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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돌고 돌아

SooyangLim 2022. 8. 26. 19:01

 "다과를 가져오겠습니다." 

 이전에 문지기 일을 하던, 선글라스를 낀 건물주의 딸이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건물주가 물었다.

 "문제가 많나보군."
 "날마다 일이 터져요. 사건 사고가 어떻게 매일 터지는지……. 일이 너무 많아요."
 
 나는 생각만 해도 목이 탔다. 앞에 놓인 차를 냉수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를 다 마신 나는 한숨을 쉬듯 숨을 길게 몰아쉬며 찻잔을 내려놨다. 문득, 나는 찻잔과 다관에 눈이 갔다. 나는 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봤던 것들임을 알아챘다. 다관에는 나무와 개미, 그리고 한 남자가, 그리고 찻잔에는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홀린듯 고개를 들어 건물주의 뒤에 있는 병풍을 바라봤다. 이전에 봤던 그 병풍이었다. 한 명의 남자와 여덟 명의 여자.

 "수장은 뭐라고 했는지 기억 하는가?"
 "네?"
 "아. 말실수 했군. 전 수장 말일세."

 건물주가 멋쩍은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래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 건물주에게 뭘 묻는 건지를 물었다.

 "…근데 뭐라고 했냐니요?"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 말일세. "
 "네?"
 "이번에도 범위가 넓은가 보군."

 그는 이젠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읽어 답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좋게 끝내준다지 않았던가."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찬찬히 찻잔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말했다.

 "내 딸이 필요하지?"
 "……."
 "부탁해보겠네. 된다고 하면 데려가게."

 그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괘, 괜찮을까요?"
 "그걸 부탁하러 온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계속 살펴보는 건물주를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혹시 그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시면……."
 "필요한 거?"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선글라스 너머로 새까만 눈이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잊지말게."
 "네?"

 그는 갑자기 뒤에 있는 병풍을 돌아봤다. 그가 다시 나를 돌아봤을 때는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하다네. 특히, 자네에게는. 그러니 잊지 말게나."



 얼마 후, 그녀는 본부를 찾아왔다.

 "어떻게 모든 일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녀는 나의 질문에 선글라스를 벗었다. 흰자가 없는 새까만 눈이 드러났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 눈을 보십시오."

 나는 흰자가 없이 새까만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은 주저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새까만 눈을 마주하고 몇 초 지난 순간, 
 
 "헉"

 난 놀라서 숨을 헉 들이마시며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이미 의자에 앉아있어서 물러날 곳이 없는 데도, 뒤로 물러났다. 때문에 의자에 등이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신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무엇을 보고 싶은 지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난 나도 모르게 가빠진 숨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방금 본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검은 눈이 어느 순간 확장되는 듯 하더니, 내 시야를 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일순간 수많은 장면들이 보였다. 덕분에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게다가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여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찰나지만 그 순간을 지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눈처럼 새까만 우주 공간이 보였다. 마치 작은 창을 통해 광활한 바깥세상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무엇을 보고 싶은 지 선택을 해서 집중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어느 지역이라거나, 지금 당장 해결해야 될 부분을 본다거나…"
 "이런 걸 평소에도 보고 사는 거에요?"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물었다. 그녀는 내 물음에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선글라스는 좋은 도구죠."
 "다행이네요. 계속 이러고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말했다.

 "전 보려고 해서 보는게 아닙니다."
 "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는 겁니다. 그 중에서 집중할 것을 선택하는 것 뿐이죠."
 "미친. 너무 끔찍한데요? 이걸 견딘다고요?"
 "무의식이랑 비슷합니다. 마치 감각이 흘러들어오고 있지만, 의식 하는 것 외에는 느끼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마치 당신이…"



 갑자기 그녀가 꺼낸 칼이 나를 향했고, 그 칼은 나를 둘러 싼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튕겨져 나갔다. 

 "본인도 모르게 평소에도 능력으로 보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난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해서 움찔하며 의자의 팔걸이를 꽉 부여잡았다.
 그 칼은 종잇장처럼 우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튕겨나간 칼의 궤적은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가서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내게 말했다.

 "그럼 좀 더 집중해서 다시 시도해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왕이면 일터지기 전에 막는 게 좋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를 이용해서 꽤나 능숙하게 일을 처리 하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터지기 전에 미리 처리했다. 하지만, 곧 다른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매번 이렇게 해결 한다는 건 우리를 cctv처럼 감시하고 있는 거야?" 
 "오싹한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우리를 보고 있는 거지?"
 "맨날 보고 있는 거 아냐?"
 "미친 애새끼 같으니라고. 소름 돋네."
  
 난 그들의 불만에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일 터지기 전에 미리 막은 건데, 왜? 일 안 터지면 좋은 거 아냐?"
 "감시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현사월과 카페 사장이 나와 건물주의 딸을 위한 커피와 디저트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하……. 그럼 그냥 터지고 난 뒤에 돕든지 해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쭉 빨아 마셨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또 불만이 터져나왔다.

 "아니, 일 터지기 전에 해결 할 수 있는 거 아냐? 왜 일이 터지고 나서 돕는 거야?"
 "장난치나? 굳이 안 겪어도 될 일을 왜 겪게 하는 거야, 대체?"

 새롭게 쏟아져 나온 불만에 나는 또 한숨을 쉬었다.

 "아니,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냥 관리자를 보내는게 낫겠어요. 좀 많이요."
 "그럼 전처럼 또 불만 나오는 거 아냐? 미리가 터진다거나 편파적이라고?"

 현사월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숫자를 늘릴 거예요. 그리고 한 지역이나 한 자리에 계속 놔두지 않을 거예요. 순환시키는 거죠. 그리고 일의 단계를 만들어서 레벨업 하는 재미를 붙이게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달리하고 처벌도 만들어서 가능한 비리를 없애려구요. 물론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제가 처리하고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건물주의 딸은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현사월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잘 될까? 그렇게 많이 모집할 수 있으려나?"
 "모아야죠. 뽑을 수 있을 거에요."
 "흐음……. 글쎄……. 잘 모르겠네. 뽑는 기준은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뽑는다 해도 그 비용은?"

 현사월의 말에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그… 수, 수익성 사업 같은 걸 한다던가…? 뽑는 기준은……. 시험을 친다거나…?"

 나는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현사월에게 말했다.

 "…알아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똑똑하시니까…?"

 내 말에 현사월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휴……. 너는 어려운 일은 나한테 다 맡기더라?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방식을 바꾸고 나자, 잡음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번에는 제법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적으로 나설 일이 확 줄어서 편해지긴 했다. 하지만, 이 방식도 시간이 지나니 잡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우리 지역 놈은 윗자리에 올라가는 데만 신경을 쓰잖아! 일을 대충대충 하잖아!"
 "다들 한 자리 차지하려고 시험에만 몰두하고 있다니까?"
 
 그런 불만에 이어서 나는 뜻밖의 소식들까지 듣기 시작했다.

 "다들 현사월 부부 눈치만 보고 있다니까?"
 "맞아. 다들 그 부부 비위 맞추기에 혈안이잖아. 엄청 대접받고 다니잖아." 
 "대접은 무슨! 다들 굽신거리는 거지."
 "수장 신임 믿고 아주 그냥 무소불위야."

 나는 이런 말들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떡하죠?"
 "……."

 건물주의 딸은 말 없이 선글라스를 다시 꼈다. 
 나는 고민하다가 일단 현사월을 다시 불렀다.

 "…요즘 사람들이 누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대접받는다는 둥, 마음대로 한다는 둥……."
 "아~ 그거?"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잖아? 내가 뭘하든 자기한테 유리한 쪽이 아니면 불만을 가지는 거.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거 아냐. 자기들이 고개 숙이고 갖다 바치던 걸?"

 현사월의 말에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일단은 알았다고 하고 현사월에게 하던 일을 하라고 하며 돌려보냈다.

 곰곰히 앉아서 나는 지금 내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마 나는 현사월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솔직히 나는 현사월이 그런 말을 들었으면, 미안하다고 하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현사월 말이 맞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게 됐다. 그냥 내가 잘못 생각한 거라면? 내가 현사월을 믿지 못하는 거라면? 아니, 그보다 내가 생각해서 만든 이 방식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거라면?
 
 나는 생각을 하다가 건물주의 딸에게 말했다.

 "…사월 누나 말이 맞을까요? 아니, 사월 누나 말이 맞냐 틀리냐 보다……. 지금 이게 맞는 걸까요?"

 내 말에 건물주의 딸이 말했다.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녀의 질문에 나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봤다. 하지만,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했다.

 "음… 글쎄요……. 으음……. 모르겠어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건물주의 딸이 말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당신한테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네?"

 그녀는 어조가 거의 없는 말투로 말했다.

 "어떤 일이 기점이 돼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당신에게 찾아온다면요. 그때 현사월을 놔둘 생각입니까? 그리고, 그때도 이 방식을 유지할 생각입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뭔가 일이 터지면 곤란하겠네요. 일이 터지기 전에 방식을 바꿔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요?"
 "으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가 신경 안 써도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할 방법이 없을까요? 신경 써야 될 부분은 쓰겠지만요."

 내 말을 듣고 있던 건물주의 딸이 대답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왜, 왜요? 잘못됐어요?"
 
 그녀는 정지한 듯 가만히 멈춰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트리거가 시작된 듯합니다."
 "네?"

 그녀는 이번에는 나의 요청 없이 선글라스를 벗어서 나를 바라봤다.

 "어?"

 누군가가 폭행시비에 휘말린 게 보였다. 내가 채용한 직원 중에 하나와 시비가 붙은 모습이 보였다. 

 "복수할거야! 그 애새끼, 편들어줬더니 전보다 나은 게 없어! 이건 폭정이야!!"

 그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의 심장에서 불씨가 붙고, 그 불씨는 다시 그의 절규하는 얼굴에서 불길이 되어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어어?"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당장 본부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무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마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의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내 앞의 계단 바닥이 쩍 갈라졌다. 그 갈라진 틈은 점점 넓게 커졌다. 어쩐지 그 갈라지는 모습이 눈에 익었다. 

 '아, 이건…….'

 나는 그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해냈다. 그건 내가 마지막으로 한 공격의 모습이었다. 

 부서지는 바닥에서 불길과 물이 동시에 솟아나기 시작했다. 본부가 물과 불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뼈대만 남은 사과를 들고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다."

 수장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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