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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옥이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옥이

SooyangLim 2021. 9. 27. 19:01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5년-

 "어쨌든 우리 군을 위해서 해소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난 번 나즈 대학살 이후 우주 9구역의 수뇌부들 중 하나의 말.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생각해낸 것.
 그 생각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
 
 

 "산에 다녀올게요."

 나는 옆집 친구와 먹을 것을 가지러 산에 다녀오기 위해 광주리와 호미를 챙기며 아주머니께 말했습니다.

 "옥아, 조심해서 다녀오렴."

 나는 친구와 같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은 날이 갈수록 민둥산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집에 먹을 것이 없나 봅니다.  
 우린 그날도 나무 뿌리를 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무 뿌리도 죄다 캐어 가서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땅을 파고 있던 도중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얘, 옥아. 그거 들었니?"
 "무얼?"
 "우주 9구역이 자기네 구역에서 일할 이들을 뽑는다고 하더라고. 돈도 제법 준다고 들었어."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공장이래."
 "공장?"
 "그리고 군대에서 군인들 밥하고 빨래 해주는 일도 있데. 돈을 꽤 주나 봐."

 나는 그 말을 들으니 솔깃해졌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거기서 돈 좀 벌면 굶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먹을 것을 살 수 있잖아."
 "난 돈 벌면 흰 쌀밥을 먹어보고 싶어."
 
 친구가 말했습니다.
 난 예전에 아주머니가 말한 음식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아주머니가 말한 맛있는 다과를 먹어보고 싶어."
 "다과?"
 "우리 집에 살던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사다 준 적이 있었는데 엄청 맛있다고 했어. 단 맛이 난데."
 "단맛이 난다고?"
 "응. 꿀이 들어갔을지도 몰라."
 "꿀이라니! 그렇게 비싼 건 우리가 백날 벌어도 못 사 먹어."
 
 친구가 핀잔을 줬습니다.
 난 그 말에 괜히 오기가 생겨 말했습니다.

 "많이 벌면 되지! 난 돈 많이 벌거야. 열심히 일 해서 많이 벌거라고!"
 "우린 지금 뿌리나 캐고 있는데 돈을 어떻게 벌겠다는 거야?"
 "조금 전에 네가 말 했잖아. 공장에서 일할 이들을 뽑는다며?"

 내 말에 친구는 놀란듯 말했습니다.

 "너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아무 데도 안 간다며?"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내가 흰 쌀밥을 해놓고 기다리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네. 우리 오라버니랑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내가 돈 벌어서 쌀밥을 해놓으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친구가 호미질을 멈추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옷도 짓고, 흰 쌀밥도 먹고……. 분명 기뻐하실 거야."
 "맞아. 난 우리 아주머니가 굶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 항상 나한테 먹을 걸 주시고 굶으신단 말이야."
 
 나는 아주머니가 야위어 가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돈을 벌면 아주머니도 굶지 않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한 번은 아주머니에게 오늘은 내가 배부르다고 굶지말라 말했더니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나는 그날 아주머니에게 안겨 눈물을 쏙 뺏지요.

 "오늘 당장 가지 않을래? 오늘부터 빨리 일 해서 월급 받으면 조금이라도 덜 곪을 수 있잖아."

 친구가 말했습니다.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자리에서 같이 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나는 곧장 산을 내려와서 아주머니에게 일 하러 간다고 알리려 했습니다.

 "아주머니!" 

 집에는 아주머니가 안 보였습니다. 나는 뿌리를 캔 바구니를 내려놓고 집 안을 살폈습니다. 물독이 사라진 것을 보니 물을 길러 가셨나 봅니다.
 나는 친구와 같이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있어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과 일 하러 떠나겠다는 글만 남겨놓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주머니를 못 보고 집을 나왔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성급히 서둘렀을까요?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온 설참은 아직도 집에 불이 켜지지 않은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옥아. 옥아? 자니?"

 설참은 혹시 옥이가 자고 있나 싶어 불러봤다. 하지만 집은 고요했다. 방문을 열어보니 옥이의 옷가지가 없었다.

 "어?"

 설참은 옥이가 사라진 걸 확인했다. 

 "옥아?"

 설참은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부엌에 놓인 뿌리가 담긴 바구니를 발견했다. 그 안에 글이 적힌 천조각이 하나 있었다. 설참은 글을 읽고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뭐…?"

 설참은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다급하게 옆 집으로 갔다.

 "따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진이? 옥이랑 같이 공장에 일하러 간다던데? 옥이가 말 안하고 간 거요?"

 옆집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글… 글만 남겨놓고 나갔습니다."

 설참은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섭섭하겠어. 그래도 걱정마요. 돈 벌어서 쉬는 날 집에 들를 거라고 하더라고."
 "…알겠습니다."

 설참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설참은 우두커니 서서 집을 둘러봤다.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휘이잉

 이제 집에는 그저 스산한 바람만이 집 안을 맴돌 뿐이었다. 설참은 고민했다. 떠나야 할지, 아니면 남아서 옥이와 죽은 홍화의 남편을 기다릴지. 

 설참은 일단 방 안으로 들어가 벽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군복을 꺼냈다.

바스락

 군복 주머니에서 말라비틀어진 꽃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옥이가 홍화라며 준 꽃이었다.

 "…허탈하구나."

 설참은 갑자기 밀려오는 상실감과 외로움, 허탈함, 무력감,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키려는 것들이 모두 흩어져 날아간 것 같았다. 죽고자 했던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고, 지키려 했던 것들은 모두 떠난 것 같았다.

 "아아……."

 설참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덜컹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설참은 놀라서 뒤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왜 울고 있어?"

 장신의 남자가 놀란 얼굴로 서있었다. 옥실은 식량을 마루에 내려놓고 있었다.

 "숨어 있는다더니……."

 설참이 눈물을 멈추고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다급히 방에 들어와 설참 옆에 앉으며 말했다.

 "옥실이 상태도 안 좋고 해서 쉴 겸 잠깐 얼굴 보러 왔어. 근데 옥이는? 아니, 것보다 대체 왜 울고 있는 거야…?"  
 
 설참은 말 없이 장신의 남자에게 옥이가 남겨놓은 글이 적힌 천조각을 내밀었다. 장신의 남자는 천조각을 받아 들어서 가만히 보다가 옥실이를 불렀다.
 옥실이는 옆에 앉아서 천조각을 받아들었다. 옥실이 천에 적힌 글을 확인하고는 버퍼링이 걸린 듯 가만히 있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옥실이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설참에게 말했다.

 "여기 적힌 바로는… 9구역에서 일 할 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 벌러 공장에 갔다고 해요."
 "그래. 일하러 떠난 거야. 걱정 마. 괜찮을 거야. 돈 벌어 오겠지."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하지만 옥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옥이는 이제 못 돌아올지도 몰라요."
 "무슨 말이야?"

 뜬금 없는 말에 장신의 남자가 의아하게 물었다. 옥실의 말에 설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돌아온다해도… 옥이는 아마……. 영 좋지 않을 거예요……."
 "그,그게 무슨 말이냐…?"

 설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옥실이 주저하다가 말했다.

 "이거… 취업 사기예요."
 "취업 사기라니…?"
 "그게……."



 "떨린다. 나 이런 거 처음 타 봐."
 "나도."

 친구와 나는 9구역으로 가는 거대한 공중 함선을 탔습니다. 그 함선에는 우리 같은 소녀들을 많이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함선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빠 사진이 든 보따리를 꼭 껴안고 말했습니다.

 "공장은 어떤 곳일까?"
 "매캐한 연기가 많이 나는 곳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왜 창문을 다 가려놨지? 우주를 보고 싶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제서야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창문은 검은 천으로 다 가려져 있었습니다.

 "아쉽다. 나도 바깥 보고 싶었는데. 하늘의 문을 통과하는 걸 보고 싶었어."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때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잠시 잠들게 될 것이라는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 안 돼서 나는 의식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응?"
 "다 왔나?"
 
 다들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렸습니다.



 공중 함선이 거칠게 바닥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군인들이 들어와 소리쳤습니다.

 "내려!"

 나는 그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우리는 군인들의 윽박에 두려워하며 내렸습니다. 

 "어…?"

 그곳은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였습니다.

 "어어…?"

 난 그 시점에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소녀가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그들은 총을 쐈습니다. 아이는 총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마구 두드려 맞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그 모습을 보고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끌고 가서 방이 초소와 천막 등으로 다닥다닥 붙은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나눠진 구역마다 하나씩 배치시켰습니다.
 그 안에는 딱딱한 침대가 있었습니다.

 "방…?"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데 갑자기 군인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보따리가 떨어졌습니다.

 "꺄악!" 

 나는 그 날 강제로 순결을 뺏겼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는 매일 몇십 명에게 범해졌습니다.    



 "옥이는… 공장으로 간 게 아니에요."

 장신의 남자가 설마하는 표정으로 옥실이의 말을 막았다.

 "아. 잠시만."
 "왜? 어딜 갔다는 것이냐? 알고 있느냐?" 

 장신의 남자의 반응에 설참이 불안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장신의 남자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옥실아, 설마…그거야? 옥이가… 설마……."
 "그런 것… 같아요……."
 "아 젠장. 지금 못 데려와?"
 "이미 떠났어요……. 전 지금은 못 움직여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참이 둘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물었다. 

 "옥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냐?"
 "……."
 "……."

 두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대답이 없었다.
 설참은 더 불안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
 "……."
 "말 해!"

 설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옥실이의 눈치를 보던 장신의 남자가 눈을 질끈 감더니 말했다.  

 "…옥이가… 안 좋은 곳에 간 것 같아."
 "어딜 말이냐?"
 "아마도… 전쟁터에……."
 "전쟁터?"

 설참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지금 다른 구역 행성의 전쟁터에 있어요."

 옥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쟁터라니? 공장이 아니라?"
 "그게……."

 장신의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전쟁터에서··· 9구역 군인들이… 여자를… 그러니까… 어… 음… 필요하다는… 그런… 명목으로… 어… 데려간 것… 같아…."
 "여자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데려갔다니?"
 "그……."
 
 장신의 남자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성적으로……."
 
 장신의 남자가 여기까지 말하자 옥실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옥이랑 친구가 취업 사기를 당해서 전쟁터에 강제로 성노예로 끌려간 것 같아요."

 그 말에 설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에 푹 고꾸라지듯 엎어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전 잠시 나가 있을 게요."

 옥실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벽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닫아버렸다. 
 장신의 남자는 말 없이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안아줬다.

 "흐으윽……."

 설참은 장신의 남자에게 기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다가 결국은 오열했다. 
 
 
 
 "뭐라도 먹어야지."

 장신의 남자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혹은 뭔가를 먹으면 다 토해버리고 있는 설참에게 말했다. 그녀는 방 안에 앉아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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