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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Quite! 1부 15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1부 15화

SooyangLim 2022. 5. 16. 19:01

 주현의 11차 항암치료일.

 "어, 미경 누나!"

 주현은 오늘도 옆 자리가 된 미경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야~ 모자 쓰고 왔네?"

 미경이 자신이 선물한 모자를 쓰고 온 주현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누나, 이번이 마지막 항암치료라고 들었어요."
 "응. 난 이번이 마지막이야."
 "축하해요."
 "고마워. 너도 곧 나을 거야."
 "하하……."

 주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어쩌면 이번 약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미경이 주현의 말에 답변하려는데, 병실로 주현의 부모님과 의료진이 한 무리 들어왔다.

 "주현 학생. 동의서 작성합시다." 

 그들은 여러 장의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의료진이 들어왔는지, 병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 잠깐 나가있을게요."

 미경은 자리를 비켜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주현은 매우 아플 거라는 말과 여러 가지 확률들, 그리고 긴 설명을 들었다. 이 약은 실험약이라는 것. 대부분의 케이스의 경우엔 효과가 크다는 것. 하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특히 성장기에 암이 발생한 경우는 더 확률이 낮다는 것. 
 주현은 설명을 다 듣고 정신 없이 여러 장의 서류에 싸인을 했다. 

 그렇게 할 일을 다 끝내자 썰물 때 처럼 의료진들이 다 빠져나갔다.

 "아참. 누나 마지막 항암 치료 축하 한다고 선물 가져왔는데."

 주현이 가방을 열어서 잘 포장된 선물을 꺼내며 말했다. 주현의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미경 누나 들어오면 주면 되겠네."
 "음… 지금 줄래요. 까먹을 것 같아요."

 주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경을 찾아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갔지?"

 주현은 같은 층에 없자, 다른 층으로도 가봤다. 하지만 여전히 미경은 보이지 않았다. 

 "산책하러 갔나…?"

 주현은 1층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원 뒤 쪽 산책로 쪽으로 갔다. 벤치가 있는 곳을 돌아다녀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주현은 미경을 못 찾고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제법 으슥 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데,

 "어? 찾았다."

 주현은 모퉁이 너머로 미경이 나무 밑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보였다.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평소에 보호자라며 오는 안경을 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어…?"

 주현은 그 쪽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급히 자신이 안 보이게 벽 뒤쪽에 숨었다.

 '…뭐야?'

 주현은 심장이 쾅쾅거리며 뛰는 게 느껴졌다.

 '뭐야…? 뭐지?'

 주현은 방금 본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주현은 파르르 떨며 조심스럽게 다시 미경 쪽을 봤다. 그들은 아까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현은 급히 다시 숨었다.

 '뭐야…? 아니, 대체 뭐… 뭐, 뭐하는…? 아니. 것보다 무슨, 무슨 관계야?'

 선물을 꽉 쥔 손이 떨렸다. 주현은 약간 비틀거리듯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재빨리 병실로 달려갔다.

 "왔니? …왜 그래?"

 주현의 엄마는 뭔가 이상한 상태가 되어 돌아온 주현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아뇨. 누나 못 찾아서……."
 "그래? 어디 갔을까?"
 "엄마. 나 잠깐 좀 잘래요."
 "그래? 잠 와? 잘래?"
 "응. 아까 그 ,막, 뭐지, 그…설명. 그래. 설명. 설명 듣고 나니까 머리 아파요. 너무 복잡하고……."
 "그래그래. 아까 좀 복잡했지. 어서 자."

 주현은 여전히 선물을 꽉 쥔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이불을 한 껏 끌어올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주현은 엄마가 자신의 표정을 못 보게 돌아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주현은 누워서 고민했다. 일단 지금 자신의 기분이 굉장히 안 좋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의 정체를 몰라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왜?'

 주현은 지금 자신이 질투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내가 누나를 좋아해서? 그래서 질투하는 건가? 누나한테 애인이 있어서? …그럼 그냥 내가 마음을 접으면 되는 거 아닌가?'

 주현은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았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기분이 더러운데. 뺏겼다고 생각해서? 화나는 건가? …아니, 근데 사귄 적도 없잖아?'

 그리고 잠시 후, 미경이 병실에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미경은 주현의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자요?"
 "네네. 아까 되게 설명 듣고 그런 게 복잡해서 피곤했나 봐요."
 "아아, 그렇구나."

 미경이 주현이 깰까봐 조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현은 여전히 심장이 쾅쾅 뛰는 것을 느끼며 대화를 들었다. 주현은 당장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단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그 때 그 보호자 남자가 들어와서 좀 있다가 미경에게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다. 미경은 나중에 보자며 그를 보냈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주현은 어느 포인트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지를 알 것 같았다.
 
 '누나 같은 사람이 저 나이 많은 남자랑 만난다는 사실 자체로 기분이 나빠. 왜? 대체 왜 만나는 거지? 저런 남자랑? 40살은 되어 보이는데?'

 주현은 갑자기 저 남자가 미경을 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돈이 많아서 미경의 병원비를 대주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호자로 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나이가 많은 건, 부모님을 잃은 미경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들어서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주현은 어쩐지, 자신이 그녀를 지켜봐주고 지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를 미경의 곁에서 떼내고 싶어졌다. 주현은 그런 자신만의 의무감을 느끼며 선물을 꽉 움켜쥐었다.



 몇 시간 뒤,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주현은 엄마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에 옆 자리의 미경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응?"
 "좀 있다가 잠깐 밖에 걸을래요?"
 "산책?"
 "네."
 "그래."

 미경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엄마가 돌아오자, 선물 전달 겸 잠시 산책하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누나. 이거 선물."
 "응? 웬 선물?"
 "누나 마지막 항암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모자 준 것도 고마웠고……."
 "아유~ 안 줘도 되는데~ 고마워!"

 미경은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아들었다.

 "뜯어봐도 될까?"
 "네."

 주현이 준비한 선물은 팔찌에 가까운 손목시계였다.
 선물을 확인한 미경은 깜짝 놀랐다.

 "…시계!? 너무 비싼 거 주는 거 아냐?"
 "앞으로 우리 시간이 안 멈췄으면 해서요."
 "와~ 정말 의미 있는 선물인데? 감동이다……. 근데 나는 모자 해줬는데,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네……."

 미경은 진심으로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
 주현은 놀이공원 갈 때 그거 끼고 같이 가자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아까 봤던 장면이 또 머릿속을 밀고 들어왔다. 

 "…누나."
 "응?"
 "그동안 진짜 고마웠어요."
 "하하. 내가 뭘…"
 "진짜로요. 그리고요, 누나는 좀 많이 대단한 것 같아요. 누나는 아는 것도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에이. 아냐,아냐."
 
 미경이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현은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누나."
 "응?"
 "누나 진짜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어… 응……. 그래…? 고맙다…?"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미경은 설마 하며 표정이 굳었다. 

 "누나 진짜 괜찮은 사람이니까……."
 "……."
 "그 남자 만나지 마요."
 "휴……. 근데 뭐? 그 남자?"

 미경이 설마 하는 말이 안 나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까… 그냥 걷다가… 우연히 봤어요."
 "우연히 봤다고? 뭘?"

 주현은 차마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우연히'라는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하지만 미경은 이미 주현이 거짓말을 하면 시선을 못 마주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미경은 가만히 눈을 깜박거리며 주현을 보다가, 한참 만에야 뭔 소리인지 이해하고 이마를 탁 쳤다. 미경은 탄식을 했다.

 "하. 이런. …너 우연히 본 거 아니지? 거기 평소에 가지도 않더니……."
 "…사실은 선물 주려고 누나 찾아다니다가 보게 됐어요."

 주현은 솔찍하게 실토했다. 그리고는 약간은 애원하듯 말했다.

 "누나, 누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런 나이 많은 남자 만나지 마요."

 주현의 말을 듣는 동안 미경은 골치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짚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누나. 누나는 차도 있는 거 보니까 돈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성격도 좋잖아요? 대체 왜 그런 남자를 만나요? 그 사람이 나이가 많다고 해도 부모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면 병원비가 부족해요? 그래서 그 남자 만나는 거예요?"

 미경은 밑도 끝도 없는 주현의 추측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하지만, 미경은 주현 입장에서는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미경은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네가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걔 나이 그렇게 안 많아. 내가 더… 아, 아니다.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요? 제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진짜 괜찮다니까. 그렇게 나이 안 많아. 아니, 근데, 네가 왜 그렇게 신경을 써?"

 미경이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내가 누나 좋아하니까."
 "…뭐?"
 "누나. 제발요. 내가 더 사랑해 줄 수 있어요. 아니, 내가 아니라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그 남자는 아니에요. 제발……."

 미경은 주현의 또 하나의 폭탄 발언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숨을 푹 쉬고는 중얼거렸다.

 "…말년에 이 무슨 일이야……."

 미경은 달래듯 주현에게 말했다.

 "…저기, 주현아. 난 성인이야. 그리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아냐. 그 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미경의 말에 주현은 더 표정이 안좋아졌다. 주현은 미경이 그의 편을 든다고 생각했다.

 "그럼 아까 본 건 뭔데요? 분명 뽀…뽀…를…"

 주현이 더듬거리며 겨우 내뱉은 말에, 미경은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주현은 그런 미경의 모습에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웃지마요! 이게 웃을 일은 아니잖아요!?"
 "아, 알았어. 미안. 미안해.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

 미경의 말에 주현은 그대로 뭔가 버튼이 눌려버렸다.



 주현이 미경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

 미경은 놀라서 그런 주현을 확 밀어냈다.
 미경의 표정과 반응에 주현은 얼굴이 벌게졌다. 주현의 눈에 눈물이 가득히 맺히기 시작했다.

 미경은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주현을 보자, '아차!' 하는 표정이 되더니 바로 주현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주현이 상처받은 채로 더 말을 듣기 전에 도망갈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주현은 가빠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말했다.

 "…난 그렇게 아니에요? 나는 누나한테 그냥… 어린애인 거예요?"

 주현은 휘몰아치는 감정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미경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아니,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지!? 어… 아니, 그러니까 나는 성인이고…"

 미경의 말에 주현은 욱 해서 약간은 대들듯이 언성을 높였다.

 "누나가 성인이면, 성인이면 뭐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남자랑 누나 나이 차이보다 나랑 누나 나이 차이가 더 적을 걸요? 그 사람 성인일 때 누나 아기였을지도 모른다고요!"
 "하,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 해야…"
 "난 왜 안 되는데요…?"
 
 주현의 말에 미경은 한결 더 복잡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이건 아니야. 주현아? 있잖아…"
 "난 아니라도 돼요. 근데, 제발 그 남자 하고는 만나지 마. 제발……. 이건 아니잖아, 누나. 응?"

 주현은 애타게 말하며 자신을 붙잡은 미경의 손을 떼내려 했다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결국은 떼내며 말했다. 그리고 주현은 말했다.

 "그렇지만 이해는 돼요. 나는… 나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미경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병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주현아 잠깐만!"

 미경은 다급하게 주현을 따라오며 계속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주현아. 진짜 엄청난 오해가 있는데, 나 사실 나이가 엄청 많아.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지금 어쩌다 보니 엄청 젊어져서 동안으로 보이다 보니, 오해가…"
 "…그만해요."

 주현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누나, 난 누나를 이해해요.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거절 안 해도 돼요. 그냥… 난 그냥, 누나가 너무 아까운 거라고요. 조, 좋아하니까……." 
 
 주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끄러워서 다시 병실로 빠르게 걸어갔다.

 "아니 진짜야!"
 
 미경은 무슨 약물을 썼는지 빠지지 않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을 것처럼 움켜쥐며 소리쳤다.

 "와,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미경이 절규했다. 그 때 미경의 주치의가 병실로 가다가 주현과 미경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둘이 거기서 뭐해요?"
 "안녕하세요."

 주현은 눈물이 맺힌 눈을 급히 닦아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이봐요, 김미경씨. 병원에서 조용히 해야 되는 거 모릅니까? 병원에서 당장 쫓아내기 전에 입 다물어요."

 그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주현과 미경 쪽으로 다가왔다. 

 "…뭐해요? 애를 왜 울리고 있어요?"

 의사가 주현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말에 주현은 더 울컥했다.
 그 와중에 미경은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애를 울리려고 의도한 건 아니고…!"
 "…들어가볼게요."

 주현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입술을 꽉 깨물고는 말했다.
 미경은 주현의 상태를 보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 잠깐만…!"
 "…뭐죠? 애한테 뭘 한 거예요?"

 신현석이 주현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주현은 이미 단단히 상처받은 듯했다. 게다가 그렇게 둘이서 '애'라고 강조를 하니 더 마음에 스크래치가 났다. 

 "들어가죠? 좀 있으면 그 '어른'인 누나 보호자, 아니, 누나 남친 오잖아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주현은 괜히 그렇게 비꼬듯 말하고는 의사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병실로 돌아갔다.
 그런 주현의 모습을 본 의사는 어마무시한 표정으로 미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 하는…?"
 "저기요, 신현석씨! 나 좀 도와줘요. 헬프!"

 미경은 그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병실로 다시 돌아가는 주현은 뒤에서 그 의사와 미경이 무언가 얘기를 하면서 어디론가 가는 소리가 들었다. 주현은 병실로 가다가 잠시 다른 곳 복도로 향했다.

 주현은 사람이 적은 한적한 복도의 벽에 잠시 기댔다. 그리고는 스르르 쓰러지듯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주현은 여전히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하."

 주현은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카락이 있던 자리를 머리카락이 있었을 때처럼 헝클어뜨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부드러운 털실로 짠 모자만이 있었다. 주현은 그 모자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주현은 링거 때문에 흉터와 멍 자국이 가득힌 자신의 손등을 가만히 바라봤다. 주현은 그 자국이 낙인 같고, 링거 줄이 족쇄 같았다. 

 주현은 이제 아직 애 티가 나는 어린 소년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 소년의 손 또한 주현에게는 바꿀 수 없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주현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주현은 자신에게 성장이라는 불분명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링거줄에 시야의 초점을 맞췄다.

 이제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주현은 괜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갔다.



 "왔니? 전해줬어?"
 "네. 저 일찍 잘게요."

 주현은 최대한 얼굴을 안보이려고 노력하며 바로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내일 많이 아프다고 하니까 푹 자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주현의 엄마는 주현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그리고 다음 날. 
 주현은 11차 항암을 시작했다. 그 약물은 주현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선사했다. 고통 때문에 몇 번이나 정신을 잃기를 반복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플 때는 안 아플 방법을 찾는 게 더 효과적이더라고. 예를 들면 즐거운 생각을 한다던지, 아니면 한 번 확 분출하고 털어낸다던지.'

 그 와중에 주현은 미경이 한 말이 생각났다. 주현은 놀이공원에서 같이 놀러다니는 상상을 했다. 그 날은 아마 다음 생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으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통이 좀 나아졌을 때가 되서야 주현은 병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현의 부모님이 주현이 실려오는 이동식 침대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주현의 부모님은 주현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주현은 고통이 좀 가시자, 드디어 잠에 들었다. 간헐적으로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주현아?"
 "…엄마? 아빠?"

 주현의 눈 앞에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반쯤은 쉬었고, 반쯤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옆에는 많은 의료진들이 서있었다.

 "이제 마지막 검사를 받아보자꾸나."

 의료진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주현아.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주현의 엄마가 속삭이듯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현은 이동식 침대에 옮겨져서 검사실로 갔다. 여러개의 검사가 있고, 결과를 그 자리에서 보고, 주현은 병원 침대를 내려왔다. 

 "축하한다."

 의사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현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과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걸음은 뜀박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뜀박질은 갈수록 빨라졌다. 

 쾅

 주현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주현은 자신의 옆 자리를 정리하는 낯선 사람의 모습을 보며 멈칫했다. 

 "오늘 며칠이에요?"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미경이 먼저 병원에서 나갔나 싶어 물었다. 그리고 미경이 선물한 자신의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직원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몇 주 지났지." 
 "그렇게 오래 됐어요?"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미경이 선물로 준 모자를 쥐고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주현 학생?"

 얼마 전에 마주친 미경의 주치의가 병실 앞에서 주현 앞에서 막아섰다.

 "아, 회장님."

 침대를 정리하던 직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 의사는 백일 그룹 신현석 회장(의사 출신)이었다.
 주현은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암이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주현은 고개를 다시 꾸벅 숙였다. 그는 비켜주지 않고 주현에게 말했다.

 "내가 미경 환자 주치의인 건 알죠?"
 "네? 네. 알고 있어요. …아. 미경 누나는 언제 나갔어요? 이번이 마지막 항암치료라고 들었는데……."

 주현이 그에게 미경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주현 학생. 잠깐 얘기 좀 하죠."
 "네?"

 그는 미경의 자리를 정리하던 사람에게 손짓으로 나가달라고 신호는 보냈다.
 주현은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주현 학생. 잠시 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가 병실 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주현은 어리둥절해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이번에 주현 학생에게 쓴 약은 항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실험약입니다. 그래서 주현 학생은 큰 효과를 봤고요."
 "…그랬죠."
 "그리고 이번 항암 치료가 주현 학생은 마지막 항암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
 "그리고 미경 환자도 그랬습니다."
 "…네?"

 주현은 아직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미경 환자도 주현 학생에게 쓴 약으로 항암 치료를 했습니다."
 "……."
 "그리고 그 약은 실험약입니다. 분명히 효과가 있는 약이지만, 모두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확률에 달린 겁니다."
 
 주현은 멍 하게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 의사는 그런 주현의 모습에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미경 환자는 그 확률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네?"

 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퍼뜩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 신현석은 냉하게 말했다.

 "죽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주현은 잠시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거짓말이죠?"
 "……."
 "그렇게 멀쩡했는데…?"
 "……."
 "같이 놀이공원 가기로 했는데…?"
 "안 그래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주현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현은 그 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주현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어, 언제 죽었나요…? 장례식은…?"
 "주현 학생."

 의사가 부르는 말에 주현은 목이 매여서 대답을 못했다. 
 그런 주현에게 의사는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

 "장례식은 안 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 그렇지만…!"

 주현은 눈물 때문에 흐릿해진 시야로 신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현석은 그런 주현에게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주현 학생은 살았잖아요?"
 "네…?"
 "미경 환자는 이제 곧 관으로 병원 밖으로 나갈 겁니다. 학생은 더 이상 미련 갖지도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걸어서 병원 밖으로 나가서 앞으로 잘 사는 게 가장 좋은 일입니다."

 주현은 그 말이 칼처람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이제 본인 인생을 살도록 해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아직 젊으니까요. 그 여자는 잊고 자기 인생 살도록 하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놀이공원 자유 이용권 티켓을 꺼내 건넸다.

 "놀이공원 가고 싶었다고 들었습니다. 잘 다녀와요."

 주현은 떨리는 손으로 그 티켓을 받아들었다. 주현은 그대로 티켓과 모자를 손에 꼭 쥔 채 바닥에 엎드려 목 놓아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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