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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epilogue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epilogue

SooyangLim 2021. 11. 1. 19:03

 믿을 수 없다는 표종으로 설참은 장신의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에 손 끝이 닿자 설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장신의 남자에게 안겼다.

 "보고 싶었어."
 
 장신의 남자가 설참을 안고 말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그를 안고 있던 설참이 말했다.

 "…꿈이라면 제발 날 깨우지 말아다오."

 설참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자신의 품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꿈 아니야."

 그 때, 동굴을 살피러 갔던 옥실이 그들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동굴 다 치웠어요."

 설참은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고 옥실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알고 있었느냐?"
 "뭘요?"
 "…전부."
  
 설참의 물음에 옥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는 정보력이 좋거든요. 계획도 잘 세우고요."



 동굴에 들어가자 설참이 물었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실종자나 사망자 명단에도 없고……."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 안 죽었으니까."
 "어떻게 된 것이냐?"



헤렌스만 행성 폭파 날-

 장신의 남자가 탄 기체가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 행성이 터졌다. 그 충격 여파로 게이트가 부서지면서 닫혀버리고, 그 앞에 있던 기체가 충격 여파에 밀려 튕겨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경로를 잃고 추락하듯 비상 착륙을 해버렸다. 



 "…뭐야?"

 장신의 남자가 깨어나며 말했다. 기내의 다른 승객들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왜 깼지?"

 그는 자신의 눈앞에 생존 키트가 주렁주렁 내려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정신이 말짱해질수록 충격 여파로 온 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암만 봐도 아직 마타마이니 행성의 구레아인 것 같았다.

 "…추락했나?"
 
 그는 곧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헤렌스만 행성이 터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젠장. 옥실이 이 자식이……."

 장신의 남자는 옥실에게 욕짓거리를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 아닌가. 죽을 뻔 했는데 산 건가."

 장신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그는 엄청난 고통에 비틀거렸다. 생각보다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듯했다. 슬슬 주변 이들도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기체의 비상 개폐 장치를 이용해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아, 진짜 짜증나네. 아프기는 또 뒤지게 아프고. …근데 여긴 어디야?"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그는 한참을 걸어서 민가에 가서야 이곳이 어딘지 알게 됐다.

 "파운 근처라고?"

 그는 과거 설화의 고향 근처에 온 것을 깨달았다. 

 "젠장. 어떻게 돌아가지?"

 그는 온 몸이 아프니 일단 숙박업소에 들러 며칠을 묵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쉬는 사이 해방을 맞이해버렸다.

 그렇게 해방을 맞이하고, 시일이 한참이 흐르는 동안 그는 회복을 위해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김원과 범백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며칠 뒤, 옥실이 찾아왔다. 

 "어 왔냐? 어떻게 알고 또 찾아왔냐." 
 "하하."

 옥실이 어이없는듯 웃음을 터뜨리며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왔다.

 "제대로 절 제대로 엿 먹이고 가셨던데요."
 "엿 먹이다니. 말이 심하잖아. 그냥 나 없는 동안 지켜달라고 부탁한 거야."
 "시계만 말 하는 거 아닌 거 아시잖아요?"
 "…뭐 더 있나?"

 장신의 남자가 뭘 말하는 건지 감을 전혀 못 잡아서 잠깐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옥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하지 말라고 했죠."
 "뭘?"
 "하. 됐어요. 신경 쓰지 마요. 제가 치웠으니까."

 옥실이 넌덜머리 난다는 듯 손과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옥실이가 무슨 말하는지 눈치 못 채고 말했다.

 "어쨌든 왔으니 잘 됐다. 이제 몸도 좀 괜찮으니까 설참한테 가야겠어. 나 없어서 걱정하고 있겠네."

 그 말에 옥실이는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이제 진짜 돌아가야죠! 대형 사고까지 쳐놓고는 또 무슨…"
 "뭔 대형 사고야. 보러 갈 거야."
 "안 돼요. 이제 진짜 안 돼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를 가질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이상 절대 안돼요."
 "…뭐?"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너 치웠다는 게 뭐야."
 "당신 애요."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옥실을 바라봤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평화적으로 제거했으니."

 옥실은 팔짱을 낀 채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한참이나 말없이 옥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쓰레기 새끼야."

 옥실이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저한테 하실 말은 아닐 건데."

 장신의 남자는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가, 머리도 마구 헝클어뜨리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옥실에게 말했다.

 "…이러고 어떻게 그냥 가? 여기서 계속 살다가 가야겠어."
 "뭐라고요?"
 "당장 만나러 가야겠어."

 장신의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떻게 가야 돼?"
 "…하."

 옥실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지금 구레아 분할 중인 거 알죠? 못 가요. 곧 전쟁 날 건데 무슨……. 군대에 들어가서 전쟁 중에 보는 거 아니면 못 봐요."
 "그렇게 할게."
 "참 나."

 앞뒤 재지 않고 대답하는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은 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장신의 남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해."

 옥실이 어절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에요."



 "원래 시간에 탔으면 죽었는데, 다음 꺼를 탔거든. 파운에 추락했었어. 그리고 곧 구레아가 분할돼서 못 오고 있었지. 근데 너 만나려면 군대에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어서 이렇게 널 만나러 온 거야."

 장신의 남자가 설참에게 설명했다. 

 "…돌아와줘서 고맙다."

 설참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말했다.

 "너도 고생많았어. 아참."

 장신의 남자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그녀의 손에 끼워줬다. 
 설참은 그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



 깊은 새벽,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피곤한 시간을 보냈던 그들은 여전히 잠에서 빠져 있었다. 그때 옥실이 동굴에 들어와 장신의 남자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요."
 "…응?"
 "이제 돌아가야죠."
 "무슨 소리야. 어떻게 돌아가. 여기서 계속 살다가 갈 거야."
 
 그 말에 옥실이 버럭 화를 냈다.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자꾸 그럴 거예요!?"

 옥실이 화 내는 소리에 장신의 남자의 품 안에서 설참이 잠에서 깨버렸다. 그리고는 황급히 덮고 있던 옷으로 몸을 가렸다.
 옥실은 타겟을 바꿔서 설참에게 말했다.

 "가야 돼요. 전쟁통인걸 잊은 건 아니겠죠?"

 옥실의 말에 설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나와요."
 
 장신의 남자에게 단호하게 말하고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옥실이 동굴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주변에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해졌다. 옥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빽빽한 나무들 틈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때 동굴에서 장신의 남자가 먼저 나왔다.

 "뭐야, 웬 연기가…"
 "주, 주인님……."

 옥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옥실이의 말에 장신의 남자의 눈이 커졌다.

 "가져와."

 연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장신의 남자가 쥐고 있는 시계 주변에 아지랑이 같은 연기가 감쌌다.

 "안 돼요! 아직 안 돼요! 지금 못 돌아가요!"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면 쓰나."
 "안 돼요…! 제발…!"
 
 장신의 남자가 시계를 꽉 쥐고 고집을 부렸다.
 옥실이 걱정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혹시나 저 안에 여자가 아이를 가질 수도 있어요. 확인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상황에서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

 그때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는 틈으로 다른 형체가 걸어나왔다.
 그 형체를 본 옥실은 눈에 띄게 마치 겁을 먹은 것 처럼 눈에 띄게 덜덜 떨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확실히 고장났군."

 걸어나온 이는 밀 메이커였다. 



 밀 메이커가 옥실의 이마를 한 번 탁 쳤다. 그러자 옥실의 떨림이 멎고 표정이 사라졌다.

 "수리 해야겠네."

 옥실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틈 사이로 걸어 나가 버렸다. 밀 메이커가 장신의 남자 앞에 서서 말했다.

 "남의 걸 훔치면 안 되지."

 장신의 남자는 시계를 꽉 쥐고는 밀 메이커에게 애원했다.

 "안 돼요. 지금 못 돌아가요. 제발……."
 "그만 고집 피워. '지금'은 그냥 돌아 가. 나중에 만나게 해 줄테니. 어차피 얼마 안 남았어."
 "네?"

 밀 메이커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멈칫했다.
 그 틈을 타 연기가 결국 장신의 남자의 손아귀를 벌리고 시계를 가져가 버렸다.
 밀 메이커가 달래듯 말했다.

 "이 정도면 넌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준 거야."

 밀 메이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돌아 가자."

 시계까지 뺏긴 장신의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연기가 새어 나오는 틈 사이로 걸어 나갔다. 틈을 통과하는 그의 모습은 걸어 나가기 이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나가버렸다.

 "잠깐. 약속은 지켜야지."

 연기에서 나는 목소리가 말했다.

 "그래야지."

 밀 메이커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기가 새어나오는 나무들 틈 사이로 걸어 나갔다.



 연기가 진공 청소기로 틈 사이로 빨아들이듯 빨려 들어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어디 갔지?"

 설참이 동굴에서 나왔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간 거지?"

 설참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어?"

 눈 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새벽의 어둠은 간 데 없고 해 질 녘의 노을이 사방에 깔려 있었으며, 빽빽한 나무 대신 사람과 도시의 건축물이 가득했다.

 "이, 이게 무슨…!?"

 설참은 놀라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주머니!"

 설참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부뫼의 역사 앞에서 옥이가 자신을 발견하고 뛰어오고 있었다.

 "옥이?"
 
 옥이는 설참은 만나자 안고 엉엉 울었다.

 "이게 무슨…?"
 
 설참은 멍한 상태로 울고 있는 옥이를 안아주었다.
 옥이는 눈물을 흘리며 설참을 얼싸안았다.

 "매일 역 앞에서 기다렸어요…! 저는 정말… 죽은 줄 알고… 살아계셨다니!"
 "……."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해가 바뀌고도 안 오셔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어요……. 거의 반년 만에야 돌아오시다니…….."
 
 옥이가 이제 환히 웃으며 말했다.

 "어서 집으로 가요! 아, 옥실 오라버니는요?"
 "…돌아오겠지." 

 설참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옥이가 오늘도 마중 나와 있는 운전기사의 차 쪽으로 설참을 데려가며 말했다.

 '모든 게 꿈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타는 데,   

 "아."

 그녀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꿈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부뫼에 있는 새 집에 도착했다.
 옥이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왔다.
 
 설참은 조용히 옥이를 불렀다.

 "…옥아."
 "네?"
 "할 얘기가 있단다."

 그 날부터 설참은 임신 기간 동안은 물론 아이를 낳고 죽을 때까지도, 매일 자신이 사랑했던 신비한 남자에 대한 얘기를 했다. 옥이는 설참에게 글을 배우며 설참이 한 얘기를 매일 일기로 적게 되었다.

 "미안하다, 옥아."
 "아니에요, 아주머니."
 "아이를 잘 부탁한다."

 설참이 아이를 낳은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설참은 반지를 옥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운 이들을 보러 가야겠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숨을 거뒀다. 그녀는 끝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332년 마지막 날 병원-

 밖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설참이 남긴 반지를 낀 중년의 여인은 노인이 남긴 일기장을 덮었다. 창 밖에 내리던 눈을 바라보던 노인이 말했다.

 "…네 어머니는 눈꽃 같으신 분이었어. 너처럼."

 이제는 노인이 된 옥이가 말했다.

 "늦게 알려줘서 미안하다."
 "……."
 "그리고 고맙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를 닮아 날카로운 눈매를 닮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좀 자야…겠다. 간호사를 불러……."
 
 힘 없는 목소리로 노인이 말했다. 중년의 여인이 협탁에 노인의 일기장을 올려두고 간호사를 부르러 나갔다.

 노인은 잠시 눈발이 날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주머니. 아직도 전쟁은 안 끝났어요. 저는 못 보지만……"

 그 때, 열린 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며 말했다.

 "고생 많았습니다."

 그 누군가는 밀 메이커였다. 밀 메이커의 말을 들은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미소를 띄운 직후, 노인은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밀 메이커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일기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밀메이커가 방을 나가고 얼마 뒤, 간호사와 반지를 낀 중년의 여인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노인은 영원한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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