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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시선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시선

SooyangLim 2021. 6. 18. 17:17

 "수업 끝. 주말 잘 보내요, 여러분."

 우펜자가 책을 닫으며 최근에 장신의 남자에게 배운 구레아어 문장을 말했다. 발음이 아직 어눌하긴 했지만, 학생들은 바로 알아듣고 인사를 하고 각자 가방을 챙겼다. 그리곤 썰물처럼 교정을 빠져나갔다.

 우펜자는 외출 준비를 해서 교정 밖으로 나가 여느 때 처럼 장신의 남자를 만나러 갔다.
 두 사람은 오늘도 맛있는 맛집을 돌아다니며 한 잔 했다.

 "오늘 알려주신 말을 써봤는데…"

 우펜자가 기쁜 얼굴로 장신의 남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했다. 두 사람은 오늘도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학문적인 이야기 등등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 때,

 "어?"

 옆에 있던 잠자코 있던 옥실이 갑자기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왜?"
 "…아니에요."
 "뭐야, 깜짝 놀랐잖아."

 장신의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다시 우펜자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

 옥실은 말 없이 조용히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뭐지? 왜?'



 "아직도 못 알아냈다고?"
 "죄송합니다."

 9구역에서 설치한 총독부 안, 직원 몇 명이 사무실 안에서 앉아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의자에 앉아서 가져 온 보고서를 살펴보던 그는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꼬박꼬박 먹으러는 잘 나타나는군. 도대체 어디서 난 돈인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며 보고서를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눈치를 보던 직원들 중 하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술집에 드나드는 것을 빼면 매번 같은 사람하고만 먹으러 다녔습니다."
 "그래?"
  
 그 말에 앉아있던 이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누군데?"
 "우펜자라고 아즈국 출신의 학자입니다. 올해까지만 여기 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즈국? 학자?"
 "네. 아즈국의 그 유명한 명문 학교의……." 
 "야."
 "네?"
 "그 학교 후원자면 당연하잖아."

 의자에 앉은 이가 짜증 내며 말했다.
 서 있는 이가 수살함을 어필하듯 말했다.

 "다른 놈 하고는 아예 마주치지도 않는데요?"
 "아예?"
 "네. 전혀."

 그의 단호한 대답에 앉아있는 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래…? 근데 뭔가 작당하기엔 너무 개방된 장소만 다니는데……. 혹시 무슨 대화 하는지는 조사했나?"
 "그건… 주로 아즈어로 이야기 해서……."
 "아즈어로 대화한다고?"

 그 말에 그가 자세를 일으켰다.

 "아즈어 하는 놈 한 놈 붙여 줄테니까 알아내."
 "네."
 "아, 그리고."

 그가 메모지에 뭔가를 써서 주며 말했다.

 "이름이 우펜자라고 했나?"
 "네."
 "우…펜…자……. 됐다. 자, 이거 가져가서 정보국에 혹시 뭐 없는지 정보 좀 넘겨 달라고 해봐."
 "알겠습니다."
 "물론 더 면밀히 조사해 보고."
 "네!"



 몇 주 뒤, 장신의 남자는 옥실과 시장통을 한가로이 걷고 있었다. 그는 바뀐 날씨에 맞게 새 옷을 사 입고 책방으로 가고 있었다.

 "그만 좀 사죠?"

 옥실이 그의 과소비에 대해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때 아니면 언제 누려보냐?"
 "하……. 그렇게 돈 막 쓰니까 좋아요?"
 "응. 좋아."
 "에휴."

 장신의 남자는 책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뻔뻔하게 대답했다. 

 "야."
 "네?"
 "넌 어떻게 생각하냐? '길고 길었던 검은 밤하늘을 밝히는 빛나는 위성 아래 검은 말을 타고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온, 언뜻 보면 마왕 같은, 하지만 나의 구세주. 그 밤, 피어났던 나의 마음은 저물면서 다시 새롭게 피어났다.' 대체 뭘까?"
 
 장신의 남자가 외우고 있던 책의 한 구절에 대해 옥실에게 물었다.

 "해설가들은 다들 밤새워서 한 오랜 시간의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뒤에 나오는 명상의 시나 고뇌의 시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고요. 그러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바로 떠났다고 했으니."
 "다른 해설은 없냐?"
 "실체된 대상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긴 해요. 근데 너무 시적인 묘사라 시가 아닐 가능성이 희박하죠."

 옥실이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진짜 시적이야. 그렇게까지 낭만적인 사람 같지는 않은데, 안 그래?"
 "그렇긴 하네요."
 "당대 시인들 못지않아."
 
 장신의 남자는 그러면서 책 방 안의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거 봐. 시인들 만큼이나 울림이 있잖아, 울림이. 진짜 대단해. 지금 시인들 시는 엄청난데 그에 못지않다고!"
 "예이 예이."

 옥실은 또 시작하나보다 싶어서 대충 대꾸했다.

 "처음에는 영 달라서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그럴만하지.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갖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 했다는 게 대단하지 않냐?"
 "네~ 네~."
 "야, 좀 진지하게 들어줘라."
 "자~알 듣고 있습니다."
 "쳇."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태도에 입을 삐죽했다. 그리고는 책 안의 내용을 보며 다시 말했다.

 "야. 이거 봤냐? 진짜 멋진 시야."
 "무슨 시인데요?"

 옥실이 그가 든 책 안의 시를 슬쩍 보고는 대답했다.

 "멋질만하네요."
 "그렇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멋질만 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후원을 하면 어떨까?"
 "네?"

 옥실이 장신의 남자의 말에 불길함을 느꼈다. 
 장신의 남자는 슬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멋진 시에는 멋진 일이 따라줘야지. 안 그래?"
 "네. 안 그런데요. 안 돼요. 돈 그만 좀 쓰시죠?"
 "캬!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 대답! 그럴 줄 알았지!"

 그 말을 하며 장신의 남자가 책을 내려놓고 옥실의 등을 탁 쳤다.

 "근데 난 존나 멋진 놈이거든."
 "…아 설마."
 "이미 싹 다 후원했다 그 말이야."
 "아 미친. 얼마요?"

 옥실이 탄식을 하며 이마를 탁 쳤다.

 "얼마가 중요하겠냐? 멋진 일은 다다익선이지."
 "얼만데요?"
 "얼마냐고?"

 장신의 남자가 책방 안을 흐뭇하게 돌아보며 말했다.

 "옥실아, 이번 달에 나온 동인지가 몇 개냐?"
 "아, 설마." 
 "거기 등단한 신인들이랑 작품이 몇 개지?"
 "……."

 옥실은 할 말을 잃었다.

 "나 개 멋지지 않냐?"
 "아뇨. 하……."
 "크 이렇게 멋진 날 거나하게 먹어야지."
 "하… 주인님… 보고 싶어요, 주인님……."
 "가자!"
 "네? 어딜요?"
 "거나하게 먹여야 된다니까?"
 "예?"

 장신의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서 책방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갔다.

 "어디가는데요?"
 "좋은 데. 오늘은 좀 비싸게 굴어보려고."
 "안 비싸게 군 날이 있었어요?"
 "아참. 그런 데 가려면 이걸로는 좀 부족한데?"
 "도대체 '그런 데'가 어딘데요?"
 "어디긴 어디야."
 "아 설마 또?"
 
 장신의 남자는 걷다가 옆에 있던 옷집에 걸린 구레아 전통 옷을 리뉴얼한 옷을 발견했다.

 "야, 이거 나 걸치면 멋질 것 같지 않냐? 가디건으로 입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살짝 춥거든."
 "안 멋질 것 같은데요."
 "지랄 마. 나 지금 완전 잘 생겨서 멋지거든."

 그러고는 장신의 남자는 별 고민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그 옷을 사서 입었다.

 "멋지다 해줄까?"
 "안 해줄리가 있겠어요?"
 "전에 그 양복은 별로라고 했었단 말이야."
 "그건 너무 화려하고 누랬잖아요."
 "하긴. 너무 과감하긴 했어. 이건 괜찮겠지?"
 "제가 보기엔 시꺼매서 그냥 저승사자 같은데."
 "어… 별론가?"

 장신의 남자는 그러고는 다른 식당들과는 남다른 술집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종업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어서오세요!"
 "자리는?"
 "아유, 없어도 마련해드려야죠!"
 "혹시 전에 공연하던 사람들 오늘도 오나?"
 "아유, 없어도 불러드리겠습니다!"
 "아이, 그렇게까진 안 해줘도 되고."
 "하하하. 아, 바로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옥실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장신의 남자를 따라 자리로 갔다.
 장신의 남자는 평소처럼 옥실과 둘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가겠거니 하고 잠자코 따라갔다. 그런데 오늘은 그리로 가지 않았다. 
 
 "응? 어디 가는 거야?"
 "넓은 자리로 안내해 드리려고요!"
 "엥? 왜?"
 "다른 데는 자리가 다 찼거든요."
 "아 그렇구나."

 장신의 남자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옥실은 오늘 돈 잔뜩 쓰겠거니 눈치를 채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시키고 좀 있으니, 갑자기 종업원이 공연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여기 우리 극단 공연팀입니다. 소개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응? 공연 끝나고 나서 관객들한테 인사하는 거 아니었어?"

 장신의 남자가 의아해 하는 사이 공연팀 사람들 중에 하나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 누런 옷 안 입고 오셨네~?"
 "그거 그렇게 별로였나…?"
 
 그들이 인사를 하며 은글슬쩍 자리잡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여자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아, 여기 이 친구들이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특별히 부른 친구들이거든요."
 "안녕하세요."

 처음보는 여자들이 인사했다.
 장신의 남자가 얼떨떨하게 인사했다.
 옥실이 장신의 남자와 새로 온 여자들 사이에 끼여 앉아서 부루퉁한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제 식사하세요?" 
 "뭐……. 이게 식사이긴 하지."
 "저희도 아직 식사 안했는데."
 "공연하고 먹는건가?"
 "네. 같이 먹어도 될까요?"
 "그러든지?" 

 장신의 남자는 별 생각없이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여자들은 바로 음식을 시켰다.

 "아, 내가 사는 거였어?"
 "그럼 뭔 줄 알았는데요?"

 옥실이 옆에 찌그러져서 말했다.
 이제서야 옥실의 존재를 발견한 여자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어머, 이 애는 누구?"
 "전 그냥 조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아."
 
 옥실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때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 식사 전에 우리 공연 보여드릴게요. 이 친구들이 실력이 아주 대단하거든요."
 "오! 그래도 돼?"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 공연을 보여드릴게요."
 "와 대박."

 장신의 남자의 말에 다들 꺄르르 웃으며 특별 단독 부대를 선보였다. 특별히 왔다던 여자들은 특별한 만큼 급이 다른 무대를 선보여줬다 장신의 남자는 그저 감탄만 했다.

 그들은 멋진 공연도 해주고 술도 주거니 받거니 해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말했다.

 "이제 공연하러 가볼게요."
 "응. 고마웠어. 멋지더라."
 "아이, 뭘……. 다음에 또 찾으시려면 종업원한테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들 우르르 일어나는데 오늘 처음 본 여자 중에 한 사람이 일어나는 척 하다가, 장신의 남자의 귓가에 은근슬쩍 속삭였다.

 "연회가 아니라도 부르고 싶으시면 조용히 연락 주세요."
 "응?"

 그녀는 은근한 미소를 흘리고는 자리를 떠버렸다.

 그들이 다 가버리고 나자 장신의 남자가 옥실에게 물었다.

 "옥실아, 연회가 아니라도 부르고 싶으면 연락 달라는데. 나 이거 데이트 신청 받은건가?"
 "허이구. 저 여자들이 누군지나 알아요?"
 "공연팀 아냐?"
 "공연팀 말고 새로 온 여자들요. 특별히 왔다던 여자들 말이에요."
 "누군데?"

 옥실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기녀들이잖아요."
 "엥? 기녀들은 데이트 안 하잖아."
 "그렇죠. 그냥 기녀라면 절대 안 그러겠죠. 근데 여기까지 온 거 보면 모르겠어요? 에휴 귀찮게 됐네."

 옥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상황을 전혀 못 파악한 듯 옥실에게 물었다.
 
 "뭘? 뭐가 귀찮게 돼?"
 "돈 그리 쓰고 다니니 뒤로 은근하게 데이트 하고 다니는 기녀들이 냄새 맡고 꼬인 거라고요. 진짜 대단한 기생은 이런 자리 오지도 않겠지만."
 "아하."

 옥실이 물을 따라 마시는 동안 장신의 남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적으로 만나면 안되는 사람들인 거지?"
 "내 이럴 줄 알았지. 절대 안 돼요."
 "아, 알았어. 어차피 나도 뭐 사고치고 다닐 생각은 없어. 그냥 이렇게 공연이나 보지 뭐."
 "에휴."

 옥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흑심이 있는 기생들을 만나고 다니던 장신의 남자는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야, 옥실아."
 "네?"
 "전에 네가 말한 진짜 대단한 기녀들은 어떤 기생들이냐?"

 두 사람은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옥실이 질문을 받자마자 장신의 남자를 앞질러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옆에 상점가에 놓여있던 신문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지면 광고에 나온 사람을 가리켰다.

 "여깄네요. 홍화 이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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