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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가기 전에 국밥 한 그릇

SooyangLim 2022. 6. 30. 19:01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엄마가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쩐지 약간 화난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때 오늘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들어왔다.
 
 "잘 잤니? 컨디션은 좀 어떠니?"
 "괜찮…"
 "저기……."

 의사의 물음에 엄마는 대답하다가 내가 말을 꺼내자 말을 멈춰버렸다. 엄마는 순간 나와 의사의 눈치를 보고, 나는 의사와 엄마의 눈치를 봤다.
 그런 우리의 침묵 속에서 오가는 눈빛을 본 의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엄마는 의사를 봤다가 다시 내 눈치를 살폈다.
 
 그 사이 다른 의사가 한 명 더 들어왔다. 추가적으로 더 싸인 해야 되는 서류가 있는지 서류를 몇 장 더 들고 왔다.

 "잠깐만."

 내 수술을 주관할 의사가 방금 들어온 의사가 서류를 내미는 것을 손을 내밀어 살짝 제지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반응에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괜찮아요."

 의사는 이번에는 날 봤다.

 "혹시 무슨 문제 있니? 수술 전에 내게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뭐든 해도 좋단다. 컨디션이든 뭐든……."

 의사가 이번에는 날 보며 다정하게 물어보았다. 의사는 아무래도 의학적으로 최대한 고려할 것이 많아서인지 내 말을 들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저기……. 그게……."
 "아유, 아니에요. 얘가 갑자기 변덕이 있어서……."

 엄마가 내 말을 막았다.
 하지만 의사는 엄마의 말에는 고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살짝 돌렸다가 다시 날 바라봤다. 내 말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난 용기 내서 말했다.

 "수술…안하면 안 될까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게… 그냥 안 하고 싶어요. 컨디션도 지금 좀 안 좋고…….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의사는 잠시 말없이 날 바라봤다.

 그런데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서류를 가져온 의사가 내 수술 담당 의사에게 뭔가 의학적인 용어 범벅인 말을 했다. 어려워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논조는 아직 시간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는 편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너의 뜻은 그렇구나."

 의사는 이제 내게서 시선을 떼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멍한 눈빛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괜히 기가 죽어서 시선을 내리깔고 이불만 바라봤다.

 "우리가 이전에도 말했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란다."

 정신없이 지나가서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 검사와 상담을 하던 중에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어머님,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아니, 그냥 애가 변덕이 있어서… 그냥 수술하면 되는데……."
 
 의사는 엄마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병실 밖으로 나가는 중에 어쩐지 엄마는 자꾸만 수술을 하면 되는데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게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어쩐지 그 눈초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 때문인가?
 내가 입원을 하거나 검사를 받으면서 돈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그 정도까지의 원망의 눈빛을 받아야 할 잘못인가? 
 그리고 그게 굳이 그렇게까지 수술을 강행시켜야 할 이유인가? 내가 알기론 이 수술이 정말 비싸다고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까 서류를 들고 있던 의사가 혼자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병실 밖에 안 들리길 바라는지 조용히 문을 닫고는 내 옆에 와서 앉아서는 말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단다."
 "……."
 "우리 쪽에서도 이 수술은 계속 말이 나왔었거든."
 "…제가 잘못한 걸까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난 여전히 이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못? 무슨 잘못?"
 "그냥… 갑자기 수술 안 한다고 한 거나…엄마한테도 그렇고… 돈도……."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 그렇구나. 어쩐지 안심이 되는구나. 네 생각을 말해줘서 고마워. 사실 저 우리는 네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서 걱정했단다. 넌 잘못한 것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도 없어."
 "……."
 "넌 그냥 선택한 것뿐이란다."

 선택이라는 단어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그 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고 엄마와 내 수술 담당이었던 의사가 들어왔다.

 "집에 가자."

 엄마가 말했다.
 어쩐지 여전히 내게 원망을 담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 좀 더 지켜보자꾸나."
 
 이제는 내 수술 담당이었던 의사가 그 말을 남기고 나갔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던 의사가 일어섰다.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남기고 서류를 챙겨 앞서 나간 의사를 따라나섰다.

 "아!"

 나는 서류를 챙겨 나가는 의사가 마지막에 남긴 말과, 그의 왼손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에겐 손가락이 하나 더 있었다.



 택시 타고 집에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화난 것 같았다.
 화난 게 맞으면 엄마는 뭐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마치 어딘가로 도망치듯 황급히 짐을 내려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엄마의 그런 반응에 놀라서 신발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서 있었다. 뭘 어찌해야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익숙한 집.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집안 공기가 고요해서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엄마한테 가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배가 고파서 일단 뭐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작년에 새로 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냉동식품이 몇 개 있었지만, 어쩐지 조리를 해 먹기에는 귀찮았다. 난 그냥 찬장 안에 있는 과자를 하나 꺼내 들고 거실로 갔다. 
 거실 TV위쪽 벽에는 꽤 예전에 찍은 우리 가족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나는 그 가족사진을 보고 있자니 엄마한테 가봐야 될 것 같았다.
 나는 소파 위에 과자를 내려다두고 조심스럽게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갔다.

 "…엄마?" 

 엄마는 침대 위에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그냥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엄마는 날 바라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방에 걸린 아빠와 엄마의 결혼사진이 걸린 액자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냥 모든 게 다 미안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엄마. 미안해."

 난 사과했다.
 내 사과에 엄마는 나를 한 번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난 그 느낌이 너무 싸늘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 그쳤다.

 "수술 했었어야 했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너무 차갑게 들렸다.
 나는 의미도 모른 채 그냥 또 사과했다.

 "죄송해요." 
 "…가서 쉬어."

 엄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밤에 잠을 못 자서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곯아 떨어져버렸다.



 잠시 눈 깜박이는 것 같았는데, 해가 이미 져서 어두워져 있었다. 고요한 것을 보니 새벽인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을 보려고 휴대폰을 봤다. 그런데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해진 후 집 뒤쪽 놀이터」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몇 시인지 보지도 않고 나가려고 방 밖으로 나왔다. 집안은 조용했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가려고 신발장으로 갔다. 그런데 전에 신던 신발들이 하나도 없었다. 신발장에는 부모님이 내 발이 작아지면 선물로 주려고 준비해둔 작은 사이즈의 운동화가 있었다.

 그걸 보자 난 기분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내 기분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난 대충 그나마 발을 욱여넣을 수 있는 슬리퍼를 신고, 급히 집 뒤쪽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 가로등 불빛 아래의 벤치에 사람이 두 명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자 순간 멈칫했지만, 적어도 내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맞구나 하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루엣은 밤에 보면 귀신이라도 봤나 하고 흠칫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한 명은 너무 키가 커서 앉아있음에도 보통 사람이 서 있는 키만큼 컸고, 다른 한 명은 웬만한 어린아이만큼 키가 작았다.

 내가 그들을 보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들은 대화하다가 인기척에 날 보더니 밝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키가 작은 사람이 벤치 위에 서 있다가 폴짝 뛰어내리더니 마중 나오듯 총총총 내게 걸어왔다. 분명 얼굴은 어른인데 몸은 어린아이만큼 작았다.

 "밥은 먹었고?"
 "네? 아직……."
 "야! 얘 아직 밥도 안 먹었데!"

 그가 아직 링거를 뺐던 자리에 붙여진 반창고가 붙여진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키 큰 동료를 불렀다. 키 큰 동료는 걱정과 놀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뭐? 밥을 아직 안 먹었어? 그러면 안 되는데! 밥부터 먹으러 가자."
 "근데 우리 빨리 가야 되지 않나?"
 "야, 애 밥부터 먹는 게 중요하지! 그깟 소개가 중요해? 굶으면 안 돼!"
 
 키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가 일어서자 거의 무슨 팔 척 귀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었다. 키가 크다는 농구선수를 만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내가 놀라서 흠칫 뒷걸음질 치자, 그도 내게 다가오는 걸 멈췄다.
 그 모습을 본 키 작은 남자가 그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야! 깜박이 키고 들어와라! 애가 놀라잖아!"
 "악! 아파!"

 그 큰 키가, 그의 발길질 한 번에 휙 고꾸라졌다.

 "내 키가 좀 크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놀래."
 "한 번 씩 다리 때리거나 발 밟으면 바로 키 작아져."
 "왜 애한테 폭력을 가르쳐?"

 둘은 무슨 만담 듀오 마냥 주고받으면서 킬킬거렸다.
 그러더니 키 큰 남자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백을 쑥 내밀며 말했다.

 “슬리퍼 발 아프지 않아? 혹시나 해서 챙겨 왔어.”
 
 나는 큼지막한 종이백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사이즈의 큰 신발이 하나 들어있었다.

 "친구 중에 손재주가 많은 놈이 있어서 만들어줬어."
 "얌마, 말은 똑바로 해라. 손재주가 많은 게 아니라 손이 많은 거지!"
 
 그 말에 두 사람은 또 빵 터져서는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 신발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신발로 갈아 신었다. 마치 맞춘 것처럼 꼭 맞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마음이 약간 뭉클해졌다.

 그들은 계속 웃다가 나는 안 웃고 그들만 웃고 있다는 걸 깨닫자, 키 큰 남자는 웃음을 멈추고 자중하며 말했다.  

 "흠흠. 어쨌든 그 친구도 소개해 줄게. 나중에 발이 더 커지면 그 친구한테 부탁하면 신발 만들어 줄 거야. 물론 돈은 줘야 되지만, 넌 어려서 아마 그냥 만들어 줄지도 몰라."
 "얌마, 돈 벌 때까지는 우리가 사주면 되지!"
 "너 천재냐?"
 "지~니어스!"

 두 사람은 또 자기들끼리 빵 터져서 깔깔 웃었다.
 그러다 키 작은 남자가 먼저 정신 차리고는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야야,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그래그래. 우리가 굶길 뻔 했네. 가자!"

 두 사람은 맛있는 데를 안다며 가는 동안 계속 만담을 하며 나를 이끌고 걸어갔다. 
 처음에는 몇 번 가본 길인가 싶더니, 알 수 없는 골목길로 한 번 들어선 이후부터는 골목 사이를 마치 미로처럼 걸어 들어갔다. 주택가 같은 곳이었는데, 집들이 죄다 비슷비슷해서 나중에 집에 돌아가려 해도 길을 못 찾아서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서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한 국밥집 앞에 도착했다.
 키 작은 남자가 그 말을 하며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며 주문을 했다.

 "국밥 하나!"
 
 문간에 펄펄 끓는 거대한 가마솥과 주방이 보였고 더 안쪽에 손님이 앉는 자리가 위치한 듯 했다. 식당 안 밖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주방에는 음식을 하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다. 주문을 받자마자 한쪽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가 빠르게 가마솥의 국을 뚝배기에 옮겨 담고, 간단한 반찬 몇 가지를 찬그릇에 옮겨 담아 쟁반에 담아 안쪽 자리에 올려놨다.

 할아버지는 키 큰 남자와 키 작은 남자가 익숙한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단지 왜 한 그릇만 시켰는지 물었다. 

 "왜 하나만 시켰어? 먹고 왔어?"
 "아 할배! 아까 우리 먹고 나왔잖아! 애가 아직 밥을 안 먹어서 먹이러 왔어."
 "아아. 맞다. 아까 먹고 갔었지."

 그러면서 어느새 익숙하게 키 작은 남자가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고 있었다. 키 큰 남자는 앉는 자리 옆에 위치한 커다란 전기밥솥을 열어 옆에 쌓여있는 빈 밥그릇에 밥을 한가득 퍼 담기 시작했다.

 "더 줄까?"
 "아, 아뇨. 많아요."
 
 나는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숟갈 입에 넣는 순간 그런 워낙 시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맛있어서 그런지 무슨 걸신이 들린 것처럼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

 "잘 먹네. 잘 먹어서 좋다. 많이 먹어야 돼. 그래야 쑥쑥 크지. 성장기 때는 잘 먹어야 돼."

 키 큰 남자가 내가 국밥을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키 작은 남자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가 덜 먹어서 덜 컸었나?"
 "그래서 지금 많이 먹냐?"
 "얌마!"

 둘은 또 만담을 하며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웃었다.

 그 때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 주인 노부부가 반갑게 맞아주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가게 주인 내외의 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별 신경 안 쓰고 국밥을 먹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 내외의 아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밥을 먹고 있는 내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저씨들이랑 같이 왔네. 거긴 갔다 왔어?"
 "어!?"

 그 국밥집 아들은 왼손에 여섯 손가락을 가진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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