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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찰나의 회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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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찰나의 회복

SooyangLim 2021. 10. 21. 19:02

 "안돼요!"

 누군가 문간부터 달려와 설참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녀의 다리를 잡은 이가 소리쳤다.

 "왜 죽어요, 왜!"
 "…옥이?"

 옥이가 설참의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옥이의 손에는 이곳의 주소가 적힌 마타마이니 행성으로 가는 티켓이 꼭 쥐어져 있었다.

 "죽으면 안돼요, 제발…… 죽지 마요!"
 "살아…있었구나……."
 
 옥이는 목을 매달기 위한 끈을 붙잡고 있는 설참을 무덤 위에서 끌어내렸다.
 
 "왜 죽으려 해요, 왜! 죽어야 될 놈들은 어떻게든 살아있는데! 우리가 왜 죽어요… 왜!"

 옥이는 설참에게 목 놓아 부르짖었다. 그건 어쩌면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 진이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일 것이다.

 설참은 천천히 손을 올려 수척해진 옥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예전의 옥이의 모습은 간 데 없었다. 푸석한 얼굴에는 이제야 좀 아물기 시작한, 맞아서 생긴 자국이 가득했다. 그나마 보이는 부분이라 다른 곳에 비해 멀쩡한 얼굴이 그 정도였다. 옷 아래 몸에는 우주 9구역이 찍은 낙인들과 온갖 흉터가 가득했다.

 옥이도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설참을 바라봤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단련되어 있던 군인의 몸은 이제는 금방이라도 치면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둘은 말 없이 서로의 변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됐다. 그들은 서로 눈빛 속에서 외관보다 더 망가진 마음을 보게 됐다. 눈에 비친 눈부처가 보였다. 그 순간, 둘의 얼굴 위로 눈물이 타고 흘렀다. 



 옥실이가 옥이와 설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대문 밖에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옥실은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어서 얼굴엔 그 어떠한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다. 옥실은 마타마이니의 창백한 위성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치웠네."

 그들의 울음 소리가 잦아들 때 쯤, 옥실이 발걸음을 떼려는데,

 "어?"

 옥실은 갑자기 휘청했다.

 "너무 무리했나?"

 옥실은 자신의 컨디션이 갑자기 확 나빠지자 당황했다. 몸이 휘청일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자 엄청나게 불안해졌다. 옥실은 왜 이렇게 컨디션이 나빠졌는지 원인을 생각해보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옥실은 중얼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에이, 설마."

 그러다가 옥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심각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주인님? 만약이지만 제 생각이 맞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날씨는 다시 후덥 찌근 더워지고 있었다.

 "아주머니!"

 옥이가 일터에서 돌아왔다.
 설참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옥이를 반겨줬다. 설참은 이제 더 이상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지 않았다. 다시 전처럼 얼굴에 생기도 돌고 단단한 몸이 되었다. 

 "왔니?"
 "쉬는 날인데도 일해서 수고했다고 오늘 주인 아주머니께서 좀 싸주셨어요."

 장터의 식당에서 일하게 된 옥이는 싸온 음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감사하게도……. 부엌에 오라버니 있으니 오라버니한테 주거라. 데워서 같이 먹자고 하자."
 "네!"

 옥이가 부엌에 있던 옥실이에게 갔다.

 "오라버니~ 음식 싸왔어요!"
 
 이제는 옥실이가 옥이보다 더 어려 보이건만 옥이는 옥실이에게 꼬박꼬박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옥실이가 음식을 받아들며 말했다.

 "음식? 오늘은 이거 먹으면 되겠네. 아참, 옥아. 가방 사 왔지?"
 "응. 여기. 근데 가방은 왜?"
 "물건 정리 좀 하게." 
 "오랜만에 와서는 심부름이나 시키고."

 옥실이에게 옥이가 입을 샐쭉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용돈 많이 줬잖아."

 옥실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옥이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과분한 돈이었지만.

 "음식 데워줄테니 밥 먹을 준비 하고 와. 오늘 일찍 먹고 쉬자."
 "응!"

 옥실이의 말에 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방으로 갔다.

 옥실이 상을 차려서 마루로 들고 갔다.
 옥이와 설참이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는 안 먹느냐?"

 설참이 음식에 손도 안대는 옥실이에게 물었다.

 "낮에 뭐 좀 찾아서 먹고 왔거든요."

 옥실이 적당히 둘러댔다.

 "제꺼 다 드셔도 돼요. 전 아직 배불러서요."

 배고프거나 배부를 리가 없는 옥실이 말했다. 그러더니 옥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며 말했다.
 
 "아, 괜찮으시면 저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짐 좀 정리하게요."
 "짐? 네 짐이 있느냐?"
 "전에 몇 개 놔둔 게 있어서요."

 옥실이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말했다.

 "그래.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도 된다."

 설참의 말에 옥실이 고개를 까딱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실은 다른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옥이에게서 받은 가방을 열며 중얼거렸다.

 "…뭐 챙겨야 되지?"

 사실 여기에 옥실이의 짐 따위는 없었다. 옥실은 설참과 옥이의 물건을 이것저것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옥실은 마치 멀리 떠날 것처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옥이꺼만 챙기면 되려나? 아닐 일단 출발해서 짐을 전부 몰아줄까?"

 옥실이 중얼거렸다.

 "…딴 길로 새면 안 되는데. 잘 돼야 될 텐데."

 옥실은 그렇게 말 하고는 설참의 군복을 챙겨 놓은 짐 위에 따로 빼놓았다.



 그 날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깊은 새벽, 옥실은 눈을 반짝 떴다. 그리고는 외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들고나갈 짐을 체크했다.

 "…지금 깨워야 되나?" 

 옥실이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4시쯤 되면 깨워야지."



 고요한 새벽 산. 빽빽한 나무들 뒤의 동굴 앞. 그 앞을 잘 가리고 있는 나무들 틈 사이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닌가?"
 
 연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없지?"

 연기가 동굴 안까지 스며들었다가 다시 나무 틈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줄어들었다.
 그 때 연기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해? 그 때 아닌데."
 
 그 목소리는 약간 짜증이 섞인 듯했다.
 연기에서 반박하는 목소리가 났다.

 "맞는데? 아직 안 왔겠지."
 "아냐. 왜 시작하는 날에……."
 "아, 시작하는 날이었군."
 "아니라니까."



 연기가 갑자기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것 처럼 수축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깊은 새벽, 갑자기 나눠진 구레아 중 한 쪽의 내각이 긴급 소집됐다.
 그리고 긴급 소집이 있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하고 있던 군인들 중 하나가 옆의 군인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일이 빨리 진행됐잖아. 누구라도 좀 막을 줄 알았는데."

 그는 옆의 군인들과는 달리 유난히 튀는 말투와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의 군부는 어떠한 빌미라도 있으면 바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옆에 있던 군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원까지 치워버렸지 않네. 말릴 이가 누가 있갔어."

 김원이 사라진 이후, 이곳에서는 더 빠르게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었다. 마타마이니의 구레아국의 분할을 막고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길 바랬던 이들은 적어도 이쪽에서는 모두 제거됐다. 전쟁을 말릴 이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구레아에는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았다.

 "…하긴."

 유난히 튀는 외양과 말투의 군인이 씁쓸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일이 이렇게 되다니.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이념 전쟁에 휘말릴 줄이야.'

 튀는 외양을 가진 군인이 자신의 속마음을 목구멍에서 삼켰다.


 
 소집된 내각이 긴장된 얼굴로 그들 중심에 있는 자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숨 막히는 정적 끝에, 그의 입이 드디어 떨어졌다.

 "전쟁을 시작을 명령 한다."

 구레아를 초토화 시킬 전쟁이 이 한 마디의 말로 시작됐다.



분할된 다른 쪽 구레아의 군부대-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자고 있던 군인은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외침에 가까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큰일났습니다!"
 "…지금 새벽이라네."

 급하게 상관에게 소리치는 부관에게, 그의 상관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 날은 휴일이었다. 휴일 새벽 단잠을 깨운 것에 그는 짜증이 났다. 하지만 부관은 개의치 않고 다급하게 말했다.

 "기습입니다!"
 "기습?"
 "처들어오고있습니다!"
 "또 국지전이야?"

 그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상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 비상소집을 해야 합니다!"
 "뭘……. 늘 있는 일이잖아. 그리고, 지금 우기인 거 몰라? 어차피 밀고 오지도 못해. 대응이나 잘 해."

 상관은 그러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옥실은 눈을 감고 주인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시계보다는 시계바늘 뒤의 거울이 의미 있지."
 "네? 하지만 그 시계는……."

 옥실이 주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반드시 시계를 갖고 다녀."

 옥실의 주인이 말했다. 옥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새벽, 옥실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멀리서 포탄 소리가 감지되는 듯 했다.





 휴일날, 새벽 4시. 구레아 전쟁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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