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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다행이다

SooyangLim 2022. 7. 28. 19:01

 눈물이 차올랐다. 시야가 흐려졌다. 난 조용히 한 마디를 말했다.

 "죽여버리겠어."
 "뭐?"

 지환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주현이 소리치는 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그리고 내 흐려진 시야는 어느새 다른 장소로 바뀌었다.



 나는 트램펄린에 뛰어든 것처럼 튕겨나왔다. 분명 본부 건물 안 수장 바로 앞으로 왔을 텐데, 내가 있는 곳은 본부 건물 문 앞이었다.

 "무슨 짓이냐!"
 
 본부의 문지기들이 나를 막아섰다. 전에 그 선글라스를 낀 문지기는 보이지 않았다.

 "너네 짓이지? 너네 짓이 아닐 리가 없어!"
 "……."

 문지기들은 나를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 침묵과 시선을 본 순간 확신했다. 내가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져버렸다.

 "당장 열어!"



 문지기들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리고 분명, 문을 향해서 능력을 썼는데 문은 멀쩡했다. 오히려 타격을 받은 건 나였다. 난 또 트램펄린에 뛰어든 것 처럼 몸이 튕겨져 나가서 나동그라졌다.

 "열어! 열라고! 이 살인자 새끼들아!"

 난 이번에는 직접 몸으로 뛰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는데! 뭐가 그렇게 아니꼬왔는데! 내가 그렇게 싫었냐? 니들이 가진 걸 다른 놈들이 가지는 게 그렇게 싫었냐? 어!? 왜 죽여! 왜 죽이냐고!"

 난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몇 번이고 돌진했다가 나동그라지기를 반복했다.

끼이익

 나의 타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문이 약간 열렸다.

 "그만 해!"

 날아갔던 문지기들 중에 몇몇이 어느새 다가와서 나를 붙잡고 끌어내려 했다.

 "너네도 똑같아, 이 미친 놈들아! 살인자 새끼들!"

 난 벌게진 눈으로 울분을 토하며 소리쳤다. 

 "으악!"
 "크악!"
 "윽!"

 난 날 잡고 있던 문지기들을 다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끼익

 그 때였다. 문이 안 쪽에서부터 열렸다.

 "오랜만이군."

 가면을 쓴 코트를 입은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호심래였다.
 난 막무가내로 그에게 공격을 했다.

 "좀 강해졌다고 이곳에 혼자 오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의 능력을 천천히 밀어내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감정이 앞설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성을 잃었다고 아예 다잡을 생각도 안 하는 건 안되지."

 그는 어느새 내 앞에 서있었다. 

 "너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가면 아래로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대치하고 서있는 나의 눈, 코, 입, 귀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육체가 버티지를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라."

 그가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쫙 뻗었다. 











 폭탄이 터지는 듯 귓가에서 소리가 나고,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나는 전처럼 다시 또 호심래의 능력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옆에는 현사엽과 길선웅이 예전처럼 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 할 것이다. 우리 중에 나만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피가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다른 물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투둑

 그 물은 점점 더 잦고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하늘은 흐렸다. 

투둑 투둑 투두두두둑

 이내 물방울들이 가득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야말로 억수같이 내렸다.

 다행이다. 이 빗소리가 내 울음소리를 가려줘서.
 다행이다. 모두들 각자의 슬픔에만 젖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자리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잠깐이라도 함께 했어서.





 문이 닫혔다.
 문 너머 길고 어지러운 색의 카페트 위. 그 긴 카페트 위를 비틀거리며 호심래가 천천히 걸어갔다.

 "…돌려보냈습니다."

 수장 앞에 선 호심래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둘 다 나가도록."

 수장이 자신의 옆에서 흰자위가 없는 검은 눈을 가진 문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문지기 옆에 서있던 하지만 호심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셨어야 합니까?"
 "나가라."

 하지만 수장의 대답은 영 다른 대답이었다. 문지기는 천천히 선글라스를 끼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호심래는 일부러 선글라스를 천천히 끼는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가 돼서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길고 어지러운 색의 카페트 위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적어도 호심래는, 그 긴 거리를 걷는 동안 다시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무언가 단 한 마디라도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문 앞까지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낀 문지기도 마지막까지도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손을 천천히 뻗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걸어 나가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문이 닫힐 때 까지도 그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호심래님."

 문 앞에는 문지기들이 모여서 다친 부위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다치긴 했지만, 큰 상처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들은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멀쩡하게 상처 치료를 하고 있었다.

 "많이 다쳤나?"

 호심래는 그렇지 않을 것을 알면서 물어봤다.

 "조만간 흉터도 안 남을 겁니다."

 문지기 중에 하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신과 같이 나온 문지기가 조용히 물었다.

 "가십니까?"
 "일단은."
 "돌아오십니까?"
 "그래야지."
 
 문지기가 호심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는데, 호심래가 갑자기 눈코입이 없이 다 막힌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그 안에 맺혀있던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호심래님, 괜찮으십니…"

 호심래는 뒤돌아 서서 자신의 가면을 그녀의 얼굴에 씌웠다.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손으로는 그녀의 귀를 막고 말했다.

 "이렇게 돌아올 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고 그녀의 귀를 막은 손을 뗐다. 그리고 호심래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가렸던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그럼 이만."

 호심래는 걸음을 뗐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호심래의 피가 묻어있었다.



 "누가 뿌리시겠습니까?"

 현사월이 현사엽을 보낸 후에 장례지도사가 건넨 작은 단지를 받아들었다. 유언에 따라 절연한 가족을 부르지 않은 탓에 길선웅의 가족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고운 뼛가루가 된 길선웅의 유골함 단지만이 그저 홀로 남았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길을 위해서 장례식 중에 미리 얘기한 대로 건물주가 앞으로 나섰다. 

 "잠시만. 미안하네만,"

 갑자기 건물주가 말을 꺼냈다. 

 "나보다는, 짧은 기간이지만 같이 살았던 이 아이가 보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아들처럼 아끼지 않았습니까. 다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의 말에 주현이 나를 보며 물었다.

 "…괜찮겠니?"
 "…네. 저는 다른 분들이 괜찮다면… 제가 보내드리고 싶어요."
 
 나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한다는 표시를 했다.

 "힘들면 말해도 된다. 언제든 우리가 도와줄게."

 지환이 한 손은 나의 어깨를 잡아주고, 다른 한 손은 내 등을 두드려 주고, 또 다른 손은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을 꽉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알았으랴? 
 쓸모 없다며 들쑤셔 놓는 용도로만 사용하던 땅이 쓸모가 생길 줄이야. 습지 옆의 조금 있는 양지바른 곳에 두 친구는 흩어지듯 뿌려졌다.

 지나간 기억들처럼, 추억은 날아가는 연기처럼, 짧지만 길고 길지만 짧은 그들의 인생처럼,

 날아갔다.



얼마 뒤-



 난 묵직한 가방을 내려놨다.

 "…어떡하라고?"

 지환은 자신의 눈 앞에 내려진 묵직한 가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난 조용히 말했다.

 "뭐 할 지 아시잖아요."
 "그럼 내 대답은 알겠지?"

 지환이 가방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난 그 말에

 "그럼 제 대답도 아시겠네요."

 라고 했다.
 그렇게 말 하기 무섭게,

철컥

 나와 같이 온 이가 겨눈 총구가 지환의 머리에 조준됐다. 전직 보디가드답게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그 총을 잡은 손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저한테도 좋은 형님이었거든요.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카페 사장이 말했다. 그의 목 부근에는 얼마 전에 입은 상처가 흉터가 되어 있었다. 

 "제 아내의 오빠라서가 아니라."

 지환은 내 뒤에 서 있는 카페 사장과 현사월을 보며 말했다.

 "제정신이야? 애한테 복수를 시켜?"
 "복수라니요."

 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웃음기를 싹 거둬버렸다.

 "그런 시시한 짓은 그 날 이미 했었는데요."

 지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뭘 하고 싶은 거야?"
 "글쎄요. 말하자면 좀 복잡한데요."

 난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난 어느새 매고 있는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는 여전히 예전에 한 입 베어 문 채 그대로인 사과가 들어있었다.

와삭

 나는 사과를 두번째로 베어 먹었다. 난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재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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