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Daydream of prime of life 3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Daydream of prime of life 3

SooyangLim 2021. 4. 12. 19:00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치는 거대한 폭발은 한꺼번에 모든 걸 태워버리고 힘이 빠진 듯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선배님!!!"

 지훈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가려했다. 지훈은 급한 대로 차 안에 있던 생수를 뒤집어썼다.

 "뭐하는겁니까?"
 
 김 순경이 지훈의 팔을 잡았다. 김 순경은 여느 때보다 급하고 빠르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위험합니다! 119도 불렀으니…"
 "불길이 잦아들었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지훈도 한 시가 급하다고 생각해서 김순경을 뿌리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2차 폭발이 있을 수 있잖습니까? 감정에 앞서지 말라고요!"

 김 순경의 언성이 높아졌다.
 
 "방금 전 폭발은 탱크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터진겁니다. 그래서 지금 다 연소하고 잦아드는 겁니다."

 지훈이 먼저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고 김 순경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여전히 말이 급하게 나오긴 했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논리를 내세우려는 모양이다.

 "제가 봤습니다! 혹시 모릅니다. 어디 안전한 곳에 계실지……."

 김 순경의 손아귀 힘이 약간 풀렸다.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절반은 그래도 안된다는 걱정이 섞인 간절한 표정으로, 절반은 이 사태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대한 무게가 느껴지는 말투로 김 순경이 물었다.  
 지훈이 그 말에 무언가를 바로 답했다.

 그 말을 들은 김 순경은 마지막 남은 손의 힘을 풀었다.
 아니, 풀 수 밖에 없었다.

 김 순경은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건물로 뛰어들어가는 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선배님!"

 지훈은 목청 높여 불렀다.  
 아니나다를까, 지훈의 예상대로 공장 안의 불길은 소강상태였다.

 "김 형사님!"

 몇몇 집기들이 타고 있긴 했지만, 폭발 때 이미 거의 다 전소되어 공장 내부에도 불씨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폭발로 한 번에 싸그리 다 날려버려서인지 남은 연기마저도 거의 없었다. 한 두 개 남아 있는 집기가 타고 있는 것 빼면 깨끗하게 다 타버린 상태였다. 
 덕분에 시야 확보가 수월했다.

 '다 타서 그런가? 공장치고는 뭔가 휑한데? 게다가 이 냄새는 묘하게 휘발유가 섞인 것 같은······.'

 더 생각하기 전에 지훈은 열린 문을 발견했다. 

 '응? 여긴?'

 지훈은 이상한 방을 발견했다. 

 '…뭐지? 저 욕조 같은 건? 하나도 안 탔잖아?'

 욕조처럼 생긴 튜브들이 이상한 물탱크 같은 것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불길들이 공장을 죄다 태워먹었지만, 그 튜브들은 내구도가 얼마나 좋은지 그을음만 있을 뿐 상당히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 다른 것들은 다 뚜껑이 열려 있는데 하나만 닫혀 있었다. 

 지훈은 하나만 닫힌 보자 본능적으로 다가갔다.

 '저것만 닫혀 있네?'

 튜브로 다가가 그을음을 팔뚝의 옷으로 문질렀다. 뚜껑 안으로 사람 형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선배님!?"

덜컥

촤악-

 지훈이 뚜껑을 열자 안에서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안에 있던 액체는 순식간에 기화해서 증발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미경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다행히 살아있었다.
 튜브에서 나오려고 애쓴 탓에 손 마디마디가 멍이 들었고, 손톱은 부러지고 빠져 피범벅이었다. 튜브 안에 있던 휴대폰은 침수된 건지 뭔지 꺼져 있었다. 

 지훈이 미경을 튜브 안에서 완전히 꺼낼 때까지도 미경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다. 지훈이 cpr을 위해 기도를 확보하고 흉부 압박을 하자 입과 코에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제발……!"

 자신도 모르게 지훈의 입에서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때 이제 막 공장 안으로 진입한 소방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생존자 있습니까?"

 지훈은 다급히 소리쳤다.
 
 "여기 생존자 있습니다! 여기요! 위급합니다!"

 소방관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응급처치를 넘겨받았다. 미경은 소방관들의 신속한 조치를 받으며 구급차로 들려갔다. 그리고 곧 미경은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다.
 


 "…여긴?"

 미경이 뻑뻑해진 눈을 뜨며 말했다. 미경은 밤이 지나고 해가 뜨고 나서야 눈을 떴다.
 공장에서 흠뻑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액체 때문인지 아니면 갈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경은 몸에 뭔가 덕지덕지 붙은 느낌을 받았다. 미경은 얼굴을 슬슬 문지르며 일어났다.
 지훈이 미경이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드세요!? 괜찮으세요!?"
 "소리 지르지마. 골 울리는 것 같으니까."

 지훈이 놀라서 큰 소리 치자 미경이 링거가 꽂힌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미경은 지훈이 의사를 부를 새도 없이 물었다.

 "…공장은?"
 "본인 몸부터 걱정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미경은 일어나자마자 상황을 파악을 하자 지훈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병원에 있는 데 뭔 걱정. 어차피 나 건강해서 괜찮아. 공장은? 확인했어? 지원은?"

 미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의사가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지훈은 의사를 부르려다가 멈칫하며 말했다.

 "공장은··· 폭발했습니다."

 지훈은 목소리를 낮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은밀하게 말했다.

 "뭐?"
 "폭발 규모가 커서 언론을 타긴 했지만···뉴스에는 그저 합선으로인한 폭발 사고로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선배님은 지나가던 행인으로 나왔습니다."

 지훈의 말대로면 피해자인 미경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실리지 않았고, 그 자리의 목격자인 지훈과 김 순경의 말이 전혀 인용되지 않은 것이다.
 그 말인 즉은…

 "은폐되고 있군."
 "증거가 없어요. 제 목격담 밖에는……. 들어갔을 때 약간이지만 남아있던 휘발유 냄새나 흔적도 그렇고 의도적인 방화 같은데 합선이라니……."
 "은폐에 방화. 그 놈 짓인가……."

 미경이 백도경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cctv도 곳곳에 있는 데다가 담벼락도 높은 철옹성 같은 백도경이 살고 있는 저택. 그 저택에 차 한 대가 거칠게 운전하며 들어왔다.

 "지금은 안 돼요! 안정을 취하셔야 된다고…!"
 
 백도경의 딸 제인(Jane)은 평소에 이 나라 말을 자주 쓰지 않는지 약간 어눌한 발음으로 다급하게 소리치며 말렸다. 
 하지만 그런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도를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백일제약 부사장이자, 백도경이 오기 전까지 백일그룹 회장인 백진회의 권한 대행 역할을 위해 부회장으로 있었던 신현석이었다. 신 부사장은 다짜고짜 집 안쪽에 위치한 백진회의 서재로 들어갔다.

쾅!

 미닫이 문이 박살날 듯 거칠게 열렸다.

 "지금 온 뉴스가 다 난리입니다. 대체 왜 이렇게 성급하게 행동하신겁니까?"

 신 부사장이 흥분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침착은 거기까지였다.

 "대체 왜!"

 신 부사장은 서재 안의 의자에 누워 있는 백 사장을 보자마자 울분에 찬 소리를 질렀다.
  
 "…왔나. 역시 자네는 항상 빨라. 이번에는 좀 느렸지만."

 백 사장은 고개만 살짝 돌려서 소리 지르는 신 부사장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바라보며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는 링거를 꽂고 있던 주제에 한껏 젖혀지는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서 술과 담배를 하고 있었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신 부사장은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아쉽습니다." 

 동안인 백 사장보다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신 부사장은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가며 빈정거렸다.   

 "폭발 났을 때 죽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백일제약 백도경 사망 속보 나가고, 그 뒤에 제가 그 자리 차지하면 딱 좋았을 텐데."
 
 신 부사장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는 한숨 한 번 쉬었다. 그리고는 백 사장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됐고, 변명이라도 해보시죠. 대체 왜 그런겁니까?"
 "변명? 허! 그래, 변명……."

 백 사장은 자조섞인 비웃음을 피식거리더니 웃는 듯 괴로운 듯 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여전히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변명이랄게 뭐 있겠어. 내가 성급한 것도, 쥐새끼가 숨어든 것도, 누가 숨어든지 확인도 못하고 그러던 것도, 또 일이 이렇게까지 될 동안 몰랐던 것도, 그리고 내가 이 모양인 것도……. 다 내 탓이지. 안 그런가?" 

 그는 손가락에 담배를 끼운 손으로 반 정도 사라진 독한 양주를 들며 말했다. 담배와 술을 든 팔에는 한두 번이 아닌 듯 온통 푸르뎅뎅하게 멍든 자국과 바늘이 꽂혔던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링거가 꽂혀 있었다. 
 
 "……."

 신 부사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그 꼴을 이글이글 타오르고 끓는 속으로, 하지만 동시에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그는 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신현석 부사장은 백 사장의 손아귀에서 술병을 뺏았다. 그리곤 자신이 벌컥벌컥 냅다 들이켰다.

 그런 신 부사장의 모습에 놀라 백 사장은 손에서 술을 빼앗긴채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그 독한 술을 순식간에 다 비운 신 부사장은 바닥에 냅다 던졌다.

쨍그랑!

 "꺅!"

 백도경의 딸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게 다 당신 탓입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네?"

 신현석 부사장이 대들듯 소리쳤다. 그는 숨도 안 고르고 술을 원샷한 탓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정신차리고 엎질러진 일이나 치우시죠."

 신 부사장이 다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니면 진짜 당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앉을 테니까."

 그 말만 남기고 신현석은 살짝 비틀거리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

 백 사장이 그런 신 부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쟤는 날이 갈수록 싸가지가 없어……."

  

 "아참. 증거! 내 휴대폰은?"
 "그게… 챙겨놓긴 했는데 침수가 되서……."

 아직 집에 안 가고 옆에 있던 지훈이 미경의 말에 곤란해하며 말했다. 지훈은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놨던 미경의 휴대폰을 조심스레 건넸다.
 미경은 폰을 건네 받으며 물었다.

 "고마워. 침수되서 아예 안 되는 거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전원이 안 켜져요."

 미경은 혹시나 해서 전원버튼을 눌러봤지만 여전히 먹통이었다. 
 
 "곤란하네. 증거도 증거지만 당장 써야 되는데. 국과수에 고쳐달라고 해봐야겠어."

 미경의 말에 지훈은 잠깐 어리둥절했다.

 '증거 자료로 제출이 아니고 고친다고…? 국과수에?'
 
 그 때 링거가 다 내려가서 납작해지자 미경은 밝아진 표정으로 링거를 뜯어내듯 떼냈다.
 지훈은 그 모습에 기겁했다.

 "뭐 하시는겁니까!?"
 "나 멀쩡한데 퇴원해도 되지?"
 "아니, 그래도 좀 안정을…!"
 "안정은 휴가 기간에 집에서 취하면 돼!"

 미경은 활달하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원」 

 "…여긴 폰 고치는 데가 아닌데."

 미경이 건넨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성준 법의관이 마침내 입을 떼었다.
 미경과 친한 법의관인 그는 올해 만으로도 40대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기 위해 파마를 했다가 실패해서 푸딩 그릇을 엎어놓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증거라고, 증거. 거기에 내가 사진하고 영상 다 찍어놨거든?"

 미경이 항상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정식 루트가 아니라 몰래 찾아와 성준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래서 성준은 안경 너머로 미경을 바라보며 불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수사권은 갖고 계시고?"
 "그래서 내가 너한테 온 거 아니겠어?"

 미경과 휴대폰을 들고 서 있는 성준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미경이 약간의 미소를 띄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성준은 지지 않고 동그란 안경 너머로 미경을 눈싸움하듯이 잠시 바라봤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성준은 결국 항복했다. 
 성준은 마침내 살짝 피식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주머니에 미경의 휴대폰을 슥 집어넣었다.

 "아, 알겠다고 알겠어. 한 번 알아볼게. 근데 바빠서 시간 좀 걸릴 거야."
 "정말!? 고마워!" 

 미경이 환하게 웃으며 바로 고맙다고 해맑게 인사를 했다.

 "이 누나가 요즘 큰 거 몇 건 해결하더니 상도 받고 얼굴도 피고 젊어지고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됐어. 정말 이럴 거야?"

 그 말에 미경은 깔깔 웃으며 그런 말은 넣어두라는 손짓을 했다.

 "와하하! 립 서비스가 과하다? 이걸로 뭐 냉장고라도 바꾸게? 나 보너스 그만큼 안 돼~"
 "어라? 남의 호의와 호감을 이용 해먹었으면 그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니야?"
 
 성준은 은근슬쩍 본심을 한 단어 흘려 넣으며 말했다.
 그러나 미경은 전혀 눈치 못 챈 듯 웃으며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하하! 구라 그만까고 꼭 끝나면 연락 해! 소고기 사줄 테니까!" 

 미경은 당부하고는 신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혔음에도 복도를 따라 미경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

 성준이 미경이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웃음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성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짠데."



 미경은 2월의 늦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차에 탔다.
 미경은 졸린 눈을 비비며 꾸역꾸역 차를 몰았다. 차는 오래된 복도식 임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혼자 살기에 딱 좋은 방 한 칸 딸린 집으로 미경은 좀비마냥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집을 구한지는 한참 됐지만 정작 들어가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인 집의 현관문이 오랜만에 열렸다.

 "어이고 지친다."

 미경이 신발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싱크대에서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가 났다. 덕분에 집 안에 날파리들이 왱왱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음식물 쓰레기 안 버리고 갔네……."

 하지만 미경은 참을 수 없는 졸음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외면했다.
 미경은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몰라. 일단 좀 자고 보자."

 미경은 몸이 가려워서 북북 긁으며 침대로 직행했다. 그리곤 옷도 안 갈아입고 털썩 쓰러지더니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미경이 잠이 든 사이에 커튼 사이로 햇빛이 동쪽 서쪽을 몇 번이나 이동하며 비췄다. 그렇게 방안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시계의 시침도 여러 번 돌아갔다.
 미경은 꼼짝도 안 하고 잠에 빠져있었다.

 다시 해가 뜨고, 미경이 눈 감았을 때의 시침과 분침 모양으로부터 몇 시간 정도 차이나는 모양이 되었을 때야 미경은 일어났다.

 "음……. 몇 시지? 목말라……."

 너무 오래 누워 자서 인지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사실 살아 있는 게 용 할 정도로 오랜 시간 물을 안 마신 상태였다.
 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몸에서 때 같은 각질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눈에는 눈곱이 가득하고, 앞이 뿌옇고 뻑뻑했다.
 미경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참. 폰 없지, 참."

 미경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지금은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미경은 뿌연 시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곱이 가득 끼었다.
 
 "벌써 저녁시간 다 되가네."

 미경은 시계를 보고 잠깐 낮잠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경은 별 생각 없이 손을 긁으려다가 손에 뭔가 가죽 같이 두꺼운 것이 켜켜이 쌓여 벗겨지고 갈라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손의 피부 가죽의 각질층이 두껍게 쌓여서 마치 가뭄 든 땅처럼 보였다. 그리곤 그렇게 가뭄 든 땅처럼 갈라진 피부가 조각조각 떨어져서 나오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손만 그런게 아니었다. 침대 위에 얼굴이 얼굴이 있던 자리에도 두꺼운 각질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거 무슨 유해성분인가? 아, 역시 씻고 잤어야 됐는데." 

 미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걸어갔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던 건지 알 수 없는 물을 냉장고 안에서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미경은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몸을 벅벅 긁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두거운 각질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미경은 옷을 벗어 바로 세탁기에 직행시켰다. 그러면서도 몸을 벅벅 긁었다. 계속 두꺼운 가죽 같은 각질들이 뚝뚝 떨어져 나오는 걸 보며 미경은 청소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경은 화장실 불을 켜고 한 걸음 내딛으려는 순간,

 "응?"

 거울에 낯선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말소리에 따라 입을 움직였다. 그녀는 얼굴에 뭔가를 덕지덕지 붙이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어……?"

 거울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48세 김미경이 아닌 젊은 여자를 비추고 있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