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이곳도, 이들도 마냥 행복한 낙원은 아니라는 것.
"왜, 왜 저래요? 왜 음식을 죄다……."
나는 이 당황스러운 사태에 어버버 하며 말했다.
현사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간부들은 파급력도 크고 중요하니까 우선되는 거지. 우리도 챙길 건 챙겨야 되지만, 희생해야 되는 측면이 있어."
"네…? 그게 무슨……."
난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처음에 이들이 귀족 같니 어쩌니 하는 말이 기억났다. 난 이제야 그 말이 약간은 이해가 갔다. 무슨 계급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강탈 당한다고요?"
난 분개했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나.
그런데 이런 일에도 그들은 영 대수롭지 않은듯 한 분위기였다. 그리곤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곤 길선웅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난 길선웅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봤다. 어느새 내가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사과가 놓여 있었다. 난 어리둥절해하며 그 사과를 집어 들었다.
"우린 언제나 잘 돌아가고 있었고, 항상 그랬잖아. 우선순위는 처음부터 있었고, 그걸 묵인한 것도 이유가 있었지. 그리고 너도 알잖아. 아니야?"
난 사과를 바라보며 길선웅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난 멍하니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래서 순응하라는 걸까?
난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이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도, 음식을 강탈 당한 것도,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다.
"전 못 받아들이겠어요."
나는 어느새 메고 있는 가방에 사과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전 저렇게 못 놔두겠어요."
"하하. 어떻게? 수련이라도 하게? 힘들텐데."
길선웅이 내 다짐에 웃으며 물었다.
수련이라니. 난 왜 이런 맥락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든 할 수 있으면 해야죠. 전 저 꼴 못 보겠어요."
길선웅이 내 말에 뭔가 말 하려는 데 현사엽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 그리고 차키를 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갈래? 집에 가서 더 맛있는 거 해줄게."
난 일단 분노를 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떡할래?"
차에 타자 현사엽이 물었다.
"계속 있어도 괜찮겠어?"
"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현사엽의 말에 난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전혀요."
"그래? 난 바로 가고 싶다고 할 줄 알았어."
"오히려 반대예요."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빨리 가자는 의미로 안전벨트를 하며 말했다.
"이런 꼴을 봤는데 제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현사엽은 내 말에 안전벨트를 하다 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아니. 그냥."
그러고는 그는 내 머리를 한 번 쓱 쓰다듬고는,
딸깍
안전벨트를 맸다.
"가자."
부르르릉
그는 시동을 걸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집에 오자 그는 바로 밥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도울 거 있을까요?"
"밥상 펴고 닦아줄래?"
현사엽이 행주를 건네며 말했다. 접이식 개다리소반을 펴고 닦으며 슬며시 물었다.
"근데 아까 수련 말씀 하신 거 말인데요."
"응?"
"수련이요. 갑자기 왜 수련 얘기를 하셨을까요? 뭔가 방법이 있나요?"
내 말에 현사엽이 부대찌개를 준비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진짜 하게?"
"뭔가 아시나요?"
난 그의 반응에 확실히 뭔가 있구나 하고 눈치채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내 표정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부대찌개를 준비하는 척하며 말했다.
"아,아니? 그,글쎄?"
하지만 그의 더듬는 말투와 목소리, 허둥지둥하는 손짓을 보고 뭐가 있구나 하고 확신했다.
"뭔데요?"
"나, 난 몰라."
"수장도 그렇고 간부도 그렇고 이상한 초능력 같은 걸 쓰던데 그런 거예요?"
"그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아니. 이게 아니고. 난 진짜로 몰라."
그는 자꾸만 시치미를 떼었다.
난 현사엽이 자꾸 숨기니 더 궁금해졌다. 어쩐지 캐물어서 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난 슬슬 구슬리기 시작했다.
"아니, 뭐……. 제가 진짜로 뭐 하겠어요? 어차피 뭐가 될 것도 아닌데. 그냥 얘기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난 몰라."
현사엽은 대파 대신 국자 손잡이를 자를 뻔 하며 말했다.
난 아무래도 지금 당장 알아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말을 꺼냈던 길선웅이 오면, 그 쪽을 캐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부대찌개를 다 먹고 상도 치우고 나자 길선웅이 집에 왔다. 길선웅은 맛있는 냄새에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맛있는 냄새 나는데. 뭐 먹었어?"
"부대찌개. 네 것도 따로 만들 거 남겨놨어. 물만 넣고 끓이면 돼."
"부대찌개! 좋네."
"그럼 난 글 좀 더 쓸테니까 알아서 끓여 먹어."
"어어."
현사엽은 글을 쓴다며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길선웅은 콧노래를 부르며 씻으러 들어갔다. 씻고 나온 길선웅은 접어 놓은 상을 다시 꺼내서 차리기 시작했다.
"부대찌개 맛있더라고요."
난 상 차리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 길선웅은 기대된다고 말하며 재빠르게 끓이기 시작했다. 그가 상에 앉아서 한 숟 뜨자, 난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근데요, 아까 말씀하신 수련이 뭐에요?"
"어?"
"아까 수련이라도 할 거냐고 말했잖아요. 힘들 거라고 하고요. 뭔가 해보신 적이 있으니까 하신 말씀 아니에요?"
내 말에 길선웅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대로 숟가락을 들고 멈춰버렸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하며 바로 다시 움직였다.
"그건 그냥 나온 소리지~"
"방법은 있다는 말 아닌가요?"
"아니, 그건…"
"시도도 안 해 볼 이유는 없잖아요?"
"아니, 음……."
길선웅은 괜히 시선을 피하며 입을 막아버리듯 밥을 한가득 집어넣었다.
"방법 있는 거죠?"
"……."
그는 말 없이 부대찌개를 입어 집어넣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간부라는 놈들이 이상한 능력 쓰는 게 뭔가 있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뭔가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뭔가 해봤다던가?"
"아니, 그건……."
길선웅은 대답하기 곤란한 듯 말을 멈췄다. 그는 계속 내 눈을 피하다가, 입에 던져 넣듯 한 입 먹고는 내게 물었다.
"지금까지 잘 돌아가는데 굳이?"
"네?"
"저들은 타고난 거야. 그리고, 네가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내가 내 기준 세우고 산다면서요. 그리고 굳이라고 한다면, 저도 굳이 제가 그 기준 따라갈 이유가 있나요?"
"어이쿠. 내가 괜한 소리 했었구만."
길선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밥을 또 한 입 먹었다. 그리고는 달래듯이 말했다.
"네가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어."
"네?"
"언젠가는 선택해야 돼. 그리고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잖아. 굳이 네가 직접 하겠다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내 말에 그는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과 갖고 있어?"
"네?"
나는 갑자기 또 사과를 얘기하니, 어디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시도는 해볼래?"
길선웅이 식탁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지 식탁 위에 사과가 올려져 있었다.
"시도 해보는 게 뭐가 문제 되겠나요?"
나는 사과를 잡아들며 말했다.
길선웅이 사과를 들고 있는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문제일 수도 있지.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네가 직접 나선다는 거니까."
"글쎄요. 전 아닌 것 같은데요."
난 그렇게 말하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길선웅은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난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뗐다.
"다시 생각해 봐."
난 말 없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다시 생각해봐도, 방법이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난 지금껏 갖고만 있던 사과를 똑바로 바라봤다. 원래 내 것이라고 했었다.
와삭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