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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Quite! 1부 14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1부 14화

SooyangLim 2022. 5. 9. 19:03

 백일 그룹 회장이 일했었다던 병원에 주현은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날이었다. 6차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주현은 옆 자리에 노트가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현은 신기해하며 옆 자리에 누가 오나 싶어서 이름을 확인해보려 했다. 부모님이 잠시 나간 사이 옆 침대로 가서 환자 정보가 쓰여진 곳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저 말고 누구 있어요?"

 주현은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들린 간호사에게 물었다. 나이가 꽤나 지긋한 간호사는 주현의 혈압을 체크하며 말했다. 

 "너처럼 항암치료 받으러 온 분이야."
 "그래요?"

 앞선 항암 치료 동안 주현은 혼자 병실을 썼었다. 주현은 처음으로 옆 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바라봤다.

 "…근데 왜 이름이 가려져 있어요?"
 "어, 어? 이, 이름?"

 주현의 물음에 어쩐지 간호사는 당황한 듯했다. 간호사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 아마도 오, 온 지 얼마 안 되서 환자 정보를 다 기입 못했나 봐. 나, 나중에 적어놓겠지."
 "아, 병원에 막 도착했나봐요?"
 "으,응."

 주현은 별 생각 없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몸 상태 체크를 하는 데,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의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보호자로 보이는 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옆 자리 환자도 함께 들어왔다.

 옆 자리 환자는 꽤나 젊은 여성이었다. 주현은 자신의 또래이거나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겠다 하고 지레 짐작했다.

 "드디어 복귀하신 거에요?"

 간호사가 의사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의사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의사는 간호사와 잘 아는 사이인지 웃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회사 내려놓고 복귀하고 싶습니다만, 아닙니다. 잠깐씩 들릴 겁니다. 이 분 나을 때까지만."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준비 하라고 일러두고는, 저녁때 다시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다들 어서 들어가 봐. 반차 쓰고 나왔다며."

 옆 자리 여자는 같이 들어 온 남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며 말했다. 주현은 가족인가 싶어서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지만 가족치고는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아, 이 친구도 치료 받는 아이예요?"

 그런 주현의 눈빛을 알아챘는지, 옆 자리 여자가 간호사에게 주현을 보며 물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 아이도 항암 치료 받을 거예요."
 "그렇구나……. 안녕?"

 그 여자는 잠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주현을 바라보더니,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주현은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갔다. 옆 자리 여자는 아직 안 가도 된다고 버팅기는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들을 보내버리고는, 침대 위에 앉아서 노트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주현은 뭐하나 싶어서 힐끔거리며 옆을 쳐다봤다. 그런 주현의 눈길을 느꼈는지 옆 자리 여자가 물었다.

 "보호자 분들은 아직 안 오셨어?"
 "네? 저, 저요?"
 
 미경은 주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은 괜히 마스크를 올려 끼며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
 
 "부, 부모님은 잠시 의사 선생님 뵈러……."
 "그렇구나. 몇 살이야?"
 "열…여섯이요."
 "열여섯? 우와, 애기네."

 주현은 그 말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과 그리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데 애기라고 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아진 것이다. 주현은 괜히 부루퉁해져서 따지듯이 물었다.

 "누나는 몇 살인데요?"
 "누나? 하하하."

 그 여자는 어쩐지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췄다.

 "아, 아니지……. 그렇겠네……. 누나로 보이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그녀가 말했다.

 "애기라고 해서 미안. 사과할게. 그냥 누나라는 말을 자주 안 들어 봐서 그랬어."
 "몇 살인데요?"
 "몇 살로 보이는데?"

 갑작스런 질문에 주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19살? 20살?"
 "와우. 고맙다."
 "더 많아요? 22살?"
 "…음……. 그래……. 그 언저리로 하자."
 "…?"

 종잡을 수 없는 말에 주현은 뭔 소린가 싶어서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더 생각하려 하기도 전에 여자가 또 말을 걸었다.

 "학교는? 다니고 있어?"
 "쉬고 있어요."
 "몇 학년까지 다녔는데?"
 "3학년 다니다가 쉬고 있어요."
 "그래…?"

 그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주현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알아내지 못한 주현은 나이를 알 수 있을 법 한 질문을 했다.

 "누나는 몇 학년인데요?"
 "나? 난 졸업했지." 
 "네? 그럼 성인이에요? 아님 대학교 졸업…?"
 "어…? 어……. 대학…은 아니고……."

 그녀는 어쩐지 말끝을 흐렸다. 주현은 그녀의 말에 드디어 나이를 알아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럼 20살이죠!?"
 "어……. 음……. 하하… 하……."
 "역시! 20살일 줄 알았어요! 저 되게 나이 잘 맞추거든요!"
 "그, 그래."

 주현이 맞췄다며 기뻐하는 동안 그녀는 어쩐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말을 돌리듯 물었다.

 "쉬니까 공부하고 싶진 않아?"
 "네? 아뇨. 공부는 안 하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놀고 싶긴 하지만요. 설마 누나는 공부하고 싶어요?"
 "나? 아니. 난 학교 공부는 그만해도 될 것 같아."
 "그쵸? 저도 그래요."
 "아니, 얘, 넌 열심히 해야지!? 공부 열심히 해야 나중에 취직도 하고 사회 적응도 하고……."

 그녀의 설교 같은 말에 주현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에이. 사회 나갈 수 없을 걸요."
 "응?"
 "전 아마 곧 죽을 걸요? 잘 안 낫더라고요."
 "……."

 주현의 말에 그녀는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니야. 나을 수 있어."
 "뭐 나으면 좋고요."

 그녀의 표정에 멈칫한 주현은 괜히 밝은 척하며 말했다. 사실, 주현은 몇 번이고 항암치료를 해도 큰 차도가 없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누나는 나을 수 있을 거에요."
 "어?"
 "누나는 성장기가 아니잖아요? 저보다는 빨리 암세포가 자라지는 않을 거니까요."

 그런 말을 밝게 말하는 주현의 모습에 그녀는 또 말이 없어졌다. 주현은 그녀가 말이 사라지자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재빨리 더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하며 말했다.

 "화이팅이에요!"
 "…그래. 너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메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녁 무렵, 주현의 어머니가 병실로 들어오며 옆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옆 자리 여자의 주치의도 주현의 어머니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주현의 엄마는 어쩐지 그 주치의를 힐끔힐끔 훔쳐보듯 쳐다봤다. 그리고 주치의가 나가고 나자 옆 자리 여자와 인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현은 어쩐지 대화가 잘 통하는 자신의 어머니와 그녀를 보며 사교성이 좋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때 병실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주현의 어머니는 병실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보호자분…?"

 주현의 엄마는 약간 주저하며 물었다. 안경을 끼고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주현이 추측하기에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했다. 그는 아까 낮에 왔었던 남자였다. 

 "주현아, 인사했니?"

 주현의 어머니의 주도 하에 주현은 옆 자리 여자의 보호자와도 인사를 하게 됐다.

 "근데요, 누나는 이름이 뭐에요? 저기 침대에 저거는 가려져 있던데……."

 주현은 침대에 걸려 있는 환자 정보 카드를 가리키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어쩐지 주현의 질문에 그 보호자와 옆 자리 여자는 시선을 교환했다.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여자에게 물었다.

 "말 해도 돼?"
 "괜찮지 않나?"
 "난 모르겠다."

 그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옆 자리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미경이야. 김미경."
 "아~ 그렇구나."

 주현의 엄마는 티는 별로 내지 않았지만, 그 나이대에 흔히 쓰지 않는 이름에 살짝 당황한 듯했다.

 "좀 나이대가 있는 이름이죠? 하하."

 미경은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궁금했구나? 그래서 가려놨던 거야. 너무 나이 들어 보여서."

 미경이라는 여자는 웃으며 장난치듯, 둘러대듯, 주현에게 말했다. 주현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미경이라는 여자와 보호자는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주현의 엄마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뭐가요?"
 "…아냐."

 주현의 엄마는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주현을 한 번 흘끗 보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왜요? 뭐가 이상해요?"
 "아냐아냐. 신경 쓰지 마."

 주현의 엄마는 주현에게 굳이 말해야 될 내용도 아닌 것 같고, 신경 쓰지도 않기를 바라서 손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 날, 여느 때 처럼 본격적인 항암 치료를 받은 후 주현은 고통스러워하며 누워 있었다. 보호자인 어머니가 잠시 의사를 만나러 간 사이 주현은 미경 쪽을 흘끗 봤다.

 "…누나는 괜찮아요?"

 자신과 비슷한 시간대에 치료를 받고 나온 미경이 굉장히 덤덤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본 주현이 물었다. 미경은 주현의 물음에 주현을 흘끗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파."
 "…아픈 거 잘 참나 봐요."
 "그렇진 않아. 무뎌진 거지."
 "…몇 차 항암 치료예요?"
 "처음이야."

 그 말에 주현이 가만히 자신이 처음 치료를 받았을 때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되게 잘 참는 것 같은데요? 치료 처음이라면서요?"
 "맞아."

 주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경을 바라봤다.
 미경은 그런 주현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프다고 힘들어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와. 맞아요. 완전 공감."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미경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플 때는 안 아플 방법을 찾는 게 더 효과적이더라고. 예를 들면 즐거운 생각을 한다던지, 아니면 한 번 확 분출하고 털어낸다던지."
 "…누나 되게 어른스럽네요."

 주현은 그렇게 말했다가,

 "아, 아니구나. 20살 넘었으니까 어른이지 참."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주현의 말에 미경이 주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넌 아프다고 해도 돼."
 "네?"
 "너는 아플 때는 아프다고 해도 돼."
 "방금 누나는 안 그런다면서요."
 "너는 내가 아니잖아. 네가 나처럼 이러는 거 보면 안쓰러울 것 같아. 너는 괜찮아. 넌 아직 어른도 아니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참지 말고."
 
 그 말에 주현은 벙 쪘다. 주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엥? 그게 뭐예요? 내가 그러면 안쓰러워 보인다는 건 또 뭔데요?"
 "…네 부모님이라면 네가 나처럼 그러고 있으면 그럴 것 같아서. 그리고 부모님이 있잖아? 힘들 땐 힘들다고 해."

 미경의 말에 주현이 말했다.

 "누나가 그렇게 생각하면 누나 부모님은 안 그럴 것 같아요?"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우리 부모님은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이렇게 잘 이겨내고 있다고 대견해하실 걸? 나는 그게 맞거든."
 "그게 뭐에요? 누구는 그게 맞고 누구는 틀렸다는 말이에요?"
 
 주현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미경은 회상하듯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살길 바래서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거든. 그리고 예전에는 항상 힘든 일 안 하고, 자기들 일은 잊고 나는 나대로 자기 인생 찾아서 행복하게 살길 바랬어."
 "…잊는다는 게…?"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하늘에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그리고 네 말 대로 난 어른이잖아?"
 
 그 말에 주현은 숙연해졌다.

 "…미안해요. 제가 괜히……."
 "아냐. 미안할 거 없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신경 쓰지 마. 한 분은 꽤 최근까지 살아 계셨으니까."
 
 미경의 말에 주현은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아까 누나 보호자 보고 부모님이라기엔 너무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부모님이 아니었네요."
 
 그 말에 미경이 빵 터져서 웃었다.

 "하하! 부모님인 줄 알았어?"
 "아닐 것 같았어요."
 "하하하. 잘 봤네! 맞아. 부모님 아니야. 내 보호자로 온 거야. 와, 나중에 이 얘기해주면 진짜 깜짝 놀라겠네. 하하!"



 다음 날이 되었다. 주현은 미경이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현은 부모님이 자리를 비웠을 때 물었다.

 "…누나. 약간 추리 소설 같은 거에 관심 있어요?" 
 "웬 추리 소설? 아니."
 "그럼 뭔가 어둠의 세계라던가……."
 "어둠의 세계는 당장 척결해야 될 문제고…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주현은 미경이 들고 있는 종이에 적힌 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거 읽고 있어서요."

「면식범의 범죄 현장 행동 특성에 대한 연구」

 "아 이거……."

 미경은 머쓱해하며 들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음…뭐랄까. 이건… 음… 최신 연구 논문인데… 그러니까… 신기해서……?"
 "난 또 추리 소설이라도 쓰려나 했어요."
 "하하. 추리 소설이라니. …어? 잠깐. 그거 나쁘지 않겠는데? 말년에 그런 거 쓰면……."

 미경이 주현의 말에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주현이 물었다.

 "넌 나중에 뭐 하고 싶어?"
 "글쎄요. 모르겠어요. 몸이 이렇게 약하니까…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공부도 딱히 관심 없고……."
 "뭐 잘하는 거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거 없어?"
 "글쎄요. 모르겠어요."

 주현은 멍하니 생각하다가 불쑥 말했다.

 "솔찍히 말해서, 전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요." 
 "뭐?"

 주현의 말에 미경이 당황하며 주현을 바라봤다.
 미경의 그런 반응에도 주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항암 치료 지금 해보셨으니 알 거 아니에요? 되게 힘들잖아요."
 "그래도 치료하면……."
 "아뇨. 전 처음에 암을 발견했을 때부터 상태가 안 좋았어요. 이미 전이가 된 상태였거든요. 그리고 치료를 몇 번 해도 크게 낫는 것 같지도 않고……. 전 더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요. 부모님은 계속 희망을 갖고 계시니까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전 아니거든요. 저 치료할 돈이랑 시간에 신나게 즐겨도 될 텐데……. 저는 그냥 주변 사람 더 고생 안 시키고 싶어요. 저도 더 안 힘들었으면 좋겠고요. 빨리 죽고 싶어요."

 주현의 말에 미경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아냐. 세상은 되게 살만해. 재밌는 것도 많고. 힘든 일도 있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일러. 겪어볼 일들이 아직 많이 있어."
 "다음 생에 즐기죠, 뭐. 이번에는 그냥 이렇게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미경은 그런 주현을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주현의 부모님이 들어왔다.



 "좀 괜찮니?"

 점심시간 즈음, 주현은 미경을 찾아온 웬 나이 많은 아줌마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미경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며 놀란듯 말을 걸었다.

 "선배, 웬 일이야?"
 "너 치료 받는데 와 봐야지, 얘! 아참. 오후에는 너네 팀 신입이 온다더라?"
 "엥? 뭐? 왜?"
 "왜긴? 성준이가 오늘 못 나온다고 해서 대신 오기로 했어. 얘기 아직 안 했니?"
 "몰라? …아. 문자 와 있네?"

 미경이 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선배도 그렇고 다들 바쁠텐데…….. 고마워. 신경 써줘서."
 "에이. 이건 당연한 거지."

 나이 많은 아줌마에게 미경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주현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주현은 그 아줌마가 가고 나자 미경에게 물었다.

 "…회사 다녔어요?"
 "응?"
 "아까 아줌마한테 선배라고 부르길래요. 대학 선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아……. 어……. 음……. 뭐, 그렇지."

 그녀는 적당히 대답했다.
 주현은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쩐다. 회사도 다니고."
 "아, 뭐 어쩌다 보니……. 하하…하……."

 미경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회사 다니는 거 꽤 괜찮아. 그러니까 너도 죽네 마네 하지 말고 살아서 함 다녀 봐. 내 돈 벌어서 내 돈 써보면 꽤 인생이 재밌어지거든."
 "에이……."
 "진짜야. 돈 벌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꽤나 인생이 즐거워져. 그러니까 살아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응?"

 미경의 말에 주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주현의 7차 항암 치료.

 "어? 안녕?"

 이번에는 미경이 먼저 병원에 들어와 있었다.

 "어? 누나.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같은 병실이네요."
 "그러게."
 "오늘은 뭐 읽고 있어요?"
 
 주현은 미경이 들고 온 책을 보며 물었다.

 "요리 책. 식단에 신경 좀 써보려고."
 "요리 잘해요?"
 "먹고 살 만큼은 해."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잘 하던데."
 "하하."

 그 때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미경의 보호자가 병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차 키 가져갔어?"
 "응. 여기 있는데? 왜?"
 "차 빼야 될 것 같아. 거기 대는 데가 아닌가 봐."
 "어 그래? 내가 지금 갈 게."
 "아냐. 내가 뺄 게. 정리 하던 거 해."

 그렇게 말하고는 미경의 보호자는 차키를 갖고 밖으로 나갔다.

 "…누나 운전할 줄 알아요?"
 "응? 응."
 "잘해요?"
 "그냥저냥 해."
 "누나 왠지 운전 되게 잘 할 것 같아요. 저 아저씨 차 빼야 된다고 했을 때 바로 누나가 가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요."
 "그건 그냥 내 차라서 그래."

 미경의 말에 주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에!? 누나 차 있어요!?"
 
 주현의 격한 반응에 미경은 흠칫하며 말했다.

 "아니, 그냥… 출퇴근용으로……."
 "누나, 좀 쩌는 것 같아요."
 "…이런 반응… 참……. 신선하다."

 미경은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주현의 모습에 당황하며 말했다.



 "뭐해?"

 미경이 물었다. 그날 저녁, 갖고 온 십자말풀이와 퀴즈 책을 풀고 있던 주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문제를 읊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주현을 보고 미경이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오~ 공부하는 거야?" 
 "공부는 아니고 그냥 퀴즈예요."
 "그것도 공부지."
 "에이……. 아, 하나 남았는데……."
 "뭐 풀고 있는데?"

 미경의 질문에 주현은 미경이 이걸 풀겠나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역사 문제인데요. 1987년 4월 13일 독재자의 조치에 따른 시민의 구호는? 이라는게 문제예요. 네 글자구요, '호ㅇㅇ폐 독재타도' 이거예요."
 "그거 호헌 철폐."
 "헐? 맞는 것 같아요!"

 주현은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미경은 '이걸 몰라?' 라는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 역사 시간에 안 배웠어? 그때가 너 안 태어났을 때인가? 아, 안 태어났겠네. 그때 살아보면 그거 모를 수가 없… 아, 그러니까 그게 살다 보면 모를 수가 없…"
 "이 부분 배우기 전에 지금 학교를 쉬고 있어서……."
 "미안……."

 미경은 바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미안해 하며 말했다.

 "…나중에 학교 다시 다니면 배우게 될 거야."
 "이 부분 배우면 어려워요?"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주현은 퀴즈를 풀며 말했다.

 "살아서 학교를 다시 다닌다고 해도 걱정돼요."
 "왜?"
 "못 따라 갈 것 같아서요.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전 다닐 때도 공부는 잘 못했거든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어. 너무 걱정 하지 마."

 미경의 말에 주현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혼잣말 하듯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나마 체육이나 예체능 같은 거나 좀 했지……. 아니, 뭐 체육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릴 때 태권도 다닌 걸로 그나마 버틴 것 같기도 하고……. 피아노랑 바이올린 배운 거랑 합창단에서 잠깐 했던 것 때문에 노래는 좀 했는데 말이죠."
 
 주현의 말에 미경은 밝게 말했다.

 "야! 잘 하는 거 하나라도 있으면 됐지! 다들 뭐 특출나게 잘하는 거 아니다? 그냥 다들 적당한 재주로 적당하게 먹고 사는 거야. 발전시켜 가면서!"
 "그래도요……. 가수 할 것도 아니고."
 "왜? 할 수도 있지! 노래 잘 한다며? 악기도 할 줄 안다며?"
 "딱히 그렇게 잘 하지는……. 전부 다 그냥 그저 그래서……."
 "에이, 연습하면 되지! 그리고 뭐든 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세상이 네 목소리를 원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잘 부르는 가수들 보면 다들 자기는 노래 못한다고 했는데, 막상 부르는 거 보면 아주 그냥 기똥차게 부르잖아?"
 
 미경의 말에 주현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기똥차다니……. 누나 가끔 말하는 거 보면 아줌마 같아요."
 "아줌마……. 하하…하……."

 미경은 어색하게 웃었다. 주현은 여전히 퀴즈를 풀며 말했다.

 "전 그만큼은 아니에요. 가수는 다들 노래 엄청 잘하잖아요. 샤인 데이 알죠? 제가 좋아하는 가수인데, 노래 엄청 잘하잖아요. 그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가수인 거죠. 전 아니에요."
 "에이. 뭐……. 그 사람 노래 잘 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너는 너지. 뭘 그렇게 그 사람하고 비교 해? 그리고 그 사람도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 많이 했을 거 아냐. 너도 일단 시작해서 노력하다가 보면 될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뭐든 다 해보고 그 때가 되어 봐야 아는 거야."
 "에이."

 주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속 부정했다. 그러다가 주현은 또 모르는 문제가 나오자 미경에게 물었다.

 "아, 누나. 혹시 이거는 알아요? 네 글자고요, 첫번째 글자는 '게', 네 번째 글자는 '론'이구요. 이 단어에 설명은, 내쉬 균형에 의해 발전했으며 경쟁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경제학 및 수학 이론이라는 건데……."
 "그거… 게임 이론 같은데?"
 
 그렇게 주현은 미경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퀴즈를 풀어나갔다.

 "…누나."
 "어. 또 뭔데?"
 "아뇨.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응?"
 "누나 진짜 쩌네요? 모르는 게 없네요?"

 주현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그 말에 미경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에이. 무슨……. 나도 모르는 거 많았잖아. 너도 내 나이쯤 되면 이것저것 잡스러운 거 많이 알게 돼."
 "저는 그 나이 되도 절대 불가능 할 것 같은데요? 진짜 아는 게 엄청 많잖아요? 누나 진짜 좀 대박인 것 같아요."

 주현은 미경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누나 아까 막 유도랑 복싱 기술 같은 것도 잘 알고 있었잖아요? 사격도 해봤다고 했고……. 도대체 안 해 본 게 뭐예요?"
 "에이, 뭘……. 나도 안 해 본 거 많아. 더 못 해봐서 아쉬워 죽겠구만……."
 "와……. 겸손까지. 누나 말 하는 거 보면 완전 알차게 살았는데요?"
 "아니, 아냐……."

 미경은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주현은 진심으로 미경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묘하게 뭔가 숨기는 게 많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주현은 8차, 9차 항암 치료를 받을 때도 미경의 옆 자리였다. 그리고 항암 치료가 거듭 되는 동안 점점 친해졌다. 

 10차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 하던 날.
 그 날은, 해가 바뀌고 주현의 17살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짠! 선물이야. 얼마 전에 생일이었지?" 
 "이게 뭔데요?"
 "뜯어 봐."
 
 주현은 미경이 선물해 준 선물을 뜯어봤다.
 그건,

 「STRONGEST」

 라는 문구가 있는 모자였다. 

 "…웬 거에요?" 
 "네 생일이니까. 아참. 그거 알아? 그거 살 때 네가 좋아한다던 샤인 데이라는 가수랑 마주쳤어."
 "정말요!?"
 "응! 내가 옷 고르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그 모자를 추천해줬어. 사실 딱 마주칠 때는 그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곱씹어 보니까 그 사람이더라고?"
 "와, 대박……."

 주현은 뭉클한 감동을 느끼며 얼떨떨하게 감탄했다.
 미경은 모자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거 모자에 적힌 말이 좋아서 샀어. 꼭 튼튼하고 강해지라고. 나중에 그거 쓰고 놀러 다니면 재밌을 거야. 세상에 재밌는 일들이 많거든."

  주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를 그려보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 미래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누나."
 "응?"
 "나중에 놀이공원 안 갈래요?"
 "놀이공원?"
 "이거 쓰고 놀이공원 가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놀이 공원 가는 동안 샤인 데이 노래도 듣고요."
 
 미경은 주현을 그동안 지켜보는 동안 처음으로 죽는 것이 아닌 미래에 대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미경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네?"
 "너 나한테 한 말 중에 처음으로 뭔가 하고 싶어 한 거."
 "어…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주현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미경은 진심으로 기쁜 얼굴로 말했다.

 "너 그러는 거 보니까 내가 다 기쁘다, 얘! 그래, 놀이공원? 좋지! 꼭 가자! 너 다 낫고!"
 "…네. 꼭 가요."

 주현은 그렇게 말하는 미경의 미소가 화사하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차 항암 치료 후 주현은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 하는 소식을 듣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현의 엄마가 풍경 좋은 곳에 잠시 차를 세웠다. 주현의 엄마가 밖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주현아."
 "응?"
 "앞으로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어?"

 주현의 엄마는 어느 때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주현은 바로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주현은 썩 좋지 않은 예감과 심장의 떨림을 느끼며 물었다.

 "…언제요?"
 "응?"
 "몇 년 후에 하고 싶은 일? 아니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주현은 말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현은 그동안 계속 준비해왔던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뗐다.

 "엄마."
 "……."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고맙고 죄송해요."
 "……흐윽."

 주현의 엄마는 버티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근데 있잖아요, 엄마."
 "…흐윽……."
 "사실, 난 내가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근데 항암 치료 시작한 이래로 얼마 전에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
 "내 옆 자리에 미경 누나 알죠? 그 누나가 생일 선물로 준 모자 있잖아요? 그거 쓰고 내년 내 생일엔 놀이공원을 가보고 싶었어요."

 주현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저히 막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주현은 울면서도 말을 잇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몸이 덜덜 떨렸다.

 "내가… 흐윽… 내가… 이 암이란게…… 이런 내 몸이 너무 싫어요……. 이제… 하고 싶은…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주현이가 놀이공원 가자더라."

 미경이 집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성준(주현의 눈에는 안경을 끼고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남자)에게 말했다.
 성준은 누군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 옆 자리 애 말이지?"
 "응. 내가 선물해 준 모자 쓰고 놀이공원 가고 싶데." 
 "잘 됐네. 걔 맨날 죽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처음으로 걔가 살아서 뭘 하고 싶다고 했다니까? 너무 뿌듯하더라고."

 미경은 신나서 말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덧붙였다.

 "걔가 꼭 건강해져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뚜르르르
뚜르르르

 며칠 뒤, 주현의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주현 학생 어머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아, 저희는 백일 제약 산하의 항암 치료 약물을 연구하는 팀입니다. 실험 약 위주로…"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는 이제 남은 생을 그냥 편히 살고 싶어 해서 항암 치료를 더 이상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주현의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주현이 물었다.
 
 "누구에요?"
 "백일 제약 쪽에서 항암 치료 약물을 연구하는 팀 이래. 아마 실험 약으로 치료해 볼 생각 없냐고 하는 것 같아."
 "백일 제약……."

 그 날 밤, 주현은 엄마 몰래 백일 제약과 항암 치료 약물과 실험 약에 대해서 찾아봤다. 그리고는 주현은 엄마의 폰을 몰래 가져와서 낮에 전화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달칵

 "여보세요."
 "거기 백일 제약이죠?"
 "…누구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자다 깼는지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김주현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치료를 받고 싶어서요. 아까 낮에 백일 제약에서 항암 치료 연락을 하셨다고……."
 "…잠시만요." 

 잠시 후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아, 네. 김주현…학생이죠?"
 "네."
 "안녕하세요, 주현 학생. 저는 연구원 김두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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