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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Quite! 2부 1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2부 1화

SooyangLim 2023. 10. 5. 19:01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쏴아아

 금방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가 많이 오네. 놈들이 놀이공원에 퍼뜨린 신경 독소 가스가 비에 쓸려가니까 다행이지만, 애들은 괜찮으려나? 다들 집에 도착했겠지? 애들은 괜찮겠지만 주현이는 조심해야 하는데……."

 김두원이 소속사 건물의 숨겨진 장소에서 잠시 나와 집처럼 구비된 탕비실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삐리릭

 휴게실치고는 과하게 테크니컬한 잠금장치가 설치된 문이 열렸다. 그곳은 거의 가정집에 가까웠다. 김두원은 대외적으로는 탕비실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두원은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달칵

 김두원이 불을 안 킨 채 안 켜고 냉장고를 열어서 맥주를 한 캔 꺼냈다. 그 때, 

 "저도 한 잔 주세요."

 김두원의 귀에 창가에서 더 세찬 빗소리와 함께 주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두원은 놀라서 돌아봤다.

 "…창문으로 들어왔니?"
 "빨리 오려고요."

 김두원은 수건을 주현에게 던져줬다. 하지만 주현은,

 "한 잔 마시고 나갈 거예요."

 라고 말하며 그냥 수건을 들고만 있었다. 주현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어떻게 들으면 약간은 얼떨떨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는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김두원은 바닥의 빗물을 닦을 생각에 한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건물을 올리고 자신이 여기에 거주하는 데에는 주현이 소속된 그룹의 공이 혁혁했기에 그저 잠자코 있었다. 대신 냉장고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며 주종을 물었다.

 "…그래. 뭐 마실래? 맥주도 있고, 소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고……. 아참. 내일 스케줄 있지? 아무래도 맥주가 나으…"
 "보드카있어요?"
 "보드카???"

 뜬금없는 주종에 김두원이 냉장고고 안에서 눈을 떼고 주현을 바라봤다. 주현은 가만히 창틀에 기대어 있었는데, 창 밖의 불빛이 역광으로 주현의 얼굴에 어둡게 드리워 있었다. 때문에 김두원은 주현의 얼굴과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없으면 도수 높은 걸로 주세요."

 주현의 말에 김두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냉동실 안에 있는 반쯤 남은 보드카를 꺼냈다. 도수가 높아서인지 냉동실에 들어간 이후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술인데도 불구하고 물처럼 찰랑이고 있었다. 

 "예전에 사장님(소속사 사장)이 파티 했을 때 남은 거 갖다 준 보드카가 있어. 칵테일 만들고 남은 거라고 들었는데 말야……."

 김두원이 보드카를 샷 글라스에 한 잔 따라서 주현에게 갖다주며 말했다.
 주현은 말 없이 건네받자마자 그 도수 높은 술을 소주 마시듯 입에 털어 넣었다.

 "…무슨 일 있었니? 놈들을 놓쳐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김두원이 주현이 잘 보이는 위치에서 소파에 걸터 앉아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

 주현은 독주가 가슴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 때문에 인상을 잠깐 찌푸렸을 뿐 대답이 없었다. 
 어둠 속에 묻힌 주현의 얼굴을 간신히 식별하고 있던 김두원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비가 많이 오나 보구나."
 "그러게요. 갑자기 많이 오더라고요."

 김두원은 주현의 얼굴에 가득한 빗물이 빗물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을 감추려고 굳이 빗속을 헤치며 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박사님."

 갑자기 주현이 입을 뗐다.
 김두원이 자신의 맥주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응?"
 "한 잔 더 마실게요."

 심상치 않은 주현의 상태에 김두원은 말 없이 잔을 받아서 한 잔 더 따르며 말했다.

 "더는 안 된다, 주현아. 내일 못 일어날 거야."

 주현은 대답 없이 술잔을 받아 다시 또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빗소리만이 이 어색함을 무마시켰다.

 "…그만 마시는 게 좋겠다. 아니면 맥주 줄까?"

 김두원이 한 모금 마시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김두원은 아직 캔의 1/4도 안 마신 상태였다. 
 주현은 잔을 든 손을 힘 없이 늘어뜨린 채로 말했다.

 "술은 이제 좀 취하는 것 같은데, 술 취해야 보일 것 같은 건 맨 정신일 때 보이더라고요."
 "응? 뭐?"

 김두원이 주현의 아리송한 말을 단숨에 못 알아듣고 되물었다. 
 주현은 그를 이해시키지 않고 말했다.

 "박사님."
 "응?"
 "의사 선생님."
 "……."

 갑자기 예전에 자신을 부르던 호칭에, 김두원은 맥주캔을 든 손을 내리고 말 없이 주현을 바라봤다.
 주현은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누른 표정으로 김두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미경 누나를 봤어요."
 "……."
 "…대답이 없으시네요."
 "누굴 말하는 거니?" 
 
 김두원의 대답에 주현이 헛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주현은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거의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랑 같이 입원했던 누나요. 그 누나도 저랑 같은 약물 치료를 받았었죠."
 "그래? 잘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하하. 그래요? 제 첫사랑이라고 얘기 했었는데 말이죠. 몇 번이나요. 얼마 전에는 진우하고 얘기할 때도 얘기 했었고요."

 주현은 비꼬는 어조가 역력한 말투로 말했다. 왜냐하면 주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두원이 미경을 모를 리가 절대 없다는 것을…….

 "뭐, 모르신다고 치죠. 근데 오늘 그 누나가 살아돌아왔더라고요."
 "뭐?"
 
 김두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주현이 약간 격앙된 톤으로 물었다.

 "모르셨어요?"
 "알 리가 있나. 나는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죽었잖아?"

 김두원의 모순된 말에 주현은 억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조소가 흘러나왔다. 숨기고는 있지만 기가 찬다는 듯, 비웃음과 헛웃음 사이의 표정이 얼굴에 서렸다. 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바꾸고는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나도 의문이구나. 말도 안 돼. 이렇게까지 내가 기억을 못 한다는 건 죽었기 때문이야. 더 이상 데이터를 살펴본 적이 없어서. 네가 잘못 본 거 아니니?"
 
 김두원의 말에 주현이 갑자기 확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잘못 봤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 잘못 봤겠지. 죽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닮았어도, 제가 준 선물을 하고 있었어도, 설마 했어요. 저를… 알아보기 전까지는요. 어떻게 된 거죠?"

 김두원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안 돼. 저 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 아무 것도 모르시나요?"
 "몰라. 분명 죽었어."
 "근데 왜 살아있는 건데요!"

 갑자기 주현의 언성이 높아졌다. 주현의 눈을 어느새 벌게져 있었다. 그것이 술 때문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마치 대들듯 하는 주현의 언행에도 김두원은 살짝 흠칫하기만 했을 뿐 차분하게 말했다.

 "알아봐야 될 것 같아. 진짜 확실하니? 네가 말한 그 사람이 맞니?"
 "……."

 주현은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 후, 주현은 눈을 감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못해서인 양 겨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창문을 열었다. 

 "일단 알겠어요."

 그 말을 남기고 주현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쏴아아

 비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강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주현은 아랑곳 하지않고 옥상 위를 뛰어서 건너 다녔다. 그러다 주현은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 옥상 위까지 가서야 멈췄다.

 "거짓말." 

 주현이 중얼거렸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주현은 비 내리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잘 보이지는 않았다. 주현의 시야가 흐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 때문이 아니었다. 벌게진 눈에서 흘러나오는 액체 때문이었다. 술기운 덕에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었다.

 주현은 아까 직접 본 것을 회상했다. 분명 미경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

 주현은 그 와중에도 목소리를 낮추려 애쓰며 울분을 토했다.

 주현은 차근차근 상황을 되짚어 생각해 봤다.
 미경이 살아있다면 김두원의 말은, 말이 안됐다. 논리적으로, 절대 말이 안 됐다.

 일단 김두원은 실험약을 투여한 모든 사람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김두원이 사건이 터져서 잠적했을 때, 김두원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투여한 모든 사람들의 약물 투여 후 생사 여부와 부작용 여부를 직접 확인했었다.
 특히나 살아있는 미성년자의 경우는 숫자가 많지 않기에 김두원은 그 명단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경이 성인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긴 했다. 성인들은 완치가 대부분이었고, 당시 연구진들이 접촉한 시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두원이 기억이 잘 안 날 수는 있음을 주현은 충분히 이해하려 노력하고 감안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미경이 당시에 성인이라서 명단을 자주 안 봐서 기억을 못 한다 하더라도 이건 억지스러운 상황이었다.

 어떻게 주현이 몇 번이나 얘기한 사람을 까먹는단 말인가? 김두원은 그렇게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님을 주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력도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 역시 주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설사 까먹었을지라도, 지금까지 주현이 몇 번이나 상기를 시켰는가?

 이 모든 정황과 김두원을 잘 아는 주현은 모든 것이 모순으로 범벅되어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 수 밖에 없었다. 주현이 보기에 김두원의 말과 행동은 모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됐다. 

 주현은, 이제 마음 속에 김두원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지?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지?'

삐빅

 그 때 주현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이 새벽에, 매니저의 연락이었다. 

 "하."

 연락을 본 주현은 한숨을 쉬었다. 현실이 주현을 일깨웠다. 주현은 유명 연예인이었고, 3시간 뒤면 스케줄을 하러 가야 했다. 스케줄을 위해 집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와야 할 것들을 매니저가 문자로 미리 보낸 것이었다. 생활이 주현을 고뇌 억지로 끄집어냈다.
 주현은 일단 자러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발을 뗐다.  



쏴아아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내리고 있었다. 주현은 샤워 후 머리를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집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누워서 김두원과 재회했던 일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주현이 그룹의 막내를 던지다시피 밀쳐내고 저혈당 쇼크로 기절했던 날. 그룹의 막내와 함께 응급실로 실려간 주현은 포도당 수액을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현은 진우처럼 의도치 않게 병실의 물건들을 파괴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럴 때마다 저혈당 쇼크로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안녕?"

 그런 주현에게 김두원과 팀원들이 주현이 있는 병실로 찾아왔었다. 그들은 주현의 몸 이곳저곳을 검사했다.

 얼마 후 그들은 검사를 멈췄다. 주현은 어떤 의미로는 신체가 너무 강해져서 저혈당 쇼크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그들의 결론을 듣게 됐다. 

 그들은 주현을 비롯한 치료받은 아이들을 도울 것이며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주현은 자신과 그들을 위해서 자의 반 타의 반, 그들의 실험대상이 되어주기로 하였다.

 당시의 이런 일련의 일들 후에, 주현은 불완전하게나마 몸을 제어할 약을 얻어서 어찌저찌 한동안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실험에 협력하고 시일이 좀 지난 어느 날. 

 "연구원들이 죽었다고요?"

 주현의 소속사인 잘나가 엔터(당시엔 소기업인) 사장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주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속사 사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알아본 바로는 그래."
 "갑자기요? 왜요?"
 "그게, 나도 갑작스러워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알아낸 바로는 그렇게 됐더라고. 경찰 말로는 사고라고는 하는데 정황상 의심스럽다고 하고……."

 소속사 사장이 말끝을 흐렸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식을 듣고 황망한 표정으로 있던 주현이 물었다.

 "…전부 다 죽었어요?"
 "아니. 팀 중에 외국인 두 명만. 한 명은 잠적했고, 다른 한 명은 잠적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 잠적한 사람이 약이랑 자료를 전부 다 갖고 갔다나 뭐라나……."
 "와……. 너무 충격적인데요."
 "그래. 그렇지……."

 사장이 충격받은 주현을 보듬어 주며 말했다. 그렇게 말 없이 한참 있던 주현은 여전히 충격을 받은 얼굴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말하기 조심스럽긴 한데… 그럼 저는요? 그 실험약이라는 거, 이제 보름 정도 치 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하죠? 그 약이 다 떨어지면, 저는 어떡해요? 이제 막 데뷔했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도 계속 찾고는 있는데 말야……. 어쩌면 한동안 활동을 쉬어야 될 지도…"
 "아아."

 주현은 무의식중에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소속사 사장이 한숨을 쉬며 물어봤다.

 "주현아, 약  안먹으면 활동이 아예 불가능한 거지?"
 "아마 바로 사고 나고 쓰러질 거예요."
 "하아. 큰일이네……."

 소속사 사장이 한숨을 쉬었다.
 주현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뭐 알아내신 거 없어요?"
 "모르겠어. 지금 잠적한 사람 찾고 있는 연구원이 너를 만나보고 싶어 하긴 하던데 말야."
 "저를요?"
 "응. 연구하는 거 계속 도움 주고 싶다고 하는 것 같았어. 근데……."

 사장이 말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주현이 그런 사장의 모습에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요?"
 "내가 스케줄이 바빠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고는 돌려보내긴 했는데… 뭔가……."
 "네? 돌려보내요? 왜요?"

 주현이 납득이 안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속사 사장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좀 이상해서 말야." 
 "뭐가요…?"
 "확신할 수는 없는데……. 그 사람이 범인 같아."
 "네? 잠적한 사람이 아니고요?"

 사장은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으음……. 그……. 뭐라고 딱 집어서 얘기하긴 그런데 뭔가 쎄~한 것이……."
 "사장님. 또 뭐 촉 어쩌구 얘기하는 거 아니죠? 살인 사건에 무슨…"

 주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자 사장이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아니! 아냐! 그런 게 아냐. 물론 내가 너를 보자마자 되겠다! 하는 그런 감도 있는 사람이지만, 이건 그런 게 아냐. 뭔가 이상한 점들이 있는데 정확히 뭐라고 얘기하기 그런 거지."
 "이상한 점들요?"
 "그러니까……."

 소속사 사장은 뭐가 이상했는지 머리 속으로 정리해서 짚어내려고 애쓰며 말했다.

 "일단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너무 차분하다고 해야 하나?"
 "네? 아니, 그건 그냥 성격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뭐랄까 성격이라기엔 좀……. 그럴수가 있나 싶어서. 나 같으면 뭔가 팀원들이 다 죽고 그러면 무서울 것 같거든?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도 그렇고 뭔가 이상했어. 뭔가 너무 차분하더라고. 무섭도록 말야. 좀 냉정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소속사 사장의 말을 곰곰히 듣던 주현이 물었다.

 "싸이코패스 같은 그런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아니, 맞나? 아 모르겠다. 내가 뭐 전문가도 아니니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없긴 한데 말야……. 어쨌든 보기에 아무 감정도 없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어."
 "그런데 뭐가 그렇다는 거죠?"
 "으음, 그게… 뭔가 묘~하게 그랬단 말이지. 말이 이상하지만 피해자라기 보단 피의자의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물론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 내가 섣불리 말 할 부분이 아니지만 말야. 그리고 뭔가, 너를 찾는 것도 이상했어."

 주현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요? 왜요?"
 "그러니까……. 이것도 애매한데…….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게……. 네가 연예인이고, 어리고, 우리 소속사의 미래이고 그런건 맞지만……. 스읍……."
 
 소속사 사장은 긴가민가한지 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와중에 네 걱정을 하는게 이상했어. 그런 일이 있어서 정신없을 텐데, 굳이 나한테 찾아오고 널 찾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그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됐다고?"
 "사건 터지고 금방 찾아왔었어요?"
 "응. 만 이틀이 안 됐을 때였어."
 "으음……."

 만 이틀이라는 말에 주현도 약간은 이상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사 사장은 머릿 속으로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말 들어보면 또 이상한 게, 너를 너무 추켜세우는 느낌이었단 말이지. 그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자신의 미래인 것처럼 소중하게 대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자신의 목숨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야. 뭔가 너를 이용할 게 있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더라고.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 말에 주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으음……. 글쎄요. 사장님이 좀 과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한 것 같은 느낌이 있긴 해요. 사장님도 절 잘 대해 주시면서……."
 "야! 그거랑 다르지!"
 "그 사람은 어쨌든 의사잖아요. 의무감일 수도 있죠."

 소속사 사장은 그 말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얘기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도 좀 너무 갔나 하고 생각하고 있긴 하니까. 아, 그리고 나한테 말 할 때마다 '아시겠지만'이라던가, '이해하시겠지만'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이상하더라고."
 "네? 그게 왜요?"

 소속사 사장이 턱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입장을 공감할거라는 걸 주입시키는 느낌? 같은 위치에 있다는 걸 일부러 얘기하는 느낌? 나랑 같은 편이라고 얘기하는 느낌?"
 "그래요…?"

 주현의 떨떠름한 반응에 소속사 사장이 말했다.

 "네가 직접 안 봐서 내가 하는 말들이 좀 비약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그렇게 느꼈어. 난 뭐랄까, 그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도 같이 봤으니까."
 "그래도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이고 생각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요? 딴 것도 아니고 살인사건인데."

 주현의 말에 소속사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단정 지을 수 없긴 하지. 근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주현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그를 그냥 돌려보냈다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똑똑

 그 때 그들이 있던 방의 문을 다른 직원이 두드리더니, 문을 열고 고개를 슥 들이밀고 말했다.

 "사장님, 군대에서 택배왔는데요?"
 "뭐?"

 직원은 사장에게 택배를 내밀었다. 그건 주현에게 온 택배였다.

 "…혹시 데뷔한 지 며칠 만에 군대에서 팬이 돼서 제게 뭔가를 보낼 일이 있을까요?"

 주현이 자신에게 올 가능성이 너무나 적은 택배를 받아 들고는 찝찝한 말투로 말했다.
 소속사 사장은 긴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군대에서 온 택배를 살펴보며 말했다.

 "뭐지? 이름도 안 적혀 있고. 뭐지? 주현아, 네 주변 사람 중에 군대에 간 사람 없어?"
 "없어요. 전 아직 미성년자라고요. 아마 친척 중에서도 없을걸요. 사장님, 혹시 이거 위험한 거 든 거 아니에요?"
 "그렇진 않을 거야. 군대에서 왔으면 아마 위험한 건 안 들었을 걸."

 그렇게 말하며 소속사 사장은 커터칼을 들고 와서 택배를 뜯었다. 안에는 훈련소 입소 시에 입고 온 사복을 돌려보내는 택배였다.

 "이런건 보통 살던 집이나 부모님 집으로 보내는데."

 소속사 사장이 중얼거렸다. 그 안에는 편지도 한 통 들어있었다. 
 주현은 편지부터 꺼내 펼쳐 읽더니 갑자기 미간에 인상을 쓰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한참만에 입을 뗐다.

 "…김두원 의사 선생님이 보냈어요. 갑자기 떠나서 미안하고, 나중에 옷은 부모님한테 전해달래요."
 "뭐?"

 그 말에 소속사 사장이 급히 주현의 손에서 편지를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 

 "…일반 병사로 들어갔군. 군의관도 아니고 그냥 들어갔다는 건 역시 작정하고 숨을 생각이었나……."

 소속사 사장이 편지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주현은 택배에 들어있는 옷가지를 꺼내어 뒤적이며 물었다.
 
 "김두원 의사 선생님이 모든 자료를 갖고 도망간 사람 맞죠?"
 "어… 뭐……. 그렇다고 들었지. 그 쫓는 의사한테서."

 소속사 사장이 약간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사이 주현은 옷 속에 숨겨둔 약통을 두 어개 찾아내 꺼냈다. 주현은 약통 뚜껑을 열어서 살펴보고는 그것이 자신의 약임을 확신했다.

 "어? 약을 숨겨놨어?"

 소속사 사장이 약통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주현은 약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보통 이런 건 부모님이나 살던 집에 보낸다고요. 근데 부모님한테 보내달라고 하면서 굳이 저를 통해서 보낸다는 건 뭔가 전할 말이 있어서겠죠. 도망 다니느라 직접 얘기하고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네요."
 "…그런 말이 있어?"

 소속사 사장이 편지를 다시 자세히 보려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현은 편지 내용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편지에 암호가 있어요. 해석해서 읽으면 옷 속에 숨긴 건 일부라고 해요. 그리고, 다른 자료랑 약들은 저희가 찾을 수 있어요. 위치에 대한 단서가 써있네요."

 소속사 사장은 주현의 말에 난처한 표정으로 고민하는듯 했다.
 그 모습을 본 주현이 물었다.

 "사장님, 뭔가 걸리는 게 있으세요?"
 "아니, 그냥……. 좀 위험한 것 같기도 하고……."

 소속사 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주현이 말했다.

 "제가 봐도 위험해 보이긴 해요. 하……. 상황이 이상하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양쪽 다 우리를 믿는 것 같긴 하지만요."
 "글쎄. 믿는다기 보단 양 쪽 다 우리를 포섭하려는것 같아."
 "그런가요……."
 "그래. 뭐가 뭔지 모르니 일단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너를 굳이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나도 위험해지고 싶지 않고. 그리고 약을 얻었으니 한동안은 괜찮겠지. 그동안 우리 나름대로 조사해보고 말야."

 소속사 사장의 말에 주현은 약통 안을 열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리 안심할만한 기간은 아닌 것 같아요."
 "뭐?"
 "약이 많지 않아요. 원래 가지고 있던 약을 다 더한다고 석 달에서 넉 달 정도일걸요?"
 "그 정도 밖에 안 돼?"
 "네. 그리고 어쨌든 그 이후에도 생활 할 수 있으려면 자료랑 다른 약을 찾아야 돼요."
 "이런."

 소속사 사장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주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석 달 정도라고?"
 "네. 아마 그것보다는 조금 더 될 것 같지만요."
 "잘하면 만날 수도 있겠는데?"
 "군대 갔는데 어떻게요? 몇 년간 꼼짝 없이 못 보잖아요."
 "휴가 있잖아. 100일 휴가."



철컥

 "사장님, 찾았습니다."

 매니저가 지방의 어느 지하철역의 물품 보관소에서 김두원이 숨겨놓은 마지막 꾸러미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수고했다. 바로 가져와."
 "네."
 
 매니저는 전화가 끊기자 투덜거렸다.

 "대체 뭐길래 이런 심부름을 몇 번이나……."

 매니저는 이 이상한 출장 심부름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듣지 못 한 채 먼 길을 오가며 며칠 쨰 고생하고 있었다.



 매니저가 차에 타서 꾸러미가 든 가방을 조수석에 던져 놓은 순간,



 "뭐, 뭐야!?"

 매니저는 몸이 앞으로 훅 쏠렸다. 매니저는 정차된 차를 누군가가 박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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