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Quiet? Quite! 2부 16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2부 16화

SooyangLim 2023. 11. 27. 19:01

 "안 돼!"

 라는 소리와 함께 진우가 튀어나갔다.

 "잠깐…!"

 수현이 그런 진우를 붙잡으려 했으나 늦었다. 진우가 막무가내로 돌진해버렸다.

 "으아아악!"
 "크헉!"
 "꺄악!"
 "아악!"
 "윽!"
 
 진우가 사이비놈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발에 걸리는 대로 차서 저 멀리 날려버렸다.

 "급소 치지마! 급소!"

 수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진우는 어느새 능숙하게, 하지만 주현보다 훨씬 강해진 출력으로 날려버리며 말했다.

 "안 죽여요!"

 이런 아수라장과는 대조되게, 다이아가 있는 쪽은 그저 고요했다. 사이비놈들은 행동을 정지한 채로 굳어있었다. 그들은 마스크와 우비가 벗겨진 다이아의 모습을 보고 잠깐 침묵을 했다. 그러고 몇 초가 지나서야 상황 파악을 하고 입 밖에 말을 꺼냈다. 

 "…애잖아?"
 "외국인…?"
 "몇 살이야…?"
 "어느 나라 애야?"
 "아니, 애가 왜 여기에…?"

 그들은 누가 봐도 10살 전후의 여자아이로 보이는 어린 다이아의 모습에 동요했다. 신도들 중에는 이 정도 나이대의 아이가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다. 내 자식이 이런 꼴로 맞고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겹쳐 지나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이비 신도라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긴 하지만, 그들도 이건 너무 나간 일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심은 깊었지만, 그게 아이를 때려 팬다는 쪽의 신앙심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폭력과 비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구원하고 대항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사실 있지도 않은 대상인 경우가 많았지만)은 대체로 타락을 조장하거나 타락에 빠진 어른을 상정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건 아직 살면서 계도(신도놈들 기준으로) 가능성이 큰 어린아이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 정도로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거리낌 없이 폭행을 하고 미친 짓을 일삼는 건, 정말 뇌부터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죄책감과 가슴이 철렁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건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명체가 어릴 때는 귀엽게 설계된 것과 연관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로 유전자 레벨에서 설계된 본능을 거스르는 문제였다. 

 그때, 다이아가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어어."
 "괜찮나?"
 
 사이비들이 본분을 잊고 웅성거리며 다이아에게 다가가려는데,

 "어, 엄마……. 아빠……. 아파……."

 다이아가 티가 안 나게 눈치를 슥 보고는, 다이아의 모국어가 아닌 사이비들의 모국어로 분명하게 발음을 해서 부모님을 불렀다. 그러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자는 것처럼 축 늘어졌다.

 같은 순간,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가진 사이비 신도놈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키우며 수십 수백 번의 엄마 아빠 소리를 들으며 뇌와 신체에 각인된 그들의 조건 반사는 '아이를 쳐팬다'가 아니라 '달래고 보호해야한다'였기 때문이다.

 "안 돼!"

 그들은 그제서야 뭔 짓을 저지른 건지 드디어 자각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지하철 차량 사이의 바닥에 늘어진 다이아에게 다가가서 어떻게든 의식을 찾게 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

 사이비 신도들이 놀라서 굳어 있거나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비슷한 이유로 굳어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주현이었다.

 "오빠! 정신차려요!"

 수현이 굳어버린 주현을 불러서 일깨웠다. 수현은 폭주하는 진우 덕분에 손쉽게 눈앞을 정리하고 주현에게 다가왔다. 수현은 주현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주현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오빠, 충격 받은 건 알겠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이대로면 진우가 누구 하나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수현이 한 놈을 더 싸다구로 날리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수현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면서 주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냥 충격 받은 거라기엔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라는 수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현은 눈이 돌아가더니 그대로 지하철 차량 위로 쓰러졌다.

 "어?"

 수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쓰러진 주현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혼자 폭주해서 잘 처리 중인 진우를 흘끗 바라봤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자신의 우비를 벗어, 우비의 모자로 주현의 입 쪽에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호흡하게 했다. 그러자 이내 상태가 좋아지는 게 보였다.

 "이상하네."

 주현의 상태가 호전됨을 확인한 수현은 수현은 주머니에서 하나 더 가져온 마스크를 꺼냈다. 그리고는 빗물에 푹 젖거나 말거나 주현에게 씌워줬다. 

 "정신차리면 다시 합류해요."

 수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수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사이비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데?"

 수현은 계속 중얼거리며 양 팔로 스윙을 휙휙 날리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사이비놈들은 빗물에 젖은 뺨따구에서 찰진 소리를 내며 하나씩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이비들은 어느새 죄다 쓰러진 채 기절해 있었다. 수현이 진우가 공격해서 기절해 있는 사이비놈들의 목숨이 붙어있는지 확인을 하나씩 하며 진우와 다이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널브러진 사이비들 사이에서 다이아를 피에타처럼 안고 있는 울부짖고 있는 진우 옆에 섰다. 

 "다이아!"

 진우가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빗속에서 그러고 있으니 그렇게 슬퍼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진우 오빠. 시끄러."

 그 순간 다이아가 눈을 반짝 뜨더니 말했다.

 "어?"

 진우가 놀라서 딸꾹질을 시작했다.

 "괜찮아?"
 
 수현의 물음에,

 "아니."

 라고 다이아가 말했다.

 "뭐, 뭐야?"

 진우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프다. 못 움직이겠다. 그렇지만 언니, 똑똑해. 진짜 공격 안 했어."

 다이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다이아의 위기의 순간에 엄마 아빠 호칠 부르기 작전은 수현의 아이디어인듯 했다.
 수현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못 움직여…? 어디 신경이 다쳤나? 진우야, 업어." 
 "아, 네? 어떻게?"

 진우가 허둥대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린 주현이 다가와서 다이아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형!"

 진우가 주현을 보자 화가난 목소리로 바뀌었다.

 "가자."

 주현이 다른 말 없이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형 뭐했어요!? 왜 집중을 안 해요?" 
 "…미안해."
 
 주현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작게 말했다.

 "아니 형은 도대체…!"
 "그만."

 진우가 뭐라고 더 따지려는데 수현이 다시 우비를 입으며 말을 끊었다.

 "누나!"

 진우가 서운함과 억울함이 폭발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수현은 냉철하게 판단해서 말했다.

 "지금은 다이아가 먼저야. 가서 얘기해."
 "…알겠어요."

 진우가 화를 억눌러 참고는 대답했다. 
 진우가 화난 표정으로 따라가려는데 수현이 진우를 붙잡으며 말했다.
  
 "넌 나랑 놈들이 놓고 간 거 다 가져가야지. 오빠는 빨리 김두원 박사님한테 가서 다이아 치료하고요."
 "부탁한다."

 주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주현이 떠나자 수현이 사이비놈들이 가져온 수상한 가방을 주으며 말했다.

 "가자."
 "…누나."

 주현이 떠난 자리와 수현을 번갈아 쳐다보던 진우가 수현을 불렀다.

 "왜?"

 수현이 진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진우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주현이형 좋아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왜 주현이형편만 들어요?"
 "너 나한테 맞고 싶어?"
 "근데 왜 자꾸 말려요?"
 "넌 생각이 있어 없어?"

 라고 말하며 결국 수현은 진우에게 다가와 머리를 살짝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야! 왜 때려요! 좋아하는 거 맞죠?"
 "아니야, 미x놈아! 잘 생긴 건 맞지만, 내 취향은 송즈에 막내 멤버야!"
 "그럼 막내 멤버랑 만나보려고…?"
 "진짜 도랐나?"



 진우는 다시 한 번 머리가 쥐어박아졌다.

 "너는 머리에 연애 생각 밖에 없어?"
 "그럼 뭔데요!?"
 
 진우가 맞은 자리를 문지르며 소리쳤다.
 수현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럼 너는 여기 이것들 다 놔두고 갈 거야? 아니면 다이아가 다쳤는데도 이거 다 줍고 갈 거야?" 
 "그건 아닌데……."
 "머리가 있으면 머리를 써, 좀! 애 아픈데 시간낭비 할 거 아니잖아?"

 수현의 핀잔에 진우는 입이 잔뜩 나와서는 그저 머리를 맞은 자리만 문질렀다.
 수현은 다시 놈들이 떨어뜨린 가방들을 줍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상하잖아."
 "네?"
 "주현 오빠 이상한 거 모르겠어?"
 "…집중 못하는 거요?"
 "그것도 있지."
 "음……. 좀 변하긴 했죠. 해이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인터넷에 보니까 몇몇 사람들이 형이 좀 이상하다고도 하더라고요. 슬럼프이지 않을까요?"

 진우의 말에 수현이 쓰러진 사이비 놈들 사이에서 물건들을 수집하는 걸 멈췄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슬럼프…같지는 않아."
 "그럼요?"
 "글쎄……. 내 추측이긴 하지만……."

 수현이 뜸을 들이자 진우가 눈썹을 들썩이며 수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수현은,

 "몰라. 박사님하고 얘기해 볼래."

 라고 말하며 다시 사이비 놈들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맥이 탁 풀린 진우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현이형 좋아하죠?"

꽁 

 진우는 또 매를 벌었다.



 "크게 다쳤구나. 떨어질 때 꺾여서 목 디스크를 다친 모양이야. 팔에 마비가 왔어."

 김두원이 병실 문을 닫고 들어오면서 주현에게 다이아의 상태를 전해줬다. 병원 의료진의 도움으로 김두원이 다이아의 상태를 막 체크해 본 참이었다.
 주현은 다이아 옆 방의 비어있는 1인실에 잠시 대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김두원, 주현, 그리고 소속사 사장이 지금 백일 병원에 있었다.   

 김두원의 말에 초조해하며 결과를 가다리던 주현이 아까보다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주현은 의자에 앉아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자신 때문에 다이아가 다쳤다는 생각과 예상보다 훨씬 안 좋은 결과에 의한 충격 때문에 많이 심란해 보였다.

 "그래도 아마 괜찮을 거다. 회복력이 좋거든."

 김두원이 주현 옆의 의자에 앉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위로라고 하세요? 마비가 왔다는데?"

 주현이 얼굴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어쩔 수 없었잖니."

 김두원의 말에 주현은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김두원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웃는지 착잡한지 애매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현이 보기에 그 얼굴은 선악도, 생각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주현은 이제 김두원이 어느 편이고 말고의 문제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주현은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누구 편이세요?"
 "그게 무슨…?"
 "어쩔 수 없다고요?"
 
 주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주현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병실 안을 몇 걸음 걸었다. 그리고는 화를 누르기 위해 호흡을 크게 몇 번 쉬고는 말했다.

 "사장님은 어떻게 알고 같이 온 건데요? 다이아 부모님은 어디 가시고요?"
 "사장님은 우릴 도와주는 분이시잖니? 그리고 밤중이라 내일 알리려고……."
 "그게 말이 되요?"

 주현이 손을 허리에 짚으며 고개를 한 번 다른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김두원을 바라보고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잔뜩 비꼬는 말투로 또 따지듯 물었다.

 "그럼 왜 백일병원에 우리가 와있는 건데요?"
 "그건 내가 원래 근무했던 병원이라서 여기……."
 "하."

 주현은 김두원의 말을 다 듣지고 않고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주현의 반응에 김두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던 주현은 화를 억누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놈한테 들킬까봐 몇 년 동안 근처도 안 왔으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더니 주현은 골치도 아프고 김두원을 보고 싶지도 않은 지, 창가 쪽으로 걸어가서는 팔을 벽에 올리고 이마를 그 팔 위에 기댔다. 주현은 눈을 감고는 몇 번 호흡을 고르렀다. 그리고 다른 쪽 손은 허리에 두고는 물었다.

 "…미경 누나 알죠?"
 "누구?"
 "제 인내심 시험하지 마세요, 제발. 알고 있잖아요."
 "…나는 정말…"
 "제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기억 못 하신다고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난…"
 "죽었다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서 몰랐어야 하는 대화를 알고 있던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두원은 대답이 없었다. 주현은 호흡을 고르는 걸로 모자라 눈을 감고 빠르게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미경 누나 얘기한 건 박사님이랑 진우 밖에 없어요. 제 주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요. 근데 어떻게 죽었다고 들었던 날의 대화를 그 누나가 알고 있는 건데요? 설마 진우가 본 적도 없는 미경 누나를 찾아가서 말이라도 했을까요?"
 "……."

 김두원은 대답이 없었다. 주현은 벽에서 팔을 떼고 돌아서서 김두원쪽을 바라봤다. 김두원은 주현의 시선을 외면한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뭔가를 생각하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주현이 침묵을 꺠고 아슬아슬하게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말이 앞 뒤가 다르잖아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주현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고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어쩔 수 없다고요? 애가 마비가 왔는데? 애들이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 걸 제가 입 다물고 있는데 하시는 말이 고작 그거예요? 미안하긴 해요? 애들까지 이렇게 희생시키고 있는데? 그 헌신이 나로는 그렇게 모자라요?"

 주현은 아이들이 이용당했다고 생각하니 더는 견딜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 견딜 수 없었다.

 "제가 헌신한 대가가 이건가요? 배신?"
 "주현아, 나는……."
 "처음부터였어요?"
 "주현아?"
 "절 속이고 있잖아요, 지금!"

 주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주현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숨이 가빠지고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현은 숨이 차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오열에 가깝게 울부짖었다.

 "뭘 믿어야 되요, 제가? 애들, 아니, 우리까지 이용하고! 당신이 우리 회사를 이용하고! 나를 이용하고! 애들과 내가 위험한 일을 제 이름값을 이용하는 것까지 나는 놔뒀다고요! 당신을 믿어서! 근데, 근데 어떻게 이러는 거예요, 당신은!"
 
 한바탕 소리를 지른 주현은 꺼이꺼이 울며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두원은 그에게 다가와 안아주며 말했다.

 "아니야……. 정말 아니야……. 난 너희를 희생시킬 생각은 정말 없었어. 언제나 미안하고 항상 고마워 하고 있어. 그렇지만 네가 다 책임질 수는 없는 거야……. 여기 온 김에 검사하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자. 너무 피곤해 보이니……."

 이 상황에서조차 애매하게 말을 돌리며 이상한 말을 하는 김두원을, 주현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하."

 주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주현은 그 순간 인생이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주현은 이제 완전히 정이 다 떨어진 표정이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현은 실망과 배신감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대로 중심조차 못 잡고 비틀거렸다.

 "주현아."

 김두원이 그런 주현을 부축하려고 붙잡았다.



 주현은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
 "주현?"
 "어어 송즈!"

 주현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주현은 병원 복도를 걸어나왔다. 사람들이 알아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코와 눈가가 벌게진 채 병원 옥상으로 걸어갔다.

 "형!"

 병원 옥상으로 가니 마침 도착한 진우와 수현이 비바람을 피해 우비를 여미며 주현을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수현이 주현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주현은 화를 누르고는 수현과 진우에게 말했다.

 "앞으로 박사님 돕지 마."
 "네?"

 수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박사님하고 얘기했어."

 주현이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그 말에 수현은,

 "싸웠어요?" 

 진우는,

 "형 미쳤어요?"

 라고 했다.
 주현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너네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우는 욱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형. x발, 꼰대에요?" 
 
 수현이 커진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진우의 말에 주현은 점점 폭풍우가 되어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진우에게 얼굴을 돌렸다. 주현은 화와 충격이 섞인 표정이었다. 비를 맞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의 기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주현의 몸에서는 갈수록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고나기를 냉하게 생긴 얼굴의 그였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터져서 불바다를 만들 것 같았다.

 진우는 진우대로 욱한 얼굴이었다. 진우는 약간은 까불거리고, 조금은 생각이 없어 보기고, 덤벙대고, 어설프고, 또 어쩔 때는 따뜻하고 귀여운 그런 느낌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진우는 평소와 달리 어느 때보다 무겁고 차가운 기운을 풀풀 풍겼다. 마치 평소에는 액체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따뜻한 기체가 바로 고체 상태로 직행해서 얼어버린 것처럼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이런 둘을 지켜보는 수현의 눈에는 두 사람이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안 보였다. 두 사람의 상태와 최근의 일들을 곱씹어 생각하던 수현이 중간에서 뭐라고 말하려는데, 진우가 먼저 입을 뗐다.

 "형, 요즘 x나 짜증나게 변했네요."

 갈수록 호흡이 거칠어지는 주현과 다르게, 진우는 침착하게 주현에게 그대로 들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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