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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열다섯번째 날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열다섯번째 날

SooyangLim 2021. 10. 14. 19:04

찰칵

 설참은 멍하니 소형 항공체에 앉아 구식 통신기기의 채널을 바꾸는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옥실과 함께 구레아 수도 진공 작전을 위한 마지막 지령을 듣기 위해 지난에 갔다가, 구레아의 수도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설참은 귀에 통신기기를 바짝 대고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메스꺼워서 토할 것 같은 속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귓가의 소리에 집중하려 애썼다. 설참은 속이 영 좋지 않았지만, 최대한 주변에 내색 안 하고 버티려 애썼다.

 옥실이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미소를 띤 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동안 옥실은 그녀의 사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물 한 잔도 건네지 않았다. 옥실은 그저 그녀를 계속 따라다니기만 했다. 

찰칵

 설참이 또 버튼을 눌렀다. 
 옥실이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따라다니거나 말거나 설참은 구식 통신 기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몇 시간 째 계속 채널을 바꾸는 버튼만 누르고 있었다.

찰칵

 "…어제 헤렌스만 행성이 소멸……."

 뉴스 앵커가 우주 9구역의 헤렌스만 행성 소멸에 대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찰칵

 다시 또 버튼을 눌렀다.

 "…헤렌스만 행성의 생명체 전원이 소멸……."

 다른 채널을 연결 해도 똑같았다. 어느 채널을 돌리든 헤렌스만 행성 소멸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고, 다들 같은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9구역 내부에는 보도가 통제 중이었지만, 적어도 9구역 외부에는 헤렌스만 행성 소멸 소식으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찰칵

 하지만 설참은 또 채널을 바꾸는 버튼을 눌렀다.
 통신을 계속 듣는 사이에 그들은 구레아 수도로 돌아왔다. 설참은 자신도 모르게 함께 지내던 예전 자신의 집으로 걸음이 향했다.

 마치 거기에 있으면 그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헤렌스만 행성 소멸과 관련한 사상자 중에 마타마이니인 사상자를 조사 중에 있습니다."

 설참이 또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현재까지 보고된 구레아의 주요 사망자로는, 파견 중이던 왕자님이……."

 구레아 왕자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왔다. 유명하거나 주요 민간인의 피해 소식도 함께 흘러나왔다. 

 "…헤렌스만 행성 소멸로 인해 생명체가 전원 소멸을 했기 때문에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잔해 조차 남지 않았고, 남은 잔해라고는 갈가리 찢어진 조각들 뿐입니다."

 설참의 머릿속에 잔해의 모습들이 상상됐다. 동시에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던 이의 모습이, 의지와 상관없이 그간 그녀가 숱하게 봐왔던 시신의 모습으로 상상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갈기 찢어진 모습으로. 설참은 평소의 그녀 답지 않게 그 자리에서 갑자기 토를 해버렸다. 

 "들어가 계셔요. 제가 치울게요."

 옥실이 설참을 집 안에 데려다 놓고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헤렌스만 행성 생명체가 전원 소멸했군요?"
 
 구식 통신 기기에서 앵커의 질문이 이어졌다.
 취재 기자가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헤렌스만 행성에만 피해가 있는 것이 아니아 주변의 비행체들에도 피해가 있기 때문에 조사를 계속 진행 중입니다."

 취재 기자의 대답에 앵커가 물었다.

 "비행체들이요?"
 "네. 헤렌스만 행성 주변에 비행 중이거나 부유 중이던 비행체들에 대한 마타마이니인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95% 이상이 소멸 당시 함께 사라졌고, 나머지 비행체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어 현재까지도 전원 사망 보고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생존자에 대한 전망은…."

 취재 기자가 헤렌스만 행성 소멸로 인한 마타마이니와 구레아 국민의 피해 상황에 대한 수치를 말했다.

 "왜 이렇게 민간인 피해가 큽니까?"

 앵커의 질문에 취재 기자가 대답했다.

 "민간인 전단 살포와 대피 방송을 우주 9구역 대항 연합에서 전파했습니다만, 우주 9구역의 제대로 된 대피 방송이 미흡했습니다. 때문에 피해 규모가 상당히 큰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헤렌스만 행성 소멸 당시 전원이 사망…"
 
찰칵

 설참은 다시 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널이 바뀌지 않았다. 구식 통신 기기의 소리가 꺼졌다. 

덜그럭

 설참의 손이 힘 없이 구식 통신기기를 바닥에 떨궈버렸다. 다른 한 손에는 장신의 남자가 준 시계를 꼭 잡고 있었다. 그녀의 방금 통신기기를 떨어뜨린 손이 천천히 그녀의 배로 향했다. 

 "어이쿠. 부서지겠어요."

 옥실이 설참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구식 통신기기로 달려가 재빨리 주워 털며 말했다.



 설참이 벽에 부딪히듯 기댔다. 
 옥실이 그제야 엄청나게 걱정하는 척 말했다.

 "아이, 정말! 조심하셔야죠! 혼자도 아니신데."

 옥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물 좀 떠올게요!"

 옥실은 그렇게 말하고는 굳이 얼음장 같은 찬물을 뜨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설참은 이제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한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린 채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리듯 엎어졌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녀는 천천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흐느끼고야 말았다.



 "왜 아직도 아무런 성명이 없는 겁니까?"

 우주 9구역 피해 우주 연합 대표 회의에서 나온 말이었다. 헤렌스만이 소멸하고 사흘이 지난 후에 나온 말이었다. 헤렌스만 행성이 터지고 사흘이나 흘렀 건만, 아직 9구역에서는 어떠한 성명도 없었다.

 "설마 아직도 전쟁을 계속 할 생각일까요?"

 우주 10구역에서 온 대표가 말했다. 그는 우주 9구역 가담한 지역과 반대하는 지역 중, 반대하는 지역의 대표였다.

 "만약 그렇다면 일정대로 진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 10구역은 우주 9구역에 바로 인접한 지역이었다.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가장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그리고 연합의 기술 이전 문제도 있지만, 밝혀진 우주에서 두 자릿수 구역이 상징하는 의미는 전 우주에 상징하는 바가 남달랐다. 그래서 그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은 훨씬 무거웠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일정대로 두 번째 포격 이후에 페츠다 선언과 우주 각 지역의 진공 작전과 총공격을 단행해야 합니다. 전쟁이 더 길어져서는 안 됩니다."

 다른 대표들도 괴로운 표정으로,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주 9구역 전쟁 피해 연합 구역들 입장에서도 끔찍한 일이었다. 계속 전쟁에 대한 부담을 안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일정대로 진행하지요."

 두 번째 포를 가지고 있는 마타마이니의 행성 대표가 말했다.



 이렇게 두 번째 계획이 결정되는 동안, 우주 9구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아직까지도 의견만 분분한 채 아무 결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패닉 상태에만 빠져 있었다.

 "아니, 설마. 행성을 날려버렸다니? 말이 됩니까?"

 처음 보고를 받은 우주 9구역 군사 수뇌부의 반응이었다.

 헤렌스만 행성이 소멸되고 나흘째가 돼서야 그들은 회의를 소집했다.

 "이거 페츠다 선언에 따라 항복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중앙 행성을 노리기라도 한다면……."
 "일단 지금 빨리 항복하고 전범 재판을 우리가 하겠다고 협상해봅시다."

 우주 9구역 사이에서도 항복에 대한 목소리가 아주 커진 데 이어,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이미 때늦은 논의였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겁먹을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강력한 보호 장치를 하고 있습니까."

 또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만약 저런 걸 연달아 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호가 가능하긴 합니까?"
 "저런 게 또 있을 리가 있습니까? 게이트 클로져 한 번 가동시키기도 벅찬데……."   
 
 그들은 헤렌스만 행성 소멸을 시킨 포가 단 한 번이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 9구역 수뇌부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헤렌스만 행성이 소멸한 나흘째, 우주 9역에 두 번째 게이트가 열릴 준비가 완료됐다.

 "관키루 행성 위에 게이트를 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관키루 6 위성들의 공전 주기 때문에, 사거리 시야 확보 문제와 게이트 파손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우주 9구역 전쟁 반대 연합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 보고가 들어왔다.
 4자리 수 구역 연합의 세 번째 대표가 물었다.

 "그럼 제 2목표는 괜찮습니까?"
 "누간시칼 행성(제 2목표)은 문제없습니다."

 군인의 말에 다들 제 2목표로 가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타마이니 대표가 대표들의 반응을 수용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간시칼 행성에 게이트를 열게."
 "예!"

 두 번째 포가 장착된 항공 기체, 통칭 '검은 상처'가 누간시칼 행성으로 열린 게이트 앞에 쏠 준비를 마쳤다.

 "3,2,1…"


 

 "누간시칼 행성이 소멸했습니다."

 우주 9구역 수뇌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항복해야 합니다. 더 이상의 협상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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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을까?
 설참은 계속 구식 통신 기기만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음식물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계속 속을 게워내며 물만 겨우 삼키고 있었다.



 "지금부터 중요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우주 9구역 기준 정오. 갑자기 우주 9구역 언어로 방송이 들려왔다. 우주 9구역에서 우주 전역에 보내는 통신이었다.

 설참은 벽에 기댄 채 계속 버튼을 누르던 손을 멈췄다. 설참은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우주 9구역은 우주의 대세와 우리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고자 충량한 거주민에게 고한다. 우주 9구역은 페츠다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한다. 대저, 우주 거주민의 강녕을 도모하고…"



 "…종전이다."

 마타마이니 행성에서 먼 우주의 구역.
 우펜자가 통신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펜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 아니 우주를 보며 말했다.

 "해방이다."



 마타마이니력 4278년, 가장 더운 달, 15번째 날.
 전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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