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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냄새 上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냄새 上

SooyangLim 2021. 7. 26. 19:01

「무관학교」

 "군대에 들어가고자 배우러 왔습니다."
 
 설참의 말에 무관학교의 학교장은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설참을 바라봤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녀는 다짜고짜 교장실에 쳐들어와서 가져온 패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장은 그런 설참을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전자 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차 드시겠소이까?"
 "술 보다는 낫지요."

 설참의 말에 학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준비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배우러 오셨다했습니까."

 학교장이 차를 따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언뜻보기에 나이는 학생으로도 가능해보입니다만··· 학생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설참의 말에 학교장이 자세를 바로 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지금 행색은 아니지만은… 그대는 여자이지요?" 
 "그것이 배우지 못 할 이유가 됩니까?"
 "여자인 것에 대한 말이 아니오."

 홍화의 말에 학교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무엇입니까?"
 "그대에게서 향을 가득 먹인 분내가 납니다. 그것도 양갓집 규수의 분내가 아니라 보통 사람은 구경도 하기 힘든 값비싼 향내음 말이오."

 설참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듣고만 있었다.
 학교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패물들……. 내 짐작컨대 이것은 원래 그대가 가진 것의 일부 밖에 되지 않겠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패물들임은 잘 압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봤지만 느껴지는 그대의 예사롭지 않은 몸가짐과 학식이 느껴지면서도 능수능란한 언행. 그리고 보통의 그 나이대 여자는 입에 올리지 않는 단어, 술. 그리고 그 손 끝에 남아있는 밤낮 악기의 현을 만졌던 자국. 그대는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나 만나 볼 수 있는 일패기생이 아닙니까?"
 "잘 찾아온 것 같습네다."

 설참이 살찍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하지만 그대는 잘못 찾아왔소."

 학교장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그대 손에는 검과 활, 그리고 총을 잡았던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보통 돈으로는 사기도 힘든 허리춤에 그 총. 한두 번 만진 게 아니지 않소? 난 그대가 누군인지 알 것 같소이다. 예전에 의랑이라는 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해 들은 적이 있소. 그대에게는 더 가르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분께서 말씀 하셨군요. 하지만 나는 군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곳에 왔습네다."
 
 설참의 말에 학교장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얼마 간의 시간을 드릴테니 이곳의 선생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배워가시오."
 "…그러도록 하지요."
 "그리고 날이 더워지기 전에 이곳으로 가십시오."

 학교장이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설참이 종이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홍 장군?"
 "그대와 동향이시라 고향 소식을 들으면 좋아하실지도 모르겠소이다."
 
 학교장은 설참이 늘어놓은 패물들 중에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수업료는 이걸로 하겠소."
 "전부 다 가져가시지요."
 "이것만으로도 족하오."

 학교장은 그리 말하고는 다른 선생을 불러 거처로 안내시켰다.
 
 설참이 가고나자 학교장은 다시 책상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손에 들린 패물을 봤다. 갖가지 보석과 금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옥비녀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학교의 한 달 운영비는 거뜬해 보였다.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학교의 사정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냥 받을 걸 그랬군."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내는 동안 거처는 별실을 마련드리지요."

 복도를 걸어가며 선생이 말했다.
 설참이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매섭게 말했다.

 "나는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에 배우러 왔습니다. 별실을 쓰는 것이 군에서 하는 방법입네까."
 "…그렇지만 아직 여기는 학교입니다."  
 
 선생이 곤란한듯 말했다.
 설참은 잠시 노려보다가 말했다.

 "위장을 하겠습니다." 
 "네?"

 설참은 그 자리에서 얼굴에 위장색을 발랐다.

 "아니, 그……."

 선생은 말을 못 잇고 있다가 한숨을 푹 휘며 말했다.

 "···일단 거처 문제는 좀 있다 논의하기로 하고 훈련장부터 가시지요."



 훈련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선생이 데려온 설참을 보고 웅성웅성했다.

 "자는 뭔데 여기서 위장을 하고 있나?"
 "…애야? 애 치고는 너무 큰데. 뭔가……."
 "아해가 아니라 ···여자 아니여?"
 "여자라고? 그냥 곱상하게 생겼겠지."
 "아이다. 가시나다, 가시나. 여자 냄새 난다 아이가."

 구레아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의 웅성거림 속에, 맨 뒷자리에서 군사학과 폭탄 제조학 위주로 수업을 들으러 이곳에 온 김원이 그녀를 조용히 주시했다.

 옆에 있던 교관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잠깐 머물다 갈 학우다. 잘 대해주도록."

 '잠깐?'

 김원은 손을 들었다.
 교관이 물었다.

 "뭔가?"
 "잠깐이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사정상 필요한 수업만 듣고 가기로 했다."

 그 말에 김원이 말했다.

 "그건 특별취급 아닙니까?"

 그 순간 설참이 허리춤의 총을 꺼내 쐈다.



 김원은 들고 있던 팔에 달려있던 단추가 날아갔다.

 "더 증명이 필요하면 다음에는 단추가 아니라 머리통으로 증명하겠다."

 설참의 말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김원이 팔을 천천히 내리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선생이 말했다.

 "더 이상의 증명은 필요 없는 듯하군. 아무 자리나 가서 앉으시오."
 


 수업이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었다.
 소등하고 얼마 뒤 한 학생이 설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오늘 온 놈."
 "……."
 "아참. 놈이 아닌가."
 "……."
 "너, 계집이지?"
 "…전쟁 중에도 그런 걸 따질 생각입니까?"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설참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 왜 왔습네까."
 "나? 나야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서지."
 "당신의 목적은 독립군에 들어가기 위해서군요."
 "그럼 너는?"
 "9구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서."

 조용히 그들을 대화를 듣고 있던 김원은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전쟁 중에 계집은 방해 돼."
 "말은 똑바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뭐?"
 "단순히 계집이라서 방해 되는방해되는 게 아니라 실력, 능력, 자격이 없는 군인이 방해되는 겁니다. 당신 같이 안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뭐야!?"

 그가 벌떡 일어났다.
 주먹을 휘두르려는데 어느새 팔이 잡혔다.

 몸이 붕 떴다.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이번에는 그가 설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설참이 옆의 벽을 짚고 튕기듯 밀어내 중심을 잡았다.
 
 그 사이 그가 일어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설참이 얼른 몸을 피했다.



 "그만."

 김원이 그를 잡았다. 어느새 그가 옆에 와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일어나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여자라고 감싸는 거냐, 김원?"

 그가 씩씩 거리며 김원에게 말했다.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김원이 어느새 칼을 들고 있는 설참을 보며 말했다.

 "재밌었는데 놔두지, 왜."

 다른 학생이 김원에게 말했다.
 김원이 손아귀의 힘을 풀며 말했다.

 "독립을 위한 동지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니까."

 어둠 속 창 밖 위성의 작고 창백한 불빛에서도 김원에게 잡힌 학생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게 보였다.
 그도 결국 힘을 풀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누웠다.

   

 다음 날, 군사학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김원이 설참의 옆으로 왔다.

 "단추는 물어내시오."
 "의심값입니다."
 "의심값은 어젯밤에 싸움 말린 값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건 내가 아니라 저 쪽에 받아내야 될 값입네다."
 "일리 있군."

 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김원이오."
 "난 설참입네다."
 "설참? 호가 아니고 이름이?"
 "그쪽도 외자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긴. 일리 있군."

 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인상 깊었소. 독립을 위해서 여기 왔다는 말 말이오." 
 "여기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럼 왜 싸웠소?"
 "그쪽이 일리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기고 설참이 그를 두고 휙 앞질러 가버렸다.

 "허."

 김원은 기가 차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근데 또 일리 있구만." 



 며칠이 지났다.
 식사 시간이었다.

 "만세 운동 이후로 9구역에서 파견한 군인들이 독립 운동가들을 죄다 잡아 쳐죽인다는군."
 "그렇군."

 설참이 빨리 다음 수업을 가려고 허겁지겁 먹으며 말했다.

 "그쪽은 왜 과정을 안 따르고 아무데나 막 다니면서 배우는 거요? 암만 봐도 첫날에 김원 말이 맞는 것 같소. 특별 취급 말이오, 특별취급."

 한 학생이 식사 중에 설참에게 물었다.

 "독립을 위해서다."

 설참이 짧게 대답했다.
 학생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독립을 위해서?"
 "난 독립을 위해서 독립군에 들어가고자 했고, 독립군에 들어가고자 필요한 것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러니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군에 필요한 군인을 학교는 길러내고 싶어 하지만, 나는 필요한 부분만 보충해서 독립을 위해 바로 싸우겠다 그 말입니다."

 옆에서 밥 먹으며 듣고 있던 김원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일리있군."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설참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봉 지역에 학살이 난 곳으로 가시오?"
 
 김원이 어느새 옆에 와서 팔짱을 끼고 기대 서서 물었다.

 "지금 식사 시간 아닙니까?"

 설참이 그의 질문에 답변 대신 눈길도 안 주고 짐을 싸며 말했다.

 "배웅은 해줘야 하지 않겠나. 다른 몇몇 동무들도 가는 모양이던데 자네는 배웅해주는 사람이 없지 않나."
 "다음 생에 봅시다."
 "거, 살벌하구만."
 
 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언제나 죽음을 각오하고 갑네다."
 "거, 일리 있군."

 설참의 말에 김원이 고개를 끄덕 하며 말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를 만나 기뻤소."
 "같은 생각?"
 "당신이 하는 말들 말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았거든."

 설참이 짐을 다 싸고 허리를 펴고는 말했다.

 "무슨 말을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똑같지는 않을겁네다."
 "뭐, 뭐가 됐든. 나는 그랬었소."

 김원이 손을 내밀었다.

 "구레아가 독립하고 모두가 행복해진 세상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겠소."
 "살아있다면."

 설참이 짐을 매며 악수를 했다.



 김원이 갑자기 악수한 채로 설참을 확 안았다.
 매고 있던 짐의 무게 때문에 몸이 휘청 기울었다. 
 김원이 그녀를 안은 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시일이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남아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 분 냄새 같은 향은 좀 빼는 게 좋겠소. 전쟁터에 숨어 있어도 들킬 거요."

 그러고는 탁 놨다.

 "잘 가시오. 난 이만 식사하러 가보겠소."

 김원은 그 말을 남기고 식사하러 가버렸다.

 "…고맙소."

 설참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설참?"

 오봉 지역 근처에서 일어난 학살 때문에, 그 학살을 막고자 전쟁 중이던 홍 장군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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