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2부. 기형 - 쳇바퀴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쳇바퀴

SooyangLim 2022. 8. 24. 19:03

 "그럼 이제 수장은 저 아이가 되는 건가?"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인파 가운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 말에 웅성웅성 하는가 싶더니,

 "좋은 생각인데?"
 "새로운 수장이 되기엔 충분하지."
 "우리를 이끌기에 자질도 훌륭하고."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나를 수장으로 추대하자는 말이 들렸다. 나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스치려는 찰나,

 "수장! 수장! 수장!"

 그들은 내게 수장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볼에 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군중의 소리를 우두커니 서서 들었다. 그렇게 듣고 있자니, 볼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생각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해도 되지 않을까? 될 것 같은데?'

 라고 말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이끌고 온 무리를 거느리고 통치하는 게 책임을 다 하는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내 손에 이제 한 입만 남은 사과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그 사과를 눈앞까지 들어올렸다.

와삭

 나는 마지막 한 입을 베어물었다. 이제 사과는 씨가 있는 뼈대 부분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축하해."

 그렇게 말하며 현사월과 지환, 주현이 다가왔다. 현사월은 내게 왕관을 씌워줬다. 지환은 손마다 하나씩 들고 있던 것들을 내게 착용시켜줬다. 그것은 용포와 서양식 망토, 벨트, 왕관이었다. 마지막으로 주현은 보석이 화려하게 박힌 지팡이를 들고 와서 내 손에 쥐어줬다.

 "어……."

 난 잔뜩 치장된 것들을 둘러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랬더니, 어느새 나는 처음에 본부에 들어왔을 때 봤던 그 길쭉한 홀에 서 있었다. 나는 어느새 수장이 앉아있던 화려한 의자 앞에 서 있었다.

 내려다 본 홀은 깨끗했다. 그리고 예전에 간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이끌고 온 이들이 화려한 카펫 옆에 쭉 늘어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이 홀은 그 많은 간부들과, 간부들의 부하들은 도륙 낸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깨끗하게 치워진 것을 보고 난 내심 놀랐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더 생각할 새가 없었다. 쭉 늘어선 그 많은 이들이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군웅이 되어 받는 인사에 나는 기분이 고양되었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그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축하드립니다!"

 나를 향해 조아린 고개들이 일거에 합창을 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몸을 휘감았다. 

 '아, 그래. 그렇구나.'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솔찍히,'

 이곳의 사회 크기가 어떻든, 밖이 어떻든, 뭐가 됐든, 천하를 손에 넣었다.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
 능력을 가진 이들은 내가 모두 죽였고, 이곳에는 나를 따르는 무리들만이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내 통제 아래에 들어왔다. 난 이 순간 딱 한 마디만 생각났다.

 '기분 째진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이 들어왔어요."

 현사월이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그리고는 내 앞에 서류를 내려놓고는 하나씩 짚어주며 말했다.

 "본부로 들어오는 입구들 중에 하나에서 불이 크게 났어. 피해 금액이 추산 4000만원 정도? 그리고 클럽으로 연결된 입구에서 싸움이 났는데 패싸움으로 번졌고. 다들 유치장에서 계류 중이야. 일단 변호사는 불렀어. 하지만 서로 간에 사적인 중재도 필요한 상황이야. 그리고 오늘 아침에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있어. 의식은 돌아왔는데, 장기간 입원해야 된데. 그리고 사고 날 당시에 건물에 피해가 가서 복구가 필요해."

 난 각종 사건 사고를 멍하니 듣고는 말했다.

 "…그거 대부분 경찰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 해결할 일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지원은 해야지."
 "아, 지원……. 돈 문제인 거죠?"
 "돈만 문제는 아냐."
 
 현사월은 그렇게 말하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모두 내려놓고는 말했다.

 "해결을 빠르게 도울 인력이 필요해."
 "…어……. 누굴 고용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아님 품앗이라거나…?"
 "이미 그러고 있는 일들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야.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생기면 간부들이 돕곤 했었어. 능력을 이용하는 거지."

 현사월이 그렇게 설명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를 못 하고 눈만 끔벅였다. 현사월은 내가 좀 더 알아먹을 수 있게 말했다.

 "지금은 그 간부들이 없고."
 "…그럼 어떻게…?"
 "이 일들을 해결할 주체가 한 명은 남아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현사월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난 그제서야 현사월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했다. 지금 이 많은 일들을 내 가 도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제가요?"
 "그럼 누가 하겠어?"
 "어… 사람을 더 쓰거나 서로 도우면 안 되나요?"
 "이미 그러고 있는걸?. 그리고 돈은 무한정 솟아나는 줄 알아? 그리고 다른 사회에서는 해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거라고."

 현사월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반박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현사월은 서류 더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지환 오빠가 도와주기로 했어. 오후에 시간을 낼 거래."
 
 현사월의 말에 나는 표정이 밝아졌다가, 이내 의아하게 물었다.

 "근데 대부분은 능력이나 돈으로 해결 봐야 하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무리 손이 많아도 돕기에는 힘들 것 같은데요…?"
 "응? 직접 도울 거라고 생각했어?"
 "네?"
 "그걸 어떻게 도와? 네가 아니면 해결 못 해."
 "네에? 그럼 왜…?"

 현사월이 서류 몇 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서류 들고 다니려고. 지환 오빠는 서류를 여러 개 들고 있기 편하잖아? 따라다니면서 서류를 보고 해결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읊어줄 거야."
 "아……."

 내가 꺠달음과 맥이 풀린 탄식을 하는 사이에 현사월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해결 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또 다른 해야 될 일들이 계속 생길 거야. 알지?"
 "하……."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음으로 가야 될 곳은……."

 지환이 다음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잠깐만요."

 나는 지환의 말을 막았다.

 "잠깐 좀 쉬죠? 몇 시간 째 일만 했잖아요."

 나는 참다 못해 터져 나오는 느낌으로 말했다.
 내 말에 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쉬면 일이 더 밀릴텐데……. 일단 밤까지 좀 참아 봐요. 밤이 되면 좀 나아질 거니까."
 "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는 쉬지도 못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해결하러 다녔다. 하지만 노력만 했을 뿐, 큰 성과는 없었다. 오히려 미숙한 일처리 탓에 더 일이 커지거나 꼬이기도 했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요."

 새벽이 되어서야 나는 본부로 돌아가며 말했다. 내 말에 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쩌겠어요? 방법이 없는데."
 "방법… 찾아야죠."
 "어떻게요? 이제 능력을 쓸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잖아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규칙을 만들어야겠어요."



 얼마 뒤, 나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서 알렸다.

 "웬 규칙이래?"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처벌 받는다던데. 지원 박탈을 하거나……."
 "뭔 처벌?"
 "엥? 그게 말이 돼?"

 다들 수군거렸다.
 나는 지팡이로 바닥을 탕 내려치고는 말했다.

 "내 몸은 하나잖아요? 모든 일을 전부 다 해결하는 건 불가능해요. 보시다시피 대부분은 기본적인 사항이잖아요."

 내 말에 다들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부를 했다.

 "잘 지켜주세요."



 "야! 규칙을 따르라고!"
 "야! 이 정도는 규칙 안이잖아!"
 
 서로 동업을 하던 두 명이 규칙을 지키라며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한테왔다고요?"

 그리고 그들은 규칙을 지켰니 마니 하면서 내 앞에 찾아와서 옳고 그름을 가려달라고 했다.

 "으음……."

 나는 솔찍히 별 문제가 터진 건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면 나중에 또 다른 문제가 터질 것 같았다. 

 "…그냥 가벼운 벌금 정도만 내요. 밥값 정도? 뭐 처벌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네? 벌금도 있어요?"
 "이런 일로 처벌을 가혹하게 하기는 좀 그렇잖아요?"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순순히 납득하고 국밥 한 그릇 가격 정도만 내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런데 그들을 물리고 나니, 규칙 때문에 또 다른 시비가 붙은 사람이 들어왔다.

 "…또?"

 나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옆에 있던 현사월이 말했다.

 "오늘도 해결해야 할 일 투성이야. 계속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어."
 "아, 젠장."

 규칙까지 만들었 건만, 사건 사고는 크게 계속 생겨났다. 문제는 규칙 때문에 골치 아픈 일들도 더 생겨났다.

 "그냥 규칙을 없앨까요?"
 "갑자기? 그럼 지금까지 처벌받거나 벌금 낸 사람들은 뭐가 돼? 그리고 규칙 때문에 억제되는 것들도 있긴 있잖아."
 "그건 그렇죠. 하…… 누가 대신 보면서 판단 내려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걸 어떻게 다 봐요? …아?"
 
 나는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렸다.

 "이런 일들은 능력이 없어도 그냥 보면 판단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그럼 저 대신에 보고 판단하고 벌금이나 벌을 내려주는 사람을 뽑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날 대신해서 판단도 잘하고 잘 살피는 이들을 뽑았다.

 "부탁드릴게요."
 "네!"

 그들은 기운차게 대답하고 할 일을 하러 갔다. 나는 이제 좀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안일하게도.



 "수장님! 억울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안내견 강아지와 함께 온 이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아니……. 저기……. 무, 무슨 일이세요?"
 "저 규칙 감독관이 자기랑 친하다고 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한테는 유독 엄격하게 굽니다! 그가 나만 자제시킨다고 하다가 우리 강아지를 때렸어요!"
 
 그는 옆에서 낑낑거리는 안내견 강아지를 부둥켜 안으며 말했다.

 "아니!! 누구에요, 그 인간!?"

 그 모습을 본 나는 분노해서 소리쳤다.  
 그는 선글라스 뒤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목소리만 알고 있습니다."
 "하……."

 나는 한숨을 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안내견의 한쪽 다리가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아마 부러진 모양이었다.

 "…병원은 다녀왔어요?"
 "네? 다친 데 없는데요?"
 "아뇨, 강아지요." 
 "우리 멍멍이요? 왜요? 다쳤습니까?"
 
 그는 강아지를 더듬어 만져보며 물었다. 
 강아지는 자신의 아픈 것을 숨기려는 듯 몸을 빼며 낑낑거렸다. 그리고는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돈 드릴 테니까 병원 가봐요."

 나는 그와 강아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 의자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그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현사월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죠? 기껏 뽑아놨더니……. 비리까지 생기네요." 
 "권력이 생기면 그렇게 되는 법이지. 이대로 놔두면 저들이 아니라 너에게 문제가 될 껄."
 "저요?"
 "말단이 잘못해도 책임은 네게 있거든. 관리부실이라는 말 알아? 네가 방관을 하든, 그렇게 만든 규칙이라고 하든, 어쨌든 너의 평판이 박살날 걸. 그때가 되면 누가 네 말을 들을까? 나중에는 네가 폭군으로 남게 될 거야."
 
 현사월의 말에 나는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문득 머리 위에 왕관이 걸리적거렸다. 
 그때 현사월이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네?"
 "강아지만 때렸을까?"

 현사월의 말에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람도 때렸다는 말이에요?"
 "아직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대로면 규칙을 위해서 사람에게도 위해를 가하게 되지 않을까?"

 그녀의 말에 나는 의자 위에서 푹 꺼지듯 축 늘어지며 말했다.

 "아니, 그러지 마요. 설마 사람을 때리겠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겁주지 마요."

 라고 말했지만, 머릿속에 한 가지 문장이 떠올랐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떠오를까요?"
 "설마 싶던 것들은 대부분 일어나거든. 예감이 빗나가길 바랄게."

 난 그 말이 기정사실처럼 들렸다. 난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감찰을 만들어야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은 또 다른 일을 더 만든다는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젠장."

 난 다시 한숨을 쉬고 욕짓거리를 하며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푸념을 하며 중얼거렸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 시간도 없고, 이 무슨 개고생이지? 잠 잘 시간도 부족하고, 바쁘기만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그렇다고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가고……."

 이제 왕관이, 안 그래도 골치 아픈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두꺼운 망토가 무거웠다. 벨트가 숨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화려한 의자가 더없이 불편했다. 멋들어진 지팡이를 쥔 손이, 칼날을 쥐고 있는 것처럼 아파왔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 한숨 끝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도와주세요."

 나는 초췌해진 몰골로 말했다. 한 밤중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를 보며 건물주는 말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반응형

'소설(Novel) > 캣츠비안나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부. 기형 - 마지막 선택  (0) 2022.08.29
2부. 기형 - 돌고 돌아  (0) 2022.08.26
2부. 기형 - 정점  (1) 2022.08.22
2부. 기형 - 마지막 칸  (0) 2022.08.19
2부. 기형 - 네 명의 아이들과의 대화  (0) 2022.08.1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