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2부. 기형 - 기시감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기시감

SooyangLim 2022. 7. 11. 19:01

 "그게 무슨 말이야? 못 돌아갈 것 같다니?"

 현사엽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집 나온 건 아니지?"

 길선웅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난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울컥해서 눈물이 쭉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길선웅이 뭔가 말하려 하는데, 현사엽이 손가락을 코 끝에 대며 조용하라는 표시를 했다. 길선웅은 또 뭔가 말하려고 어깨와 팔을 들썩이다가 현사엽이 또 말렸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어?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자."

 길선웅은 안된다고 팔로 X자를 그렸다. 하지만 현사엽은 일단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일단 날 데리고 전에 갔던 국밥집으로 갔다.




 "먹자. 배고프겠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앉아 있는 나에게 현사엽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난 입맛이 없어서 전혀 먹고 싶지 않았지만, 사주신 성의를 봐서 억지로 입에 욱여넣었다.
 길선웅은 계속 몸을 들썩거렸다가 참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는 할 말을 하고 싶어 죽겠다는 듯 눈치였다.

 그래도 맛있는 국밥이라 먹으니 어떻게든 들어가긴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길선웅은 계속 입이 달싹거렸지만, 현사엽이 계속 제지했다. 현사엽은 보채지 않고 내가 천천히 먹을 수 있게 내버려뒀다.

 "아참. 오늘 신발 맞추러 갈 건데, 처음 가보는 곳이지?"

 현사엽은 괜히 밝게 말하며 딴 얘기로 내 주의를 돌리고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어느 정도 대화를 하며 먹다 보니 어느 정도 배를 찰 만큼 먹게 되었다.
 숟가락을 놓는 나를 보고 현사엽이 물었다. 

 "다 먹었어? 신발 맞추러 갈까?"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국밥집을 나와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에 도착했다.

「신발」

 그곳엔 붓으로 쓴 것 같은 정직한 제목의 아주 오래되고 단촐한 간판이 있었다. 가판대에는 신발이 몇 켤레 전시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요즘에는 찾아보기 낡은 쇠로 된 미닫이 문이 있었다. 길선웅이 총총거리며 다가가 문을 열었다.

드르륵-

 오래 됐지만, 관리는 잘 됐는지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지환이~ 손님 왔다~"

 길선웅이 주인장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갔다. 가게 안은 물건과 작업대, 완성된 신발이 진열된 선반, 각종 도구들, 뭔가 알 수 없는 도구들이 놓인 선반, 서랍장, 책장 등 각종 기물이 많았다. 그래서 다소 복잡하고 협소해 보이는 인상을 받았다.
 
 "어서옵쇼~" 

 반가운 목소리를 내며 앉아서 신발을 만들고 있던 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났다. 지환이라 불린 그 남자는, 과연 전에 그들이 말한 것처럼 팔과 손이 몇 개 더 있었다. 그는 가장 위에 있는 오른팔에 있는 손의 목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유지환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존댓말에 약간 어색해하며 그와 악수를 했다.

 "학생이에요?"
 "네……."
 "그렇구나. 그럼 크기 약간 넉넉하게 맞춰야겠네. 성장기 동안 계속 클 거니까요. 지금 신고 있는 건 잘 맞아요? 그때 대충 이야기만 듣고 만든 건데."

 그는 작업을 위해 끼고 있던 목장갑을 하나씩 벗으며 말했다. 그는 동그란 안경 너머로 총기있고 날카로운 쌍꺼풀이 없는 눈매를 내 신발에 고정하고 있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의 여러 개의 손들마다 박힌 굳은 살은, 그가 나이는 많지 않아도 장인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여전히 어색하게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신발만 하면 돼요? 다른 거 더 필요한 건 없고?"

 그의 질문에 옆에 있던 현사엽이 내게 말했다.

 "신발 맞춤을 주로 하긴 하지만, 신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만들어주거든. 내 동생 의족도 만들어줬어. 솜씨가 좋은 친구야."
 "아하……."

 난 현사월의 의족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환은 발의 탁본을 뜨기 위한 도구들을 옆에 있는 서랍에서 꺼내며 말했다.

 "발 크기를 정확하게 재봅시다. 완성되면 지금 신고 있는 신발보다 더 편할 거예요. 그래도 성장기 때는 금방 자라서 불편해지니까 자주 신발을 바꿔야 되는 거 알죠?"

 그는 의자를 하나 내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자, 여기 앉아서 신발 벗고~ 재봅시다."

 나는 주춤거리면서 무식하게 커진 발을 세상 밖으로 내놨다. 그는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발의 이곳저곳의 치수를 재고 탁본을 떴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길선웅이 말했다.

 "옛날에 발 크면 키 큰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대로면 난 얼마나 커야 되는 거야?"

 현사엽이 말했다. 그 말에 길선웅이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너도 발이 크긴 크잖아. 근데 난 거기에 예외사항이란 말이지? 나도 발이 아주 작은 편은 아닌데."
 "너 245였지?"
 "아니. 240. 큰 편은 아니지만 이 키에 맞는 발 크기는 아닌데 말이야."
 "그럼 발 크기에 키가 따라간다는 거는 딱히 신빙성이 없는 말이 되려나? 어떻게 생각해, 지환아?"
 
 현사엽의 질문에 유지환이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 연관 있겠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죠. 알잖아요? 우리는 그런 경우를 워낙 많이 보니까."
 "동시에 그 항상에 포함되기도 하지."

 길선웅이 말했다. 유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기도 하죠. 근데 우리 학생은 좀 연관 있을 것 같은데."
 "네?"

 난 어리둥절하게 반문했다.

 "학생은 많이 클 것 같아. 어쩌면 모든 게."

 유지환이 차분하게 말했다. 난 그게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했다.
 유지환의 말에 현사엽은 자신에게 불평하듯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 키 너무 크면 안 좋은데. 난 항상 허리랑 목을 굽혀야 된다니까?"
 "얌마, 나한테 좀 나눠줘 봐. 짜식이, 맨날 혼자 독식하고 있어." 
 "옛다."

 길선웅의 말에 현사엽이 머리를 들어서 떼주는 척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들은 또 만담을 하고는 껄껄 웃었다. 
 듣고 있던 유지환이 어이없다는듯 말했다.

 "늘 얘기 하지만 형들은 그 재미없는 개그를 그만해야 된다니까?"
 "얌마! 우리가 재밌다는데 네가 왜 참견이야? 그렇지 않냐?"

 길선웅이 현사엽을 쿡 치며 말했다. 현사엽은 쿵짝이 맞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네가 너무 재미 없는 놈이라서 우리 개그를 이해 못 하는 거야!"
 "재미없는 놈!"
 "재미없는 놈이다~ 우우~"

 그들의 유치한 만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어, 웃었다. 드디어 웃네?"

 현사엽이 내 미소를 캐치하고는 귀엽다는 듯 볼을 쓱쓱 만지며 웃었다.

 "뭐? 드디어 웃냐, 우리 꼬맹이?"
 "네? 꼬맹이라뇨?"

 꼬맹이라는 말에 난 괜히 발끈해서 말했다.

 "우리한테는 꼬맹이지. 네가 나이 80이 돼도 우리한테는 꼬맹이야."

 난 그 말에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마저도 귀엽다는 듯, 이번에는 길선웅이 옆의 의자에 올라가서 볼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얌마, 꼬맹이라 하니까 화나서 볼을 퉁퉁 부풀리잖아. 꼬맹이한테 꼬맹이라고 그만해라."
 "그래. 우리 꼬맹이 화나겠다. 그만하자."

 그러고는 둘이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거, 아저씨들. 애 그만 놀리고 예약 날짜나 받아 적어요. 예치금도 주시고."

 유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참, 중간에 한 번 들러서 잘 맞는지 신발 신어보러 점검 오세요."
 "아, 네."

 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우린 신발 얘기를 하며 근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다. 배도 부르고, 새 신발도 맞추고, 재밌는 얘기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무거운 부분이 자꾸만 걸리적거렸다. 난 잠시 말없이 현사엽과 길선웅의 대화를 들으며 걷다가 입을 뗐다.

 "…죄송한데, 며칠만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응?"

 내 말에 그들이 걸음을 멈췄다. 난 조용히 말했다.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니?"

 현사엽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자는 손짓을 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벤치에 앉았다. 모두 앉자, 나는 천천히 입을 떼고 아까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랬구나."

 현사엽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길선웅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듣고 있었다.
 나는 울컥 올라오는 것을 억누르며 천천히 말했다. 

 "근데요, 아까 엄마가 이해 안 된다고 말했지만요, 사실은요, 엄마가 이해돼요. 왜 그러는 지가 말이에요."
 "……."
 "근데 그냥… 모르겠어요. 제가 이해하기가 싫은 것 같아요."
 "이해…라고……."
 "그냥 제가 이해하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해 해야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이해는 하지만…"
 "아니."

 갑자기 길선웅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약간은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이해가 아니야. 그건 네가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와 용서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않을까? 네가 이해를 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받아들여도, 그런 말과 행동을 한 너의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고."

 난 그 말에 아까와 다른 느낌으로 울컥했다. 그리고 어쩐지 지금 그의 말투가 굉장히 낯익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현사엽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
 "난 사실 네 마음이 아물 때까지 머물러도 큰 상관은 없어. 하지만, 난 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나왔지만, 그리고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어쨌든 대화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어쨌든 확실한 속마음은 모르는 거잖아? 어쨌든 어머니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서 생각한 거고."
 
 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현사엽이 물었다.

 "사과 갖고 있지? 가방에."
 "네?"

 나는 갑자기 뭔 소린가 하고 생각하다가, 어쩐지 매고 있는 크로스백을 바라봤다. 갖고 나오긴 했던 것 같은데, 좀 전까지 매고 있었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천천히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사과를 꺼냈다.
 현사엽이 내가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아직까진 모든 건 네 생각이니까. 다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우리랑 잠시 머물러도 돼."

 나는 멍하니 손에 들고 있는 사과를 보며 어떻게 할 지 생각했다.
 길선웅이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돌아가긴 하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며칠만 재워 주세요.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갈래요."

 나는 사과를 다시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 느낌. 하지만 동시에 묘한 시원섭섭한.
 그래, 이건 해방감. 해방감도 느꼈다.

 내 말에 현사엽이 고개를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아, 지금 몇 시지?"
 "4시 조금 안됐어."

 길선웅이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얘 잘 때 덮을 이불이라도 한 채 사서 가자."

 현사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현사월과 길선웅과 함께 저녁거리를 장 보고, 이불을 한 채 사서 그들이 같이 산다는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중앙 정원이 있는 ㅁ자 모양의 5층짜리 낡은 복도식 연립 빌라였다. 

 연립 빌라 옆에 있는 큰 나무 옆 벤치에, 한복을 입고 지팡이를 옆에 둔 노인이 발걸음 소리에 우리를 돌아봤다. 난 그가 얼마 전에 카페에서 봤던 건물주임을 알아봤다.

 "누구야?"

 건물주가 물었다.

 "사엽이랑 선웅이입니다, 어르신. 얼마 전에 새로 온 친구가 저희 집에서 잠시 머무르려고 해요."

 현사엽이 말했다.
 그 말에 건물주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렇구만."

 건물주는 어쩐지 내가 보이는 것처럼 내 쪽을 향해서 뚫어져라 보면서 대답했다.
 현사엽이 노인에게 물었다.

 "사월이는요?"
 "커피 사오기로 했어."
 "역시나."

 현사엽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희 들어가 볼게요."
 "푹 쉬게."

 우린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에 현사엽이 말했다.

 "여기 빌라 건물도 저 분이 주인이셔. 우린 여기 월세로 살고 있는 거고."
 "부자시네요."

 난 솔찍하게 말했다. 우리는 천천히 빌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 말에 길선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아. 많이 부자이시지. 여기 말고도 건물 몇 개 더 가지고 계셔."
 "와우."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건 좀 많이 부러웠다. 난 현사엽과 길선웅을 따라 계단으로 올라가며 진지하게 물어봤다.

 "뭐하시는 분이시길래 건물을 몇 채씩이나 갖고 계신 거에요?"

 현사엽이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예전에 꽤 잘 나가는 기업가셨지. 지금은 재산을 상당 부분 정리하셨다고 들었어."
 "정리한 게 그 정도인가요?"
 "믿기지 않겠지만 전에 비하시면 굉장히 소소하게 사시는 거야, 지금은. 사별하신 후에 엄청나게 정리 하셨다더라고. 그리고 지금은 내 동생 상사이기도 하시고."
 "상사요?"
 "응. 사별하신 뒤로 개인 비서 겸 자산 관리를 도와드리고 있어. 요즘은 거의 저분의 눈이 되어드리고 있어."

 현사엽의 말에 길선웅이 말했다.

 "사월이가 꽤 엘리트야. 엄청 똑똑해. 학력도 대단한 애라고. 저놈은 지 동생이라고 맨날 불평하지만."
 "엘리트는 무슨. 지 방이나 깨끗이 치우지."
  
 현사엽이 투덜거렸다.
 그 말에 길선웅이 말했다.

 "조만간 네가 안 치워도 될지도 모르지. 아, 사월이가 좋아하는 사람 얘기했던가? 카페 사장 말야. 전에 봤었는데. 기억나?"
 "네. 기억나요." 
 "그 사장이 예전에 저 분 보디가드였어. 그 때 사월이가 푹 빠졌다고 하더라고. 그 카페 사장은 아직 사월이가 좋아하는 줄은 모르고 있지만."
 
 길선웅이 5층에 도착하자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우린 507호 문 앞에 섰다. 현사엽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옆집이 사월이 집이야. 506호. 원래 나랑 사월이랑 같이 사는 집이었는데 사월이가 따로 살고 싶데서 나랑 선웅이랑 같이 살고 있어."
 "아하."
 "청소는 거의 내가 해주고 있어. 덕분에 청소를 두배로 하고 있지."
 "아……."

 길선웅이 현사엽이 비번을 누르는 동안 열쇠로 문을 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며 길선웅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는 나도 청소하잖아."
 "그럼 뭐해? 어쨌든 난 쟤 집도 청소 해주는데."

 현사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문이 열리자 집집마다 있는 특유의 냄새가 훅 풍겨왔다. 묘하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냄새였다. 아무래도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섬유 유연제 냄새와 음식 냄새, 체취 등이 합쳐진 냄새일 것이다.

 그들의 집은 방 두 개에 거실은 미닫이 문으로 나눌수 있는 구조의 집이었다. 모든 문은 주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실 쓰면 될 것 같은데? 여기에 티비도 있고, 소파도 있고. 우린 어차피 거실은 잘 안 쓰거든. 베란다 갈 때나 다니지. 밥도 거실에서 안 먹고 주방에서 먹는 편이고."

 길선웅이 이불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미닫이 문으로 가리고 생활하면 되겠어."

 현사월이 장 봐 온 것을 주방으로 들고 가서 정리하며 말했다.

 "여기 문은 안 보이게 가려줄게. 잠시만. 가릴게 어디 있을 텐데……."

 길선웅이 거실 오른쪽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방이 길선웅의 방인 듯했다.

 "아참, 화장실은 내 방 옆에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돼."

 방에서 길선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인 즉은, 화장실 옆이자 현관 오른쪽에 붙어 있는 방이 현사엽의 방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면도기, 칫솔, 샤워 타월이 두 개씩 있었다. 추석 선물세트에 들어 있을 것 같은 비누가 대충 비누 받침대에 던져지듯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치약 짜개로 종잇장처럼 얇게 알뜰히 짜는 중인 치약과, 아저씨들 답게 박하향 올인원 비듬 샴푸가 보였다. 수건걸이에는 어디 행사 같은 데 가서 선물로 받아 왔는지, 글자가 프린트된 수건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 때, 주방에서 현사엽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먹게 손 깨끗이 씻고 나와."
 "네~" 

 볼 일 보고 손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니, 길선웅이 미닫이 문에 종이를 테이프로 붙이고 있는 게 보였다. 

 현사엽은 주방에서 나무 도마 위에서 애호박 같은 것을 썰고 있었다. 주방에는 꽤 연식이 느껴지는 색감이 변한 냉장고가 보였다. 그 냉장고에는 배달음식을 시키면 주는 광고 전단이 붙은 자석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식탁은 보이지 않았고, 접이식 개다리소반이 냉장고 옆에 접힌 채로 놓여있었다.

 난 어쩐지 처음 온 집인데 오래 살던 집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푸근한 느낌도 났다. 딱히 별 다를 것 없는,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이어서일까?
 난 문득, 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더니.'

 이상하게 미소가 슬며시 흘러나왔다.
 난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물었다. 

 "제가 뭐 도울 거 있을까요?"

 그 말에 길선웅은 막대기를 이용해서 위쪽까지 종이를 붙이느라 낑낑거리면서 대답했다.

 "난 괜찮아."
 "냉장고 옆에 상 좀 펴서 행주로 닦아줄래?"

 현사엽이 옆에 있는 행주를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상을 펴서 행주로 다 닦고 다시 현사엽에게 건네줄 즈음에는, 가스레인지 불 위의 뚝배기에서 된장국과 계란찜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미닫이 문에 종이를 다 붙인 길선웅이 총총거리며 냉장고에서 김치와 멸치, 어묵 볶음, 젓갈을 꺼내 반찬 그릇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참 이상하게도, 여기가 오랫동안 살던 집처럼 익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집이 생각날 법 한데도, 여기가 내 집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밥 먹자~"

 현사엽의 목소리에 정신 차리니 어느새 난 밥상 앞에 앉아있었다. 비엔나 소시지와 계란찜, 아까 길선웅이 꺼낸 반찬들, 된장찌개, 잡곡을 섞은 한가득 담긴 고봉밥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아까 국밥을 먹어서 간소하게 차렸어."

 라고 현사엽이 말했지만, 나를 위해서 나름 갖출 건 갖추려고 노력한 게 느껴졌다.

 "소세지 좋아한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며 현사엽이 소시지 그릇을 내 쪽으로 살짝 밀어줬다. 그러자 길선웅이 짐짓 화난 척 장난치며 말했다.

 "얌마! 내 입은 입 아니냐?"
 "넌 팔 뻗어서 먹어. 거기 눈앞에 계란찜 있네." 
 "참, 나. 애 입만 입이지~"

 그렇게 말하며 길선웅은 계란찜을 크게 한 숟갈 덜어갔다.

 "많이 먹어."

 길선웅이 그렇게 말하고는 아직 많이 남은 계란찜 그릇을 내게 밀어주며, 자신의 입에 밥을 한가득 밀어 넣었다. 

 "잘 먹겠습니다."

 난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을 느끼며 말하고는 소세지와 밥을 입에 넣었다.

 정겨운 저녁 식사가 끝나고 이윽고 밤이 됐다. 저녁 밥을 잘 먹고 새로 산 이불과 요에 누워 뜨뜻하게 데워진 바닥을 느끼며 난 생각했다.

 '이제 못 돌아갈 것 같아.'



 눈을 감기 무섭게 나는 나무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와 밥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난 눈을 비비며 미닫이 문을 열었다.

 "일어났어? 더 자도 되는데." 

 현사엽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직 어두운데……."

 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출근해야지. 선웅이는 지금 좀 늦었어."
 
 현사엽은 그렇게 말하고는 길선웅의 방으로 가서 벌컥 문을 열고 깨웠다. 그리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요리를 했다.

 "일어났으면 세수하고 씻을래? 우리랑 아침밥 같이 먹자. 나중에 먹으면 식은 밥 먹어야 되니까 일어났을 때 같이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길선웅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새집 머리를 하고 밥 상 앞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나왔네. 너 어서 씻고 나와. 오늘 일찍 오기로 한 손님 있다며?"

 현사엽이 길선웅을 깨우며 말했다. 길선웅은 주섬주섬 일어나서 씻으러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수저를 밥상에 놓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아침은 고기와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방금 뜯은 네모난 김, 반찬들이었다. 아침상도 참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마 어느 집이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까? 모를 일이다.

 "근데 무슨 일 하시길래 이렇게 일찍 나가세요?"

 아침 밥을 먹던 중에 내가 물었다.

 "난 공업사를 하고 있어. 우리 가게가 일찍 문 열기도 하고 집이랑 멀어서 항상 일찍 나가야 돼."
 "아……. 힘들겠네요."
 "그렇게 힘들진 않아. 오후에는 다른 직원이 와서 봐주거든. 우리 가게는 영업시간 자체가 길어서 그렇게 하고 있어. 교대할 사람을 쓰고 있기 때문에 쉬는 날도 있고 일하는 시간도 괜찮고. 그래서 집에 일찍 들어 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

 길선웅이 허겁지겁 먹으며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현사엽이 느긋하게 젓가락으로 김을 한 장 집으며 말했다.

 "난 밖에서 일 안 해."
 "네?"
 "난 지금은 동화 작가로 일하고 있어. 일종의 프리랜서 같은 거야."
 "재택 근무 같은 거네요?"
 "뭐, 그렇지. 예전에는 다른 일을 했었지만 말야. 이따금씩 카페에 가서 일 하기도 하지만, 난 보통은 집에서 일 해. 굳이 나갈 필요가 없기도 하고, 나가면 일단 돈이 드니까."

 그새 밥을 다 먹은 길선웅이 밥그릇에 물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사엽이는 원래 에어컨 설치랑 수리하는 기사야. 되게 오래 일했었어. 학생 때부터 했지 않나?"
 "맞아. 오래 일 했지."

 현사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지. 저 녀석, 허리랑 어깨가 안 좋아져서 말이야."

 길선웅이 식탁에서 일어나서 다 먹은 식기를 싱크대에 넣고, 출근 준비를 하며 말했다.
 아직 식사 중인 현사엽이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것도 그렇지만, 벌이가 계절에 따라 편차가 있어서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동화 쓰는 일도 그 중에 하나고. 물론 몸이 좀 아프니까 최근에는 몸 쓰는 일 보단 계속 동화 쓰는 일만 하고 있긴 하지."
 "나이가 드니까 삭신이 안 쑤시는 데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이 나이와 관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앉아있었다.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다고들 하지만, 학생으로서 관심을 갖고 보거나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은 아무래도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업을 살아가는 사람을 직접 마주 하고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난 조용히 입을 뗐다.

 "혹시 일 하시는 거 잠깐 견학 해볼 수 있어요?"
 "견학? 왜?"

 현사엽이 밥상을 치우며 물었다.
 난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궁금해서요. 어른들이 일 하는 건 보기 힘들다보니 보고 싶어요. 이런 직업이 있구나 싶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아. 그래, 그렇구나. 아무래도 그렇겠네. 나는 봐도 상관없어. 책 안에 들어갈 내용을 어디 가서 말만 하지 않는다면 말야. 오늘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어도 되고."

 현사엽이 흔쾌히 말했다.

 "나도 상관없어." 

 길선웅이 양치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입을 씻고 나와서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다가 갑자기 다시 나오며 말했다.

 "아참, 근데 오전에는 안 되고. 손님오면 많이 바쁠 것 같거든. 계약서 쓰게 되면 보안상 좀 그렇기도 할 것 같고. 나중에 점심 때 오는 게 어떨까? 같이 밥도 먹고 오후에 구경도 하고. 근데 찾아올 수 있으려나?"
 "내가 데려 가면 되지. 점심 때 갈게."

 현사엽이 설거지를 하며 말했다.

 "오케이. 알았어. 오기 전에 전화해."

 길선웅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며 들어갔다.

 "나 간다!"

 이내 길선웅은 후다닥 방에서 튀어 나와서 현관에 가서 신발을 신으며 소리쳤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띠띠띠띠

 그러더니 다시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길선웅은 그렇게 소리치며 다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서 폰을 들고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문이 닫혔다.

 "저 자식은 꼭 뭐 하나씩을 두고 나간단 말이야. 그나저나 옆집이 조용하네."

 현사엽은 그렇게 말하며 고무장갑을 벗어놨다. 그리고 냉장고에 반찬을 몇 개 꺼내서 들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나 사월이 좀 깨우고 올게."
 
 현사엽이 그렇게 말하며 옆집으로 건너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에 문 앞이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도어락이 열렸다. 그리고 현사엽이 동생인 현사월과 같이 들어왔다.

 "어? 너 여기 있었어?"

 현사월이 목이 잔뜩 잠겨서 꺼끌꺼끌 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와 배를 긁으며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난 밥 얻어 먹으러 왔어. 오빠, 나 소시지 해 줘."

 현사월이 그렇게 말하고는 화장실 문을 닫았고, 이내 샤워기 소리가 들렸다.

 "다이어트 한다더니 무슨 소시지 타령을 하고 있어?"

 현사엽은 투덜거리며 냉장고에서 비엔나 소시지를 꺼냈다. 

 잠시 후에 현사월까지 아침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러 가버렸다. 폭풍 같은 아침 시간이 지나가고 나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자, 이제 내 일을 해볼까?"

 현사엽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 문을 열었다.

 "아까 보고 싶다고 했지? 들어와."

 방에는 이부자리가 잘 정리된 접이식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과 베개, 옷걸이, 벽장이 보였다. 벽에는 학사모를 쓴 현사월과 같이 찍은 사진이 액자에 잘 넣어져 있었다. 아마 현사월의 졸업식 날 찍은 사진으로 보였다. 그리고 옷가지가 대충 걸려있는 의자와 컴퓨터가 있었다.  

 "의자가… 없네. 여기 그냥 앉으면 돼."

 그는 베개를 옆에 치우고 이불이 올려져 있는 매트리스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 하는 게 별 건 없어."

 현사엽이 컴퓨터를 켜며 말했다. 난 그가 컴퓨터 타이핑으로 동화를 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느새 깜박 잠들었다. 그러다 날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점심 먹으러 가야지." 

 난 부스스 일어나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차 타고 가자."

 주차장에 가니 그의 차가 있었다. 그의 차는 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1톤 트럭 탑차였다. 아무래도 에어컨 관련 일을 할 때 썼던 차인 듯했다. 현사엽은 길쭉한 몸을 구겨서 트럭에 밀어 넣고는 이내 시동을 걸었다.

「길한 공업사」  

 길선웅이 운영한다는 공업사에 도착했다.

 "어어, 왔어? 짜장면 시켜놨어."
 
 길선웅은 사다리를 위에서 우리를 보고 말했다. 그는 저 높은 선반 위에 있는 박스에서 특이하게 생긴 베어링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현사엽이 큰 키 덕분에 그의 시선을 편하게 마주치며 물었다.

 "바빠?"
 "아니."

 그는 베어링을 들고 사다리를 후다닥 내려왔다. 그는 갖고 내려온 베어링과 다른 부품들을 포장해서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미리 써둔 송장을 박스에 붙여서 다른 박스들이 쌓여 있는 곳 위로 올려놨다. 
 그리고 때 마침 음식 배달 기사가 왔다.

 "뭐야?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현사엽이 짜장면 외에도 다른 음식들을 시킨 것을 보며 말했다.

 "견학 왔는데 잘 먹어야지."
 
 길선웅은 그렇게 말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잘 먹어야 잘 크지. 건강하고."
 
 그가 평소에 식탁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 플라스틱 빈 박스를 꺼내며 말했다. 그는 그 위에 종이 박스를 넓게 깔아서 좀 더 음식 놓을 공간을 넓혀서 음식을 쫙 다 깔았다. 그는 랩을 까고 나무젓가락을 나눠서 비벼서 가시를 제거해서 건네주며 말했다. 

 "많이 먹어." 

 나는 의자 대용으로 쓰던 것 같은 다른 플라스틱 박스 위에 놓인 방석 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현사엽과 길선웅은 다른 의자가 없어서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난 대충 만들어서 쓰는 화려하지 않은 식탁에 등받이도 없는 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여긴 좋은 식당도 아니고 묘한 쇠 냄새가 풍기는 일터였다. 게다가 음식도 뭔가 엄청나게 비싼 음식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접 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일까? 모를 일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대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들은 내 부모가 아닌데도,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르르릉

 그때 공업사의 전화기가 울렸다.

 "네에~ 길한 공업사입니다."

 길선웅이 입에 있는 짜장면을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예? 지금요? 아닙니다. 예. 예에."

 어쩐지 전화를 받는 길선웅의 모습이 좀 긴장한 듯했다. 길선웅은 전화를 끊고 현사엽에게 말했다.

 "호미금님이란 다른 분이 지금 오신다는데? 아마 호미전님이랑 오는 것 같아."
 "지금?"
 "응. 지금."

 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누가 오시나요?"
 "간부님이 오신데."
 
 길선웅이 말하기 무섭게, 공업사 앞에 '저런 걸 타고 다닌다고!?' 싶은 여러가지 색으로 요란하게 칠한 차가 한 대 들어왔다. 그리고 차에서 화려하게 꾸민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검은 옷을 입은 보디가드들을 대동하고 내렸다.

 "안녕하세요~ 호호."
 "안녕하세요, 호미금님."

 현사엽과 길선웅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오는 여자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자 정신없이 요란해지고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기운이 팍팍 풍기는 이들이었다.

 "어? 이 친구는 얼마 전에 회의 때 온 친구인가?" 

 아마 이쪽은 호미전일 것 같은 남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네네. 얼마 전에 들렀었죠."

 현사엽과 길선웅이 공손하면서도 약간은 굽신거리며 말했다.

 "어머머~ 그렇구나~ 응? 어머! 맛있는 메뉴네~"

 여자가 간이 식탁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말했다.

 "맛있어 보이는 걸?"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을 본 순간, 난 깜짝 놀라 심장이 뛰었다. 그녀의 혀는 수십 갈래로 갈라져서 뱀처럼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마치 문어 다리 수십 개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저거 맛있지."
 
 호미전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도 수십 갈래로 갈라진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호미전이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우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릇에 손을 뻗었다. 그녀는 우리가 먹던 음식들을 여러 갈래의 긴 혀로 음식물들을 핥아먹듯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정말 순식간에 죄다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미금이 순식간에 다 먹은 그릇을 공중에 띄우자, 누가 만지지 않았는데도 공중에 둥둥 떠서 이동했다. 그리고 그릇은 옆에 있는 호미전에게 차례로 이동했다. 호미금은 차례로 그릇을 받으며 그런 그녀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바라봤다. 

 순식간에 음식이 다 사라진 빈 그릇들을,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더니,

 "맛있네~ 호호호~"

 그렇게 웃으며 호미금이 공업사를 나갔다.

 "맛있었어."

 호미전도 그 말만 덩그러니 남겨 놓고는 나갔다.
 현사엽과 길선웅은 호미금과 호미전의 눈치를 보며 굽신거리며 그들을 배웅했다. 마치 윗 상전을 대하는 것처럼.

 난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이 멍해졌다. 간부라는 이들이 쓸고 간 자리에는, 빈 그릇 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가서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뭐야, 대체?"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