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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인연의 퍼즐 조각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인연의 퍼즐 조각

SooyangLim 2021. 8. 23. 19:03

 "윽."
 
 설참이 자신도 모르게 고통에 찬 소리를 뱉어내자 김원은 깜짝 놀라 행동을 멈췄다.
 설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급히 나가려고 했다.

 "잠깐."

 김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아까와는 달리 거칠게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투둑

 제법 거칠게 상처를 가려놓은 옷이 개켜졌다.
 설참이 허둥지둥 다급히 상처를 싸매 놓은 부위를 가리려 했다. 하지만 김원이 설참의 손을 붙잡았다.

 "…얼마나 다친 것이오?"

 김원이 싸매 놓은 상처를 봤다가 다시 설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참은 김원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신경 쓸 것 없습네다."
 "거짓말. 내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하시오."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 아닙니까?"

 설참이 김원을 도발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김원은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고 말했다.

 "상황을 보고 열외 해야겠소."

 열외라는 말에 설참의 눈썹이 꿈틀 했다.

 "열외?"
 "그렇소."
 "난 그대가 9구역 주요 인사들을 제거 하러 다닐 때 단원들 중 그 누구도 부상으로 뺐다는 얘길 못 들었습네다."
 "그랬지."
 "근데 이건 무엇입니까? 특별 취급입니까?"
 "특별취급?"

 김원이 마치 한숨을 쉬듯, 그리고 피식 웃더니 설참을 붙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설마."
 "그럼 무엇입니까?"
 "여기가 군대라는 걸 잊은 것이오? 여긴 그때와 다르오."

 김원이 말을 이었다.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장 내일부터라도 전투에 나서야 될 수도 있다는 걸? 내 그대가 전투 경험이 많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갑자기 들어와서, 심지어 심각한 부상을 달고 왔다면 나로서는 당연히 고민해봐야 되는 문제 아니겠소?" 

 설참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던 설참은 결국 체념한 듯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알겠습네다."
 "…그대는… 내가 눈치 못 챘다면···"
 "끝까지 숨겼을겁니다."

 설참은 김원이 조심스럽게 물어보려던 뒷말을 본인 입으로 마무리 지었다. 설참은 천천히 옷을 다시 여미고 나가려 했다.
 김원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떨구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잠깐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억누르며 말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대도 해방을 열망하니까."

 설참의 말에 김원은 옷을 여미고 있는 설참에게 고개를 돌리려다가, 화를 억누르듯 다시 한숨을 쉬고는 설참 쪽으로 고개를 않고 허리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약간 더 언성을 높여 물었다.

 "…하. 그분은 거절할 것을 알아서 여기 온 것이 아니오? 나라면 그대가 부상이 있어도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설참은 나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미안합네다."
 
 설참은 나즈막히 사과했다.
 김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나도 미안하오."
 "아닙네다."
 "하지만 이건 알아주시오. 내가 아니라 범백 선생도 당신이 지금 모습으로 왔다면 돌려보냈을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설참이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그대도 그분도 마음은 같으니까."

 설참은 나가려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김원은 밖으로 나서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니 돌아가시오." 
 "…알겠습니다."

 설참은 마지못해 대답하며 나왔다.



 "왕자님 건은 어떻게 하기로 했대?"

 장신의 남자가 국무회의가 끝나고 얘기를 듣고 막 도착한 홍화를 보며 물었다. 그는 옥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최선은 불가능 할 것 같고 차선을 택하실 수 있게 도울 것 같아요."
 
 홍화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차선?"
 "네. 가능하면 왕자님의 뜻대로 들어드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왕자님께도 위험하니까요. 그러니 왕자님께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죠."
 "그게 무슨 말이지?"
 "9구역과 어느 정도는 연이 있는 인사의 여식들 중에 하나가 후보가 될 것 같아요. 일단은 왕자님 하고도 대화를 해봐야겠지만요."

 홍화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입에 밀어넣었다.
 홍화가 식탁에 놓인 차를 마시며 말했다.

 "일단 왕자님께는 제가 다녀올게요."
 "그래? 그럼 내가 할 일은?"
 "제가 왕자님께 다녀오면 여자들하고 왕자님이 연락이 닿을 수 있게 도와줘요."
 "내가 하라고?"

 장신의 남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홍화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네. 제가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전 구레아에서 너무 유명인사잖아요?"
 "아, 하긴."

 확실히 홍화는 구레아에서 너무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컸다. 
 장신의 남자가 물었다.

 "바로 출발 할 거야?"
 "네."
 "언제쯤 오는데?"
 "겨울이 끝나기 전에는 올 거예요. 제 남편 집으로 갈 테니 거기서 보죠."

 홍화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장신의 남자가 남은 음식을 마저 입에 넣어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옥실아."
 "네?"
 "구레아의 그 신문사 손녀인가?"
 "네."
 "바로 가야 될 것 같은데. 어때? 괜찮겠어?"
 "안 할 수는 없잖아요. "

 장신의 남자가 식탁 위에 돈을 올려놓고 일어섰다.

 "가자."

 둘은 화장실로 들어 갔다.

끼익

 그러나 그들은 나오지 않고 사라졌다.



마타마이니력 4267년 봄, 구레아의 백화점-



 한 젊은 여성이 백화점의 물건을 구경하다가 옆에 있던 장신의 남자와 부딪혔다.



 장신의 남자의 눈에 걸쳐져 있던 외알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콰직

 "앗!"

 놀라서 뒷걸음질 치던 여자가 구두 굽으로 장신의 남자의 안경을 밟아버렸다. 장신의 남자가 짐짓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부서진 안경을 주웠다.

 "미, 미안해요!"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우주 9구역 언어로 사과 인사를 했다.

 "아, 아끼는 건데."
 
 장신의 남자가 아까운 척 하며 말했다.

 "새로 맞춰드릴게요!"
 "지금 맞춰도 바로 못 받잖아? 내가 어떻게 알고 그쪽한테 받으라고?"

 장신의 남자의 말에 그녀가 말했다.

 "혹시 연락처 있으신가요? 맞추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평소 자신에게 막 대하는 사람이나 초면에 반말을 하는 이를 싫어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장신의 남자가 그녀에게 반말을 찍찍 하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에게 친절하게 말이 나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훤칠한 미남에 눈에 띄게 큰 키에서 오는 위압감, 그리고 세련된 복장과 한눈에 봐도 값비싼 안경을 깨부숴먹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었다.

 그녀가 고갯짓을 하자 옆에 있던 시녀가 가방에서 수첩과 필기구를 꺼냈다.
 장신의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옥실이를 바라봤다.
 옥실이 그 시종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이봐."
 "네?"
 "그쪽이 부쉈으니까 나한테 직접 줘. 시종 통해서 전하지 말고. 그게 예의야."
 
 장신의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되면 연락해. 난 바쁘니까 가 볼게."

 그 말은 남기고 장신의 남자는 휙 가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신의 남자는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녀는 시종과 함께 서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그녀는 보자마자 말했다.

 "일주일 동안 안경 없어서 불편했으니 따뜻한 차나 한 잔 사."
 "네?"
 "안 살 거야?"
 "아, 아니……."

 그녀가 깜짤 놀라서 말을 더듬는데 장신의 남자가 도발하듯 말했다.

 "돈 없어?"
 "아니에요!"
 
 그들은 어느새 가게 안에 조용히 앉아서 테이블 위에 각자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있었다.
 시종이 그녀에서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이거 아가씨한테 수작질 하는 거 아니에요!?"
 "다 들린다, 다 들려."

 장신의 남자가 대놓고 말했다.
 시종이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그쪽한테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마."
 "그럼 왜……."

 그녀가 의아한듯 말했다.

 "일주일 동안 안경 없어서 불편했다니까. 괘씸해서 뭐라도 얻어먹어야겠다 싶었지."

 장신의 남자의 말에 그녀는 뭐라고 말 하려다가 말았다.
 장신의 남자는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 만나기 전에 시간이 남았거든."
 "네?"
 "그냥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래서 차나 한 잔 하고 있으려 했지."

 그 말에 여자는 어이 없어서 뭐라고 말하려는데 가게 문이 열리면서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신의 남자가 그쪽을 돌아보자 그녀도 시선이 옮겨갔다.
 문을 열리면서 누가봐도 눈에 띄는 미남이 들어왔다.
  
 "여기."

 장신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 잘생긴 미남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이군. 이쪽은…?"
 "내 안경 깨부숴먹은 사람."

 그렇게 소개를 하자 어느새 얼굴이 붉어져 있던 그녀는 장신의 남자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니, 저는…!"
 "왠지 그 쪽이 누군지 알 것 같소."

 방금 들어 온 남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말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

 "네?"
 "그 쪽 조부를 본 적이 있거든."
 "네…?"
 "조부가 신문사 사장 아닌가?"
 "어……."

 신문사 사장 손녀인 그녀가 머뭇거렸다.

 "야, 뭘 걱정 해? 니네 할아버지를 만나 봤을 정도면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 안 들어?" 
 
 장신의 남자의 말에 신문사 사장 손녀가 '아!'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 손녀가 이렇게 장성하고 아름다워졌을 줄은 몰랐군."

 방금 들어 온 남자의 말에 그녀는 아까보다 훨씬 더 얼굴이 붉어졌다.

 "뭐야. 이게 무슨 만남의 장이지?"

 장신의 남자의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나쁠 것 없지."
 "이 아가씨, 좀 전에는 내가 수작질 하려고 여기 왔다고 생각하고 있던데요."

 장신의 남자의 말에 신문사 사장 손녀는 또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장신의 남자를 바라봤다.
 
 "수작질? 그래? 그래서… 어떤가 자네는?"
 "관심 있을리가. 왕자님은요?"

 왕자님이라는 말에 신문사 사장 손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자님이요?"
 
 왕자가 싱긋 웃으며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관심 있는데."
 "네?"
 "내가 왕자라서 별론가?"
 "그, 그럴리가요!"
 
 자신을 바라보는 왕자의 눈빛에 신문사 사장 손녀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장신의 남자가 갑자기 손가락 사이에 쪽지를 끼워 왕자에게 내밀었다.
 왕자가 그 쪽지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게 무엇인가?"
 "이 여자 연락처. 이제 나는 필요 없어서요."
 "앗!"

 장신의 남자의 말에 여자는 깜짝 놀랐다. 
 장신의 남자가 씨익 웃으며 신문사 사장 손녀에게 물었다.
 
 "왜? 싫어?"
 "아, 아니, 그, 그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남녀 사이에 이렇게 갑자기……."
 "지금부터 잘 해보면 갑자기가 아니잖아?"
 
 장신의 남자의 말에 신문사 사장 손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왕자가 쪽지를 보다가 안주머니에 넣으며 장신의 남자에게 말했다.

 "이보게, 미안하네만 오늘 약속은 파하지. 오늘 할 일이 생겨서 말일세."
 "이 여자 만나는 거죠?"
 "그렇다네."
 
 그 말에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 그러죠. 왕자님 명인데 따라야지 어쩌겠습니까."

 그 말을 하고 장신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실과 함께 나가버렸다.

 장신의 남자가 가게를 빠져나와 거리를 걸으며 옥실에게 물었다.

 "…잘 된 것 같냐? 너무 뻔한 작전인데."
 "아주요. 아마 신문사 사장은 손녀가 왕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최선을 다해 왕자님과의 결혼을 추진 할 걸요." 
 "그럼 우리 할 일은 이제 끝인가?"
 "일단은요."
 "일단은?"
 
 옥실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 수가 없어요."
 
 그들은 사람이 안 다니는 좁고 으슥한 골목 어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또 사라졌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268년, 구레아-

 "쿨럭."

 설참이 기차를 타고 들어오는 중에 기침을 하자 피가 함께 섞여 나왔다. 설참은 누가 볼세라 급히 닦고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눈을 감았다. 하지만 창백한 안색과 식은땀은 감출 수가 없었다. 

 기차가 구레아의 수도에 도착했다. 설참은 비틀거리며 기차에서 내렸다. 



 그때 누군가가 설참의 팔을 잡았다. 설참이 덜덜 떨면서 자신을 붙잡은 이를 쳐다봤다. 장신의 남자가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홍화가 서 있었다.

 "…다 죽을 때가 돼서야 오셨나요."
 
 홍화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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