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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첫만남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첫만남

SooyangLim 2021. 4. 16. 13:00

 우펜자는 방을 나와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의 고개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눈들이 마치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놀란 듯한, 신기해하는 듯한, 그리고 약간은 피하는 듯한 느낌. 

 그동안은 바빠서 제대로 인지 못했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입장이라서 역시 인지 못했었다. 또 계속 옆에 있던 학장 때문에도 몰랐었다. 하지만 이제 우펜자는 확실히 느꼈다.

 이방인.
 우펜자는 이곳에서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인지한 순간 우펜자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축되고,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어떡해야 하지?'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했다. 

 '또 도망치려고?'

 순간 그 생각이 머릿속에 팟 하고 떠올랐다. 
 또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우펜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차라리 책이나 보자.'

 우펜자는 도망치지는 않되, 자신에게 익숙한 쪽을 선택했다. 책에 파묻히기로.
   
 우펜자는 조심스럽게 도서관 문을 열었다. 찰나의 순간, 눈들이 모두 자신에게 쏠린 것 같았다. 우펜자는 책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도 눈이 있었다. 앉을자리를 살폈다. 그와 마주친 눈들이 다시 책으로 황급히 향하는 게 느껴졌다.

 앉을 자리에 다가갔다. 대각선 편에 앉은 사람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식한 탓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펜자는 멈칫했다. 다른 자리에 앉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 책상에 앉아있던 사람의 눈이 우펜자를 보고 있었던 건지 급히 책을 향해 내려가는 걸 봤다. 그 사람은 책장을 넘기는 척 책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람이 제법 있는 도서관.
 우펜자는 군중 속에 고립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홀로 굳은 채 서있었다.

 우펜자는 쭈뼛거리다 결국 빈 책상에 자리 잡았다.



 "야야야야야야 어떡하냐!? 어떡해? 어떡하냐고!"

 우펜자가 느꼈을 시선들 중 하나가 책장 뒤에서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최대한 소리를 작게 내려고 노력하며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옥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떡하지? 뭐하지? 뭐 할까?"
 "뭘 하긴 뭘 해요. 그냥 봐요."
 "아, 그래."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말을 씹고 갑자기 옆에 있던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뭐, 뭐하려고요?"
 
 옥실이 당황해서 장신의 남자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둘은 실랑이를 벌였다.

 "너 쉬고 있어라."
 "네? 아니, 잠시만요!"
 "좀 있다 보자."
 "아니, 저…"

 옥실이 더 말릴 틈도 없이 장신의 남자는 급 차분한 척을 하며 우펜자가 있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흠흠……."

 그리곤 우펜자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곤 책을 펼쳐 세워서 얼굴을 가렸다.

 '…뭐야, 이 사람?'

 우펜자 주변으로 자리가 잔뜩 비어있었다. 그런데 굳이 티 나게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바로 앞에 앉자 우펜자는 신경이 쓰였다.

 장신의 남자가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묘하게 웃음을 참는 듯 몸을 들썩거리자 우펜자는 굉장히 부담스러워졌다. 우펜자는 자꾸만 흘깃 훔쳐보는 장신의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우펜자는 노트에 쓰던 것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장신의 남자가 책을 홱 올려 얼굴을 가렸다. 

 우펜자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과 자신의 노트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슬그머니 노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우펜자는 자리를 옮겨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상기했다. 

 우펜자는 '내가 일어나버리면 이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 앞사람한테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밖은 완전히 깜깜해졌다. 바깥에 간간히 작게 들리던 사람들의 말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던 사람들도 이제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우펜자 앞사람은 우펜자를 관찰하느라 책을 페이지도 제대로 넘기지 않고 계속 들고만 있었다. 우펜자는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하느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상태였다. 그리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져온 다른 분야의 책 하나를 읽으며 생각하느라 인상을 묘하게 찌푸리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흘렀다.
 바깥에 조만간 통금 시간이니 어서 집에 가라고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 사서도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하지만 통금이 없는 곳에 살던 우펜자는 밖의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그냥 졸고 있었다. 오늘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사서가 우펜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장신의 남자가 깨우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장신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사서에게 다가갔다. 장신의 남자는 사서에게 귓속말을 했다. 사서는 학교 기부자 명단에 있는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서는 장신의 남자에게 도서관 열쇠를 건넸다. 그러고 사서는 그 길로 바로 퇴근해버렸다.

 그 사이 우펜자는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발걸음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하면서 우펜자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슬쩍 들여다봤다. 그리고 노트를 들여다봤다. 우펜자가 무언가 메모해놓은 게 보였다.

 장신의 남자는 그 책과 노트를 물끄러미 보다가 우펜자의 필통에서 필기구를 하나 꺼냈다. 우펜자의 노트에 뭔가를 끄적였다. 그리고는 필기구를 다시 필통에 넣어줬다.
 
 장신의 남자는 물끄러미 우펜자를 바라보다가 아참!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서둘러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우펜자를 덮어줬다. 그리고 데스크로 가서 있던 초가 들어있는 개인 등을 집어 들었다. 그는 아직 온기가 안 가신 등에 불을 붙여 들고 와서 우펜자 앞에 놔줬다.  



 바깥에 새소리가 들렸다.
 우펜자는 한참 만에야 부스스 일어났다. 얼굴에 노트 종이가 쩍 붙었다가 떨어졌다. 

 우펜자는 주변을 확인했다. 도서관은 불이 다 꺼져있었다. 자신 앞에 놓인 못 보던 개인 등의 초도 다 탄 상태였다. 우펜자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해서 멍하니 있었다.

 창문으로 바깥을 봤다. 동이 트고 있었다. 우펜자는 몇 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의 시계를 꺼냈다.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우펜자는 이렇겠나 잤나 싶어서 깜짝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는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그때 우펜자에게 덮여있던 코트가 스르륵 내려갔다.

 "…응?" 

 우펜자는 그제야 자신에게 덮여 있던 코트를 발견했다. 우펜자는 기지개를 켜다가 그대로 정지한 상태로 코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전히 비몽사몽 한 상태라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던 남자가 입고 있던 옷이라는 건 기억해냈다.

 우펜자는 여전히 잠 기운이 남아있는 얼빠진 표정으로 노트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노트에 자신이 적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이 확 달아났다.

드르륵 

 우펜자는 시끄럽게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펜자는 크게 놀라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우펜자가 일어날 때 의자 아래로 코트가 완전히 떨어졌다. 우펜자는 코트를 집어 들고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그리곤 후다닥 책과 자신의 짐을 챙겼다. 우펜자는 코트와 자신의 짐을 챙겨 들고 도서관 문으로 나가려 했다. 

덜컹-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우펜자는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문에 끼워진 쪽지를 발견했다. 

 '아즈어!'

 그 쪽지는 우펜자의 모국 언어인 아즈어로 쓰여있었다. 쪽지에는 문 위에 있는 잠금장치를 열고 나오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바깥의 구석에 열쇠를 놔뒀으니 사서에게 전해주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코트는 만나면 돌려달라고 적혀있었다.
 
 우펜자는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구석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닫고 나오는데-

 "어? 이제 나오신 건가요?"

 도서관 사서가 벌써 출근해서 구레아어로 우펜자에게 말을 걸었다.
 우펜자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랐다가, 사서임을 눈치채고 열쇠를 건넸다. 그리고 코트를 들어 올리며 누구냐고 물었다.

 하지만 사서는 아즈어를 할 줄 몰랐기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우펜자는 그런 사서의 모습에서 더더욱 확신을 가졌다. 우펜자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이 코트의 주인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말했다.

 사서는 대충 코트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챘다. 하지만 말을 전할 수 없어서 역시나 손짓 발짓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

 사서가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며 우펜자한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사서가 우펜자를 데리고 들어가서 사전 쪽으로 갔다.
 
 우펜자는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불안해하다가 사전들을 보고 사서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우펜자는 사서가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아즈어 사전을 찾아 꺼냈다. 그리고 한 단어씩 짚어가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가면서 물었다.

 사서는 어순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약간의 지연이 있었지만 금방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파악했다. 사서는 우펜자가 한 것처럼 한 단어씩 짚어가며 대답을 했다. 
  사서는 그 코트의 주인이 이 학교의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곤 코트를 다시 전달해주기를 바라냐고 물었다.

 우펜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우펜자는 그가 매일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와서 늦은 시간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사서는 그가 도서관을 어느 길로 오는지도 알려줬다. 우펜자는 고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우펜자는 바로 시계를 확인했다. 

 그가 곧 올 시간이었다.
 우펜자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장신의 남자가 옥실과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우펜자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왔다.

 "헉, 헉 저기…! 이거 코트 당신 거죠?"
 "굳이 안 뛰어와도 되는데……."

 장신의 남자의 너무나 유창한 아즈어에 우펜자는 다시 한번 놀랐다.

 "어떻게… 아니, 그러니까 당신……."

 우펜자는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돼서 말이 꼬였다.
 그 때 옥실이 아즈어로 말했다.

 "오늘은 수업 없나요?"

 그 말에 우펜자는 아차 했다.
 오늘은 아침 첫 교시부터 수업이 있었다.
 우펜자는 다급히 장신의 남자에게 코트를 돌려주며 말했다.

 "아, 여기요."
 "나중에 다시 봅시다. 도서관에 있을 테니."
 
 장신의 남자가 코트를 받아들며 말했다.
 그 말에 옥실이가 팔꿈치로 장신의 남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래요. 좀 있다 봐요!"

 그 말을 남기고 우펜자가 다급히 뛰어갔다.
 장신의 남자는 뛰어가는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는 감격한 표정으로 돌려받은 코트를 꼭 안았다.

 "뭐 하는 거예요!?"
 "아아……. 우펜자가 나한테 직접 줬어……."
 "하… 진짜……."



 점심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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