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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기대치

SooyangLim 2022. 7. 21. 19:01

 "괜찮아?"

 길선웅이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선웅과 현사엽을 보며 물었다.

 "아저씨들은 괜찮아요?"
 "우린 괜찮아."
 
 현사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저런 양아치가 다 있죠?"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왜 저렇게 돌아간 걸까요?"
 "…너 무슨 짓 했는지 모르겠어?"

 현사엽이 말했다.
 난 그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네? 뭘요?"
 "방금 오체금님을 멈추게 했잖아."
 "네?"
 "좀 전까지 실오라기조차 못 움직였는데 말야!"
 
 약간 흥분해서 말하는 현사엽한테 맞장구치며 길선웅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심지어 간부인 오체금님을!"
 "…제가요?"
 "응!"
 "그랬었…나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내 말에 길선웅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박스와 부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하늘 공중으로 띄워 봐."
 "…해보라고 하셔도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는데……."

 난 긴가민가 하며 말했다.

 "한 번 됐으면 또 할 수 있어. 네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될 거야."
 "으음……."
 "아까 어떤 생각으로 막은 거야?"
 "아까요?"

 난 오체금의 주먹이 날아올 때를 상기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생각했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고 그때의 감정만 떠올랐다. 억울함, 분노, 현사엽과 길선웅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

 "…모르겠는데요. 그냥 그래야 된다는 생각 밖에……."
 "그럼 그런 생각을 갖고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현사엽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박스와 부품들을 바라봤다.
 
 "어?"

 놀랍게도, 그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박스와 부품들이 떠올랐다.

 "어어, 잠깐만~"

 갑자기 다급하게 길선웅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아."

 박스와 부품들만 들어 올린 게 아니라, 현사엽과 길선웅, 그리고 공업사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공업사 가게 건물까지 약간씩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이걸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전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게 뭐 있어. 오늘 처음해서 그런 건데, 뭘. 그보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현사엽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더 연습하면 엄청나질 일만 남았다고!"
 "얌마! 그 전에 해야 할 일이나 하자고."

 길선웅이 괜히 핀잔을 주며 말했다. 현사엽이 박스와 부품들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 이거 치우자고?"
 "아니."
 "그럼?"
 "우리 꼬맹이 축하파티 해야지!"

 길선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녕? 너 오늘 축하할 일 있다며?"

 현사월이 손에 쌈채소가 든 비닐을 들고 현사엽과 길선웅의 집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건물주와 카페 사장도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카페 사장의 손에는 오늘 구워 먹을 고기가 손에 잔뜩 들려 있었다.

 "이리 주고 손 씻고 와."

 현사엽이 고기와 쌈채소를 받아 들며 말했다.
 건물주도 손 씻으러 가며 말했다.

 "우리만 부른 자리인가?"
 "지환이랑 주현이도 불렀습니다. 주현이가 우리 다친 거 치료해주느라 고생했거든요."

 현사엽이 불판을 달구며 말했다.
 건물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주현이…?"
 "주현이는 의사 하는 친구고, 지환이는 수제 신발이랑 이것저것 만드는 친구입니다."
 "아아. 기억나는구만."
 
 가장 먼저 손을 씻고 나온 현사월이 건물주의 손을 씻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

 "미정 언니도 부르지, 왜?"
 "미정이를 왜 불러야 되는데?"

 갑자기 현사엽이 굉장히 예민하게 짜증을 냈다.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길선웅이 옆에서 내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전 여친이야."
 "아."
 
 난 바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좋게 끝났다더니. 좋은 일 있으면 종종 서로 축하한다며?" 
 "아니, 야 그건……."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에이, 오늘의 주인공이 모르는 사람을 이 자리에 부를 순 없죠."

 카페 사장이 협사엽을 도와주려고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현사엽이 강한 긍정을 하며 맞장구쳤다.

 "그래. 얘는 모르는데 어떻게 불러? 애 불편하게."
 "으응~ 그래~ 꼬맹이가 불편하겠지~?"

 현사월이 퍽이나 그러겠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현사엽은 뭐라 하고 싶지만 주변 눈치를 봐서 참는 것 같았다.

 "지환이랑 주현이 형은 언제 온데요?"

 카페 사장은 눈치를 보며 괜히 말을 돌렸다.

 "주현이는 아까 출발했다고 했고, 지환이는 도착할 때 다 됐을걸?"

 그리고 그 말을 하기 무섭게 벨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발 가게 사장인 지환과 의사인 주현이 음료를 양손에 들고 들어왔다.

 이윽고 고기를 굽고, 맛있는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며 나를 위한 잔치가 시작됐다. 사실 굳이 나를 위한 파티라기보다는, 뭐든 기념해서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목적이 커보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분도 좋고 맛있는 걸 먹으면 그만이니 난 군말 없이 어울렸다.

 "그럼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연습하면 되는 건가요?"

 지환이 술 한 잔에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술은 젬병인 모양이었다.
 길선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근데 장소를 좀 바꿔야 될 것 같은데. 이전처럼 하다가는 남아나는 게 없겠더라고."
 "그 정도에요?"
 "말했잖아. 오체금님을 막았다니까? 나중에는 가게를 들어올릴 뻔 했어."

 길선웅의 말에 주현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좀 걱정되지 않아요?"
 "뭐가?"
 "오체금님이 보복하려 하지 않을까요?"
 "에이~ 보복이라니."

 길선웅이 맥주를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애한테 그러겠어? 지금이야 좀 그러셔도 인재라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맞아. 호심래님은 심지어 맘에 든다고 하셨는걸."

 현사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주현은 영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그래도 불안한데……."
 "필요하면 제가 호신용품이라던지 그런 거라도 하나 맞춤 제작하면 되죠."

 지환이 반농담 삼아 영업 모드로 얘기했다.

 "그나저나 수련할 장소는 어떡할 거에요?"

 카페 사장이 물었다.
 그 말에 건물주가 입을 뗐다.

 "안 쓰는 땅이 좀 있는데 거긴 어떤가? 영 가치가 없는 땅이라 안 팔리고 있는 곳인데, 연습 장소로 쓰기엔 나쁘진 않을 듯하네."
 "습지 옆에 말씀하시는 거죠?"

 현사월이 말했다. 건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현사월은 약간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거긴 좀 멀지 않나요? 차로 한시간 반은 나가야 되는 곳인데……."
 "내가 태워주면 되지."

 현사엽이 말했다.

 "오빠가 태워주게? 오빠 요즘 좀 바쁘지 않아?"
 "이번 주에 마감 끝내고 나면 괜찮아."

 현사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다음 주가 되자 나는 건물주가 안 쓰는 땅인, 늪지가 딸린 땅에 와 있었다.

 "어르신은 어쩌다 이런 땅을 가지고 계셨을까……."
 
 현사엽이 영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어깨를 으쓱 하고는, 본론을 꺼냈다.

 "근데 여기서 무슨 훈련을 해요?"
 "이번에 너한테서 발현된 능력을 키울 생각이야."
 "…초능력 같은 거죠?"
 "아니. 생긴 것만 그렇지."

 현사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여기선 뭐든지 할 수 있어. 네가 마법 같다고 생각하면 마법처럼 쓸 수 있는 거고, 초능력 같다고 하면 초능력처럼 쓸 수 있는 거야."
 "네…?"
 "중요한건 네 생각이라는 거지. 방향은 네가 결정하는 거야. 난 네 생각을 그걸 좀 더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다듬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뿐이고."
 "으음……."

 난 감이 안 잡혀서 인상을 찌푸렸다.

 "뭐, 바로 감이 안 잡힐거라고는 생각했어.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해보면 가장 빠르지."

 현사엽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있는 작은 돌을 들어서 내 발치에서 1m 정도 앞에 갖다 놨다.

 "이 돌만 골라서 들어올려봐."
 
 나는 시키는 대로 하려 했으나…….

드드드드득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지반이 움직였다.

 "좀 더 목표를 좁게 설정하는 거야. 한 점을 노린다는 생각으로."

 난 하루종일 작은 돌만을 들어올리기 위해 노력했고, 반나절쯤 지나자 성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보다 답답함이 더 컸다.

 "계속 이것만 연습하니까 답답해요."
 "그래? 이제 들어올리기 시작했는데……. 다음엔 들어 올려서 움직이는 거랑, 큰 돌 맞추기도 해야 되는데."
 "이런. 듣기만 해도 진 빠지는 데요?"
 "흐음. 그럼……."

 현사엽이 내 뒤쪽으로 가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말했다.

 "저기 늪지대 건너편에 산 아래 흙길 보이지? 저기까지가 어르신 땅이거든? 맘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진짜 그래도 되요?"
 "응. 괜찮다고 하셨어."

 난 현사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어, 이거……."

 발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에 현사엽이 당황한 듯 했다.

우르르르

 "아, 잠까…"

 현사엽이 비틀거렸다. 심한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액상화 돼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늪지대 안의 물은 요동치다 못해 바다처럼 파도쳤다. 

 "으악!"

 현사엽이 내 팔을 잡으며 매달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린 지금 공중에 떠있었다.

 "바깥쪽은 건드리면 안된다고 했죠?"
 "……."

 현사엽은 당황해서 말이 없었다.
 난 말 그대로 땅의 일부분만 파내듯 들어내서, 컵에 물을 담고 넣고 흔들 듯이 세차게 흔들었다. 

 "…맙소사."

 현사엽은 공중에 둥둥 떠서 이제야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괜찮으려나?"
 "맘대로 해도 된다면서요."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이거 원상복귀 할 수 있겠어?"
 "원상복귀요?"

 난 아까 전 풍경을 떠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땅과 물, 나무, 돌 등이 제자리를 찾아가듯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된 거죠?"
 "…아마도."



 "…생각보다 스케일이 장난 아닌 것 같습니다."

 본부의 화려하고 긴 카페트 끝, 예전에 문지기 역할을 하던 큰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수장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지금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흰자위가 없는 새카만 눈을 뜬 채 수장과 마주 보고 있었다.

 "글쎄."

 수장은 그녀의 새까만 눈에서 시선을 떼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은 볼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나는 실망스럽다. 물론 남의 땅이라는 생각에 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수장은 그녀의 새까만 눈을 보면서 이제 선글라스를 껴도 된다는 손짓을 했다. 

 "더 강할 것으로 예상하셨나요?"
 
 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과의 주인이니까. 이렇게 소소하게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느 정도를 예상하셨나요?"
 "난 실수로 쪼개기라도 할 줄 알았다."
 "네? 설마… 산 같은 걸요?" 
 "아니, 설마."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수장이 정확히 뭐를 쪼갤 줄 알았다는 건지 말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수장은 이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만 됐으니 그만 나가보도록."

 수장의 말에 그녀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수장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별 하나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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