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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보석의 섬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보석의 섬

SooyangLim 2021. 9. 20. 19:01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4년 마지막 달 일곱 번째 날-

 마타마이니 행성의 최강 국가 아즈국.
 아즈국 본토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보석이 많은 섬이 있었다. 마타마이니에서 가장 큰 바다 위에 위치한 그 섬은, 우주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는 문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우주 9구역과 대립하고 있는 마타마이니 행성의 다른 전쟁 중인 국가들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우주 9구역과는 긴장 관계가 계속 되고 있었다. 그래서 보석의 섬에 만약을 대비한 자원이나 병력을 모아 두고 있었다. 

 보석의 섬은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 날은 참 날이 맑았다.
 
 선전포고 없이 하늘이 열렸다.
 기습이었다.

 공습이 시작됐다.

 

 "거, 훈련 한 번 살벌하게 하네."
 
 하늘이 열리고 비행체가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훈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폭탄이 쏟아붓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그들은 지금 이 상황이 훈련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을 했다. 보석의 섬에 주둔 중인 아즈국 군인들은 그때가 돼서야 반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전쟁 시작 전에는 전쟁을 시작한다고 알리고 시작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9구역은 애매한 어휘로 경고인지 전쟁 선포인지 헷갈리게 했다. 그리고 공식 통신으로 선전포고가 제대로 닿기도 전에 공습을 시작했다. 게다가 장문으로 보낸 탓에 한참이나 암호 번역에 시간이 걸리게 만들었다.

 좋게 말해서, 참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하하!"

 비행체에 타고 있던 우주 9구역 파일럿이 터져나가는 보석의 섬을 보면서 웃었다. 그는 저공으로 날면서 아즈국 소속 전함과 비행체들이 폭격을 맞아 박살 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발 아래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그들이 날고 있는 하늘 위까지 피어올랐다. 



 배의 갑판이 폭탄에 맞으면서 굉음이 울려퍼졌다. 신나게 웃던 우주 9 구역 조종사는 치솟는 불기둥에 급히 방향을 틀어 고도를 올렸다. 

투두두두두

 하지만 피한 방향으로 총성이 울렸다.

 "이런!"

 기체의 날개에 총탄이 맞은 모양이었다. 그는 고도를 더 높이면서 방향을 요리조리 틀었다. 

 "어라?"

 방향을 틀다 보니 이상하게 주변에 아군의 항공 기체가 많다는 것을 눈치챘다.

핑-

 하늘을 가린 자욱한 연기를 뚫고 갑자기 하늘로 가느다란 빛이 한줄기 쏘아 올려졌다. 그 빛은 자신들이 9구역에서 올 때 열어둔 문쪽으로 나있었다.

부웅-

 이 시끄러운 공습 와중에 확연히 구분되는 소리가 났다.

 "젠장!"

 그는 급하게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번쩍

 섬광이 번쩍였다.
 보석의 섬에서 하늘 위로 두꺼운 빛의 기둥이 일직선으로 쏘아 올려졌다. 그 빛의 기둥은 마타마이니 행성 밖 우주공간의 제법 먼 곳까지 뻗어나갔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순간의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폭발도, 연기도, 불꽃도, 흔적도 없었다. 빛이 지나간 자리, 하늘을 가득 메우며 떠돌던 수많은 기체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방금 전까지 하늘에 열려있던 문도 강제로 닫혀버렸다. 문이 있던 자리에는 그저 깨끗한 하늘만 보였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파일럿의 몸과 기체는 빛이 지나간 자리를 제외한 삼분의 일만 남기고 사라져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방금 그 빛은, 마치 마타마이니 최강 국가 아즈국의 심기 불편한 헛기침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 한 방이었다.



 아즈국 본토에서는 전달 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서 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이 소식은 아즈국 뿐만 아니라 마타마이니 행성 전체에 전달되었다.



 아즈국 본토에 소식이 전달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철그럭

 열쇠 꾸러미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어두운 감옥 안을 울렸다. 여러 간수들의 서두르는 듯, 설레는 듯, 하지만 비장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각자 다른 열쇠 꾸러미가 달려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가진 열쇠를 하나씩 열면서 감옥의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덜컹

끼익-

 마지막 두꺼운 쇠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면서 빛줄기가 안에 있던 인물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 빛의 면적이 점점 넓어졌다. 그 안의 인물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의 눈 앞까지 다가 온 간수들을 바라봤다. 

 "석방이오."

 9구역의 입김으로 옥에 갖혀있던 우펜자가 석방되었다. 

 

 "오늘 어쩐지 시끄럽네."

 장신의 남자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인데도 시장에서 많인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는 것을 보자,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들은 식량을 사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옥실이 고개를 덤덤하게 말했다.

 "오늘 아즈국이 공격당한 날이니까요."
 "아즈국?"
 "보석의 섬 공습이요. 아즈국 지도자가 오명 속에 남을 날이라고 했던 그 날이요."
 "아, 그 날이구나. 조만간 구레아 임시정부도 선전포고 날리겠구만."

 장신의 남자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옥실이 목소리를 낮추어 나지막히 말했다.

 "참 다행이에요."
 "다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장신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타마이니의 위성이 공전 주기 덕분에 아즈국이 쏜 방향의 반대쪽에 있었다는 점이요. 마타마이니 명물인데 모양이라도 변했으면 아깝잖아요."

 옥실이 마타마이니의 하늘에 떠 있는 위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위력이 그 정도였어?" 

 장신의 남자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문을 닫는 게 주 목적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거라는 말이 많더라고요."
 "대단하네."
 
 장신의 남자가 혀를 내둘렀다.

 "아참. 그 얘기 했나요? 왕자님이 9구역 사관학교에서 졸업하신 후에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응? 무슨 말이야? 뭘 찾는다는 거야?"

 옥실이 장신의 남자를 가리켰다.

 "나? 나를 찾는다고? 왜?"
 "네. 홍화가 죽은 후로 연락이 안 되고 있어서요."
 "나를 왜?"

 장신의 남자가 의아한듯 말했다.

 "잊었어요? 우리 아직 빚이 하나 남았잖아요. 9구역이 우주 여러 행성에 가스 학살과 생체 실험을 시작한 뒤로 왕자님도 공포를 느끼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 근데 우리 빚이 남았었나?"
 "나즈에서 빠져 나올 때 제가 중간에 멈추는 바람에 도간에 들러서 왕자님한테 갔었잖아요."
 "아! 맞다. 그랬었지, 참."

 장신의 남자는 그제야 기억을 해냈다.
 옥실이 장신의 남자한테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애인 살려줬는데 그걸 잊어요?"
 "그 때는 아니었… 어? 아? 어? 아니, 야, 그……."

 옥실이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너, 너, 그… 너… 알고 있었…어…?" 
 "모를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뭔데요?"
 "……. 그래. 네가 모르기가 힘들긴 하지……."
 "그렇죠."
 "…근데 난 네가 알게 되면 말릴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옥실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런 옥실이의 침묵에 장신의 남자는 괜히 말을 덧붙였다.

 "야. 그, 그래도 걱정 마! 난 지킬 건 지키고 있다?" 
 "…."
 "…그, 어 음…."
 "…."
 "괘, 괜찮을 거야. 그렇…지? 괜찮은… 거지…?"

 장신의 남자는 옥실이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 근데 어차피 아무 일 안 생기지 않아…? 그, 그러니까… 내 말은…… 아직 아무 일도 안 저지르긴 했는데……."
 "…무슨 일이 안 생겼으려면 절 여기 데려 올 수도 없었어야 되지 않을까요?"

 옥실이가 장고 끝에 입을 뗐다.
 장신의 남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일 치고 다니다 보니 옥실이의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고 요즘 들어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옥실이의 말에 괜히 더 미안해졌다.

 "…미안."
 "예에? 뭐에요?"

 장신의 남자의 사과에 옥실이 깜짝 놀랐다. 옥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장신의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왜 이래요?"
 "응?"
 "갑자기 사과를 왜 해요?"
 "아니, 그냥……. 너 요즘 컨디션 안 좋은 게 나 때문 인 것 같아서."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죠. 그래도 지금까지 뻔뻔하다가 이제와서 웬 사과예요?"
 "나도 양심이란게 있거든?"
 "와, 진짜 안 어울리는 소릴 다 하시네요. 애인 생기더니 개과천선이라도 하셨나?"

 옥실이 빈정대듯 말하자 장신의 남자는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괜히 삐진 척 말했다.

 "기껏 사과했더니 그러기냐? 됐다. 난 먼저 간다."
 "쑥쓰러워 하시기는."
 
 장신의 남자가 집 쪽으로 서둘러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옥실이 중얼거렸다.

 "…왜 제어가 안 되는 거지?"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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