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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동족상잔 下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동족상잔 下

SooyangLim 2021. 10. 28. 19:01

 낙서강 방어선의 달귀벌과 다반동(구레아 지명 이름)을 잇는 전선을 사수한 채 산에서 대기 중이던 군인들에게 제건포 상륙 소식은 단비 같았다. 다반동에서의 전투를 통해 낙서강 전선을 지킨 것과 함께, 보급로이자 전쟁의 중요 요지인 제건포를 차단하는 제건포 상륙 작전의 성공은 전쟁의 판세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기세가 순식간에 바꼈다. 해외 지원군들과 함께 계속 반격과 진격을 거듭했다. 



 군인 중 하나가 깃발을 꽂았다.

 "겨우 돌아왔네."

 수도를 탈환한 군인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구레아 수도의 외항인 제건포를 통해 구레아 수도도 순식간에 다시 되찾았다. 



 구레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던 국가, 지난은 조금씩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밀리고 있다 합니다. 도움 요청이 왔습니다."
 "…그런가."

 지난 측의 수장은 조용히 말했다. 
 그의 수하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상황으로 봐선 지난의 의용군을 보낼 수 있다면, 빨리 5~6개 사단이라도 구레아 분할선에 진출시켜야 할 것 같군."

 그는 구레아 전쟁이 심상찮게 돌아간다고 느낀 듯했다. 

 "나는 처음에 우리는 저들이 구레아 분할선을 넘을 시점에 우리 지난의 의용군 수 개 사단을 투입할 생각이었다네."
 "그렇었지요."
 "…지금은 당분간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
 "…참전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참전할 듯 하다가 지켜보자는 듯한 그의 말에 수하가 의아하게 물었다. 그는 수하의 말에 그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장고 끝에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말을 일단은 삼켰다.

 "…필요하다면 우리 측 외교관을 보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네."

 그 말을 들은 수하는 그의 심중을 눈치챘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수하는 고개를 조아리고 상관의 의사를 전달하러 갔다.  



 제건포 상륙에 이어 군은 기세를 몰아 계속 진격해 나아갔다. 설화와 홍화의 옛 고향인 파운을 넘어 전선을 계속 밀고 나갔다.

 그렇게 진격을 거듭하다 보니 구레아 국토의 상당 영역을 수복하게 됐다. 그맘때쯤, 더운 계절에 시작한 전쟁은 찬바람이 불다 못해 얼어붙기 시작했다.

 "푸른 강이다."

 얼어붙을 듯 시린 날씨 한가운데, 군인들의 눈 앞에 넓고 긴 새파란 강이 보였다. 넓은 고원에 우뚝 자리한 머리 꼭대기가 하얗고, 꼭대기에 큰 호수가 있는 산. 크고 우두머리라 불리는 산. 그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긴 푸른 강.
 그들은 어느새 지난국과 구레아의 국경선이 있는 푸른 강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구레아 영토 전부를 확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점령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다 수복한 셈이었다.



 군대가 지난의 국경선까지 도달했을 때, 지난의 상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거 괜찮습니까?"
 "군대가 지난의 국경선까지 왔습니다!"
 
 이전에 말을 삼켰던 그는, 이제 삼켰던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
 
 "이대로 해외 연합군을 마주하는 상황은 좋지 못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아니겠소? 참전해야 합니다."  

 지난의 참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김 하사님, 춥지 않습니까?"

 어두운 겨울 밤, 푸른 강가에 있던 구레아의 군인들이 하얗게 얼어붙은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참자. 곧 끝나."

 옆에 있던 군인이 말했다. 이제 구레아 영토의 일부만 남긴 상황이었다. 군인들은 새해와 함께 곧 이 전쟁이 끝날 거라는 희망과 소망을 품고 있었다.

쿵쿵쿵

 갑자기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애애애애액
징징징

 동시에 온갖 악기들로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뭐, 뭐야!?"

 군인들이 당황하는데 지난 쪽에서 갑자기 군인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난군!?"

 지난군이 구레아 국경선으로 몰려왔다.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이 다시 재점화되는 순간이었다.



 "젠장."

 설참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전선이 순식간에 다시 밀리는 상황이 되었다. 순식간에 전선이 과거 구레아가 분할되었던 지점까지 변경되어버렸다. 

 "진짜 삶이 한 치 앞도 모를 일이죠? 다 됐나 싶더니 어느새 또 밀리고."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옥실이 설참에게 말했다.

 "피란민들이 엄청 많이 이동하고 있더라구요."
 "…넌 언제 여기 와있었네? 그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설참이 어느새 옥실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이젠 딱히 놀라지도 않고 말했다.

 "뛰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쩌다 보니 당신이 보여서 이리로 왔어요."

 옥실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설참은 빈정거리듯 말했다. 설참은 옥실의 말을 믿지 않고 다시 경계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물론, 지금이 급하게 철수하던 통이라 군인들이 죄다 산 속 깊은 곳에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은 맞았다. 하지만 설참은 '어쩌다 보니' 자신을 보고 왔다는 말은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어, 저기 우리 군 아니에요?" 

 옥실이 갑자기 온 나라가 민둥산 투성이인데, 유독 나무가 많은 이 산의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쪽이었다.
 설참은 옥실의 말에 재빠르게 옥실이 가르킨 곳을 바라봤다.

 "…안 보이는데?"
 "저기 있잖아요. 철모에… 안 보여요?"

 옥실이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며 말했다.



 설참이 다급히 옥실의 뒷덜미를 잡았다.

 "멈춰! 우리 군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섣불리 단정하지 마라."
 "그치만 복장이 우리 군이 맞던데요? 제가 눈이 얼마나 좋은데요."

 옥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옥실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설참의 손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확실히 봤느냐?"
 "네."
 "…좋다. 가보자."

 둘은 나무가 빽빽한 깊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군인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뱅뱅 돌고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본 게 맞느냐?"
 "네. 분명 봤어요."
 "한참을 왔는데 아무도 없지 않느냐."
 
 설참의 말에 옥실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설참의 물음에도 옥실은 가만히 서서 의아하다는 양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우리 길 잃어버린 것 같지 않아요?"
 "……."
 "가도가도 똑같은 것 같은데요?"

 옥실의 말에 설참은 경계하고 있던 총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진짜 앞뒤 분간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 것 같구나."

 설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산을 올라가서 상황을 살피거나, 산을 내려가면 되니까."
 "산 밑에 적군이 있으면요? 전선이 더 밀려 있으면 어떡해요?"

 설참은 옥실의 이의 제기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거든 산 아래로 내려가자."
 "그동안 우리 숨을만한 곳을 찾아보죠. 제가 앞장 설게요."
 
 옥실의 말에 설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밤 동안이라도 숨을만한 곳을 찾아 나무가 빽빽한 산속을 계속 걸어갔다. 빽빽한 나무 사이를 걸어 갈수록 안개가 더 짙어졌다.

 '…뭔가 이상한데.' 

 걸어가던 중, 설참이 뭔가 묘하게 주변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지? 안개가 짙어져서?'

 설참은 걸음을 멈췄다.
 
 "왜요?"

 앞장 서던 옥실이 물었다. 
 설참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상하지 않느냐?"
 "네?"

 가만히 주변을 보던 설참은 그제야 뭐가 이상한 것인지 눈치챘다.

 "…나무가 이상하지 않느냐?"
 "뭐가요?"
 "왜 이 나무들이 여기 있지?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설참이 나무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이 나무들은 이쪽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는 나무들이었다. 기후 특성상 자랄 수 없는 나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그러게요? 왜 여기 있을까요? 이 산에는 이 나무가 자라나 보죠."

 옥실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빨리 숨어 있을 곳이나 찾아보죠."

 옥실이 재촉했다.

 "…그래."

 설참은 대답은 했지만,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니야. 여기만 이런 게 아니다. 밟는 낙엽 소리도 다르잖아.'

 설참은 바닥에 밟히는 낙엽까지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주변의 수종 자체가 바뀐 느낌이었다.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기온 차이까지 체감되자 머릿속이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뭐지? 뭔가에 홀린 것 같아. 나도 모르는 새에 마치 다른 지역의 산으로 이동한 것 처럼…….'

 설참이 그렇게 생각 하던 차에 옥실이 말했다.

 "저기 어때요?"
 
 옥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돌로 된 절벽 아래 동굴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구나."
 "가서 적군이 있는지 볼게요. 여기서 누가 오나 봐주세요."
 "알겠다."

 옥실이 동굴 쪽으로 갔다. 
 설참은 주변을 살피며 사주경계를 했다.

찰칵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설참이 뒤도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바로 앞에서 적군이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

 서로 총구는 겨누고 대치하는 이 순간, 설참의 손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그 때 갑자기 적군이 총구를 내렸다.
 갑작스런 행동에 설참을 당황해서 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뭐지?'

 설참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왜 이놈은 자신을 보고 쏘지도 않고 가만히 있더니 총구까지 내리는 짓을 할까 하고 생각했다. 왜 자신이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더 있나? …아니면 설마…인질?'

 설참은 순간 아까 동굴 쪽으로 간 옥실을 떠올렸다.
 
 "나야."

 그 때 갑자기 눈앞의 적군이 말을 하며 마치 항복하는 듯, 팔을 벌린 듯 손을 올렸다.



 그 군인이 총을 바닥에 버렸다.
 
 "……."

 설참은 너무 긴장 상태라 그 군인이 뭐라고 말하는지 제대로 못 들어서 대답을 못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미안해."

 그는 전쟁 시작 전 투덜거리던 외양이 눈에 띄는 군인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꿈에서도 못 잊을 목소리.

 그 군인은 모자를 벗고 입을 가린 천을 내렸다. 그렇게 어둡고 안개가 가득 끼었는데도 설참은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잊겠는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그 얼굴.



 설참이 총을 떨어뜨렸다.

 "돌아왔어."

 장신의 남자가 설참 앞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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