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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기형 - 네 명의 아이들과의 대화

SooyangLim 2022. 8. 17. 19:01

 불이 켜진 방안은 매우 넓었다. 빛 아래 드러난 모습은 그냥 하얗고 넓은 방 안이었다. 간부들이 늘어서 있던 본부와 똑같이 생겼는데, 다만 카페트나 기물, 색깔 등이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이었다. 그리고 일곱 남매 뒤에는 문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까 날 비췄던 거울을 바라봤다. 밝은 빛 아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난 꽤 한심하고 적나라한 꼬락서니였다. 

 그런데 방 안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일곱 남매는 물론, 물 자국도, 불 자국도, 테이블이나 의자나 멋진 기물 같은 것들은 하나도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지금 내 가까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빈 방.
 그리고 일곱 남매들.
 순간, 공허함이 몰려왔다.

 "칫."

 정욕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네 옆에 우린 계속 있을 거야. 네가 죽여버렸던 간부들처럼."
 "뭐?"
 "애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여자 정애가 그렇게 경고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거울이 깨졌다. 
 동시에 일곱 남매도 거울과 함께 깨졌다. 바닥에는 조각난 그들의 시체가 피바다 위에 잔뜩 널브러졌다.

덜컹

 일곱 남매 뒤의 문이 살짝 열렸다. 나는 멍 하게 열린 물을 바라봤다. 저 문으로 들어가야 되나? 하고 생각하는데, 아까 거울이 있던 자리에 내가 여러 번 베어 물었던 사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울의 잔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는 사과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이제 먹을 곳이 많이 남지 않은 사과를 베어물었다.

철퍽

 피가 가득 고인 바닥을 밟고 걸음을 옮길 때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느새 온 몸이 피로 흠뻑 적셔진 수준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이 중 하나가 인사를 건넸다. 나는 긴장해서 뻣뻣해진 모습으로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문 너머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그곳은 그냥 집 같은 곳이었다. 언뜻 보기엔 부모님과 살던 집과 꽤 비슷했다. 그리고 수장처럼 개량된 한복을 입은 아이가 넷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경계하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그냥 가볍고 별로 값비싸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뜯어볼수록 예사롭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난 아이들이 입은 옷처럼 아마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얘기를 듣고 싶어요."

 아이들은 지금까지 만난 모든 놈들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나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심지어 내 말을 듣기를 원했다.

 "그 동안 제대로 못 먹었죠?"

 아이들은 그리고 나를 방 안의 따뜻한 곳에 앉을 수 있게 했으며,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국밥을 한 그릇 내왔다. 난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지 생각했다.

 "…뭐야, 이건?"
 "그냥 식사에요.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요."

 난 이걸 먹어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독 같은 거 넣은 건 아니겠지?"

 내 말에 아이들 중 하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에!? 에이. 그건 아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나는 진심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보고 일단은 먹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싸우지 말라는 호심래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먹는 동안 그들은 말을 걸었다.

 "학생이라고 들었어요."
 "맞아. 너네는 이름이 뭐야?"

 아까 국밥을 들고 왔고, 연한 붉은 색 계열의 옷을 입고,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던 남자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측이에요."

 자신의 몸보다 크고, 염색 되지 않은 듯한 직물의 천연색의 옷을 입고, 유난히 말수가 적던 남자아이가 말했다.

 "저, 저는 수라고 해요……."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여자 아이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저는 사라고 합니다."

 독을 넣었냐고 물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말 했던 아이는 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시비라고 해요."   

 시비는 흰색과 검은색을 사용한 옷을 입은 여자 아이였다.
 아이들의 이름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수장은 어디 있어?"

 내 말에 뒤쪽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시비가 말했다.

 "저 문 뒤에 있어요."
 "…내가 수장을 막으러 가면 너네는 고아가 되는 건가?"
 "아니요. 저희는 어디든 있고, 어디든 있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난 그 말이 이해가 안 가서 더 물으려 했지만, 내가 묻기 전에 측이 물었다.

 "계속 미안했어요. 현사엽 아저씨와 길선웅 아저씨의 일 말이에요."
 "…너네도 알고 있구나."
 "……."
 "너네 같이 어린 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겠지."
 "…미안해요. 형이 너무 안타까워요."

 측이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시비가 조용히 말했다.

 "그건 정말 아니었는데."
 "너무 괴로워."

 수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에 나는 괜히 마음이 안 좋아졌다.

 "…됐어. 너네가 뭘 알고 했겠어."
 "……."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그 침묵이 뜻하는 바를 완전히 캐치하지 못했다. 난 그저 아이들을 보고 대화를 나눌수록 아이들이 원했던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꼿꼿이 앉아있던 사가 말했다.
 
 "…막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시비가 물었다.

 "그런데 왜 전부 바꾸기로 결심하신 거예요?"
 "전부 썩었다고 생각해서."
 "그게 모두를 죽일 이유였나요?"

 시비의 말에 나는 욱해서 말했다.

 "그럼 너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고 생각해?"
 "죽이지 않고 바꿀 수는 없었나요?"

 측이 물었다.
 측의 물음에 내가 말했다.

 "그럼 너네도 아저씨들을 죽이지 말았어야지. 어떻게든 막았어야지."
 "맞아요. 죽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시비의 말에 옆에 가만히 있던 수가 말했다.

 "너무 부끄럽고 괴로워……."

 수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나는 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날 서 있던 긴장은 약간은 풀렸다. 네 명의 아이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보다 더 꽤 유약하고, 온유해 보이는 모습에 약간은 안심이 됐다.
 
 그런 수를 힐끗 바라보던 시비는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몰살을 해도 되는 건가요? 그게 맞나요?"
 "난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누구 하나라도 그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나 했어? 반성이나 했어? 자살한 호심래 빼고는 다들 당당하던데?"

 내 말에 수가 더 몸을 웅크렸다.
 나는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장이나 지금까지 간부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러라고 멍석을 깔아준 거 아냐? 마치 원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말야. 난 너네가 그렇게 밖에는 안 보여. 난 전부 엎고 새롭게 만들 거야."
 
 내 말에 아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식사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네는 수장이랑 자주 같이 있어?"

 사가 말했다.

 "언제나 같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요. 그래도 보려고 하면 가끔씩은 보일 거에요."
 "그래? 그럼 너네 생각은 어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벌인 것 같아?"

 내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에 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윽고 수가 말했다.

 "…당신이 기억하길 바래서 일 것 같아요……."
 "…뭐?"

 난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측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이제 당신이 이 모든 일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나봐요. 아마 그런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아저씨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내가 이 모든 일을 하는 걸 말하는 거야?"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미쳤네. 진짜 제대로 미친년이야."

 나는 한숨을 쉬고는 남은 음식을 마저 먹었다.
 시비가 물었다.

 "…수장하고 맞설 거죠?"
 "응. 내가 저 문을 열고 나간다면 너네는 날 막을 거지?" 

 나는 남은 음식을 마저 먹고 그릇과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 말에 측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직은 막고 싶어요. 너무 가혹하니까요."
 
 난 가혹다는 측이의 말에 솔직하게, 속을 약간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애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겠죠. 지금 벌써 3시 56분이니까요."

 측의 말이 끝나자 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저 문을 열 자격이 있는지는 보고 싶습니다. 수장을 마주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좋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 만큼이나 가볍게 말했다.

 "궁금하면 알아 봐야지." 

 나는 약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전에 들었던 모든 이들의 경고는 지금 내 머릿속에서 희석이 된 상태였다. 지금 솔직한 심정으로는, 네 명의 아이들을 약간은 얕잡아 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의 풀어진 마음은 지금까지의 모든 싸움 중 가장 큰 자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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