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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동족상잔 上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동족상잔 上

SooyangLim 2021. 10. 25. 19:03

 "일어나요. 빨리."

 옥실이 설참과 옥이의 방에 들어가 자고 있던 둘을 깨웠다. 설참이 옥실이가 새벽에 그들의 방에 들어와 깨우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 새벽에 갑자기 무슨 일이냐?"
 "전쟁이 났어요."
 "…뭐?"
 "빨리 일어나야 돼요."

 전쟁이라는 말에 여전히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옥이도 눈을 떴다. 옥이는 잠긴 목소리로 옥실에게 물었다.

 "전쟁이라니요?"
 "기습이야."
 "네? 그게 무슨…?" 
 "어서 일어나. 차를 불렀으니까 빨리 준비 해. 지금 떠나야 돼."

 옥실이의 말에 옥이는 납득이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단 일어났다. 옥실이는 짐을 갖고 밖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실으러 갔다.
 설참은 옥실이가 적어도 이런 걸로 장난칠 녀석은 아니었기에 일단은 옥실이의 말에 따랐다.

 설참이 급히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오니 과연 차가 한 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앗! 자네는…!"

 운전기사는 예전에 홍화의 차를 몰던 운전기사가 와있었다.

 "여긴 어떻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네?"
 "전 고향에 내려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이분이 가족과 부뫼(구레아 항구 도시 이름)로 이사하면 이사비와 함께 큰돈이 되는 일거리를 주겠다고 해서 부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큰돈이 되는 일거리를 찾아왔지요."

 운전기사가 분주히 짐을 옮기고 있는 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옥실이 차에 짐을 실으며 말했다.
  
 "탈 자리 있겠어요?"
 "음, 잠시만요. …한 자리 밖에 없습니다."

 운전기사가 뒷자리에 가득 찬 짐을 보며 말했다.
 설참은 뒷자석을 가득 채운 짐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언뜻 보기에 거의 세간 살림을 다 빼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짐을 이렇게…? 잠깐 피했다 돌아오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설참은 종종 구레아에 국지전이 있어왔기에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하고 생각했다. 옥실은 아랑곳 않고 대답했다.

 "트렁크에 예비 연료를 가득 채워놨거든요."
 "예비 연료?"
 "구레아 끝에 있는 항구 도시까지 가야되거든요. 부뫼요."
 
 그 말에 설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옥이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 안녕하세요!"

 옥이가 운전기사를 기억하고 인사를 했다.
 옥실이가 옥이에게 작은 보따리와 도시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일단 옥이만 차로 먼저 보내는 게 어때요? 우린 좀 있다가 뒤따라 가죠."
 "그래야 되겠구나." 

 설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옥실이는 옥이를 차에 태우며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보따리 안에 돈이 있으니 잘 숨기고 있어. 필요하면 쓰고. 그리고 해 질 녘에 부뫼역 앞에서 보자."



 옥실이는 옥이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차 문을 닫아줬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에게 두툼한 돈봉투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운전기사는 조심스럽게 돈봉투와 작은 주머니 안을 열어봤다. 돈봉투 안에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의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그동안 영 돈을 못 벌고 있던 그에게는 단비 같은 돈이었다.
 그가 작은 주머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금붙이가 몇 개 들어있었다. 그 안에 든 금만 팔아도 적잖은 돈이 나올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고자 했지만,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그는 한결 환해진 얼굴로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옥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비밀 엄수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안전하게 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는 사명감과 자본의 위대함을 몸소 보여주며 지체없이 차를 몰아 마당을 떠났다.

 차가 안보일만큼 멀리 가버리자 설참이 입을 뗐다.

 "…어떻게 안 거냐?"
 "네?"
 "마치 이 일이 터질 걸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느냐."
 "에이. 전 그냥 정보력이 좋은 것 뿐이에요. 아, 우리도 떠날 준비 하죠? 채비해야죠."

 옥실이 능글거리며 말하고는 짐을 챙기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설참은 그런 옥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저 정보력이 좋다기엔 지나치지 않느냐. 항상…….'



 시간이 지나자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찰칵

 옥실이 설참이 한동안 안 듣고 있던 구식 통신기기를 켰다.

 "…국민은 우리 군을 믿어야 합니다. 전투사령부를 수도에 설치하고, 이튿날부터는 공군을 위시하여 우리를 도울 지원군이 참전할 것입니다. 우리 국방군이 현 전선을 고수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현 상황을 마타마이니 행성 국가 연합과 밝혀진 우주 연합에 전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구레아를 돕기 위해 지원을 보내는 중이며 곧 도착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우방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선에서 싸우는 중인 우리의 군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이며…"

 방송을 듣고 있던 설참이 중얼거렸다.

 "…다행이구나."
 "……."

 옥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괜히 옥이를 혼자 급하게 보냈구나."

 설참의 말을 듣고 있던 옥실은 조용하게 말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의 삶 아니겠어요." 

 옥실은 그렇게 말하며 따로 빼놨던 설참의 군복을 짐의 위에 올려놨다.



 그 때 저 멀리서 포 소리가 들려왔다.
 포 소리를 잘 알고 있는 설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이상함을 눈치챈 건 설참만이 아니었다. 이미 포 소리가 들은 주민들이 불안을 느끼고 피란을 가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렇지."

찰칵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삶이지."

 설참이 다가와서 구식 통신기기를 꺼버리며 말했다.

 "가자."
 
 옥실과 설참은 전쟁이 터지고 그 날 밤이 되어서야 피란을 가기 위해 마당을 벗어났다.



구레아 수도 중앙을 흐르는 강위의 다리 앞-

 "아니, 왜 저 위쪽 큰 다리로 안 가고 이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지?"

 설참이 큰 다리인 인도교를 놔두고 옆의 부교를 통해 강을 건너고 있는 피란민들을 보며 말했다.

 "저긴 경찰이 통제 중이라던데요."

 옆에 지나가는 피난민이 말했다. 
 다수의 전투 참전 경험이 있는 설참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그렇게 입을 뗀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리더니 다리가 폭파됐다. 놀란 피난민들의 비명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우려한 대로 다리가 폭파되는 광경을 본 설참이 옥실에게 말했다.

 "…넌 부뫼 어서 옥이에게 가거라."

 설참은 옥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피난 행렬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옥실은 설참을 따라왔다.

 "부뫼로 가거라."
 
 설참이 다시 말했지만, 옥실은 설참의 말을 거부하고 따라오며 말했다.

 "옥이는 괜찮을 거예요."
 "난 괜찮다. 가서 옥이를 지켜. 옥이가 위험하다."
 "옥이는 부뫼로 갔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옥이보단 그쪽이 더 위험한 곳에 가려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더니 옥실은 짐의 맨 위에 올려놨던 설참의 군복을 꺼내며 말했다.

 "군대로 들어갈 거죠?" 
 "……."

 설참은 가만히서서 대답 없이 옥실을 바라봤다.
 옥실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설참에게 물었다.

 "왜 그럴려고 한 거예요?"
 "…어차피 늦었으니까. 다리를 터뜨리는 건 배수의 진이거나, 이미 우리의 저지선이 뚫려서 상대의 진격선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방책이다. 그러면 난 도망치는 것보다 군대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낫기 때문이지."
 
 설참의 대답을 들은 옥실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따라가려고요."  

 설참은 떨떠름한 듯 천천히 옥실이 내민 군복을 건네 받았다.



 "…옥이 아가씨, 다 왔어요. 일어나요."

 쉬지 않고 달린 차가 부뫼에 도착했어요.
 운전기사 아저씨가 저를 깨우는 소리에 졸고 있던 저는 눈을 떴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산기슭의 웬 허름한 집 앞에 차가 정차해 있었어요.

 "…부뫼에요?"
 "네. 여기 부뫼입니다. 여기에 머물 거라고 부탁하고 갔어요."
 "옥실이 오라버니가요?"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었죠. 짐 같이 내려드릴게."

 운전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같이 짐을 내리는 걸 도와줬어요. 
 저는 피란을 가기 전에 옥실이 오라버니가 한 말이 기억났습니다.

 "…혹시 부뫼 역이 어디예요?"
 "부뫼역? 여기서는 좀 가야 되는데. 왜요?"
 "해질녘에 부뫼 역에서 보기로 했어요."
 "그래요?"

 저는 보따리를 더듬어 옥실이 오빠가 숨겨놓은 넣어놓은 돈을 찾았어요. 그리고 옥실이 오빠 말대로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지폐를 한 장 꺼냈습니다.

 "이 돈으로 갈 수 있어요?"
 
 운전기사 아저씨는 냉큼 돈을 받으며 말했어요.

 "혹시 오늘 안 오면 내일도 태워줄게요. 일단 짐 내리고 다녀옵시다."

 하지만, 부뫼역에서 해 질 녘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오라버니와 아주머니는 오지 않았어요. 

 "…늦으시는 걸까."

 나는 보따리를 안고 시무룩하게 중얼거렸어요.

 "옥이 아가씨!"

 그때 집에 다녀온 운전기사 아저씨가 나를 부르며 다급히 달려왔어요.

 "소식 들었어요?"
 "소식이요?"
 "수도에 있는 다리가 폭파됐데요!"
 "네에!?"

 나는 깜짝 놀라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아주머니와 오라버니는 괜찮을까요?"
 "다리가 폭파 되기 전에 피란을 떠나셨다면요. 따라오겠다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렇…겠죠?"

 나는 불안해하며 말했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날 안심시켜주며 말했습니다.

 "오겠다고 했으니 기다려봅시다."
 "네…."
 "우선 집으로 돌아가요. 아내랑 며느리가 우리 애들 음식 만들면서 옥이 아가씨도 먹으라고 여기에 좀 싸줬어요. 가서 먹고 푹 자요."

 아저씨가 싸온 음식 보따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감사해요, 아저씨."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와 오라버니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타마이니 행성 밖의 우주 9구역 같은 외계인도 아니고, 해외의 다른 나라도 아닌 같은 나라 동포들이 순식간에 같은 동포와 국토를 박살 내며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곧 제가 피난 온 부뫼를 비롯한 일부 지역만을 남기고 모두 점령해버렸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설참이 철모를 쓰고 달귀벌(도시 지명)을 감싼 산속에서 대기하며 앉아있던 설참이 작은 목소리로 한탄했다. 그들은 낙서강 전선을 사수하던 중이었다.
 설참의 한탄에 옆에 있던 옥실이 돌아봤다.

 "네?"
 "마타마이니와 우리 구레아를 위해서 목숨 걸고 해방을 위해서 노력했었는데, 지금 동포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게 되었지 않네." 

 설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삶이구나."
 
 옥실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군인들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힘 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군인이 가진 통신 장비에 통신이 들어왔다. 

 "제건포(구레아 수도의 외항 도시) 상륙 성공."

 그 통신을 들은 군인들의 눈빛에 반짝이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통신음이 들려왔다.

 "반격한다."

 통신이 끊기자 옥실이 설참에게 말했다.

 "정말 한 치 앞도 모를 삶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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