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1부. 노인의 일기 - 방향 전환 上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방향 전환 上

SooyangLim 2021. 8. 12. 19:01

 옥실이 기차를 타고 가며 짜증 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기차 객실에 같이 타고 있던 장신의 남자가 특이하게 생긴 시계를 꺼내 바라보다가 다시 품 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너 어차피 아직 못 움직이잖아."
 "그거랑 따라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그냥 구경 가는 거지."
 "…전쟁터에 가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옥실이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으로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간단한 문제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에 휘말릴 생각은 없는데?"
 "그럼 어떻게 구경하게요?"
 "멀리서 구경할 거야. 홍화랑 놀면서."
 "…그냥 그 기생 따라가는 거 아니에요?"

 옥실이 정곡을 찔렀다.

 "겸사겸사." 

 장신의 남자가 부정하지 않고 말했다. 

 "홍화가 언제 떠날 지 알고요? 3성 전쟁이 언제 끝나는 지는 알아요?"
 
 따박따박 따지던 옥실은 한숨을 푹 쉬더니 장신의 남자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하아……. 홍화가 구레아로 가면 그땐 꼭 같이 들어가서 그냥 좀 쉽시다. 알겠죠?"
 "그래그래. 알겠어."
  
 장신의 남자가 귀찮은 듯 말했다.

 
 
 "꺄악!"

 옥실과 장신의 남자가 대화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람들이 피를 흥건하게 뒤집어쓴 채 절뚝이며 술집에 들어오는 설참을 보자 기겁했다.

 "헉."

 장신의 남자는 그런 몰골의 설참을 보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야."

 설참이 장신의 남자한테 손을 뻗은 채 중얼거렸다.

 "…불러줘……."

털썩

 설참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옥실이 쓰러진 설참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오,옥실아. 홍, 홍화, 홍화한테 연락 해줘."

 장신의 남자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갈 수 있겠네요!"

 옥실은 쓰러진 설참 옆에서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

 장신의 남자가 그런 옥실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옥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여전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데려올게요!"



 설참은 한참 만에야 눈을 떴다. 설참은 짙은 향수 냄새에 옆을 바라봤다. 홍화가 졸고 있었다. 설참은 자신이 홍화에게 기대어 앉아있음을 깨달았다.

 설참은 포탄의 파편에 맞은 상처들을 치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설참은 천천히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기차의 객실 안이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차가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 꼴 보기 싫은 놈이 앉아있었다. 장신의 남자가 옥실과 함께 멀뚱하게 방금 깬 설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참이 인상을 찌푸리며 홍화가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장신의 남자에게 말했다.

 "…뭐냐."

 앞뒤 맥락 없는 설참의 물음에 장신의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왜 여기 있는 거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
 "구레아."

 장신의 남자의 대답에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물어보던 설참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아니 왜 구레아에 가는 것이냐? 난 다시 전쟁터에 나가야 되는데!"
 "도망쳐 나온 거 아니었어?" 

 장신의 남자의 말에 설참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망이라니!"

 그 소리에 홍화가 깨버렸다. 홍화는 깨자마자 정신이 든 설참을 발견하고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내가 제금 왜 구레아로 가고 있는 것이냐?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안 됩니다. 가봐야 짐만 될 겁니다."
 
 홍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참, 서신은 잘 전달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러니 다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설참이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하는데 홍화가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서신?"
 "네. 부상 입은 김에 서신을 쥐여서 보냈더군요."
 
 홍화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니 다시 가야한다. 답장을 전해야···"
 "그쪽이 알아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시일이 많이 흘렀습니다."

 시일이 많이 흘렀다는 말에 설참이 화를 가라앉히고 물었다.

 "…며칠이나 흐른 것이냐?"
 "오늘로 나흘째입니다."

 홍화의 대답에 설참은 눈을 감고 탄식했다.

 "아아……. 그리 오래 시일이 지났다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참으로 이도 저도 아닌, 도움이 안 되는 것이구나." 

 설참의 그 말을 들은 홍화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홍화는 설참에게 매섭게 쏘아 붙였다.

 "그리 돌아가고 싶으시면 기차에서 뛰어내려서라도 가시지요."
 
 그 말에 설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로 진짜 일어서려 했다.

 "에헤이."

 장신의 남자가 깜짝 놀라서 설참을 붙잡았다.
 설참이 붕대를 칭칭 감은 팔로 장신의 남자를 뿌리쳤다.

 "놔라!" 
 "진짜 죽고 싶은 거야, 뭐야?"
 "죽어도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다."
 "지금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그냥 죽거든?"
 
 장신의 남자는 억지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그 몸으로 가면 아군한테 더 방해 될 거라고는 생각은 전혀 안 하냐? 지금 포탄 조각을 몸에서 몇 개나 뽑은 지는 아냐? 그냥 가만있어."

 설참은 씩씩거리면서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장신의 남자는 홍화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홍화는 그런 장신의 남자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못마땅한 목소리로 장신의 남자에게 물었다.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있으면 안 되냐?" 
 "굳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 이 꼬맹이가 진짜……."

 장신의 남자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설참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누가 누구더러 꼬맹이라는 것이냐? 네가 달고 다니는 이 녀석이 꼬맹이겠지."
 "뭐? 하하!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옥실이는…"



 옥실이 장신의 남자의 옆구리를 쳐서 말을 끊었다.

 "왜 또 싸우는 거에요? 그냥 좀 가요, 그냥."
 "네 시동이 너보다 훨씬 낫구나."  

 설참이 꼬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왜 나한테 그래? 쟤가 먼저 시비 걸었는데!"

 장신의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기차가 구레아에 도착했다.

 설참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돌아가려 했다.

 "아직 상태가 좋지 않으니 먼저 의원한테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홍화가 설참에게 말했다.
 설참은 거부하고 다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움직일 수 조차 없는 몸 상태 때문에 결국 끌려가다시피 순순히 병원으로 가게 됐다.

 "당분간 입원해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참은 웬 일로 반발하지 않고 얌전히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설참을 같이 병원에 데려다 주고 병원을 나온 장신의 남자가 옥실에게 말했다.

 "이제 가는 거냐?"
 "네. 근데……."

 옥실이 장신의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 끝을 흐렸다.

 "일단 조금만 옮겼다가 다시 가야겠는데요?"
 "조금만 옮긴다니?"
 "그동안 그렇게 쉬어도 잘 안 됐던 게…….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사고도 계속 치셨고, 주인님하고도 오래 떨어져 있었고……. 점검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뭐?"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말에 깜짝 놀랐다.

 "괘, 괜찮은 거야? 돌아갈 수 있는 거지?"
 "네. 그냥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에요. 아마도 시간만 있다면 괜찮을 거에요."

 그 말에 장신의 남자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나 홍화 공연하는 거 보러 가도 되지?"
 "……."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은 말 없이 장신의 남자를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마타마이니력 4266년- 

 어느새 날이 더워지고 있었다. 설참의 상처는 쉽사리 낫지 않았다. 몇 번의 수술이 있었고, 긴 기간의 회복이 필요했다. 그래도 더디지만 천천히 회복을 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러 가기 전에 홍화가 병원에 들렀다. 침상 옆에서 과일을 깎으며 말했다.

 "곧 퇴원 하실 수 있다니 기쁩니다."
 "자주 들리지 않아도 좋다.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 곧 공연이 있지 않느냐."
 "연습은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지요."
 "네 덕분에 너 말고도 자주 들러서 상태를 봐주는 녀석이 있으니, 넌 네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설참은 홍화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설참의 상태를 보러 자주 들리는 장신의 남자를 일컬으며 말했다. 
 홍화는 장신의 남자의 이야기에 피식 웃었다.

 "지극정성이네요. 호호."
 "이상해서 하는 말인데… 그 녀석… 네게 지아비가 있는 건 알고 있지? 너한테 마음 있어 보이던데."
 
 설참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홍화가 과일을 깎아서 설참의 입에 넣어주며 능글맞게 말했다.

 "제게 마음 있는 남자가 한 둘인가요?"
 "…넌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또 그렇게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고 싶다고 했었지."
 "그랬었죠."
 "너는 그 놈이 어떻느냐?"
 "언제는 정절을 지키라더니 이제는 지아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라 밀어주시는 건가요?" 

 홍화가 자신도 과일을 하나 입에 넣으며 설참에게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설참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홍화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아비가 진짜는 아니지 않느냐? 난 그냥 너의 의중을 물어보는 것일 뿐이다. 나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너는 아닐 수도 있으니."
 "어머. 대단히 발전했네요? 전에는 싫어하시더니 이제는 별로 안 좋아하는 정도로 그쳤네요?"
 "네게 잘 해주려 하는 놈인데 무작정 싫어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
 
 설참의 말에 홍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놈은 아닙니다."
 "그 놈이 별로구나."
 "아니요.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이미 뜨겁게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홍화의 말에 설참이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누구!?"
 "제가 사랑하는 분께는 다른 사랑이 있으니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전 그분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분의 사랑마저도 응원하거든요."

 홍화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참은 홍화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홍화에게 말했다.

 "…어쩌다 그런 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네?"
 "보통 매력이 있으신 분이 아니었어서 말입니다. 제 마음이 마음 같지 않더이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설참의 물음에 홍화는 생각만 해도 좋은지 흐흥 하는 소리를 내며 웃으며 말했다.

 "그 분은 정말 멋진 분입니다. 빼어난 외모와 수려한 몸짓은 말할 것도 없고, 높은 학식과 굳은 심지를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이 다칠 지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하지만 그래서 제가 평생을 바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께는 저의 모든 것을 드릴 생각입니다. 물론 그 분은 받으려 하지 않지만요."

 홍화의 말에 설참은 말 없이 홍화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네가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홍화는 어느새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홍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아프지 않습니다. 사랑 할 수 있어서 행복하거든요. 저는 그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나고 병실 문이 열렸다.

 "어? 와 있었네?"

 장신의 남자가 먹을 것을 들고 들어왔다.

 "어?"

 장신의 남자는 홍화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라도…?"
 "다 나아가는 것이 기뻐서요."

 홍화가 어느새 눈물의 흔적 마저 감춰버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 며칠 일이 있어 집에 다녀올 터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응? 집? 가깝지 않아?"
 "아. 좀 멀리 있는 별장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럼 전 이만."

 홍화는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장신의 남자는 밝은 미소로 설참에게 말했다.

 "진짜 부자인가봐! 별장도 있다니!"
 "…난 괜찮으니 넌 이만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 곧 퇴원하니까."

 설참은 괜히 장신의 남자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 그래? 그런 난 갈 게." 
 
 장신의 남자는 설참의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가보겠다는 손짓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하여간 저 자식은……."

 설참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래서 좋지만."

 설참은 장신의 남자가 나가고 잠시 뒤, 남아있던 붕대를 모두 풀었다. 그리고는 병원복을 잘 개어놓고 숨겨둔 옷으로 갈아입었다. 

 설참은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미리 준비해 둔 종이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 병실 침대 위에 편지를 올려놓고는 떠나버렸다.



 "…이런."

 하루가 지나서야 장신의 남자가 설참이 떠나버린 것을 알게 됐다.

 "어떡하지, 옥실아? 홍화가 알면……."
 
 옥실이 설참이 남긴 편지를 집어 들어 편지 내용을 봤다.
 장신의 남자가 대뜸 말했다.

 "데려와야겠어."
 "네?"
 "그 편지 홍화한테 전해 줘. 그리고 내가 데리러 갔다고 말해 줘."
 "네에?"
 "갔다올게."

 바로 따라가려는 장신의 남자를 옥실이 붙잡았다.

 "거길 왜 가요? 혼자서 어떻게 가겠다는 거예요?"
 "안 될 게 뭐 있어?"
 "그걸 말이라고 해요!?"

 옥실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너 많이 움직이면 안되잖아. 나 혼자 갔다 올게."
 "그냥 안 가도 되잖아요?"
 "가야지."
 "왜요?"
 "홍화가 가만 있겠냐? 그리고 죽을지 모르잖아."
 "그냥 놔 둬요!"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화를 참는 건지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하. 야, 옥실아. 내가 너를 이해는 하는데, 이건 아냐. 어떻게 그냥 넘어 가? 방법이나 알려줘."

 장신의 남자는 결국 옥실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옥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장신의 남자에게 설참을 찾아갈 방법을 알려줬다.

 "갔다올게."
  




 전쟁터 한 가운데서 활약하던 설참은 총알이 그대로 몸에 박히는 것을 느꼈다.

 구레아 북부 지역, 구레아 혁명군에 들어가서 활약하던 설참은 외마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난과 구레아 군인들이 합동으로 우주 9구역의 군대에 맞서던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설참의 뒷덜미를 잡고는 뒷쪽으로 던지듯 빼버렸다.

 "돌아 가."

 누군지 확인 할 수 없는 아군의 목소리에 설참은 총알이 박힌 자리를 붙잡고 있던 손을 뗐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 갖고 있던 자살용 폭탄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안전핀을 뽑았다.

 "엎드려!!!"

 설참이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서 소리를 지르고는 폭탄을 던졌다.



콰앙

 설참이 던진 폭탄이 제법 먼 곳까지 날아가 터졌다. 우주 9구역 출신 군인들 한 무더기가 그대로 마타마이니의 토양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설참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설참이 눈을 떴을 때는 모르는 건물 안에 있었다. 설참은 방 안에 누워서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설참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 주변을 둘러봤다. 동료들이 갖은 부상을 안고 서로 겹쳐가며 잠들어 있었다.
 설참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허윽."

 자신이 정신을 잃은 자리에 동료들이 붕대로 대충 칭칭 감아놓은 자리가 엄청나게 아파왔다. 총알이 박혀 있어서 기분 나쁜 이물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몽롱함과 핑핑 도는 시야가 이 고통은 진통제 덕분에 일부일 뿐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설참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고통을 삼키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아니!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설참이 방 밖으로 나가자 밖에 있던 설참보다 계급이 낮은 군인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설참이 고통을 참으며 그 군인에게 물었다.

 "빈 방 있네?"
 "빈 방이요?"
 "잠깐만 들어가 있으면 되는데."
 "어… 저기 복도 끝 방으로 가시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마."

 설참은 그렇게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그 방으로 들어갔다. 
 설참은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웃옷을 벗었다. 흉터 가득한 설참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상처 때문에 동료들이 대충 싸매어 놓은 붕대가 아닌, 자신이 흉부에 감아놓은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여기 설참 있나? 부상 당했다면서? 무모한 짓까지 하고."

 어느새 장신의 남자가 최대한 인맥과 정보를 이용해서 설참이 있는 건물까지 찾아왔다.

 "네? 네. 있습니다만……."

 군인은 장신의 남자가 너무나 당당하게 이곳까지 찾아와서 설참의 행방을 묻자 무심결에 대답해버렸다.

 "어딨어?"
 "나올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어딨냐고."

 군인은 말 없이 설참이 들어간 방을 쳐다봤다.
 장신의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화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그 방으로 향했다. 

드르륵



 장신의 남자가 미닫이 문을 큰 소리를 내며 열어제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설참이 방의 안쪽에서 문 방향과는 반대로 뒤돌아 앉아서 붕대를 풀다가 멈칫하며 말했다.

 "미쳤냐?"

 장신의 남자가 다짜고짜 욕부터 박았다.



 그리고는 다시 큰 소리를 내며 미닫이 문을 닫았다.

 "무모한 짓이 한두 번이 아니라던데? 넌 생각이 없냐?"
 "귀찮은 놈 같으니……. 여기는 어떻게 알고 따라온 거냐? 당장 나가."

 설참이 태연하게 쥐쪽의 장신의 남자를 힐끗 봤다가 다시 계속 붕대를 풀며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말은 듣지도 않고 다가왔다.

 "총 맞았다면서? 홍화가 퇴원한다고 눈물 흘리며 기뻐하자마자 튀어 나가?"
 "나가."

 설참의 말에도 장신의 남자는 또 씹고 옆에 털썩 앉았다.

 "너는 도대체…."

 그 말을 하며 설참을 바라본 장신의 남자는 말을 멈췄다. 삽시간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너…! 너!"

 장신의 남자가 화들짝 놀라 몸을 황급히 뒤로 빼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듯 주저 않았다. 그리고는 설참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설참은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어서인지 그냥 태연하게 대꾸했다.
 
 "뭐."
 "너 여자였어!?"
  
 장신의 남자가 소리쳤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