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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Quite! 2부 23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2부 23화

SooyangLim 2023. 12. 21. 19:03

 차 문이 열리자 산중턱에 사람이 몇 없는 계곡임에도 주현을 알아본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왔다.

 "어! 송즈!"
 "주현이다!"
 "우와 나 연예인 처음 봐!"
 "어머어머!"
 "헐 연예인?"
 "와 씨 뭐야?"
 "아까 위에 드라마 촬영한다던데 거기 나오나 봐." 

 주현은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사람들이 요청하면 하는 대로 대화도 다 하고, 싸인도 하고, 사진도 찍어줬다. 좋게 말하면 애살이 있다는 정도로, 나쁘게 말하면 좀 치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하게 밝고 붙임성 좋게 팬서비스를 했다.

 그런데 이 산 중에도 스토커가 몇몇 찾아와서 주현에게 추근댔다.

 "젠장. 여기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매니저가 이 산중의 계곡까지 찾아온 스토커 몇명을 보고 중얼거렸다.

 "야, 가자."

 매니저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고 있는 주현을 잡아끌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주현은 거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팬 서비스를 했다.

 "…저래도 되나?"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가족과 피서를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팬이 중얼거렸다.

 "가자가자. 늦겠다."

 결국 매니저가 더 지체되기 전에 주현을 데리고 강제로 촬영장으로 데리고 갔다.
 주현이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따라붙는 스토커들과, 또 그런 스토커에게까지도 밝게 대하는 주현의 태도를 보던 팬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래 저런 사람이었나…?"

 가족과 함께 피서를 온 팬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다. 이내 답변이 주르르 달렸다.

-주현이 원래 팬 서비스 엄청 잘하고 친절하던가?
 ㄴ웅
 ㄴㅇㅇ 잘해줌
 ㄴ엄청 잘하는 편임

-주현이 원래 사생한테도 팬 서비스 잘 해 줌?
 ㄴ? 그건 아님
 ㄴ사생한테는 철벽임

-주현은 실제 성격이 원래 엄청 밝은 성격임? 붙임성 좋고 비글 같고 그럼?
 ㄴ실제 성격도 밝고 붙임성 좋음ㅇㅇ
 ㄴ비글 같은 성격은 아닌데...? 정반대일걸...?
 ㄴ원래 자존감 높고 붙임성 좋은 건 맞는데 차분한 편인걸로 알고 있음. 멤버들 피셜.
 ㄴ송즈에서 제일 차분하고 신중한 편일걸? 라이브에서도 그렇자나 완전 얌전하던데
 ㄴ평소에 조용하고 튀는 짓 싫어한다고 했었옹
 ㄴ전에 ㅇㅇ(멤버 이름)이가 형인 거 아는 데도 인내심 좋고 엄청 어른스러운 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ㄴ맞아요. 인내심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좋다고 그랬어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뭔지 얘기는 안 했고, 그래서 리더가 됐다고 인터넷 방송에서 얘기했어요.
 ㄴ나도 그래서 리더 됐다고 들었음!

 "…이상하네."

 피서를 온 팬은 댓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주현은 나이들고 더 밝아진 편?
 ㄴ아님 요즘 더 차분해짐
 ㄴ한 때 방송 무지하게 할 때 보면 엄청 밝아보이긴 했오
 ㄴ근데 그거는 라이브 방송이랑 sns를 과하게 많이 할 때라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음?
 ㄴ그건 그런데 요즘 최근에 마주치는 사람들 말 들어보면 엄청 기분 좋아보인다고 했음
 ㄴ활동기 끝나서 그런가 봐요ㅠㅠ 덜 피곤해보여서 다행이다ㅠㅠㅠㅠ

 "다행…인가?"

 팬은 댓글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뭔가 좀… 불길…한데…? 왠지 그때 같은……."

 그 팬은 주현의 그런 모습에서 무언가 데자뷔를 느낀 모양인지, 팬은 과거의 어느 시점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때 팬의 가족이 말했다.

 "원래 연예인은 다 저르냐?"
 "응?"
 "쟈는 좀 이상해야."
 "엄마도 그래 보여?"
 "니도 그래 느꼈냐?"
 "응……."
 
 그 말을 끝으로 팬과 가족은 말을 삼켰다. 팬과 가족은, 오늘 올 수 없었던 가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팬은 괜히 발이 시린 척 하며 말했다.

 "…엄마. 숙소 올라 가자. 계속 있으니까 물이 차다."



 "자~ 들어갑시다~"

 감독의 명쾌한 호명 아래 주현의 촬영이 시작됐다.

 "아버지. 오랜만에 이 못난 아들 놈이 왔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가짜로 만든 봉분 앞에서 연기를 하는 상대 배우에게 주현이 다가가며 대사를 했다. 상대 배우가 놀라 일어나는 연기를 하며 말했다.

 "아니, 주현씨! 여긴 어쩐 일입니까!"
 "오영일씨가 생각나서요."

 주현은 소주병과 과자가 담긴 봉지를 들어 보이며 대사를 했다. 
 
 "컷!"

 드라마 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조~아써! 이거 그대로 가면 되겠네! 그럼 두 사람이서 앉아서 대화하는 다음 컷도 찍어봅시다!"

 감독은 잘 뽑힌 컷 덕분에 신났는지, 일사천리로 촬영을 속행했다.
 주현과 상대 배우가 소주를 따라 놓고 가짜 봉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상대배우가 눈물 연기를 하며 말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지 몰랐습니다."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상대 배우가 극 중 '캐릭터 주현'에게 대사를 했다.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말씀하세요."
 "아버님을 마지막에 뵈었을 때 어땠습니까?"
 "오영일씨는……."

 주현은 대사 중간에 잠시 뜸을 들였다. 어쩐지 대사가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주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 배우를 바라봤다.

 "후련 했을겁니다."
 "후련…이요?"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그랬으니 다 정리하고 제게 전해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다만 좀 불안해 보이시긴 했습니다."
 "…?"
 "아마도 남겨질 아드님을 걱정해서 그러시는 듯 했습니다. 세상도, 아드님도, 많이 사랑했었을 거니까요."

 주현이 짓는 마음 아파 보이는 미소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상대 배우는 눈물 연기를 열연했다.

 "크흡……. 감사합니다."
 "뭘요."
 "당신 같은 강한 사람이 오늘 제 옆에 있어줘서……."
 
 상대배우가 '캐릭터 주현'에게 하는 대사를 들은 주현은 갑자기 대본의 지문에도 없는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순간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다.

 "당신도, 저도 서로 버텼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린 서로 강한 사람이니까요."

 드라마 속 '캐릭터 주현'이 대사를 내뱉는 동안, 현실 주현은 무너지는 걸 느끼며 힘겹게 대사를 마무리했다.

 "컷!"

 감독이 시원하게 소리쳤다. 촬영장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주현은 환호를 받으며 멍한 기분과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현실 주현이 '캐릭터 주현'의 '연기'로 발수 갈채를 받고 있었다. 주현은 상황과 마음의 괴리와 현실감 없는 붕 뜬 듯한 느낌을 느끼며 얼떨떨하게 가만히 있었다.

 "이야~ 연기가 아주 그냥 일품이네!"

 감독이 감탄을 하며 말했다.

 "아우, 주현씨! 언제 이렇게 연습했어요? 마지막 눈물 연기는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상대 배우가 주현의 등을 툭 치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합이 잘 맞은 연기 덕에 상대 배우도 아주 만족스런 연기를 펼친 눈치였다. 상대 배우는 언제 눈물 연기를 했냐는 듯이 싱글벙글하며 모니터링을 하러 갔다.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감독은 연이어 잘 뽑힌 컷들 덕에 주현과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아유, 주현씨! 이쪽으로 넘어오지 그래? 가요계에 우리 쪽 인재를 뺏겼어~ 하하!"

 감독이 잘 뽑힌 씬 덕에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나중에 시나리오 한 번 받아봐요~"

 상대 배우가 눈물 연기를 끝내고 환한 미소로 스텝들이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걸 받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나 주현은 또 다시 텅 빈 웃음만을 남겼다. 
 지금 주현에게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미련 따위 남지 않았기에, 앞 날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이제 주현은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드라마 촬영은 빠르게 진행됐다. 가짜 봉분 앞에서 찍어야 되는 씬을 모든 배우들이 돌아가며 다 찍었고,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활영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내일 예정이 되어있던 주현의 개인 촬영 씬도 오늘 당겨서 찍게 되었다.

 "좀 쉬어야 되지 않아요?"

 스텝들이 더운 날씨와, 연이어서 찍는 강행군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오전에 시작한 촬영은 어느새 해가 기우는 상황에서도 찍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현은 좀 천천히 찍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현의 의지로 촬영을 굳이 강행해서 연속으로 쉬지 않고 찍고 있었다.

 "아이, 빨리 끝나면 일찍 퇴근하고 좋잖아, 뭘~"

 감독이 스텝들을 달래며 말했다. 그리고 감독과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일하면 제작비 절감도 할 수 있으니, 고돼도 이렇게 해주는 주현이 고마운 상황이었다.

 "자~ 가봅시다! 오늘 빨리 끝내고 일찍 퇴근해 봅시다!"

 감독이 촬영장 분위기를 돋우며 말했다. 덕분에 스텝들은 힘든 상황에 대한 불만과 기쁨이 교차했다. 그래도 더운 날씨에 하루 더 촬영하는 것보다, 오늘 다 끝내고 퇴근하거나 철수하는 것이 나쁜 선택지는 아니기에 다들 일단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찰칵
찰칵

 "어어~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촬영장까지 들어온 스토커들의 사진 촬영과 드라마 촬영 방해에 스텝들이 곤혹스러워했다.

 "아이 씨. 여기까지 왔어?"

 매니저가 짜증 내며 스텝의 도움을 받아 스토커들을 쫓으러 갔다. 덕분에 촬영이 지연 됐다.

 "죄송합니다."

 주현이 지연된 촬영장에 사과의 인사를 했다.

 "아이, 아냐아냐. 주현씨가 무슨 잘못이야."
 
 저번에 스토커와 이상한 스텝 덕분에 호되게 당한 감독은 주현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의 촬영 분량은 끝났지만, 숙소로 가지 않고 주현이 촬영하는 분량을 지켜보고 있던 상대 배우가 말했다.

 "인기가 많은 것도 고생이야."
 "하하."

 주현은 그저 웃었다.

 "잠깐 나와서 쉬다 해요~"

 역시나 자신의 촬영분이 남아 있음에도 주현의 촬영을 지켜보던 여배우가 말했다.
 주현은 영혼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아니에요. 바로 들어가야죠."
 "어우~ 정말 성실하다니깐. 역시 잘 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어~ 호호."

 여배우가 칭찬을 하고 옆에 상대 배우가 맞장구를 치고, 감독도 역시나 맞장구를 치며 칭찬을 했다.

 "자, 그럼 다시 가볼까요?"

 상황 정리가 다 됐을 때는 이미 해가 져버렸다. 결국 야간 촬영으로 넘어가버렸다. 
 어두운 밤이 됐을 때야 감독이 다시 촬영 재개 신호를 보냈다. 

 "오영일씨."

 주현이 가짜 봉분 앞에 앉아서 작은 종이컵에 소주병을 기울이며 대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주현아'
 
 또 들리지 않아야 할 목소리가 들렸다.

 "잘 지냈습니까?"

 주현은 씹고 대사를 했다.

 '어때?'
 "난 잘 지냈습니다."
 '남길 말 없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생각이 나서 왔어요."
 '그래도 마지막인데'
 "나중에 또 올 거예요. 왜냐면,"
 '아무도 널 생각해주지도 않았지만 말야'
 "그 날 왠지 누군가는 당신을 붙잡아줬으면 하는 것 같았어요."
 '어쨌든 죽을 거 한 마디 남겨야지'
 "……."

 주현은 잠시 대사를 멈췄다. 원래 바로 이어지는 대사였으나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지 촬영장은 산에 있는 풀벌레 소리 외에는 몹시 조용했다. 

 "……."

 주현은 떨리는 손으로 작은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가짜 봉분에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선 푹 쉬어요."

 라고 주현의 드라마 마지막 씬 대사를 끝냈다.

 "컷."

 감독의 감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감독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주현씨는 왜 가수를 하고 있죠?"

 지켜보던 상대 배우와 여배우가 감탄을 하며 서로 속삭이듯 작게 대화를 했다.

 "그 때 일로 정말 이 갈고 왔나 봐요……."
 "아니, 감정선이 어떻게 저렇죠? 처음 연기 도전하는 거라 들었는데 말이에요."

 연기를 끝낸 주현에게 매니저가 흥분한 얼굴로 미니 선풍기를 들고 뛰어들어왔다.

 "주현아! 고생했다!"
 "……."
 "장난 아니더라! 정말 잘했어!"

 주현은 매니저와 함께 촬영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흘끗 가짜 봉분을 뒤돌아 봤다.
 그 때 감독이 전 스텝에게 기쁘게 외쳤다.

 "오늘 촬영 끝! 숙소 예약은 이미 되어 있으니 숙소에서 쉬다 가시거나 바로 퇴근하시면 됩니다!"

 감독의 퇴근 선언에 다들 환호했다.

 "우리도 어서 가자!"

 매니저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하지만 주현은,

 "숙소에서 쉬다가 내일 가죠?"

 라고 멍한 얼굴로 말했다.
 매니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왜? 바로 가서 안 쉬고?"
 "이왕 왔는데 쉬다 가죠."

 매니저는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에 말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최근에 못 쉬기도 했거니와, 여러 안 좋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쉬어야 하는 것도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긴 도시와 거리가 좀 있는 산 속 숙박 업소였다. 그래서 매니저는 여기서 쉬는 게 나름 나쁜 선택은 아니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오케이. 그럼 좀 쉬고 가자."

 매니저가 그렇게 말하며 촬영장을 벗어나려는데,

 "주혀나악!"
 "꺄악!"

 이 야밤의 산에서 아직도 스토커들이 하산하지 않고 남아있었다.

 "아니, 저 저 미친…!"
 "안녕~"

 어쩐지 주현은 이 미친 상황에 스토커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야야, 인사를 왜 해 줘?"

 매니저가 급히 주현을 말리며 말했다.
 하지만 주현은 그저 텅 빈 상태로 방긋방긋 웃으며 숙소 쪽으로 걸어내려갔다.

 "촬영 잘 했어?" 
 "지금 끝난 거야?"

 스토커들은 마치 잘 아는 사이인 양 반말을 찍찍 해가면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주현은 어쩐지 오늘따라 스토커들이 하는 말에 하나하나 다 대답을 했다.

 "야야. 그만해."

 매니저는 급히 만류를 했다.
 점점 도를 넘는 말을 하는 스토커들의 말에, 어쩐지 주현은 오늘따라 무슨 말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매니저가 눈치챘다. 매니저는 그 분위기에 기겁을 하며 더 이상 주현이 말을 더 섞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숙소에 집어넣었다.

 "너는 왜 그걸 다 대답해주고 있어?"

 매니저가 숙소 안에서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때 주현이 멍하니 서 있다가 매니저를 불렀다.

 "형. 해물탕 사 줘."
 "해물탕?"  

 매니저는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음식을 요구하는 주현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너 평소에 관리한다고 탕 종류는 쳐다도 안 보잖아."
 "……."
 "으휴. 그래. 오늘 하루종일 촬영도 했고, 요즘 고생 많이 했으니까. 사장님이랑 관리 직원들한테는 말하지 마. 알겠지?"

 평소라면 말리겠지만, 오늘은 고생했다는 핑계를 대며 매니저가 이 늦은 밤에 사러 나갔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그것도 이 주변에 해물탕을 팔려나…?"

 매니저가 차의 시동을 걸며 중얼거렸다.



 "여기도 닫았네."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는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허탕을 쳤다.

 "어? 저기 불 있는 건가?"

 한참만에 매니저는 겨우 한 군데 문을 연 가게를 발견했다. 매니저는 급히 가게에 들어가서 해물탕을 하나 포장해 나왔다.

 "…뭐야?"

 휴대폰을 놔두고 사러 갔다가 차로 돌아온 매니저는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잔뜩 찍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부재중 전화 기록은 의외의 인물들한테서 온 전화들이었다.

 "김두원 박사랑 애들이 나한테 왜…? 또 뭐 사이비 놈들 퇴치할 거 있나?"

 매니저는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다시 또 김두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왜 전화를 이제 받습니까!? 어디예요!?"
 "아, 주현이 드라마 촬영장 왔다가 먹을 거 사서 들어가는 길입니다. 왜요?"

 매니저는 다급한 목소리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물었다.

 "주현이는 어딨습니까?"
 "숙소에… 왜요?"
 "전화를 안 받아요! 당장 확인 해야 합니다!"
 "전화요? 꺼져 있어요?"
 "그냥 안 받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확인을…"
 "샤워하겠죠."

 매니저는 입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매니저가 전화를 차량 블루투스로 변경하고, 급히 차를 몰며 물었다.

 "뭐 짚이는 게 있어요?"
 "놈들이 퍼뜨린 가스의 성분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건…"

부아앙

 김두원의 설명을 듣던 매니저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자마자 딱지 끊길 각오를 하고 엑셀을 밟았다.



휘이잉

 높지 않은 건물의 숙소. 하지만, 좀 높은 지대에 세워진 숙소인 탓에 산 아래 저 멀리 있는 소도시의 풍광까지 옥상 위에서는 훤히 보였다.

 "……."

 주현은 매니저를 보내놓고 옥상의 난간 위에 앉아서 야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두 팔을 벌리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그러다 다시 눈을 뜨고 팔을 내렸다. 그러더니 건물 아래를 바라봤다.

 "…사람이 많네."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스토커들과 드라마 스텝들이 숙소 앞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주현은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처참한 모습으로 떨어진 광경을 상상했다. 하지만,

 "…머리부터 떨어져도 안 죽을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렸다. 이미 훨씬 더 높은 높이에서 떨어져도 멀쩡했던 일들을 상기했다. 

 "죽는 것도 맘대로 안 되는 몸이 됐으니……."

 그렇게 말하며 주현은 한숨을 쉬었다.
 잠시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그리고는 이제는 거의 벌써 많이 아문 가슴과 옆구리의 상처를 손으로 살짝 만졌다. 

 '…날카로운 거…….'
 


 주현은 난간에서 내려왔다. 

 주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주현의 방을 보려 하는지 창문 너머로 빛이 번쩍이곤 했다. 아마도 스토커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 방을 훔쳐보고, 들어오고 싶어 한다. 지금 주현의 상태가 어떠하건, 그들은 그랬다.

 '저들에게 나는 뭘까?'

 주현은 저들에게 자신이 인간이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인형일까? 아니면 소유욕의 대상일까? 아니면 성욕의 대상? 어느 쪽이든 주현은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와하하"

 밖에서 드라마 스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늘 주현의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조기 퇴근 덕분에 그들은 기분이 좋았다. 
 또 오늘은, 주현이 만든 드라마 ost가 선공개되는 날이다. 아마 미리 들어본 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기뻐하겠지."

 주현은 요즘 자신이 힘들 건 어쩌건 자신과는 관계없이 ost가 공개돼서 누군가는 기뻐하겠지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지금의 주현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드르륵

 주현은 창문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을 닫았다.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 주현은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이제 아무도 없어.'

 매니저는 멀리 보내버렸고, 어떻게 알았는지 끈질기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던 미경도 이 자리에 없었다.

 '이젠 정말 구원해 줄 수 없어.'

 주현은 미경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구원?'

 주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옥의 시작이었지."

쏴아아

 주현이 욕실의 샤워기를 틀었다. 주현의 생각으로는 다행히도, 그리고 상황적으로는 불행히도, 욕실 안에는 욕조가 있었다.  

 주현이 주머니에 넣어놨던 약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평소 먹는 힘을 조절하는 약이 아닌 수면제가 들어있었다. 주현은 도자기 컵에 물을 따라서 약통에 든 많은 양의 수면제와 함께 입에 털어 넣었다.

챙그랑

 그리고는 컵을 깼다. 주현은 깨진 컵의 조각 하나를 집었다. 주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윽."

 결국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피가 바닥에 주르륵 떨어졌다.



 멀쩡한 쪽 손에 들고 있던 피가 묻은 깨진 컵 조각을 바닥에 버렸다. 주현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샤워기 소리가 멎었다.

촤악

 벌써 졸려오는 걸 느끼며 주현은 그대로 욕조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그리고 폰 화면을 켰다. 

 오늘도 인터넷 안은 시끄러웠다. 여전히 주현의 팬과 안티들이 싸우고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정의감과 우월감에 차서 주현을 까기만 했다. 

 '인간으로 보는 곳이 있긴 할까?'

 적어도, 지금 보는 인터넷 페이지에는 없었다.
 주현은 손목에서 흘러내려오는 피가 흥건한 손으로, 이제는 잘 움직이기 힘들어진 손으로 힘겹게 메신저를 열었다. 대화방마다 숫자들이 쌓여있었다. 주현은 이제 이 숫자들이 자신과 다 관련 없어 보인다고 느꼈다.

위이이잉-

 그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진우의 전화였다. 받지 않았다.

위이이잉-

 사장의 전화였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위이이잉-

 김두원의 전화였다. 또 받지 않았다.

 부모님의 전화도 왔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친구의 전화, 멤버의 전화, 또 누구의 전화, 또 누구의… 매니저의 전화? 또 누구일까……. 하지만 주현은 점점 졸려올 뿐이었다. 

 휴대폰 진동 소리가 멎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주현은 휴대폰을 꺼버렸다.

툭 

철퍽

 화장실 바닥으로 휴대폰이 떨어졌다.

촤아악

 물이 넘치며 주현이 욕조 안의 물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주현은 물 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욕조 안이 붉게 퍼졌다. 


 
 뇌도, 주현도 완전히 침잠했다.




쿵쿵쿵

 어디선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물 속에 잠긴 주현은 듣지 못했다.



 크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잠깐 조용한가 싶더니,



 굉음과 함께 문짝이 그대로 뜯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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