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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영화 「위대한 우주」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영화 「위대한 우주」

SooyangLim 2021. 9. 16. 19:01

 "6개월 내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죽은 홍화의 남편이 말했다.
 설참이 언짢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허! 성하고 이름을 바꾸라니. 웃기는 소릴 하는군."
 "접수가 거의 안 돼서 약이 바짝 오른 모양입니다. 초조해 보이더라고요."
 
 한동안 약을 못 먹어서 쇠약해진 홍화의 남편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는 방금 끓여 온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마시며 말을 이었다.

 "전국에 학자나 높으신 분들, 지방의 터줏대감들 위주로 빨리 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입니다. 우주 9구역 친인사들한테 계속 압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쉽지 않은가 봅니다. "
 "그렇겠지. 쉽게 될리가 있나."
 "예상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설참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구레아가 어떤 곳인데? 부모에게 받은 것에 대해서 끔찍이도 생각하잖아. 가문에 대한 자존심도 강하고. 근데 이름과 성을 바꾸라고? 될 리가 있나. 차라리 자기 이름을 욕으로 바꾸고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걸."
 "어쩐지."

 홍화의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설참은 홍화의 남편의 말에 의아하게 물었다.

 "어쩐지라니?"
 "옆 동네 할아범이 '쉬이 발럼드라'로 바꾸려다가 맞고 쫓겨났다더라고요."
 "하하."
 
 설참은 옆 동네 할아범의 작명에 웃음을 터뜨렸다.

 홍화의 남편과 설참이 웃긴 작명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 집 밖의 마루에서는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펜자가 크게 다친 것 같아요."

 옥실이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잠들어 있는 홍화의 딸, 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비폭력 저항 행진이었는데 그리 된 거지?"
 "네. 행진하는 이들 중에 죽은 이들도 많죠."
 "하……."

 장신의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날선 협곡의 학살……. 그 날이 심장부를 꿰뚫는 창이 되어 자기들을 찌를 줄은 모르고 말이죠."
 "…이제 우펜자는 예전에 우리가 봤던 우펜자가 아니네."

 장신의 남자가 자신이 봤던 우펜자를 떠올리며 말했다.
 옥실이 장신의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또 우펜자 보러 가려고요?"
 "아니. 안 그럴 거야."
 "다행이네요."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속내를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우펜자에게 다시 나타나면 이젠 도로 약해질 것 같아. 무너지면 어떡해. 갑자기 다 포기한다고 할 수도 있잖아."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은 시를 읊듯이 말했다.

 "고통과 괴로움에 몸서리칠 때마다 생각했다. 무너져 내리는 많은 나와, 나의 시간들 속에서 생각했다. 나를 버티게 하는 내 안의 그대. 세상의 모든 이가 그대이어라. 그대 일 수도 있는, 나일 수도 있는 세상의 모두. 이 세상을 마음 속에 그리며 매 순간을 의지로 다잡았다. 아, 평화!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 평화는 길이자 목적이며 가장 강력한 무기이어라."

 옥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장신의 남자의 손이 동작을 멈춰버렸다.

 "…우펜자 자서전에 나오는 말이지?"
 "아가페적인 사랑이나 신실한 미사여구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당신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니."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말했다.

 "나에 대한 사랑고백 아냐."
 "네?"
 "세상의 모든 이가 나고, 우펜자 자신일 수도 나 일 수도 있는 세상의 모두라며. 우펜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다는 말이잖아. 아가페적인 사랑에 더 가까운 말이지."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이 말 없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렵네요."
 "우펜자가 누구예요?"
 
 옥이가 갑자기 물었다.

 "어, 깼어? 시끄러웠어?"

 장신의 남자가 당황하며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방금 깼어요."

 옥이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옥이 일어났으니까 밥 먹자고 할게요."

 옥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추위가 가고 날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세상은 그처럼 얼어붙을 수가 없었다.

 "썩을 것들. 전쟁한답시고 식량으로 싹싹 다 긁어가니 다들 산에서 캐서 먹느라 산에도 먹을 게 없어. 동물이나 식물은 고사하고 흙까지 먹게 생겼어."
 "전에 갔을 때 껍질 안 벗겨진 나무가 좀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도 없던가요?"
 "응. 나무 껍질도 없어."

 설참이 몸이 안좋은 죽은 홍화의 남편에게 말했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산에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왔지만 영 수확이 좋지 못했다.

 "가을, 아니… 여름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홍화의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설참은 장담못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 이럴 때 녀석들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 날 갑자기 또 사라진 장신의 남자와 옥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식량을 구하러 가셨겠죠. 이렇게 한동안 훌쩍 사라지셨다가 먹을 걸 가져오시곤 했잖습니까."
 "…오늘 가져온 건 옥이랑 네가 먹는 게 좋겠다."
 "네?"
 "병자와 아이가 먹어야지. 난 버틸만하다."
 "그렇지만……."

 당장 먹을 식량조차 구하기 힘들 정도로 집안이 기울어버린 상황이었다.

 "괜찮다. 난 나중에 군대로 돌아가서 거기서 잘 먹으면 되니까. 얼마 전에 유타이아 행성 대학살 이후로 감시가 더 심해졌지 않네?"
 "다시 군대에 들어가시겠다고요?"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는 없는 거 잘 알지 않네?"

 설참의 말에 죽은 홍화 남편은 걱정스러운듯 말했다.

 "하지만 몸이 여전히 좋지 않잖습니까?"
 "이 정도면 괜찮다."

 거짓말이었다. 여전히 설참은 몸이 좋지 않았다.
 설참은 걱정이 되는 듯 덧붙였다.

 "그래도 먹고 살만하게 해 놓고 떠날 테니 너무 걱정 말고."



 하지만 그런 설참의 말에 무색하게도 가을이 되어도 먹을게 그리 풍족해지지만은 않았다.

 "…큰일이군. 떠나야 되는데."

 설참이 부엌에 서서 중얼거렸다.

 "떠난다니?"

 갑자기 들려온 장신의 남자의 목소리에 설참이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어디선가 식량을 가져왔다.

 "또 군대에 들어가려고?"
 "……."
 "지나에 새로 만들어진 군대에 들어갈 생각이지?"

 장신의 남자가 식량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지나 중앙 도시에 지금 임시정부가 있던가? 얼마 전에 창설된 그… 광복군 맞나? 거기로 갈 생각인 거 아냐?"

 설참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하."

 장신의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옥실은 식량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장신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와서 설참을 안았다. 설참은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 때 장신의 남자가 밀어내려는 설참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가지 말라는 게 아냐."
 "뭐?"

 예상과 다른 말에 설참은 멈칫했다.

 "갈 때 가더라도 네가 완전히 낫고 갔으면 좋겠어. 아직 아프잖아."
 "……."

 설참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안고 있는 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장신의 남자의 눈을 올려다 바라봤다.

 "나쁜 놈."  

 그렇게 말하며 설참이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천천히 잡았다. 여러 감정이 섞인 그의 눈빛이 보였다. 이 눈 뒤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독 같은 놈."

 설참은 지금 하려는 것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 뛰었다.
 사실 설참은 다들 부엌문 근처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고, 몰래 지켜보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홍화의 남편이든 옥실이든 누군가는 옥이의 눈을 가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독 품은 마약 같은 놈."

 설참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의 뒤통수를 잡고 끌어당겨 깊게 입을 맞췄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3년-

 아즈국에서, 영화 「위대한 우주」

 스크린 속 주연배우 닐팍 셀라크는 배역에 따라 우주 9구역 군인 복장을 하고 별들이 무수한 광대한 우주를 작은 방 안에 두고 있었다. 그는 방 크기의 우주를 발아래로 두고 뛰어다녔다. 방 크기의 우주가 밟아 뭉개져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는 광기에 찬 웃음을 흘리며 춤을 췄다. 우주를 붕괴시키며 춤을 췄다.

 영화는 계속 됐다. 
 영화 속 닐팍 셀라크는 연설을 시작했다. 

 "Do not despair."

 그의 연설이 이어졌다.

 "You have the love of humanity in your hearts! You don’t hate! "

 그는 외쳤다.
 스크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설이 끝이 났다.
 영화도 끝이 났다.

 영화 밖 현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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