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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냄새 下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냄새 下

SooyangLim 2021. 7. 29. 19:01

 "사격에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최후방 쪽에 매복해."
 "네!" 

 설참은 군말 없이 그렇게 답하고 다른 저격수와 함께 자리 잡을 곳으로 갔다.
 가는 길에 다른 저격수가 말했다.

 "신기하군."
 "네?"
 "보통 실력을 한 번은 보시는 데 말야. 뭐 알 것 같지만."
 
 그 말에 설참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그게…무슨…?"

 다른 저격수가 설참이 걸음을 멈추자 말했다.

 "빨리 가자고. 추격대가 오고 있어서 한 시가 바쁜 상황이야. 명령 불복종이라도 할 셈인가?"

 그 말에 설참은 다시 발걸음을 떼며 말했다.

 "…제가 지금 필요가 없다는 그런 뜻입니까?"
 "지금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마당에? 그럴리가. 게다가 무관학교에서 이 시기에 왔으면 제대로 훈련 받고 실력이 있으니 왔겠지."
 "그럼 어째서……."
 "모르겠어?"

 다른 저격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얘기 해 줄 테니 일단 이거나 들어."

 그가 총을 던져 주며 말했다.

 하지만 매복 위치에 도착해서 전술에 대한 설명을 듣기가 무섭게 9구역 파견 군인들이 쏟아져 오는 게 보였다. 때문에 설참은 다른 저격수에게 아까 물어보고자 했던 것을 물어 볼 틈이 없었다.

 매복한 줄 모르고 있던 9구역 파견 추적대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봉 지역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홍 장군의 신호를 기다렸다.

탕!

 홍 장군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사격이 시작되었다.
 빗발치는 총성 소리와 밝은 빛줄기가 난무했다.

 그때 우주 9구역 추격군 쪽에서 쓰는 무기들이 굉장한 화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기는 마치 섬광탄 같은 밝은 빛을 내며 발사됐다. 쏘는 족족 마치 폭탄을 날린 것 마냥 광역으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리적 이점 앞에 그들의 무기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복잡하고 숨기 좋은,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한 홍 장군의 부대는 자연을 방벽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섬광탄 같은 빛은 대부분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설참은 쏘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사격을 하지 못했다.

 과녁이 아닌 진짜 산 생명을 맞추는 일.
 설참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참이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난타전은 계속되었다.
 9구역 출신 추격군은 갖은 보호 장구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생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희생자 수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학살한 지역 주민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그들은 결국 일단 그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퇴각을 시작했다.

 "따라간다!"

 홍 장군이 퇴각하는 9구역 출신 추격대를 쫓을 것을 명령했다.

 설참은 그간의 과오라도 잊고 싶은 듯 급히 따라가려고 하는데,

 "안 돼."

 다른 저격수가 말했다.

 "네?"
 "우리 라인은 최후방이야.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넌 지금 절대 나가면 안 돼."
 "네?"

 다른 저격수가 말했다.

 "너한테서 분 냄새 나. 앞쪽에 있다간 바로 표적이 되서 문제 될 거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와 숨었을 때 네가 냄새를 흘리기라도 하면 우리 위치가 발각 된다."

 그 말에 설참은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부끄러움이 온 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다른 저격수의 말을 듣는 사이 점점 총성이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퇴각 하는 9구역 추격대를 따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심상치 않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천둥 번개 소리가 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시체들에서 나온 핏물과 비 때문에 바닥 곳곳에 붉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이내 총성이 멎었다.

 9구역 추격군이 완전 퇴각을 했다. 그들은 비오는 틈을 타 마지막 보루이던 9구역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타고 모두 사라져버렸다.

 승리의 깃발이 올라갔다.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렸다.

 "이야, 넌 비 맞아도 냄새가 나는구나."

 옆의 저격수가 말했다. 

 "전쟁터만 아니었으면 정말 좋은 향인데."

 모두가 승리한 기쁜 순간, 설참은 홀로 기쁨의 눈물이 아닌 다른 의미의 눈물을 빗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그러나 이 전투 이후, 우주 9구역은 이 전투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
 독립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간지역은 엄청난 학살을 시작되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사살하고 참혹한 꼴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을 통째로 태워버리고, 찢어 죽이고, 더러운 짓을 하고……. 그야말로 참변이었다.

 이번에도 홍장군의 부대가 참전을 하게 되었다.

 도간 근처의 붉은 산 일대에서 9구역 군인들을 유인하여 도간 쪽으로 끌고 올 생각이었다. 도간으로 오면 진 장군과 석 장군이 이끄는 부대들과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일은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보다 강하게 공세하기 시작했다. 홍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대로면 희생도 많아지고 자칫 모두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진 장군과 석장군은 예상보다 훨씬 따라붙은 9구역 군인들의 공세에 고민했다.

 "붉은 산에서 결판을 봅시다."

 진 장군이 말했다.
 진 장군과 석장군은 결국 늦은 밤을 이용해 붉은 산와 계곡 일대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다. 진 장군과 석장군은 병력을 자줘서 붉은 산 계곡 양 옆에 매복 배치했다.

 가을이 되면 붉은 잎으로 변하는 나무들이 울창해서 붉은 산이라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었다. 그 붉은 산의 계곡은 검은 돌과 자갈이 깔려 있는 있는 계곡이었다. 투명한 물이 그대로 비쳐서 검은 돌이 길처럼 드러나 있고, 양 옆으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붉은 산.

 "홍 장군님! 붉은 산 검은 계곡에서 담판을 지을테니 그쪽으로 빠지라고 하십니다!"
 "뭐!?"
 
 홍 장군은 당황했다.
 두 장군의 말대로면 퇴각하는 것처럼 거리를 벌려서 9구역 군인들을 계곡으로 유인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따라붙은 통에 자칫 잘못하면 홍 장군의 부대도 같이 전멸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거리, 거리를 벌려야 하는데…!"
 "제가 하겠습니다."

 후방 쪽에 있던 설참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녀는 갖고 온 패물을 죄다 들이부어서 장착한 보호 쉴드와 폭탄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반쯤은 돌아가 있었다.

 "다음 생에 뵙겠습니다!"
 "…다음 생에 보지." 

 홍 장군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설참은 누군가 죽어서 나는 것 같은, 마치 비명 소리 같은, 그런 섬뜩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홍장군도 무어라 소리 질렀다. 

번쩍

 신호를 알리는 섬광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밝은 빛의 섬광탄이 터졌다. 그 과한 빛은 어둠에 물든 붉은 산을 하얗게 물들였다.
 덕분에 전진을 위해 이쪽을 보고 있던 9구역 군인들의 눈이 잠시 멀어버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총성이 멎은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어느새 설참이 그들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설참이 입으로 안전핀을 후두둑 뽑았다.

티디디디딕

 바닥에 안전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피해!!!!!"

 우주 9구역 출신 사령관의 9구역 공용어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건 후발 폭탄을 보고 외친 소리였다.

콰과과과과광 

 빛이 터지는 순간 이미 던졌던 폭탄들이 먼저 터지기 시작했다.
 돈으로 처바른 보호구를 입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자폭을 시작한 설참 덕에 그들은 엄청나게 혼비백산했다.

 폭음 사이로 설참은 폭탄의 위력에 찢겨졌는지 뭔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홍 장군의 부대는 전력을 다해 계곡 쪽으로 거리를 벌리며 퇴각 하기 시작했다. 홍 장군의 부대 전군이 이동 중이었다. 아니, 적어도 9구역 출신들 입장에서는 후퇴처럼 보였다.

 "후퇴 한다! 따라붙어!!" 

 9구역 출신 사령관은 한명이 자폭해서 거리를 벌리고 도망간다고 이해 해버렸다. 그리고 이내 붉은 산의 계곡에 들어섰다.
 
 홍장군의 부대는 붉은 산의 그 긴 계곡의 끝 쪽까지 들어갔다.
 9구역 군인들이 그들을 따라 계곡 안쪽까지 들어오자, 홍장군이 우뚝 멈춰 섰다.

 "전군,"

 홍장군이 외쳤다.

 "쏴!"

 홍장군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계곡 전체에 울렸다.
 매복하고 있던 진 장군과 석 장군의 부대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총성과 수많은 빛줄기, 그리고 쾅쾅 터지는 폭약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새벽 내내 시끄러웠던 붉은 산이 고요해졌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붉은 잎사귀 소리만이 들렸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붉은 산을 비췄다. 계곡의 검은 돌들 위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검은 돌이 비칠 만큼 맑은 물은 핏물이 흘러 붉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 붉은 산은 이름 그대로 붉은 산이 되었다.

저벅

저벅

저벅

 "뭐,뭐야?" 

 다들 기진맥진해서 쉬고 있는데 계곡 저 끝에서 자갈과 돌을 밟는 소리가 났다. 너무 고요하니 그 소리가 계곡 전제에 울리는 듯했다.

 "적인가?"

저벅

저벅

 붉은 핏물이 흐르는 물과 시체의 피로 물든 돌을 밟아가며 설참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시체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보니 온 몸이 붉게 물든 듯 피칠갑이었다.

 "…설참이 살아있습니다!"

 확대경으로 보던 저격수가 홍장군에게 말했다.

우뚝

 설참이 올라오다가 멈췄다.
 그리고 아까 지른 고함소리 때문에 쉬어버린 목으로, 목에 피라도 맺힌 양 쇳소리 비슷한 목소리로 계곡이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

 "이겼습니까!?" 

 그 질문에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들렸다.



 "고맙네."

 홍 장군이 말했다.
 설참은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저기 위쪽 계곡 물이 시원하다네. 곧 내려가겠지만 다들 잠시나마 쉬고 있다네. 자네도 가서 쉬게."
 "알겠습네다."

 홍화의 말에 홍 장군이 놀라며 말했다.

 "혹시 파운(지명 이름)에서 왔나?"
 "네. 장군님과 동향입네다."
 "그렇구만! 자네가 오기 전에 그곳은 어땠나?"
 
 설참은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해하네."

 홍 잔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참의 어깨를 두드렸다.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구만, 기래. 어린 나이부터 군인이라니……."
 "네?"
 "목소리를 들어보아하니 많이 어린 것 같은데, 미안하네."

 그 말에 옆에 있던 군인이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홍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애가 아닌디유?"
 "응?"
 "여자잖아유!"
 "응?"
 "네?"
 "응?"
 "…진짜 몰랐어유?"

 장군은 당황한듯 했다.

 "나, 난 그냥 천성 군인 체질인 소년인 줄 알았네. 미, 미안하네."
 "미안할게 뭐 있겠습니까. 천성 군인이라는 칭찬 감사히 듣겠습니다."

 설참은 인사를 꾸벅하고 맑은 계곡물에서 군인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설참이 홍 장군의 부대에 합류한 첫 날 만났던 저격수가 등목을 하고 있었다.

 "왔군."
 "왔습니다."
 "고맙다."
 "아닙니다."
 "야."
 "네?"

 그 군인이 설참에게 물을 뿌리며 말했다.

 "너 옆에 오니까 피 냄새 난다."




 "지금 내가 고운 얼굴, 고운 몸을 둬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언니!"

 설참이 화를 내는 홍화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피 비린내 베인 몸이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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