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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기형 - 일곱 남매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일곱 남매

SooyangLim 2022. 8. 15. 19:03

 "…문이 열렸어."

 현사월이 주발 뒤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이 그 문 앞에서 웅성거리며 서있었다. 다들 들어가 보려 했으나, 들어가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못 들어가도록 뭔가 장치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열린 문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내 등 뒤로 그대로 문이 닫혀버렸다.

 "이런!"

 나는 문이 닫히자 당황했다.

 "……."

 문이 닫히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난 완전한 고요의 바다 안에 잠긴 느낌이었다.  

 "…휴."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그들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이들의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기에 나는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무방비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 그게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로지 나 혼자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건 별 의미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완전히 깜깜했기 때문에, 공간의 넓이나 깊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안녕?"

 갑자기 어둠 속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이 켜지는 소리와 동시에 천장에서 핀 조명이 나를 비췄다.



 또 다른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7개의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7개의 핀 조명은 각자 다른 남녀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수장의 양자들 중 7남매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7남매를 비추는 불빛 중에 6개의 조명이 꺼졌다. 켜진 핀 조명 아래 우락부락한 덩치 하나가 날 보고 서있었다. 그의 등에는 오함마에 가까운 거대한 망치를 두 자루 교체로 매고 있었다.

 "만나보고 싶었소."

 그가 요즘은 전혀 쓰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말투를 쓰며 말했다. 

 "당신의 그 마음이 나는 이해됐소."

 그는 말하는 동안 오체금처럼 점점 몸이 불어났다.

 "나는 이해하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마음, 그리고 나를 계략에 빠뜨린 이들에 대한 마음.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마음. 걷잡을 수 없는 불길 같은 마음.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세상에 대한 마음. 나는 시작부터 내지르는 마음. 나는 그대를 이해하오."



 다른 불빛이 켜졌다.
 새로 켜진 핀 조명 아래에는 시뻘겋게 부어오른 눈가에, 화장이 번진 것처럼 눈물자국 분장이 되어 있는 남자가 서있었다.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아, 그는 분노요, 이름은 정로이어라. 또한 나는 그대의 마음을 이해하나니, 깊이 잠긴 그대의 마음이 선명하게 심장을 파고드는구나……."

 눈가가 부어오른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먹먹하게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마치 노래하듯 말을 했는데, 나는 어쩐지 그의 말에 홀리는 것 같았다.
 그때 한껏 몸이 커진 정로라는 남자가 말했다.

 "깊은 태초부터 내지르는 비명이 들리시오? 나와 닮은 형제의, 목이 쉬어라 지르는 소리가 들리시오? 그는 비애라오. 그의 이름은 정애이어라."

 그들의 연극 같은 독백을 들으며 생각했다.

 '미친 놈들인가…? 말투 뭐야?'

 나는 혼잣말 하듯 말했다.

 "…아니, 말하는 짓은 둘째 치고, 니네가 죽여놓고는 하는 소리가 가관인데?"
 "그 또한 그대일지어늘, 왜 그대는 이런 일을 시작했는가?"

 정애라는 남자가 물었다. 나는 이걸 대답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니다 싶으면 고치든가 해야지. 너네 같이 헛소리 하는 놈들도 바로 잡고."
 "아아, 그대여. 진정으로 그대는 모두를 제압하고 혼자 도맡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그대가 만든 세상이 다시 전과 다르게 새로워지리라 보는 것인가?"
 "아닐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내 말에 정로가 등에 매고 있던 망치를 꺼내며 말했다.

 "어리석구려! 그대는 이 자리에서 그대의 어리석음을 알아야겠소."

 정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망치를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새하얗게 작열하여 마비되며 걷잡을 수 없는 불길 같이 태우고,"



 그가 주문 같은 걸 외우며 두개의 망치를 바닥에 내려쳤다. 그 진동과 소리가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뭐야, 이건!?"

 그의 망치가 내려쳐진 곳부터 불길이 치솟아 내게 질주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로의 말을 이어받아, 정애가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문을 외는 것 같기도 한 느낌으로 읊기 시작했다.

 "아아, 서러워라. 아아, 괴롭구나. 아아, 이것은 아픔이어라. 저항할 수 없는 크고 넓은 파도가 되어 그대를 덮칠지어다."

 그 말을 하며 정애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자 그의 손 아래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물이 콸콸 쏟아졌다. 그리고 그 물이 빠르게 바닥에 닿고, 바닥에 닿은 물은 순식간에 불어나 파도치며 나를 덮으려 했다.

쾅 쾅 쾅 쾅

 정로는 계속 그 자리에서 바닥을 쳤다. 그럴 때 마다 불길은 마치 화로에 가스를 더 넣는 것처럼 더 크게 폭발하고 커졌다. 그 불길은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사납게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불길은 어둠을 전혀 몰아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처럼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은, 주변을 전혀 밝히지 못한 채 그저 나를 불편하게만 했다. 

 "읍!"

 하지만 그 불길보다 더 짜증나는 것은 정로가 만든 물이었다. 난 어느새 그 물 안에 잠겨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물 속에 갇히니, 모든 것이 무력해지고 둔해진 기분이었다. 이 물 때문에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파도치듯 물살이 있어서 쉽게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난 그저 파도에 휘말려 이리저리 쓸려 다닐 뿐이었다.

 '젠장.'

 난 이렇게 물 안에 잠긴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물 밖을 나가자니 불길이 거세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난 여기서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하며 물과 불을 없애려는데,

 '손?'  

 눈 앞에 갑자기 손이 하나 보였다. 난 그 손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물 안에 핀 조명 때문인지 빛이 한 줄기 보이고, 그 아래 아름다운 여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안타까운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호심래와 싸웠던 일이 생각났다. 난 이 불과 물을 거울방에서 거울들을 깨듯 날려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금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작열하던 순식간에 소화되고 홍수 났던 물을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 살 것 같네."

 난 물 밖으로 나와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그렇게 말했다. 무언가 엄청나게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다 탔구만."

 난 본능적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여전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주변이 전부 다 타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맹렬하던 불은 이제 작은 불티만 약간 남아있었다. 나는 그 작은 불티들을 보고 있자니 허무함이 몰려왔다.



 또 하나의 핀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난 새로운 핀 조명이 켜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와! 뭐야?"

 난 그 빛 아래에 너무나 화려한 의자와, 온갖 산해진미와 물건들이 놓인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또다른 핀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코끝을 찌르는 달콤한 향이 나는가 싶더니,

 "맘에 들어?" 

 라며 너무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켜진 핀 조명은 나를 비추는 핀 조명 바로 옆이었다.

 그 불빛 아래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웃음기를 머금은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 눈부셨다.



 또 다른 핀 조명이 켜졌다. 거기엔 큼직한 악기를 맨 남자가 서있었다. 



 또 다른 핀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번조명은 나를 비추는 핀 조명과 겹쳤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깝게 아까 내게 손을 뻗은 여자가 서있었다. 

 "뭐, 뭐야?"

 나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다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겠다.

 "어?"

 그 순간 악기를 맨 남자가 악기를 꺼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도 시작했다.

 "요동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나, 정락은, 매혹적인 자매들을 노래하니 이 또한 태초의 일이 아닐까?" 

 이상하게 그의 목소리는 귀로부터 들리는 게 아니라, 머리 속에서부터 울리는 듯했다. 

 "괜찮지?"
 "……."
 "좋지 않아?"

 나는 어쩐지 그 말에 동조하고 싶어졌다.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향기를 맡으니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맘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야."

 어느새 달콤한 향기와 낭랑한 목소리가 더 짙게 나를 감쌌다. 정락은 조금 더 악기를 크게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뼛속까지 취할 아름다움, 그녀는 기쁨, 그녀의 이름은 정희."

 정희라 불린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별안간 내게 입을 맞췄다. 그녀의 입을 통해서 뭔가가 흘러들어왔다. 처음에는 술인 줄 알았으나, 새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연기임을 깨달았다. 그 연기는 나의 정신을 약간 혼미하게 만들었다.

 "어?"

 내가 당황하며 눈을 한 번 깜박이니, 어느새 아름다운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있던 미모의 여성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이젠 내 심장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난 그 두근거림과 솟아나는 활력을 느끼며 홀린 듯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에 잡힌 건, 아까 물 안에서 내게 손을 뻗었던 여자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도 약간 더 멀리 떨어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떼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 아름답고 신비하며 알 수 없네. 아치만 매혹적이며 사랑스럽네. 그러나 언제나 목마르네. 그녀의 이름 또한 정애라고 하네."



 어느 새 내 뒤에 의자가 생겼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정애라는 여자 앞에 마주 앉게 되었다. 정애라는 여자가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예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꼭 죽였어야 하나 싶었지. 나도 그들이 소중한데 말야."

 그녀는 내 생각에 동조했다. 나는 풀린 눈으로 의아한듯 물었다.

 "근데 어째서…?"
 "…너는 어때? 간부들을 꼭 다 죽여야만 했어?"
  
 그녀가 대답 대신 내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테이블과 의자와 각종 기물을 가리키는 것인지 애매하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갖고 싶지 않아?"

 정애라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덕분에 얇은 천 뒤로 이상적이라면 그렇게 이상적일 수가 없는 그녀의 몸이 훤히 드러났다. 내 심장은 더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촤르륵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갖은 음식과 화려한 기물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손으로 내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입을 맞췄다.

 "헉."

 나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맘에 들어?"

 정희의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어느새 그녀가 나를 안고 내 온몸을 휘감듯 감싸고 있었다. 정락의 악기 연주와 노랫소리는 더더욱 빠르고 커졌다.

 "어쩔 거지? 어쩔 거지? 어쩔 거지?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부푸는데, 어쩔 거지? 정욕의 손을 잡을 것인가?"

 라는 정락의 노랫 소리와 더불어 정희와 정애의 뒤로 아까 물속에서 내게 손을 내민 여자가 보였다. 그녀가 바로 정욕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이 그녀의 손에 닿는 순간 나는 눈알이 핑그르 돌아갔다. 시야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정희는 더 나를 못 움직이게 꽉 안아서 포박하고 귓가에서 유혹하는 말을 빠르게 속삭였다. 그 와중에 정애는 실체가 있는 듯 내 눈앞에서 바라봤다가, 또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가, 또 갑자기 나타나 나를 유혹하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정욕은 자꾸만 내 주변을 맴돌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몽롱하고 갈급하게 쫓아가다가, 어느 새 활짝 웃고 있는 정욕의 표정을 눈치챘다.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만개한 꽃처럼 화려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추악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내 옆에 거울이 하나 놓여있었다. 어쩐지 거울 안에서 나를 유혹하던 그녀들은 보이지 않고, 나 혼자 기괴한 자세로 갈망하고 몸부림 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분명 그녀들을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있는데, 거울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이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정신이 확 들었다.

 "…너네 날 사로잡으려고 꼬시고 있는 거였네."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니네도 좋지만은 않네."

 나의 말과 동시에 다른 핀 조명이 켜졌다.

 "기분 나빴냐?"

 혓바닥에 피어싱을 하고 이상한 색 머리와, 화장인지 분장인지 모를 것을 잔뜩 칠한 빼빼 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몸에 그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진 게 보였다. 그의 이름은 정오였다. 그는 빈정거리듯 물었다.

 "싫냐?"

 그 물음에 내 대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뭔 상관이야. 싫으면 뭐 어쩔 건데. 좋으면 또 어쩔 건데? 그냥 그런 건데.'

 그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모든 핀 조명이 켜지고, 7명의 남매가 모두 드러났다.



 핀 조명 외에는 어둡던 방에 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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