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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이상한 어긋남

SooyangLim 2022. 7. 7. 19:03

 "앞으로 가세요."

 문을 열어준 여자가 말했다.
 우린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어느 세월에 올 생각인가. 곧 회의 시작인데."

 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으앗!"

 그녀가 손을 까딱하자 누가 끌어당긴 것 처럼 몸이 저절로 앞으로 끌려갔다. 우린 순식간에 맨 앞까지 왔다.

 

 뭐지? 초능력? 마법 같은 거라도 부린 건가?

 "안녕하십니까. 오늘 회의인줄은 몰랐네요. 하하." 

 길선웅이 그녀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현사엽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가 현사엽과 길선웅의 인사에 고개를 살짝 끄덕여서 인사를 받았다.

 "꽤 늦은 시간이지 않은가. 푹 자야 될 시간인데."

 꽤나 중성적인 목소리의 그녀가 살짝은 나무라는 듯 말했다. 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본 순간 넋이 나갔다. 뭔가 알 수 없는 익숙함과 친근감, 거부감, 동시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난 여러 감정들과 생각이 휘몰아쳤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난 이 여자에게 반했고,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어쩌다보니 늦어졌습니다, 하하. 그래도 뒤에 보니, 다들 깨어 계시잖아요?"

 길선웅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그제서야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의자 뒤로 주발이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이들이 앉아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런데 난 문득,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신체적 특이점이 없는, 그래서 가장 이질적인 수장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 대체 어디가 다른 거지?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할 수가 없었다.
 수장은 길선웅의 말에 전혀 웃지 않고 대답했다.

 "그 어느 때보다 깨어있어야지."
 
 수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사과는 받았나?"
 "네?"
 "사과."   
 "……?"

 내가 당황해 있는데 현사엽이 작게 말했다.

 "가방에."

 가방?
 나는 가방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내 어깨에 크로스백이 하나 있었다. 난 얼떨떨하게 가방을 열었다. 과연, 그 안에는 눈을 가린 남자에게서 받은 사과가 들어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그 사과를 꺼내서 수장에게 건네려고 하는데,

 "아니."

 수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 네 것이다."
 
 라고 수장이 말하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네 차례니까. 갖고 있도록."

 나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한 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자외선 차단하는 넓은 캡 모자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린 다른 간부가 카드를 하나 들고 오며 말했다.

 "이건 지원 카드입니다.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금이랑은 다른 겁니다. 일종의 직원 복지 같은 것을 위한 거죠. 가맹점에서 쇼핑할 때 쓸 수 있어요."

 난 순간, 혹시 검은 돈 같은 것과 연결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더 궁금하신 내용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들어가시면 찾으실 수 있습니다. 가맹점 목록과 사용 내역, 기부금 내역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어요."

 라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타성에 잔뜩 절여진 말이 들려왔다. 난 그래서 그냥 어딜 가나 있는 그런 덴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좀 많이 수상해 보이고 으리으리하게 보이긴 하지만.

 수장은 현사엽과 길선웅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자게 해야 되지 않겠는가. 몇 시지?"

 길선웅이 품에서 시계를 꺼내더니 말했다.

 "3시 56분입니다."
 "그래. 너무 늦었어. 돌아가도록. 우린 회의를 시작해야겠다."
 "네. 그럼 저희는 가겠습니다."

 현사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우린 천천히 간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걸어 나왔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문이 닫혔다.
   
 "푸하~"

 난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긴장 많이 했었구나?"

 현사엽이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 말에 길선웅이 짐짓 핀잔을 주듯 말했다.

 "얌마, 어떻게 긴장을 안 하겠어?"
 "그건 그렇다."
 "빨리 가자. 애 어서 재워야지."
 
 난 숨을 좀 고르고 나서 조용하게 물었다.

 "근데… 수장은 어디가 그… 특이한… 그런 거예요?"
 "응? 무슨 말이야?"

 현사엽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고 물었다. 난 최대한 말을 조심하려고 애쓰며 물었다.

 "뭔가 신체가 특이하다거나 하는 그런…?"
 "아."

 현사엽은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길선웅이 했다.

 "수장은 가장 중요한 게 그렇지."
 "가장 중요…한… 거요?"
 
 난 그 말에 아리송해졌다. 현사엽이 이제 집에 가자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수장은 처음부터 있던 존재야.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지."
 "네?"
 "젊어보이지만 사실은 세월을 다 맞았다는 거지, 하하하. 하지만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고.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언제나 젊을걸? 하지만 늙었다고 생각해도 젊겠지. 하하하!"

 길선웅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그 말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더 캐묻기가 어려워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 그럼 집에 갈까?"



 그 이후로 난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어느새 내 방 침대였다. 난 자기 전에 겪었던 신비한 경험들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뜨고 멍하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하지만, 거실로 나와 신발장에 가니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들에게 받은 신발이 현관에 고이 놓여 있었다.

띠링

 나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휴대폰을 들여다 봤다. 언제 저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들의 번호와 이름이 내 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신발 더 맞추러 가자! 일어나면 바로 나와! 놀이터에 있을게!」

 길선웅의 문자였다. 
 난 그의 문자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 신나서 받은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어디 가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저……."

 난 괜히 우물쭈물 했다. 그런데, 왠지 이 순간에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동시에, 그러면 왠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적당히 진실만 말했다.

 "새 신발 맞추러 가려구요."
 "수술은 안 하면서 신발은 맞추러 간다고?"

 어쩐지 날이 잔뜩 서있는 엄마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엄마는 원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엄마가 왜 이러는 거지?
 나는 불쑥 물었다.

 "엄마. 왜 수술을 하길 원해?"
 "그게 보편적으로 맞는 거니까."
 "…뭐?"

 난 그 이상한 대답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래야 내 잘못이 없는 거니까!"

 갑자기 엄마가 울부짖듯이 소리를 질렀다.

 "수술 했으면 완벽하잖아!" 

 엄마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말들도 사실은 이해가 가는데, 동시에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이해를 못 했다. 이 상황도, 엄마도 전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왜 이래, 엄마……."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지? 미친걸까?

 이상하다.
 모든 게 이상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수술만 하면…! 수술만 하면 모든 게, 모든 게 다 남들과 똑같았는데…!!"

 뭐지? 도대체?
 마치 악을 쓰는 듯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너무 무서워졌다.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난 어지러워졌다. 시야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강한 두통도 느꼈다. 무언가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난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난 이제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갑자기 무거워 지는 어깨에 매인 크로스백이 느껴졌다. 아마 가방 안에는 사과가 들어있을 것이다.

 난 뒷걸음질을 치다가, 급히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헉헉……."

 난 뛰다가 숨이 차서 멈췄다. 어느새 나는 놀이터에 와있었다.

 "뛰어왔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현사엽과 길선웅이 보였다. 난 왠지 그들이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난 그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왜, 왜……."

 현사엽이 놀라서 나를 안아줬다.

 "무슨 일이야? 왜 울고 그래."

 길선웅이 날 토닥이면서 말했다. 나를 토닥여주는 그들의 손과 그들의 품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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