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2부. 기형 - 정점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정점

SooyangLim 2022. 8. 22. 19:02

 "긴 말 필요 없지?"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면이 칼로 찍어 상처를 내는 것처럼 파이며 흙과 자갈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 상처의 끝에는 수장이 내 공격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뭐야."

 나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 당황했다. 물론, 그녀는 나름의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상처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대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 가만히 있지? 날 여기까지 오게 해놓고."
 "싸우기 싫다."
 "뭐?"
 "나는 너와 싸울 이유가 없다."
 
 난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싸우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싸우기를 거절했다. 나는 욱해서 소리쳤다.

 "그래? 그럼 바로 죽여줘?"
 


 다시 한 번 지면이 푹 파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요지 부동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털끝만큼도 다치지는 않았다.



 나는 공기가 내 귓가에 스치는 소리를 느끼며 그녀에게 날아가듯 빠르게 다가갔다. 



 나는 어느새 내 손아귀 안에 그녀의 목을 쥐었다. 내 손 아래 목이 졸리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나를 쳐다봤다. 난 그 감정 없는 오만한 눈에 대고 매달리듯 물었다. 

 "…뭘 하고 싶은 거야? 뭐, 대화라도 원해?"
 "물을 게 많을 줄 알았는데."
 "물으면? 대답은 똑바로 하고?"
 
 무심하게 나를 보고 있는 그녀는 어쩐지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할 수 있는 대답은 다 하겠지."
 "뭐?"

 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던지듯 내팽개쳤다.
 하지만, 그녀는 바닥에 던져지지 않고 천천히 물 속에서 떠가듯 공중에 붕 뜨더니, 다시 천천히 땅 위에 착지했다.

 난 일단 화를 억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그래.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도 궁금했어. 도대체 꿍꿍이가 뭐야? 무슨 생각이야?"
 "일어난 일 중에 어떤 것에 대해서 말이냐?"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부 다."
  
 내 말에 수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질문이 잘못됐다."
 "질문이 잘못 돼? 뭐, 어떡하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길 바래?"

 나는 내뱉듯이 말했다. 

 "아저씨들을 왜 죽였는지, 왜 나를 이렇게 꾀어낸 건지, 왜 네 간부들이나 수하들을 죽든 말든 가만히 놔둔 건지, 내가 이러고 다니는 동안 넌 왜 가만히 있었던 건지, 그리고 네 생각도 모르는 네 양자들은 왜 이러는 건지, 그리고 대체 이 능력은 뭐고, 대체 이 집단은 뭐 하는 집단이야? 아니, 그냥 한 가지만 묻자."

 난 윽박지르듯 쏘아대던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 질문에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여전히 질문이 잘못됐다."
 "뭐?"

 그녀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현사엽과 길선웅을 안 잊을 자신이 있나?"
 "뭐?"
 "너에게 그들은 결국 별 것 아닌, 잊어버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말하겠다. 제발 잊지 마라. 여기서 보고 들은 것, 느낀 감정, 모두."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나는 수장의 말에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그 때 수장이 손을 뻗었다. 난 수장이 손을 뻗는 곳을 보니, 내 뒤에 내가 몇 입 베어 문 사과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 사과는 천천히 수장에게로 이동했다. 수장은 사과를 잡으며 말했다.

 "궁금하지 않았나? 내가 왜 여기의 수장인지.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수장의 말에 나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궁금했었다.

 이곳은 다른 사회에서의 특이함과 다름이 평범함이 되는 곳. 그 누구보다 다른 사회의 평범함을 가졌기 때문에 역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자. 그래서 의아했었다. 가장 이질적이고 수장으로 안 어울리는 작자였으니까.

 그녀는 사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내가 너를 초대할 수 있었을까? 너는 왜 발이 자랐고, 나는 그걸 알고 초대했을까?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
 "잘 생각해 봐라. 너는 네가 내게 한 질문의 대답을 모두 알고 있다. 네가 물어야 할 질문만 빼고."

 수장은 잡고 있던 사과를 다시 허공에 띄웠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물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다시 사과를 건넸다. 나는 내게로 둥둥 떠서 오는 사과를 잡았다. 내가 사과를 잡자 수장이 말했다.

 "그리고 너는 누구인지."

 나는 내 손에 들어 온 사과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제 그 사과는 한 두어 번 베어 먹을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난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넌 내가 지금까지 너를 해치려 했다고 생각했겠만, 그건 네 착각이다."
 "뭐…?"

 난 그녀의 말에 얼굴을 잔뜩 구겼다.
 수정은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

 "너와 나는 대립 할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서로를 죽이려 들면 공멸할 뿐이다. 그게 너와 나의 관계이다. 넌 나고, 난 너다."
 "…그게 무슨…?"
 "방금 내 말이 네 모든 질문과 네가 했어야 할 질문에 대한 단서이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한 걸음씩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너는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이라 할 수 있나? 너는 결국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네가 날 족치려고 그랬던 거 아냐?"

 난 감정을 계속 억누르며 말했다. 그리건 빈정거리듯 말했다.

 "아! 지금 회피 하는 거냐?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저질러놓고?"
 "회피! 점점 가까워 오는구나. 그렇다면 네가 하는 모든 것이 이치에 맞고 순리에 맞고 옳은 것이라 확신할 수 있나? 그리고…"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방어할 태세를 취했다.

 "네가 아는 모든 것이 진실이며 실존하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나? 그저 계기인 것은 아니었나?"
 "뭐…?"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그녀는 손을 올려 내 머리를 톡 건드리며 말했다.

 "기억하라, '나'의 비극을."



 나는 그녀의 손을 쳐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말 하는말하는 거 하나하나 맘에 안 드네. 말투까지 ㅈ같네. 밑에 놈들 말하는 거 다 이상하더니, 이 미친년한테서 배웠구만.'

 수장은 나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안도하라, 지금은 행복하게 끝내줄지어니."

 난 더이상 대화할 가치를 못 느끼고 말했다.

 "야."

 나는 이 와중에 손에 든 사과를 뜯어먹듯 한 입 거칠게 베어 먹었다. 그리고 목으로 넘기자마자 말했다.

 "그냥 뒤져, 미친 년아."



 나는 수장의 명치를 나의 긴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내 발이 닫는 느낌은 없었다. 무언가의 저항에 막혀, 오히려 내 몸이 튕겨 나갔다. 나는 공중에 붕 떠서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나비가 앉듯 천천히 땅으로 착지했다. 하지만, 내가 공중에 떴다가 내려앉는 사이 땅은 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드드드드드

 땅이 흔들렸다. 아니, 단순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가 액상화 돼서 요동쳤다. 동시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물과 불이 땅 아래에서 치솟기 시작했다.

 '어?'

 나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강하게 나가는 출력에 살짝 당황했다. 네 명의 아이들이 내게 불어넣어준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한계 이상의 능력을 써도 괜찮다는 신호 같았다. 나는 지금 마치 감각이 마비된 듯 무감각한 느낌을 받았다.

파바바박

 파도가 치듯, 땅의 표면이 튀어올랐다. 흙이나 돌 따위가 튀어 오르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대지가 흔들렸다. 성난 땅의 파도는 땅 위를 채찍질한 것처럼 긴 상흔을 남기며 수장을 향해 덤벼들었다.



 물은 실처럼 가늘고 빠르게 뽑혀나와 수장을 베어들려했다. 불은 소리 없이 무언으로 그녀에게 날름거렸다. 마치 마그마처럼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그녀를 삼키려 들었다.

 "……."

 그런 소란 속에서 그녀는 흔들림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흔들어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그녀가 딛고 있는 땅은 아무 이상 없이 멀쩡 했다.

 "젠장할!" 

 내 이마에 핏줄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바짝 약이 올랐다. 가능하면 이렇게까지 큰 소란 일으키지 않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하나하나 능력을 강하게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수장을 죽이려는 모든 시도가 튕겨져 나오면서 그 여파만 주변에 잔뜩 흩뿌려지고 있었다.

 튀어오르는 흙과 돌은 맹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모두 그녀를 죽이기 위해 더욱 맹렬히 질주했다. 그 힘이 얼마나 거셌던지, 그 바람마저 단순한 폭풍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수장이 갑자기 손을 들어서 파리를 쫓듯 살짝 움직였다.



 그 순간 주변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나는 몸이 공중으로 확 밀려났다. 공중에 붕 떠서 감각이 모두 사라진 듯했다.



 "윽!"

 어느새 나는 갑자기 나타난 하얀 벽에 밀쳐졌다.

 '또 환각 같은 건가?'

 그 때,

촤르륵

 "!?"

 갑자기 사슬이 벽에서 튀어나와서 내 양팔을 낚아채고 벌려 포박했다. 이상하게도 이깟 사슬 따위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슬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너는 이 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이번에도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
 이번에는 무언가 차는 느낌이 났다. 그녀는 어딘가로 확 밀리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포박하던 사슬과 벽은 사라졌다.

 "뭐야?"

 나는 갑자기 발이 땅에 닿자 놀라서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렸다. 나는 발 밑에서 무언가 부스러지는 느낌이 깜짝 놀라 말 아래를 바라봤다.

 "어?"

 난 발아래의 구체가 바스러지는 것이 보였다. 난 별생각 없이 그 구체를 발판 삼아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그런 구체들이 제법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수장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어디로 간 거야?"



 갑자기 이 칠흙같이 어두운 곳 어디선가에서 검은 무언가가 휙 날아왔다. 난 그것이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뭐가 날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주변에 있는 어떤 구체를 맞추고 터졌다. 구체는 터지면서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빛이 났다. 그리고 그 빛 조각 중 하나는 저 멀리 있는 어떤 다른 구체에 떨어졌다.

 "뭐야, 저거. 폭탄인가?"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까 그 이상한 것이 날아온 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방향에서 다시 빛이 날아오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긴 빛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아, 진짜!"

 나는 짜증을 내며 몸을 피했다. 왠지 저걸 막을 수도 없고, 맞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번에 날아오는 빛줄기는 궤적이 있어서 피하기 편했다. 그런데, 그 빛줄기를 시작으로 갑자기 주변이 환해질 만큼 빛줄기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아마 위협적인 것만 아니라면 꽤 보기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으악!" 
 
 난 피하려 몸을 웅크렸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다른 것이 날아왔다.



 "윽."

 그것은 내 얼굴을 깊게 파고들어 베어버림과 동시에 내 손목에 그대로 꽂혔다. 난 얼굴의 고통을 느끼면서 손목에 시선을 떨궜다. 그러더니 그게 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피가 뚝뚝 흐르는 내 팔목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숨바꼭질도 아니고, 이런 장난질이나 하고 있는 게 짜증이 났다. 난 피가 흐르는 팔목 쪽의 손으로 깊은 상처가 난 얼굴의 상처를 막으려 했다. 그리고, 







 내 발 밑에 있던 구체를 포함해서 주변의 구체들을 차례로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내 능력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새까만 어둠이 싹 가시고 주변이 하얗게 변했다.
 그랬더니 나와 가까운 곳에 수장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장난은 끝이야, 이 새끼야. 네 얘기는 더 들을 필요도 없어."

 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휘저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주변이 마치 칼로 벤 듯이 갈라졌다. 그리고 종이를 걷어내듯, 종이를 불에 태우듯 흰 부분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희게 보였던 그 이질적인 시야는 어느새 온 데 간 데 없었다. 
 내가 잔뜩 헤집어 놨던 드넓은 초원이 멀쩡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난 다시 손을 저었다.

 "쿨럭"

 평화로워 보이는 초원의 풍경이 벽이 갈라지듯 가로로 길게 금이갔다. 그 베어낸 풍경의 중심에 서 있던 수장이 피를 토했다. 그녀의 몸뚱아리가 돌덩이가 부서지듯 무너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래가 사라지듯 풍화되어 스러져갔다.
 
덜컹

 그 때 내 뒤에 있던, 아까 올라온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무언가 덜걱거리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끝났구나."  

 계단을 올라온 이는 현사월이었다. 그녀는 사라져 가는 수장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나를 따라줬던 이들이 차례로 올라왔다. 수많은 이들이 내 뒤에 있었다.

 "……."

 나는 얼떨떨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뒤돌았다. 뒤돌자, 이제 내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나는 계단의 맨 위, 그 너머였던, 이곳에 서 있었다. 

 "……."

 나는 말 없이, 이제는 등 뒤의 사라져 가는 수장을 바라봤다. 그것은 곱게 풍화돼서 바람에 흩날려 흔적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귓가를 스치는 초원의 평화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침묵하던 나는 이윽고 입을 뗐다.

 "이겼어요."

 초원의 정적을 깨고 우레 같은 함성 소리가 오감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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