너의 영역을 얻기를 바랄게. 꼭 네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어."
 "고맙다옹."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말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따뜻했던 말의 체온이 식어감을 느끼면서 고양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깍. 깍깍."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들이 날아왔다. 고양이는 까마귀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자리를 떴다. 고양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고양이의 느린 여행은 계속됐다.

 "깍깍."
 "까-치- 까-치 깟깟깟."

 어느 날, 눈이 덮인 높은 산을 넘어 예전에 다녔던 고원과 비슷한 곳을 걷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와 까치 한 마리가 다가왔다.

 "너는 말과 여행을 했던 고양이구나. 깍깍."
 "나를 아냐옹?"
 "들은 적이 있지. 말과 헤어지고 혼자 여행하는 고양이에 대해서."
 "너는 그럼 그 때 우리를 도와줬던 영리하고 신중한 까마귀냐옹?"

 고양이의 질문에 까마귀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하지만 그 까마귀를 알아. 그 까마귀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부모님 세대야. 그 까마귀는 그 해에 새 가족을 만들었거든. 깍깍깍. 나는 그 까마귀에게서 전해져 오는 너의 이야기를 들었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옹. 어제처럼 오늘도 또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옹. 어서 바다로 가야겠다옹."

 고양이가 식빵 자세를 하며 말했다. 고양이는 많이 지치고 노곤한 표정이었다. 

 "나는 까마귀들과 친구라서 너에 대해 들었지."

 까치가 그렇게 말하고는 까마귀와 함께 웃었다.
 까마귀가 물었다.

 "너의 여행은 끝났니? 까악."
 "…여기가 그 때 그 까마귀가 말했던 아침의 나라냐옹? 조선이라는 나라가 땅의 동쪽 끝이니 그곳의 땅 끝에 가서 바다를 볼 거다옹."
 "조선?"

 까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여기가 네가 찾는 그 나라가 있던 곳이 맞기는 하지만, 그 나라는 이제 없어."
 "그게 무슨 말이냐옹?"
 "시간이 많이 지났어, 오래 산 고양이야. 이제 그 나라에 살던 인간들은 자신들의 나라의 이름을 잃었어."

 그 말에 고양이는 축 처져버렸다.

 "이런.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을 가진 곳의 땅 끝에서 바다를 보면서 해가 뜨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 이름을 가진 곳에서 보는 건 포기해야겠다옹."
 "난 네 꿈을 응원해, 깍깍. 땅의 동쪽 끝까지 가기 전에 오래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영역을 갖고 싶은 소원말이야.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깍깍."

 까마귀가 고양이를 위로했다.
 고양이는 까마귀와 까치에게 물었다.

 "너네는 동쪽 끝에서 오래 사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옹?"
 "없어. 깟깟."

 까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고양이는 눈꺼풀에 힘을 지그시 풀며 말했다.

 "그럼 내 꿈은 의미 없는 걸까옹? 역시 바다 안에만 오래 사는 동물이 있는 걸까옹? 내 영역은 역시 바다에 들어가야 되는 걸까옹?"
 
 고양이의 말을 들은 까마귀가 물었다.

 "깍깍. 오래 산 고양이야. 네 꿈은 이뤄져야만 반짝이는 꿈이니?"
 "이뤄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옹?"
 "반짝이는 것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원래 반짝이는 것이니까, 깍깍. 난 네 꿈이 그 나름대로 반짝인다고 생각해. 깍깍."

 까마귀의 말에 고양이가 말했다.

 "네 말을 들으니 예전에 내가 말 친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옹."
 "그 이야기, 나도 알아. 깍깍깍! 그 말을 들은 까마귀가 그 날 밤에 너를 돕기로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들었으니까. 까-악-."
 "아, 그랬냐옹? 그건 몰랐다옹."

 까마귀가 부리를 깃털로 매만지며 말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거 아니겠어? 깍깍. 너의 꿈과 그것을 이루려 했던 그 노력 만으로도 반짝이는 거야, 깍깍깍. 난 네 여행은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빛난다고 생각해. 깍깍."
 "까마귀들은 다 그렇게 영리하냐옹?"

 그 말에 까마귀를 웃으며 말했다.

 "깍깍깍! 고양이들이 모두 너처럼 오래 살지 않는 것과 같은 거야. 깍깍깍!"
 "내가 만난 까마귀들이 특별히 반짝이는 까마귀라고 생각하겠다옹."

 고양이의 말에 까마귀는 매끈한 부리를 다시 한 번 매만지고는 말했다.

 "너를 도와줬던 까마귀가 너를 왜 도와줬는지 알겠네, 깍깍. 나도 네 그런 면이 좋아. 깍깍! 근데 그거 알아? 까마귀는 복수도 보은도 끝까지 해."
 "들었다옹."

 옆에 있던 까치가 말했다.

 "그거 아니? 이 땅에 살던 인간들은 까치가 오면 복이 온다고 생각했어. 넌 복 받은 거야, 고양이야."
 "그래. 그리고 네 꿈을 응원하는 까마귀가 보은을 할게, 깍깍."

 까마귀는 그렇게 말하고는 까치를 툭 쳤다.
 까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오래 산 고양이야. 오늘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야. 혼자 여행하는 작은 고양이의 소문을 듣고 수리가 널 노리고 있어. 이제 꽤 가까이 온 것 같아."
 
 까마귀가 바위 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바위 틈에 숨어. 우리가 시선을 끌면서 도망가볼게, 깍깍. 가능한 먼 곳까지 우리가 유인할게. 너를 다시는 못 찾을 만큼 말야. 까-악-."
 "고맙다옹."

 고양이가 서둘러 바위 틈에 숨자, 얼마 지나지 않아 까치와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자 과연 수리가 내는 소리가 창공을 찢으며 들려왔다.

 "고맙다옹."

 고양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수리가 완전히 가버리고 나서야 고양이는 바위 틈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곳곳에 커다란 소음이 들리고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도대체 이 땅의 인간들은 무슨 짓을 하는 거냐옹!"

 고양이가 투덜댔다. 고양이는 갑자기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험난해진 여정에 그만 지쳐버렸다. 심지어 눈앞에 강을 만나서 어떻게 건널지 고민하는데,

 "고양이?"

 물을 헤엄쳐서 알 수 없는 동물이 다가왔다. 그 동물은 사슴처럼 생겨서는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었다.

 "넌 뭐냐옹?"
 "난 고라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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