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2부. 기형 - 마지막 선택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마지막 선택

SooyangLim 2022. 8. 29. 19:02

 "오랜만이다."

 갈라진 땅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그 연기는 내가 죽인 간부들이 되었다.

 "젠장…!"

 난 욕을 하며 그들을 다시 지하로 밀어넣기 위해 손을 뻗는데,

 "결국 너도 별 다를 바 없었군."

 가면을 쓰고 나타난 오심래가 말했다. 오심래 옆에는 오심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행동을 멈췄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힘 없이 손을 떨궜다.

 '…그래. 그렇구나. 결국 엉망진창이 됐고, 나는 결국 내가 그리도 증오했던 수장의 모습이 되어버렸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옆에 어느새 나타난 거울이 보였다. 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의자가 거울에 비쳐보였다. 그리도 멋있어 보이던 옷들이 이젠 그저 그냥 그런 모습으로 보였다. 오히려 너무 화려해서 조악하다는 인상까지 들 정도였다. 이젠 옷과 장신구, 의자라는 단어 이상의 의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이젠 너무나 익숙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몹시도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앞을 바라봤다.

 "……."

 내가 죽인 모든 간부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짓이 가능한지 물어야 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본부의 문이 열렸다. 설상가상으로 나에게 반기를 들러 온 이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되살아난 수장과 간부들을 보고는 놀라 흠칫 멈춰섰다.

 "아……."

 나는 내 눈앞의 광경을 보며 힘 빠진 탄식을 흘렸다.
 
 "…신경 쓸게 많은 건 좋지 않지."

 수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솨아악

 그녀가 딛고 있는 바닥이 갑자기 모래가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본부, 간부들, 몰려온 이들까지 다 모래가 되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모래가 되어 무너지는 범위는 이제 본부 밖이었다. 본부 밖 세상, 본부 입구, 현사엽과 길선웅이 살던 아파트, 내가 예전에 살던 집, 다른 도시, 그리고…….

 "온 세상을 다 붕괴 시킬 생각이야?"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모래 폭포를 보며 말했다.

 "싸울 생각이 없는가 보군."

 수장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싸워야지. 안 싸우면 전부 모래가 되버릴 거 아냐."



 이전에 했던 것처럼 손을 휘저어 수장을 가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소용 없었다. 그저 모래만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계속 폭포 소리 같은 사르륵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

 쏟아져 내리던 모래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계속 재생되던 영상을 그대로 멈춘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일단 죄다 모레를 만드는 것을 멈추고 나서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그만 해. 도넛이라도 만들 거야?"

 나는 어느새 우주 공간에 서서 구멍이 뚫린 행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행성은 방금 전까지 내가 발 딛고 서있었던 바로 그 행성이었다.



 수장은 말 없이 내가 했던 것처럼 손을 한 번 휘저었다.

쿨럭

 나는 강력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속에서 차오르는 것을 맽어냈다. 나는 그대로 피를 토했다.

 "젠장." 

 난 그렇게 말하고는,



 어느새 그녀의 앞으로 날아가 나의 긴 발로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깠다. 



 끝내주는 타격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한 바퀴 휙 돌아 몸의 중심을 잡고 섰다. 
 그녀는 나한테 한 대 맞고는 저 멀리 튕겨 나갔다가, 어느새 또 내 뒤에 서있었다.



 난 그녀가 내 뒤에 있는 것을 느끼고 뒤돌려차기를 해서 다시 후려깠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저 멀리 튕겨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의미없는 발길질로 몇 번을 치고 나서는,

 "아, 됐다."

 라고 말하고는 나는 허공에 그냥 앉아버렸다.
 치면 칠 수록 그저 생각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더 싸울 생각이 없나보군."

 수장이 이젠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이 짓거리 하기 싫어졌어. 내가 난리쳐봤자 뭐해? 어차피 네가 다 되돌릴 수 있는 거 아냐? 전부 허무해. 저 쓸려 가버리는 모래처럼."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팔짱을 끼고는 턱을 괴고는 또 한숨을 쉬었다. 이젠 모든 게 다 미적지근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떡할 건가?"

 수장이 물었다.

 "글쎄……. 차차 생각해 봐야지. 일단 당신이 한 행동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당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는 가.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들을 죽인 게 진짜 너야? 진짜 네가 지시한 거냐?"
 "따지고 보면 네가 죽인 거다."

 수장의 말에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저 소리를 듣자니 다시 화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휴."
 "……."
 "용서는 할 게. 잊지는 않겠지만."
 "잊지 않아주면 고맙겠다."
 "미안하긴 하냐? 네 양자 중에 하나는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너는……."
 "언제나. 앞으로도."

 그 말에 순간, 그녀의 얼굴이 빛이 없이 검게 보이고 그 뒤로 멈추지 않을 피가 강처럼 흐르는 모습을 봤다. 찰나의 그 순간을 본 나는 함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휴…….  제발 그렇게 한 순간도 잊지 말고 죄책감 갖고 반성하고 살아. 앞으로 인생 똑바로 살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뭐,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라고 말하며 다시 또 한숨을 쉬었다. 
 수장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하던 일을 계속 할 생각이냐?"
 "모르겠어.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 지 생각해봐야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자율적으로 알아서 돌아가게 두고 싶긴 한데……. 물론 어느정도 구심점은 필요하겠지만 말야."

 그렇게 말하는데, 익숙한 물체가 갑자기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어느새 눈 앞에 나타난 사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사과는 씨가 있는 뼈대 부분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몽롱해진 기분을 느끼며 사과의 꼭지를 잡았다.

 '…이걸 먹을 수 있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걸 통째로 입에 넣었다.



 "응?"

 나는 도자기 같은 것이 갈라지는 소리에 수장을 바라봤다.

투둑

 수장의 얼굴이 깨져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왜 수장이냐고 물었었지."
 "…다들 색달라서 특이한 것이 평범한 세상에 당신만 그렇지 않아서, 그래. 다른 곳의 기준으로 평범해서 이상했었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깨져가며 본 모습을 드러내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이 깨져갈수록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화려한 복색 또한 함께 깨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깨져가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네가 나의 겉을 보고 판단한 바에 따르면 아마 그렇겠지."
 "겉? 좋은 단어 선택이네. 그래. 너는 진짜 알면 알수록 희안한 놈이야."

 마지막 조각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이제 그녀는 어떠한 위압감도, 화려한 복색도 없이, 그저 정말 평범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게 그녀의 본 모습일까?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존재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말이다."
 "그래. 네 말투만 들으면 구석기 시대도 뺨치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넌 속이 이상하네. 그래서 수장이고."

 내 말에 수장은 처음으로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래.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처럼."

 정상이라는 말에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도망쳤던, 그 집이 생각났다. 

 "그래. 네가 가장 달라. 겉이 아니고 속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수장은 내 손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의미인가?"
 "잘 해보자고. 이제 혼자 끙끙거리는 건 지쳤거든."
 "무엇을?"
 "우리가 잘못한 것들을 바로 잡아야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내 말에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악수가 맘에 든다."
 "왜?"
 "마주 잡은 손 모양이 하트 모양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났다.

쏴아아

 나는 바람이 일렁이는 초원을 바라보며 집 앞 마당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수장과 싸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맛있는 냄새 나네."

 나는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원, 가끔 삐걱이긴 하지만 다시 스스로 움직이며 평화를 찾은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 느긋하게 식사를 기다리는 나.

 "어?"

 나는 초원으로 오기 위해 계단을 올라오는 곳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했다. 검은 모자와 검은 옷, 눈을 가리고 얼굴에 상처가 있는 남자. 나를 이곳으로 처음 인도해 준 남자. 사과를 내게 전달한 남자. 
 그는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내 앞까지 당도하자 말했다

 "어른이 되었군."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끼익

 집의 문이 열리고 수장이 나왔다.

 "시간이 다 됐군."

 그녀가 그를 보며 말했다.
 
 "어?"

 나는 그녀와 그가 같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의 얼굴의 상처에 시선이 꽂혔다.

 "어?"

 나는 순간, 머릿속에 건물주의 집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9폭의 병풍에 그려져 있던 한 남자와 8명의 여자. 다기에 그려져 있던 나비, 나무와 개미. 나는 그 모던 퍼즐들이 머릿속에서 짜맞춰지는걸 느꼈다. 
 
 이 이상한 능력. 말도 안되는 일들, 언제나 의미심장했던 수장과의 대화.

 "부디 잊지 말아다오."

 수장이 약간은 서글픈 표정으로 내게 다정하게 말했다. 이제야 알았다. 나는 그 얼굴이 너무 익숙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나는 시선을 돌려 눈을 가린 남자를 바라봤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그에게 뻗었다.

스륵

 그의 눈을 가린 검은 천을 잡아당겼다. 그 천은 저항없이 가볍게 풀렸다. 그 천뒤의 눈은,

 내 눈이었다.

 "아."

 그의 얼굴의 상처도 내 상처였다.
 그리고 그 옆의 수장의 얼굴도 내 얼굴이었다. 다만 수장의 눈은 천천히 검어지더니 건물주와 건물주 딸처럼 흰자가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였다.
 수장도 나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몇 시인가?"

 수장이 물었다.

 "…뭐?"
 
 내 얼굴을 한 두 사람이 호심래와 평심래, 오심래의 가면을 썼다.

 "헉."

 난 그 모습에 놀라서 의자 뒤로 나자빠졌다.

 "지금이 몇 시지?"

 둘은 동시에 똑같은 말투로 말하며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이젠 조금의 차이도 없이 같은 얼굴이었다.

 "…몇 시냐니…"

 순간 나는 지금껏 모든 시계가 가리키전 시각이 생각났다.
 
 "…3시…56분…?"









 눈을 떴다.







 시계소리.
 친구가 두고 간 시계 소리.
 병원 천장.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56분.

 나는 무의식 중에 턱을 긁었다.

 "어?"

 나는 이질적인 느낌이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턱을 긁다보니 가느다란 털 두개가 뽑혔다. 가늘고 짧은, 그리고 가늘고 긴 털. 그리고 그 옆에 막 자라나기 시작한 두꺼워진 수염이 느껴졌다. 
 지금까진 자라지 않았던 두꺼운 수염이 막 난 게 느껴졌다. 







 멈추지 않는 시계 초침 소리.



 57분.

반응형

'소설(Novel) > 캣츠비안나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부. 탐사  (0) 2022.09.02
2부. 기형 - 나를 위한 / 학생의 보은  (0) 2022.08.31
2부. 기형 - 돌고 돌아  (0) 2022.08.26
2부. 기형 - 쳇바퀴  (0) 2022.08.24
2부. 기형 - 정점  (1) 2022.08.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