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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대화 上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대화 上

SooyangLim 2021. 6. 18. 19:00

 "지금이라도 그냥 가요, 네?"
  
 도서관에서 옥실은 몇 시간 째 장신의 남자를 계속 보채고 있었다.

 "싫다니까."
 "아니, 이거 잘못하면……."
 "안 해."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안 한 다고. 어차피 시간 다 됐으니까 이제 좀 조용히 해."
 "아니,"
 "아 그런 짓 안 한다니까!"

 결국 장신의 남자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덕분에 주변에서 책을 보던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봤다.
 장신의 남자는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옥실은 여전히 물러설 기색 없이 쏘아붙였다.
 
 "거봐요. 이런 데 어떻게……."
 "야, 그만. 나가자.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장신의 남자는 결국 도서관 밖으로 옥실을 끌고 나왔다.  
 옥실은 도서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장신의 남자를 또 보챘다.

 "가자고요."
 "약속을 어떻게 깨냐? 그게 더 문제 아니냐?"
 "괜찮으니까 그냥 가요."
 "싫어."
 "이거 잘못 되면……."
 "또 그 소리."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데 마침 우펜자가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와 조심스럽게 아즈어로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세요! 수업 끝?"

 장신의 남자가 우펜자가 온 것을 보고 표정이 확 밝아졌다.
 우펜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막 끝났습니다."
 "시간 괜찮아요?"
 "오늘 오후에는 수업이 없습니다."

 장신의 남자는 기뻐하다가 방해꾼인 옥실을 쫓아내려고 했다.

 "너 가있어라."
 "안돼요."
 "허!"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말에 삐진 듯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우펜자는 오기 전까지 머릿속에 여러가지 질문을 계속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앞에 서니 전혀 정리가 안됐다.

 "저기……."
 "네?"

 우펜자의 말에 장신의 남자는 바로 옥실에게서 신경 끄고 즉답했다.
 우펜자는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아, 아니 저… 그… 잠시 대화를 나눌까요?"
 "아 네네."
 "음… 그러니까… 그… 여긴 도서관 앞이니까……."
 "아. 네네. 밖에 나가서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네. 좋아요."
 "야, 옥실아. 넌 뒤에 좀 떨어져서 따라와라."

 장신의 남자는 옥실한테 좀 뒤에 떨어져서 걸으라고 하고는, 우펜자와 함께 교정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우펜자가 장신의 남자에게 소심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기… 간밤에는 감사합니다. 신경 쓰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뇨아뇨아뇨. 뭘 그런 것 까지고. 하하.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길래……."

 장신의 남자는 괜히 황송해하며 말했다.

 "저는 우펜자라고 합니다. 지금은 00과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아, 네. 안녕하세요."

 우펜자는 자기소개를 했다. 하지만 장신의 남자는 인사만 했을 뿐 자기소개를 건너뛰었다.
 마음이 조급했던 우펜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조심스럽게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어제 노트에 적고 가신 거 그 쪽 맞죠?"
 "네? 아 네네." 

 장신의 남자가 뒤따라 오고 있는 옥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떻게… 아니, 학자셨나요?"
 "네? 아뇨? 아니, 그러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장신의 남자가 뭔가 찔리는 듯, 당황한 듯 말했다.
 우펜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그건 그… 뭐라 해야 되지, 음. 그냥 제가 생각하는 걸 써본 것 뿐이에요. 전 그냥 음… 그냥 학생, 그래 학생. 학생이었죠."

 장신의 남자는 굉장히 긴장하며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학교를……."
 "네네. 그런거죠. 하하."
 "대단하세요. 정말로."
 "아니, 뭐 제가 그리 대단할 것 까지야……. 딱히 뭐 제가 한 게 아니라서……."
 "그래도 그렇게 기부까지 하시다니. 학문에 대한 깊이도, 열정도 있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네? 아, 네네. 기부. 그렇죠. 기부. 하하. 좋은 거죠. 기부는."

 장신의 남자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 기부 얘기였어? 괜히 쫄렸네.'

 장신의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보면 전 아직 학생이기에, 그런 입장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역시 뛰어난 사람이 많이 있구나 하고." 
 "열심히 하는 건 좋은 거죠."
 "이 먼 타국에서 이런 분을 만나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장신의 남자는 '많이 멀긴 하지.' 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긴 한테 혹시……."

 우펜자가 자신이 지금 학위를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물었다. 장신의 남자는 딱히 잘 알지는 않지만 자신이 배운 만큼, 그리고 책을 읽은 대로, 자신이 아는 만큼 대답했다. 그리고 그럴 듯 하게 적당히 살을 붙여 대답했다.

 장신의 남자의 대답을 들은 우펜자의 표정이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우펜자는 장신의 남자가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했기에 기대를 어느 정도 낮췄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듣자 상세하지는 않을지 언정, 생각지도 못한 관점과 혜안을 느꼈다.

 하지만 장신의 남자는 자신이 한 말 그대로 그 분야는 잘 아는 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겉핥기 수준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자신이 잘 아는 분야로 말을 돌렸다.

 우펜자는 이런 대화를 나누는 그의 지식 수준에 감탄을 했다. 우펜자는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즐거워졌다. 오랜만에 나눠보는 이런 지적인 대화에 우펜자는 완전히 몰입해버렸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펜자의 머릿속 장신의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완전히 뒤집혀버렸다. 

 "대단하세요. 정말로……. 제 배움 수준이, 제 시야가 너무 모자라게 느껴져요."
 "예? 아이, 아뇨. 그럴리가. 아니에요, 전혀. 제가 뭐라고."
 "와……."

 시종일관 부인하는 그를 보며 우펜자는 겸손까지 갖춘 사람이라고 느꼈다.
 장신의 남자가 말했다.

 "여기 그 선생님…이잖아요? 맞죠? 저보다 더 대단 하신데."
 "선생님……. 글쎄요."

 우펜자는 씁쓸하게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냥 어쩌다 그런 일을 잠시 하는 것 뿐이지 저는 전혀… 누구를 가르칠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전 아직 학생이죠."
 "아휴, 무슨 말을."
 "······."

 우펜자의 침묵에 장신의 남자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그래. 어, 어쩌다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어요?"
 "아… 그게……."
 "아, 곤란한 질문을 한 거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우펜자가 망설이는 모습에, 장신의 남자는 마치 자신이 잘못 질문을 한 것 마냥 말을 막았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사정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하하……."

 우펜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 언저리가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지금 우펜자님… 아니, 우펜자씨가 나보다 낫다는 사실이죠."
 "아, 아니요, 저,저는, 제, 제가 무슨……."

 우펜자가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신의 남자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친하게 지내요, 우펜자 교수님."
 "네?"

 갑작스런 그의 말에 우펜자는 당황하며 엉뚱한 말을 했다.

 "저,저는 한참 모자라요."
 "네? 모자라다고요?"
 "그, 그냥… 뭐든지요."
 "그게 무슨 말?"
 "배움도, 지식도 그렇고 재산도……. 추, 출신도 그렇고요. 좋은 가문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렇다고 딱히 뭔가 제대로 이룬 것도 없으니……. 그쪽보다 나은 게 없어요. 뭔가 급이 낮다고 해야 하나……."
 
 우펜자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의 속내가 튀어나와버렸다.

 "그게 뭔 상관?"

 장신의 남자가 툭 던졌다.

 "네?"
 "아 제가 너무 성급하게 친하게 지내자고 했나?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뇨, 아니에요!"

 우펜자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저랑 친하게 지내기가 좀 불편한가?"
 "아뇨!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왜요?"
 "네?"
 "친하게 지내면 안돼요?"

 장신의 남자가 다시 물었다.
 우펜자가 멍하게 그를 바라봤다.
 장신의 남자가 다시 물었다.

 "아, 나이 때문인가? 우리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지 않아요? 안 그래요?"
 "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너무 어려보이나? 아닐 텐데?"
 "아니 그 나이 때문이 아니고……."
 "바로 친구 하자고 하면 불편해 할 거잖아요? 그래서 친하게 지내자고요. 친구면 더 좋겠지만."
 "어… 아니, 뭐……. 그럼 괜찮아요. 친구도 좋아요."
 "어 그래요? 그럼 친구 먹은 걸로!"

 장신의 남자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해맑게 말했다.
 뒤에서 옥실이 계속 툴툴거렸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씹었다.
 
 "네. 그래요. 친구……."
  
 우펜자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장신의 남자기 장난기 있는 미소에서 묘하게 인자한 듯 안쓰러운 미소로 바뀌며 말했다.

 "장난이죠. 친구는 우펜자씨가 편하면 그때 하기로."
 "네?"
 "신경쓰지 마요. 그런 것들."
 
 장신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에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한가? 전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나 자신과 우펜자씨, 당신 자신이죠. 그런 것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잖아요. 그것들이 지금은 당신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전체일 수는 없지 않나 싶은데. 과거에 어쨌든 앞 날도 모르고. 안 그런가? 전 그렇게 생각해요."
 "……."
 "제가 그 쪽을 다 모르듯이 우펜자씨도 날 완전히 모르잖아요. 전 그저 잠깐이라도 당신을 보니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말한 것 뿐. 뭐, 아님 말고요. 나랑 느낀 게 다르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장신의 남자의 말에 우펜자는 어딘가 울컥했다. 우펜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도…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같아요?"
 
 장신의 남자가 다시 장난끼 가득한 말로 말 꼬투리를 잡았다.

 "아,아니 저 그게……."
 "아이. 장난. 장~난."
 "아, 하하……."

 우펜자는 드디어 표정이 풀어졌다.
 그 때 옥실이 뒤에서 말했다.

 "해 지는데요? 어서 식사하셔야죠. 들어가셔야 되는데. 통금도 있는데."
 "통금?"

 우펜자가 처음 듣는다는 듯 말했다.  

 "네. 이 나라는 지금 통금 시간 있어요."
 "오, 이런."
 
 우펜자가 깜짝 놀랐다.

 "아 모르셨구나."
 "그 전날은 일찍 들어갔었고, 어제는 도서관에 잠들어서 몰랐습니다."
 "진짜 모르셨구나. 그래서 제가 어제 같이 있었다가 열쇠 받아놨던 건데. 사서들 집에 가야 되니까."

 장신의 남자가 말했다.
 우펜자가 간밤의 일에 대한 사과를 건넸다.

 "아… 죄송해요. 거기다 코트까지 내어주시고……."
 "에이. 뭘 죄송까지야. 미안하면 밥이나 사요. 같이 한 끼 하게."

 그 말에 옥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펜자는 흔쾌히 승낙했다.

 "아 그럼요. 제가 살게요. 이번 주 강의 끝나고 같이 갈까요?"
 "어? 그날 회식 안 해요?"
 "회식요?"
 "회식 할 것 같은데. 주말에 사줘요. 아님 오늘?"

 장신의 남자가 싱글벙글 말했다.

 "아니, 쉴 땐 쉬셔야죠."
 
 옥실이 장신의 남자의 말을 바로 쳐냈다.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러네. 그럼 주말."
 "아 진짜."

 옥실이 짜증을 팍 냈다.
 우펜자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주말에 가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네. 어서 식사하시고 쉬세요."
 "주말에 도서관에서 봬요!"

 우펜자가 그렇게 말하고 급히 가버렸다.

 우펜자가 가고 나자 옥실이 경고했다.

 "너무 과해요."
 


 주말, 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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