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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Quite! 2부 15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2부 15화

SooyangLim 2023. 11. 23. 19:02

 미경은 주현을 발견하고 놀란 듯 흠칫했다. 그러더니 다시 모른 척 시선을 돌려 다시 앞에서 설교하는 사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주현은 미경을 발견하자 마자 다급히 신도들을 헤치고 미경에게로 다가갔다.

 "저, 저기…!"
 "뭐야?"
 "아, 뭐야?"

 신도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밀치며 미경에게로 다가가려는 주현 때문에 짜증을 내곤 했다.

 미경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현을 발견했다. 미경은 슬쩍 다른 쪽으로 이동하며 망토 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입력하고 또 휴대폰을 가만히 보고 있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주현을 피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주현은 점점 멀어지려는 미경에게 다가가려고 인파 속을 헤엄치듯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급하게 다가가려 애썼다. 결국 주현은 미경 옆까지 다가가 팔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저, 저기…"

 미경은 그런 주현의 얼굴을 봤다가 다시 폰 화면을 슥 봤다. 
 주현은 간절하게 미경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 잠깐만 얘기 좀 해요. 혹시, 저, 저 아시지 않나요? 저기, 저기요?"

 미경은 주현이 말하든 말든 가만히 서서 폰만 바라봤다. 그렇게 가만히 보던 뭔가를 확인한 후에 휴대폰 화면을 끄고는 망토 속으로 휴대폰을 넣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미경은 자신의 팔을 잡은 주현의 손목을 콱 움켜쥐고는 확 잡아당겼다.

 "!?"

 그런 미경의 행동의 놀란 주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경은 주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주현은 그녀의 말에 놀라서 그저 동공만 흔들리는 채로 굳어 버렸다. 가면 뒤로 미경은 그런 주현의 눈과 반응을 보더니, 여전히 꽉 잡은 주현의 손목을 잡고는 사이비 무리 밖으로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어어?"

 주현은 당황한 사이, 미경은 사이비 인파들 사이로 주현을 그대로 잡아끌고 나갔다. 주현은 당황해서 그저 미경이 잡아 끄는 대로 이끌려 사이비 무리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저 멀리 걸어 나가서 한강 다리의 그림자를 벗어나 도시의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려 나왔다.

 "일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왜 왔어?"

 미경은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주현에게 말했다.
 주현은 그런 미경을 놀란 얼굴로 어버버하며 멍하니 바라봤다. 주현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굳어버렸다.

 미경은 짜증스럽게 망토의 모자를 휙 내렸다. 그리고는 한강의 다리 쪽으로 돌아서며 가면을 쓴 채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주현은 그제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다리 근처의 한강변에는 사람들이 어느새 죄다 사라져 있었다. 사이비의 포교활동을 피해 사람들이 멀리 가버린 탓이었다.

 다만 미경이 돌아선 쪽의 다리 위에는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 누군가는 주현처럼 마스크와 모자를 쓴 데다가, 심지어 이 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 자는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 있었다. 그 자는 한강의 야경을 구경하는지, 아니면 사이비의 포교 활동을 보는지, 아니면 미경과 주현을 바라보는지 모를 애매한 각도로 고개를 기울인 채 서 있었다. 묘하게 주현의 눈에 그 사람이 익숙했지만, 딱히 거기에 대해서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주현이 그렇게 주변 풍경을 보며 멍하게 있는 사이, 머리를 긁던 미경은 가면의 끈이 손에 걸리적거리자 짜증난 듯 가면마저 벗어버리며 말했다.

 "저런 소리에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
 "…어쭈? 진짜야?"
 "……."
 "정신차려. 요즘 너 힘든가 본 데, 그렇다고 이런 거에 현혹되지 마. 너, 그 바넘 효과라고 알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야. 알겠어? 다수한테 해당되는 얘기 중에 하나 걸렸다고 해서 '내 얘긴가?' 하고 솔깃하지 말라고. 그리고 저런 놈들이 그럴듯한 답을 얘기한다고 해서 그게 정답이라고 착각하지도 말고. 답이 다 정답은 아니니까."

 어쩐지 미경은 사이비 옷을 입고 활동까지 하는 주제에 주현을 구출 한 것도 모자라, 이런 데 빠지지 말라고 일깨워주기까지 했다.
 주현은 그런 미경의 아이러니에 멍하니 미경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주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상황을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미경은 그런 상태인 주현에게 계속 일장연설을 귓구멍에 박아넣었다.

 "너도 알잖아? 구원이니 뭐니 해봤자 더 구렁텅이 빠지는 거 밖에 안되니까. 신세 망치는 거 한 둘 본 것도 아니고. 알지?"
 "……."
 "가서 네 할 일에 집중해. 잘 하던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니……."
 "…진짜 살아있었구나."

 가만히 듣던 주현은 그제야 입을 뗐다. 과거 미경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갑자기 감정이 솟구쳤다. 근래에 감정이 마비된 것 마냥 계속 무뎌져만 가던 주현은 오랜만에 감정이 폭발했다. 주현은 드디어 눈앞에 자신이 그리던 대상이 있음을 그제야 실감을 했다.

 하지만 미경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똑바로 돌아서서 주현을 바라봤다.

 주현은 서서히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현이 짓는 표정은 최근의 괴로움이 가득한 그런 표정이나,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이 아니었다. 갑자기 수년 전의 추억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벅차오르는 표정이었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의 주현의 타고난 날카로운 눈매가 웃음기를 머금고 가늘고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따뜻하게 변한 그의 눈매에서는 눈물이 퐁퐁 솟구쳐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저……."

 그 모습을 본 미경은 뭐라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 미경은 당황해서 동공이 흔들리고, '엥?' 하는 느낌으로 미간과 눈썹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주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는 누나가 죽은 줄 알았어요……."
 "……."
 "보고 싶었어요."
 
 그 말에 미경은 갑자기 겁에 질린 얼굴로 변했다.

 "아직도 병원에서 우리가 했던 얘기들이 생생하게 기억 나요. 그 때도 누나는 아는 게 많았었지."
 
 주현은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면서 말했다. 주현은 뭔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아보려는 듯 간절한 목소리였다. 이 순간 주현은 자신의 직업은 잊고 그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뿐이었다.

 하지만 미경은 그저 당황한 얼굴로 어느새 망토 안에서 폰을 꺼내 어딘가에 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미경은 주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만 가는게 좋겠다. 난 잊어. 그 때 봤던 일도 잊고, 오늘도 잊고."

 그런 미경의 말을 들은 주현은 다급하게 폰을 잡고 있는 미경의 팔을 잡았다.

 "아니. 안 그럴 거에요, 절대. 내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 씨, 신현… 아니, 아니아니, 그 x끼 때문에……"

 미경이 어쩐지 누군가를 향해 욕짓꺼리를 중얼거리며 주현의 팔을 떼내려 했다. 주현은 자신을 떼내려는 미경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안 물을게요. 나도 지금 살았으니까."
 "……."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어요. 한 번도 못 봤지만."

 그 말에 미경은 더 겁에 질린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는 주현의 손을 뿌리치려 애쓰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잊어. 그리고 난 네가 아는 사람이 아냐."
 "그게 무슨…?"

 주현은 그런 미경의 반응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전혀 예상 못한 답변에 주현은 그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차라리 자신이 싫어서 거짓말을 하고 떠났다는 말을 했다면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

 미경은 더 세게 자신을 잡은 주현의 손을, 자신도 더 세게 떨치려고 애쓰며 다급하게 말했다.

 "네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까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그 때 이후로는 잊어. 네가 아는 나는 내가 아냐."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주현은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현은 마치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은 듯이 미경의 팔을 안 놔주려고 애썼다.  
 그런 주현에게 미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네가 아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내 눈앞에 있으면서?"
 "차갑게 들리겠지만, 난 그 날 죽은 걸로 쳐. 그냥 잊고 네 인생 살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주현은 과거에 받은 차가운 상처가 되살아났다. 표정이 굳고 가슴 쪽이 서늘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미경은 그런 주현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마음 아플걸 나도 알고 있어서 미안하지만, 나도 이렇게 밖에 말 할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제발 그냥 네 인생 살아. 다시 네 인생에서 사라져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주현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야!!"
 
 매니저의 목소리였다. 주현이 뒤돌아보자, 이곳까지 매니저의 차가 들어와서 다가오고 있었다.

따끔

 주현은 어딘가가 손 어딘가가 따끔했다. 그리고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미경이 말을 해서 미경을 바라봤다.

 "잘 가. 잘 지내고."

 그때 주현은 갑자기 힘이 탁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미경이 주현의 손을 떼냈다. 



 어느새 다가온 매니저가 차에서 내려 주현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사장도 같이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순간이 기폭제가 된 듯 주현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안 돼! 가지 마!"

 주현이 몽롱해지는 정신과 힘이 빠지는 와중에 남은 힘을 짜내 매니저와 사장을 뿌리쳤다.

 "컥!"
 "어이쿠!"

  매니저와 사장이 순식간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억제된 상태인데도 주현이 작정하고 힘을 주자 일반인의 몇 배의 출력이 나갔다.
 주현은 미경에게 다가가려했지만, 점점 흐려지는 정신 때문에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잘 부탁해요."
 
 미경은 그렇게 애를 떠맡기듯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을 다시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주현의 팔을 잡고 무릎 뒤 오금을 쳐서 무릎을 꿇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팔을 뒤로 꺾었다. 

 "윽!"

 몸의 제어권을 잃어가는 주현의 입에서 소리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미경은 주현의 목 뒷덜미를 붙잡고 바닥에 눌러서 엎드리게 했다. 그러더니 마치 범죄자를 제압하듯 양팔을 뒤로 제껴서 포박하고, 무릎으로 주현의 등을 눌렀다.
 아주 기술적이지만 평소에는 주현의 피지컬과 힘 차이 때문에 절대로 당할 리가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현은 이상하리만치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아니, 우리 애를 그렇게…!"

 바닥에서 쓰러져 있던 사장이 그 광경을 보고 기겁해서 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주현은 의식이 서서히 멀어지는 중이라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렸다. 주현은 힘을 쓰며 버둥거렸으나, 그저 둔하게 움찔거릴 뿐이었다. 주현은 점점 힘이 빠지고 몽롱해졌으며 축 늘어져 버렸다. 

 "안 다치게 했으니 걱정 마요."

 미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난 사장과 매니저에게 주현을 부축해서 넘겨줬다. 미경이 그렇게 자신을 넘겨버리는데도 주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주현은 눈이 반쯤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현은 마치 깊은 구멍 안에 버려지듯, 어두운 차 안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차 문이 닫히기 무섭게 의식이 끊어졌다.



틱 틱 틱

 주현은 시계소리에 눈을 떴다. 그곳은 숙소가 아니었다. 주현이 개인 명의로 사둔 아파트였다. 평소에 거주하지 않아서인지, 집 안에는 아주 기본적인 가구 외에는 휑 했다. 

 주현은 멍하게 손을 들어 손등을 바라봤다. 누가 해놨는지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주현이 그 반창고를 떼보니, 링거줄을 뜯어낸 자국과 미경이 꽂아넣은 주삿바늘 자국이 벌써 아물고 있는 게 보였다. 주현은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그 자국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참만에야 몽롱한 상태가 어느 정도 걷히고 나니 아까의 상황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틱 틱 틱

 주현은 멍하니 그저 적막 속에서 시계소리만 듣고 있었다. 

 머릿 속이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상황 정리 뿐만 아니라, 뭐가 진실이고 거짓이고,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가 누구 편인지도 가늠이 가지 않았다. 뭐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이런 혼란과 동시에 주현은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공허함이었다. 그런데, 이 공허함은 이 전에 무대를 끝나고 느끼던 공허함과는 좀 달랐다. 주현은 이 공허함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가만히 시계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주현은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현은 대충 구색 맞추기용으로 사둔 식칼을 꺼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일 마냥 그 식칼을 목에도 대봤다가, 손목에도 대봤다가, 복부 쪽에도 대어봤다. 그리곤 다시 가만히 서서 식칼을 바라보던 주현은 다시 식칼을 칼집에 넣었다.

 이제 주현은 창가로 향했다. 이곳은 꽤 높은 고층 아파트였다. 주현은 창을 열어 풍경이 아닌 아래, 바닥을 바라봤다. 습기 많은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있던 주현은 한참만에야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자 다시 집안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주현의 적막을 계속 느끼며 가만히 서있었다. 주현은 점점 더 이 공허와 적막의 벼랑 끝으로 밀리고 있었다.

투둑

 그 때 창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비가 쏟아졌다.

 "…씻어야되네."

 비가 오다보니 안 그래도 찝찝하던 몸에 더 습기에 더 찝찝하게 느껴졌다. 귀찮아서 씻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 일어났다. 주현은 일단 씻어야 자신의 풀리지 않는 의문과 혼란을 해결하러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현은 빗소리를 들으며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면서는 가만히 물을 맞으며 서서 샤워기 호스를 바라봤다. 그러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그 호스를 목에 한 번 감아봤다가 풀었다. 그러던 중에,

삐삑-

 갑자기 김두원,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연락하는 통신수단이 울렸다. 사이비 놈들이 나타나서 처치해야 하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

 주현은 그 연락을 보고서도 그대로 샤워기 물을 맞고 가만서 서서 밍기적거렸다. 주현은 한참 만에야 수도꼭지를 닫았다. 주현은 물기를 전혀 닦지 않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는 아주 귀찮다는 듯이, 여전히 물기를 전혀 닦지 않고, 천천히 움직여서 아까 벗어서 던져놓은 옷을 물기 때문에 힘겹게 다시 입었다. 그러더니 그렇게 축축한 채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주현은 집 대문이 아닌 창문을 열고서 비 내리는 도시 안으로 뛰어들었다.

 

 "언니! 뒤!"

 간만에 다른 나라에 오자마자 참전한 다이아가 끼고 있는 마스크 너머의 앳된 목소리로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정신없이 싸우는 중이었다. 그래서 뒤에서 사이비 놈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접근하는 걸 눈치 못 채고 있던 참이었다. 그걸 본 다이아가 수현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쫙 쫙

 위기를 모면한 수현이 빗물이 묻은 사이비 놈들의 얼굴을 찰지게 때렸다. 놈들은 싸움터가 된 지하철 차고지의 지하철 차량 위에서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놈들이 지하철 차고지에 있는 이유는 아주 좋지 못한 이유였다. 놈들은 지하철 차량에 자신들이 어딘가에서 전달받은 이상한 액체 통을 설치하러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차량이 운행할 때 열어서 기화시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안 좋은 가스에 노출되게 만들 계획이었다.

 "젠장. 어느 세월에 이걸 다 처리 해?"

 수현은 싹 처리하고 나서 놈들이 들고 있는 가방을 거두려는 찰나, 또 지하철 차량 위로 기어올라오는 놈들을 보며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진우야, 싸우는 척 하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놈들 다 몰고 와 봐."

 라고 통신기기를 통해 전달했다.
 저 멀리에 있는 지하철 차량 위에서 싸우고 있던 진우는 수현의 말에 기겁하며 말했다.

 "혼자 싸우게요? 너무 많은데요?"
 "아니. 모아서 오빠가 올 때 한 번에 처리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수현은 이번에는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다이아에게 통신기기로 말했다.

 "다이아. 도망가는것처럼 해서 싸움에서 빠져."
 "왜 그만 싸워?"
 "싸우지 말라는 게 아냐. 숨어있다가 내가 신호 주면 놈들 뒤쪽에서 싸우면 돼."
 "아! 알았다. 역시 언니는 똑똑하다."

 다이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즉시 전선에서 이탈했다.
 다이아가 빠지자 사이비 신도들은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근처에서 수현에게 싸대기를 맞아 쫙쫙 거리며 당하고 있는 동료 사이비놈들을 도우러 갔다. 
 그렇게 수현의 계획 대로 사이비놈들은 수현이 있는 곳으로 좀비 떼처럼 몰려왔다.

 "…누나. 다 처리할 수 있는 거 맞죠?"

 진우는 이제 수현이 있는 차량 위로 올라왔다.

 "오빠만 빨리 오면. 아니면 좀 힘들어지겠지."

 수현은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어차피 놈들 귀에 잘 안 들리겠지만, 그래도 못 듣도록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말했다.

 "아, 주현이 형은 언제 오는 거람."

 진우도 마스크 밖으로 소리나 나가지 않게 조용히 투덜거렸다.
 그 때 그 소리를 들었는지 통신기기에서 주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어. 놈들이 한 쪽에 몰려있는 거 보여."

 주현의 대답에 수현이 말했다.

 "오빠, 지하철 차고지 건물 기준으로 대각선 오른쪽 아래에서 쳐주세요. 다이아는 왼쪽 아래에서."
 "언니 보는 쪽이 아래쪽?" 
 "응. 거기가 아래쪽이야. 네가 나를 볼 때 오른쪽 위에 있으면 돼."

 수현은 다이아가 자신을 마주보는 쪽이 맞냐고 질문한 것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누나, 아직이에요?"

 이젠 진우와 수현이 서로 등을 맞대고 몰린 상황까지 왔다.

 "뺨 때리는 소리 2번 나고 3번째에 뒤에 공격해요."

 그렇게 말하며 수현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한 놈의 싸대기를 때렸다.



 놈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목이 반대로 꺾이며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 맞은 놈은 지하철 차량 아래로 그대로 떨어졌다.



 소리와 함께 다이아가 지하철 위로 뛰어 올라와서 놈들의 뒤에서 공격을 했다.
 그러나 주현 쪽은 잠잠했다.

 "…형?"

 이상함을 느낀 진우가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쫙

 4번째에도 잠잠했다. 
 5번째에도…….

 "형!"

 진우가 소리치자 그제야 주현이 놈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놈들은 3갈래로 공격방향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두 갈래로 양분되어 버렸다.

 "악!"

 다이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철퍽

 다이아가 지하철 차량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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