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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지다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지다

SooyangLim 2021. 9. 9. 19:02

 "어서 나와, 이월향."

 총 쏜 놈이 홍화의 이름을 불렀다.

 "도망간 놈, 그리고 꼬맹이랑 같이 다니는 멀대. 어차피 너넨 여기까지다."

 얼어붙은 채 가만히 서 있던 홍화가 갑자기 장신의 남자에게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도망가요. 내가 어떻게든, 죽어서라도 막을 테니."

 홍화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홍화는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 숨겨뒀던 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튀어나가려는데,

 "안 돼. 미쳤어?"

 장신의 남자가 홍화가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저들이 원하는 건 나에요."
 "그럼 더 안 돼."

 장산의 남자가 더 못나가게 잡아끌었다.
 홍화가 빠르게 말했다. 

 "난 살아서 잡히면 안돼요. 자칫하면 이 일로 저들이 왕자님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어요. 나 하나로 끝내야 해요."
 "무슨 소리야? 다 같이 살아서 나가야지!"
 "그건 불가능 해요. 놔요! 시간을 끌면 언니가 다시 올 지도 몰라요!"
 
 장신의 남자가 계속 튀어나가려는 홍화를 힘으로 붙들었다.

탕!

 다시 총성이 울렸다.



 근처에 바닥에 총알이 꽂혔다.

 "마지막 기회다. 나와!"

 총 쏜 놈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홍화와 장신의 남자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홍화가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적어도 언니랑 당신은 살아야죠."
 "뭐?"

 장신의 남자가 멈칫했다.
 홍화의 표정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를 알아챈 장신의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언니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예요. 언니가 누굴 사랑하고 변해 가는 모습을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설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쳐!"

 어느새 기차 위에서 설참이 올라가 있었다. 

 "왜 다시 온 거야!?"

 장신의 남자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설참은 기차 위에서 갖고 있던 폭탄을 던졌다.



 설참이 총을 난사하며 소리쳤다.

 "빨리 도망 가!"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당

 총격전이 펼쳐졌다. 지원군이 계속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총성 소리가 좀 주나 싶으면 다시 또 늘기를 반복했다.
 홍화가 다시 장신의 남자의 제지를 뚫고 나가려 했다.

 "놔줘요."



 총알 하나가 설참을 맞췄다.

 "윽!"

 설참은 그대로 쓰러져 기차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홍화가 장신의 남자를 밀어내며 말했다.

 "빨리 놓고 가요! 언니를 죽일 셈이에요?"
 "하지만…!"
 "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9구역 군인들과 경찰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홍화가 다급하게 말했다.

 "언니한테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필요해요. 난 언니가 행복하길 바라요. 그게 내 행복이에요."
 "네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난 언니를 행복을 위해서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홍화는 그러더니 장신의 남자의 팔을 깨물었다.
 
 "사랑했다고 전해줘요."

 결국 홍화가 장신의 남자를 뿌리쳤다.

 "젠장!"

 장신의 남자가 쓰러져 있는 설참에게 달려갔다.

 "…홍화를… 데리고 도망쳐……."
 "둘 다 똑같은 소리 하네!"
 
 장신의 남자가 설참을 안아 드는 데 시끄러운 총성이 마구 들려웠다. 확연히 구분되는 홍화의 총성이 난사하는 총성에 가려졌다.
 장신의 남자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군인들과 경찰들의 총성이 멈췄다.
 이제 홍화의 총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곧이어 홍화가 있던 곳을 넘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달리고 있는 장신의 남자에게 쏘기 시작했다.
 조준이 잘못된 탄알들이 기찻길 주변 바닥에 깔려있는 자갈을 맞췄다. 덕분에 파편이 튀어서 장신의 남자의 몸 곳곳을 맞췄다.



 돌조각 하나가 그의 머리를 맞췄다.

 "윽!"

 그때,

 "으아아아악!"

 갑자기 뒤쪽에서 공포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지옥에 있는 것처럼 엄청난 소란과 동시에 고통 가득한 비명이 들려왔다.
 공포에 젖어 시끄럽게 막 갈겨대는 총성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일거에 침묵이 찾아왔다.

자박자박자박자박자박자박자박자박자박

 자갈밭 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같이 가요."

 장신의 남자가 뒤돌아 봤다.
 옥실이 서있었다.
 
 "홍화는 죽었어요."

 옥실이 말했다.
 장신의 남자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왜… 왜 살리지 않았어?"
 "못 살려요."

 옥실이 단칼에 대답했다.
 그 말에 장신의 남자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살릴 수 있었잖아!"
 "저는 주인님의 보조 장치(auxiliary device) 안드로이드 로봇이에요. 저는 현재 저를 사용하고 있는 당신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지 홍화를 위한 기계가 아니니까요."

 옥실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총에 맞아 피부 아래로 드러난 기계 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가죠. 지금 탈출 하려고 자가 회복 프로그램을 멈춰 놔서 어서 가서 재생 복구해야 돼요."

 그 말에 장신의 남자가 여전히 울부짖으며 말했다.

 "비상 탈출을 할 수 있었잖아! 네가 마음만 먹었으면 아무도 안 죽을 수 있었어!"
 "아니요."

 옥실은 걸음을 떼며 말했다.

 "뭐…?"

 장신의 남자가 자신을 앞질러 걸어가는 옥실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홍화는 오늘 죽었어요."

 그 말을 하고 옥실은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장신의 남자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우두커니 서서 옥실을 바라봤다. 옥실이 멈춰서 뒤돌아 장신의 남자를 뒤돌아 보며 말했다.

 "설참까지 죽일 생각이 아니면 빨리 와요."



 설참이 눈을 떴을 때는 홍화 남편의 집 안이었다. 다들 분주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홍화는?"

 설참이 물었다.
 바삐 움직이던 이들이 일제히 멈췄다. 다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깨어났네."

 장신의 남자가 일어나려는 설참을 부축하며 말했다. 
 홍화는 아무 대답 없는 그들에게서 불길함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윽."

 하지만 설참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치료돼서 붕대로 칭칭 감겨있긴 하지만 총에 맞은 자리는 고통이 극심했다. 게다가 수혈을 받은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워낙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래서 가까스로 장신의 남자한테 기대서 몸을 일으키는 게 다였다.

끼익

 갑자기 밖에 차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요!"

 옥실이 운전기사와 함께 뛰어왔다.

 "홍화는?"

 설참이 뛰어오는 옥실에게 물었다.
 옥실이 깨어난 설참을 발견했다.

 "아, 일어나셨어요?"
 "저거 홍화 차 맞지 않네? 홍화는?"
 "홍화씨 가산 다 몰수 당하기 전에 일하시는 분들 대피시켜드리고 몇몇개 가져온 거예요. 운전 기사님이 마지막으로 도와주시기로 했어요." 
 "가산을 몰수 당하다니…?"

 설참이 물었다.

 "죽었으니까요."
 
 옥실이 대답했다.
 그 말에 설참은 천천히 무너지듯 몸에 힘이 빠졌다.
 장신의 남자는 설참을 쓰러지지 않게 기대주며 끌어안았다.

 "홍화야……."

 기력이 다 한 목소리로 설참이 홍화를 불렀다.

 "빨리 가요."

 옥실이 재촉했다.

 "잠깐만."
 "시간이 없어요. 빨리 도망가야돼요."
 "힘들어 할 시간 잠깐은 줄 수 있는 거잖아!"

 장신의 남자가 자신에게 기대 어 있는 설참을 안고 옥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안 가면 전부 다 잃을 거예요."

 옥실이 냉정하게 말했다.

 "업어서라도 옮겨요."

 옥실은 그렇게 말하고 옆에 있는 짐 하나를 들고 차로 가져갔다.
 장신의 남자는 설참에게 물었다.

 "업힐 수 있겠어?"
 "……."
 
 대답이 없었다. 설참의 눈빛은 공허했다. 

 "홍화가… 널 사랑했었다고 전해 달라고 했어."
 "……."
 "……울어도 돼."
 "……."

 여전히 대답없는 설참을 장신의 남자는 자신의 품 속으로 끌어안았다.

 "내가 안고 있으니까, 아무도 안 보니까, 울어도 돼."

 천천히 그의 가슴팍이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팍이 젖어 갈수록 소리가 새어 나오고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집 안에는 모든 짐을 옮기고 장신의 남자와 설참만 남기고 텅 비어버렸다. 다른 이들은 집 밖에 서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설참은 장신의 남자의 품 안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온몸을 다해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다들 그녀의 울음 소리에 코를 훌쩍였다. 홍화의 운전 기사였던 이도, 명목 뿐이었던 홍화의 남편과 아이도.

 "…이제 가야 돼요."

 기다리다 못한 옥실이 차에서 나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몸을 못 가누는 설참을 안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기사가 약간은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홍화와의 추억이 담긴 마지막 장소마저 뒤로 한 채 차가 출발했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2년-

 더위가 약간 가실 때 쯤.
 팟라눌드 항성계 침공을 시작으로 우주 구역들 간의 대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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