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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반대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반대

SooyangLim 2021. 8. 2. 19:01

 서글픈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홍화에게 설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걱정이 과하니 내 바로 의원에게 다녀오마. 넌 그 멀대 같은 놈이 허튼 짓 못하게 감시나 잘 하고 있거라." 

  

 옥실은 범백의 도움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방을 하나 얻어 혼자서 회복을 하고 있었다. 옥실은 한참 만에야 눈을 떴다. 그리고 바닥에 벗어놓았던 옷을 차곡차곡 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마침 장신의 남자가 들어왔다.

 "좀 어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옥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장신의 남자는 그 말에 기쁘게 말했다.

 "잘 됐네. 안 그래도 시간이 좀 필요했거든."
 "네…? 시간이 필요하다니요…?"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이 불길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물었다. 

 "자금을 대고 폭탄 만드는 걸 도와주기로 했어."
 "…폭탄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어요?"
 "아니!"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당연히 네가 도와줘야지."
 "…제가요?"
 
 해맑게 말하는 장신의 남자의 말에 옥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게 말했다.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것도 잘 알잖아. 그렇지?"
 "제가요?"
 "잘 해 봐!"
 "제가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옥실은 잠깐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불 같이 화를 냈다.

 "미쳤어요!? 아니, 좀 나아질까 싶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쳐요!? 와, 진짜!"
 "아니, 뭐, 어차피 좀 도와줘야 했잖아. 이 정도면 딱 적당하지 않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지금이랑 멀지 않은 때에 일어난 사건 때에 아쉬운 점이 많았던 거 너도 알잖아?"
 "아니, 도대체!"
 "야, 지금이 어떤 시대냐? 학살의 시대잖아. 도우면 좋지."
  
 장신의 남자가 꿍얼꿍얼 말하는 것을 보며 옥실은 머리를 짚었다.

 "아……. 세상에."
 "그냥 살짝 좀 더 완성도 높은 폭탄 제조 기술만 알려주면 돼. 적당히 해, 적당히."
 "적당히라고요…?"

 옥실은 여전히 머리를 짚은 채로 장신의 남자를 살벌하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하아……. 적당히고 나발이고 찢어진 우주 때처럼 다 찢어버리고 싶다……."
 "그것도 괜찮겠다!" 
 "…제가 지금 뭘 찢는다는 소리인지는 알긴 해요?"

 장신의 남자가 해맑게 맞장구치는 소리를 듣자 옥실이 다시 살벌하게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이번에도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주 9구역에서 온 식민 지배파놈들 찢을 거 아냐?"
 "아뇨. 통째로 찢고 싶은데요. 아주 작게 해도 마타마이니 정도는 날려버리고 싶네요."

 그 말에 장신의 남자가 무서운지 흠칫하더니 말했다.

 "에이~ 네 주인님이 가만 놔두겠어?"
 "…몰라요."

 옥실이 '주인'이라는 단어를 듣자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심중을 알아챈 듯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고 쳐도 어차피 네가 다 수습해야 되잖아."
 "…진짜 짜증 난다……."
 
 옥실은 장신의 남자를 정말, 정말, 정말로 많이 짜증이 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옥실은 결국 화를 못 참고 소리를 한 번 확 질렀다.
 장신의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히죽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도우면서 회복이나 제대로 해."
 "회복 같은 소리 하시네. 지금 더 힘들어졌거든요?"

 옥실은 단호하게 말했다.

 "기술은 안돼요."
 "아, 왜~ 좀 해 줘."
 "싫어요."
 "해 줘."
 "핑계도 대드리죠. 시간이 걸려서 지금은 자금만 대겠다고요."
 
 

 옥실이 이렇게 화 내는 동안 다른 쪽도 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홍화가 막 의원에게 다녀온 설참에게 말했다.

 "그 자가 돕기로 했습니다. 아마 자금과 폭약 만드는 일을 협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소리냐?"
 "언니가 말씀하신 그 멀대 같은 놈이요. 그놈이 자금을 조금 지원해 주고, 같이 다니는 아이는 기술을 약간 전수해준다더군요."

 홍화의 말에 옷가지를 개켜놓던 설참이 행동을 멈추며 말했다.

 "범백님이 그러겠다고 하셨단 말이냐!?"
 "네.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니, 어째서 그런 놈을!"

 설참은 분노하며 범백이 있는 곳으로 갔다.
 홍화는 흐흥 하고 씨익 웃더니, 우아한 발걸음으로 설참을 따라갔다.



 설참이 범백이 있는 방의 문의 큰소리 나게 열었다.

 "왜 그 놈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까!?"
 "…그 놈?"

 범백이 딱히 놀라지도 않고 차분하게 앉아서 설참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참은 언성을 약간 높이며 말했다.

 "그 멀대 같은 놈 말입니다! 그럴 바에 차라리 김원에게 도와달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아. 그 자……. 걱정할 것 없네. 당연히 김원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네. 홍화가 지금 힘 써주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더니 범백은 설참을 응시하며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리 그 자를 싫어하는 것이오?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 건가?"

 범백의 질문에 설참은 분노를 억누르는 듯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목소리를 억누르며 범백에게 물었다. 

 "…그 자를 믿습니까?"
 "지금 도움을 받지 않을 이유는 뭔가?"
 "수상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년 전에는 그랬었지."
 "지금도 그렇습니다! 검증된 것이 없잖습니까?"

 설참의 목소리가 다시 약간 높아졌다.
 범백은 그런 설참의 태도에 아랑곳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왕자님께서 직접 알선해주지 않았소?"
 "선생님, 왕자님께서 전하신 말만 봐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갑자기 만났다니요!"
 
 다시 설참의 언성이 높아지던 참에, 따라온 홍화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솔직해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홍화는 손부채로 입을 가리고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가 맘에 안 든다고요. 지금 그 자와 같은 도움이 절실한데 왜 그리도 성화이십니까?"

 홍화의 말에 설참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홍화는 짙은 붉은 장미가 생각날 법한 짙고 붉은 미소를 지으며 설참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놀리듯 쿡쿡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예전에 그 자가 저를 희롱했다 하여 맘에 안 드시나 봅니다?"
 "너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단 말이냐?"
 "제 사랑도 아닌 이의 그깟 말 한 마디가 뭐라고 그리 호들갑이십니까?"
 "뭐?"

 홍화의 말에 설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놈이 네게 먹칠을 하는 말을 했는데 자존심이 허락한다는 말이냐?"
 "백이 저를 보면 아흔 아홉이 불경한 마음을 품고, 천이 저를 보면 구백구십의 얼굴이 붉어지고, 만이 저를 보면 구천구백의 입꼬리와 눈빛이 변합니다. 제게 꽃 준다는 그 말 한 마디가 뭐가 그리 중요하답니까? 그깟 자존심 뭐가 그리 중하답니까? 어차피 제 마음에 들어오지도 못한 놈의 한 마디일 뿐 아닙니까?"
 
 홍화는 미소를 거두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이요? 기명을 버린 이께서 제게 자존심을 논한다는 말입니까?"

 홍화는 눈빛이 이제는 싸늘하게 변했다.

 "독립을 염원해 세상에서 사라지신 분이 이제 와서 그리 따지고 가리고, 기녀의 자존심 입에 올립니까? 피 비린내가 낫다는 분이 어째서 분내 나는 이의 자존심을 운운하시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홍화는 이제 얼어버린 호수 아래 번진 채 얼어있는 핏빛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물며 당신 자존심도 아니고 저의 자존심인데 말입니다. 언제부터 그리 신경 쓰셨다고."
 "……."

 설참은 홍화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미안하다는 말을 삼키면서 홍화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냉기가 흐르는 두 사람을 보던 범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 그러면 자금만 받는다던가 하는 쪽으로 생각해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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