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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징용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징용

SooyangLim 2021. 9. 23. 19:03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5년-

 또 해가 바뀌고 날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또 식량난이 심해졌다.

 "젠장."

 몇 해 째 살림살이가 안 좋아지는 마당이라 설참은 초조해졌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전쟁터로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답답해졌다.

 "뭐하세요?"

 부엌에 있는 설참을 보고서 죽은 홍화 남편의 딸인 옥이가 물었다. 옥이는 어느새 아이에서 소녀티가 나기 시작했다.

 "아, 아니다.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설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요즘 죽은 홍화 남편의 병색이 완연해진 터라, 설참은 옥이에게 괜히 걱정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옥이가 자랐다는 것은 생각이 깊어지고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제가 뭔가 도움 될 만한 게 없을까요?"
 "아니다. 일 없으니 괘념치말거라."
 "……."

 옥이는 대답 없이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갔다.

 "옥이냐? 쿨룩쿨룩."

 그는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옥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원망했다.

 "오빠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요? 저도 같이 가서 먹을 걸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주머니도 놔두고 가시고……."
 "아서라. 그분들은 항상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오시잖니. 괜히 네가 따라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지 모른단다."

 그가 조용히 딸을 타일렀다.

 "전 그냥… 걱정되어요."

 옥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요즘 9구역에서 남자들을 다 우주로 전쟁터에 끌고가잖아요. 혹시 아저씨나 오빠가 거기에 끌려간 거면 어찌해요?"
 
 이맘 때 쯤, 9구역이 점령지에서 강제 징용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점령지 중에는 구레아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옥이는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한동안 집에 안 들어올 때마다 어디 끌려간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을 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설참이 들어오며 말했다.
 
 "그런 거 잘 피해 다니는 놈들이다. 걱정 말거라."

 설참은 그렇게 말하고는 죽은 홍화 남편의 머리맡에 따뜻한 물을 갖다 놨다.

 "감사합니다."

 죽은 홍화 남편이 병석에 누워서 대답했다.
 설참은 자리에 앉으며 옥이에 말했다.

 "머리가 헝크러졌구나. 빗 가져오렴. 빗어 줄 테니."

 옥이는 미소 지으며 빗을 가져가 설참 앞에 앉았다. 

 "어디 놀러다녔길래 이리 헝클어져 있는 것이야, 응?"
 "히힛."

 설참이 다정하게 옥이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문간에서 인기 척이 났다.

 "나 왔어."

 장신의 남자의 목소리에 옥이와 설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옥이가 부리나케 문을 열고 뛰어가 장신의 남자에게 안겼다. 장신의 남자는 한 달 전 나간 그날처럼 또 돌아왔다.

 "잘 지냈어? 별 일 없었지?"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걱정 했다."

 지금껏 한 번도 걱정한다고 말 한 적 없었던 설참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보자 설참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그… 요즘 징용을 하고 있으니까. 혹시나 네가 끌려간 건 아닐까 해서……. 네가 어디 쉽게 잡혀가고 그럴 놈은 아니겠지만……."

 옆에 있던 옥실이 가져온 식량을 부엌으로 옮기며 말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 하실 수 있죠. 요즘 강제 징용 때문에 죄다 끌려가고 있으니까요."
 "징용……."

 장신의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구해오셨군요. 늘 감사합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죽은 홍화의 남편이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같이 먹을 거 구해오는 건 데, 뭘."
 "식사 준비하는 동안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설참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갔다올까?"
 "…잠깐 다녀오겠다."
 
 두 사람이 나간다고 하자 옥실이 말했다.

 "저도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래."

 장신의 남자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산책을 하러 야트막한 산의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걱정 많이 했었나보네."
 "왔으니 됐다."
 "몸은 이제 괜찮지?"
 "네가 떠날 때 이미 회복 했었다."

 설참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말 없이 걷다가 말했다.

 "…떠났을 줄 알았어."
 "저 둘을 놔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겠네? 가세가 영 좋지 않아서 쉬이 떠날 수가 없었다."
 
 장신의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면 어디 가려했었는데?"
 "임시정부에 가볼까 싶었다. 김원의 군대가 편입되었다고 들었다."
 
 갑자기 장신의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추자 설참이 걸어가다가 뒤돌아봤다.

 "왜?" 
 "…보내주기 싫어졌어."
 "갑자기?"
 "거기 가면 김원 만나게 될 거잖아."

 장신의 남자의 말에 설참은 놀란 눈으로 장신의 남자를 바라봤다.

 "…투기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당연한 거 아냐? 너랑 입 맞췄다는 놈이 있는데 보내주고 싶겠어?"
 
 설참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풉' 하고 웃었다.

 "웃기냐?"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그럼 비웃냐?"
 "아니다."

 설참은 다가오더니 장신의 남자의 입에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뭐가 그리 불안해하는 것이냐? 내 마음이 여기 있는데."
 "…마음만 남아 있을까 봐 그러지."
 "뭐?"

 그 말을 하고는 장신의 남자가 다시 설참에게 짧게 입을 맞췄다. 설참은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해서 가만히 서서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그리고 몇 초 후에야 말 뜻을 이해하고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그,그……. 나는 절대 그런…"
 "알아. 그냥 내가 불안한 거야."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말했다.

 "내가 인내심이 없어서 그런가 봐."
 
 설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가 입을 맞췄다. 그녀의 허리에 흉터 가득한 맨살이 만져졌다.

 "자,잠깐!"

 설참이 깜짝 놀라 밀어냈다. 그녀는 가쁜 숨을 고르며 그의 눈을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알았어." 

 장신의 남자가 떨어지며 말했다.
 설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는……."
 "괜찮아. 멈출 생각이었어. 네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될 수도 있잖아."
 "……."
 "혹시 모르니까……."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서로에게 다른 의미였지만, 어쨌거나 설참은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참은 괜히 차갑게 말했다.

 "…청혼이라도 하고 하든지."
 "……."

 어쩐지 장신의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설참이 그 침묵에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대답 없는 그의 눈빛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설참은 가까스로 참고 말했다.

 "…하룻밤 여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절대 아니지."
 
 장신의 남자가 단칼에 대답했다.
 설참은 그럼 대체 뭐냐고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앞서니 이성이 마비됐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장신의 남자가 말했다.

 "붙잡으면 붙잡힐 것 같아서 못하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설참을 안으려 하는데,

바스락

 그들은 갑자기 들린 소리에 둘은 깜짝 놀라 떨어졌다.

 "큰일 났어요."

 옥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무슨 일이야?"

 장신의 남자가 괜히 긴장하며 말했다. 설참은 자신도 모르게 옥실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옥실은 전혀 거리낌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

 "방금 집에 군인들이 들이닥쳤어요."
 "뭐?"
 "홍화씨의 남편이 징용 됐어요."

 "무슨 소리냐? 병자를 어찌 끌고 간다는 말이냐?"

 설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옥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참. 우리 일단 좀 숨어요. 그쪽이 가봐야겠어요."

 옥실이 설참만 잡고 끌며 장신의 남자에게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왜 숨어?"
 "왜긴요? 지금 눈에 띄는 남자란 남자는 다 징용되는데 우리는 안 끌려갈 것 같아요?"

 그 말에 설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좋겠다. 좀 있다 오겠다."



 설참과 옥실은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동네 전체가 거의 쑥대밭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노인이나 아이 빼고는 남자란 남자는 다 끌고 간 모양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설참이 다급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니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누가봐도 강제로 끌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옥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설참을 발견하자 옥이는 울면서 설참에게 달려왔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어찌 병자를 군대에 끌고 간다는 말이야?"
  
 설참은 옥이에게 말했다. 그리곤 망연자실하게 마당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옆집 아낙네에게 다가갔다. 그 아낙도 아픈 남편과 첫째 아들이 끌려가고 옥이와 또래인 여자 아이만 남은 상황이었다.
  
 "여보시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어찌 군대에 병자까지 끌고 간다는 말입니까?"

 설참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
 아낙은 허망한 얼굴로 말했다.

 "일을 시킨답니다."
 "일? 일이라니? 병석에 누워있는 자에게 일이라니?"
 "그러게 말이오. 우리 남편은 행성에 쏠 거포를 만드는 공장에 보낸다 들었습니다. 저 집 아들은 다른 행성에서 무슨 토목 공사를 하는 데에 보낼 것이라 하더이다. 우리 뿐만 아니라 식민지나 점령지마다 이러고 있다 합니다."
 
 아낙이 노부부가 땅을 치며 통곡하는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집은 예전에 이미 다른 아들들이 죄다 끌려간 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남아있던 나이든 아들마저 징용되어 버린 집이었다.
 그 때 설참에게 안겨있던 옥이가 말했다.

 "저들이 아버지를 광산에 데려갈 것이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어요."
 "광산이라니?"
 "흑흑……."
 "그 몸으로 광산에서 어떻게 일을 한다는 것이네? 몸이 안 좋아 광산에서 제대로 일 하지 못해서 광산에서 쫓겨났던 이를 광산에 끌고 간다고? 그 때보다 훨씬 더 안 좋은데?"
 "아버지가 다시 돌아 올 수 있을까요?"

 옥이가 울음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설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설참은 차마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설참은 말 없이 옥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옥이를 안아주면서 동시에 설참은 산에 있을 옥실과 장신의 남자가 걱정이 되었다. 그들도 들키면 끌려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일단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자."

 설참이 말했다. 설참은 일단 옥이를 집 안에 데려다주고, 당분간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가 산에서 못 내려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옥이가 마당을 정리하는 사이 설참은 난장판이 된 방 안을 정리하려고 들어가는데,

 "헉!"

 방 안 쪽에 장신의 남자와 옥실이 있었다.

 "쉿."

 장신의 남자가 손가락을 코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위했다. 그리고 문을 닫으라고 손짓을 했다.
 설참은 눈치를 보며 급히 문을 닫았다.

 "언제 왔느냐!? 못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니, 지금 이게 아니고……. 지금 오면 안 된다! 지금 죄다 징용으로 끌려가고 있…"
 "알아. 위험한 거."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참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서 산에 가있거라. 내려오면 위험하다. 거기 있으면 내가 가끔씩 가서……."
 "안 돼. 그러면 네가 위험해질거야. 산에 자꾸 들락거리면 네가 위험해져."
 
 장신의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옆에서 옥실이 한숨을 쉬었다.

 "얼굴 봤으니 됐죠? 빨리 숨으러 가야…"
 "잠깐만."

 장신의 남자가 재촉하는 옥실의 말을 막고는 말했다. 

 "난 걱정 마. 잘 숨어 있을게. 산으로 안 와도 돼."

 그렇게 말하고는 설참을 안아줬다.

 "네가 힘들 것 같아서… 잠깐 보러 왔어."
 
 설참은 말 없이 가만히 그를 안았다.
 그때 옥이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들렸다.

 "나가 봐."

 장신의 남자는 급히 설참을 놔줬다.
 설참은 방문을 열었다.

 "정리 끝났어요."

 옥이가 퉁퉁 부은 눈으로 말했다.

 "옥아, 아저씨랑 오빠한테…"

 그 말을 하며 설참을 뒤를 본 순간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

 방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네?"
 
 옥이가 방 안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설참이 당황해서 그 작은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봤다. 하지만 역시 아무 데도 없었다.
 설참은 그들이 있던 자리의 바닥에 약간의 돈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궁금함이나 신기함, 그리고 바닥에 놓인 그 돈보다도, 설참은 그 한순간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설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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