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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운명의 수레바퀴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운명의 수레바퀴

SooyangLim 2021. 10. 7. 19:02

 이 맘 때 쯤, 우펜자는 우주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 나아가야 함을 설파했다. 종종 우펜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전쟁터에 들어가 전쟁을 멈출 것을 설득하기도 하였다.
 물론, 우펜자는 말로만 전쟁을 멈추자고 행동하는 타입 또한 아니었다. 우펜자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였다. 그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9구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실천 하는 자」

 이 시기의 우펜자를 아는 우주의 주민들이 그를 부르는 칭호였다.
 우펜자는 의료 지원, 전쟁으로 파괴된 거주지 복원 등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리고 전쟁으로 고갈된 식량 생산 지원,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 제공, 과학 기술 지원 등의 일을 통해 다시 자립하여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우펜자는 이러한 지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서로 돕는 자발적인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연설도 했다. 덕분에 많은 후원자들이 그의 뜻에 따랐다. 우펜자는 모두와 함께 우주 곳곳의 체계를 다시 잡아나가고 있었다. 
 
 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던 우펜자는 오래간만에 마타마이니에 들렀다.

 "안녕하십니까, 범백 주석."

 우펜자는 구레아 임시정부 주석인 범백을 만나게 되었다. 우펜자는 잠시 마타마이니 행성에 들렀을 때, 그를 찾아온 아즈국의 국가수반에게서 구레아 임시정부의 국제 우주 사회 진출에 대한 문서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펜자는 과거에 구레아에 머문 적이 있었기에 그 소식을 듣자 잠깐이나마 임시정부를 방문해 보고 싶어 했다.  

 "어서오십시오."

 범백은 반갑게 그에게 인사했다. 그들은 함께 대화를 나눴다. 평화에 대한 아주 긴 대화였다.

 "범백 주석께서는 우주 9구역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해 독립 하고 해방을 한 구레아가 어떤 나라가 되길 원하십니까?"

 우펜자가 물었다.

 "독립! 가슴이 고동치는 말이군요."

 범백이 그리 말하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합니다."
 "아름다운 나라? 제가 다닌 우주의 많은 곳에서는 강하고 부유한 나라가 되길 원하던데 범백 주석은 다른 답변을 하시는군요."

 우펜자가 범백의 색다른 답변에 흥미로운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범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이다. 나는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오. 남의 침략에 마음이 아팠으니 남을 침략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부유함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무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정도면 족합니다."
 
 범백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저 바라건대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오."

 우펜자가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함께 행복하기를 원하시는군요."

 범백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우리는 서로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뿌리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오. 우리가 원하는 자유는 저 뜰에 나무를 베는 자유가 아니라 과실 나무를 심는 자유를 원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것을 나누어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마음!"

 범백이 굳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 마음을 말미암아 높은 새로운 문화의 뿌리가 되고, 남의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으로 목적과 방향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받아 배울만한 본보기가 되길 원하오."
  
 우펜자가 범백의 말에 화답하듯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긴 대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쯤, 우펜자가 뭔가 잊은 것을 깨달은 듯이 물었다.

 "아참. 물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오?"
 "혹시 이렇게 생긴 이를 알고 있습니까? 키가 크고, 다른 하나는 아이인데… 아,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은 아이가 아니겠군요."

 우펜자가 삐뚤빼뚤 손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범백은 우펜자가 그림을 워낙 못 그려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설명과 조합하니 떠오르는 이가 하나 있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범백의 말에 우펜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혹시 만나려면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우펜자가 물었다.
 범백이 말했다.

 "워낙 신출귀몰한 이들이라 만나기 힘드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만약 찾으시는 분이 맞다면 아마 곧 구레아의 수도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 만나야 할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범백이 우펜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떤 인연으로 찾으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과거에 구레아에 왔을 때 정말 우연히 만난 인연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만이라도 더 만나 봤으면 하는 마음에 여쭈어 봤습니다."

 우펜자가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범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만약에 그쪽에도 확인해보고, 찾으시는 분이 맞다면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들은 앞날을 모르고 흔쾌히 약속했다.



 우펜자와 범백의 대담이 있고 얼마 뒤, 전쟁의 무게 추는 완전히 기울어지다 못해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 승승장구하던 우주 9구역의 패색은 완전히 짙어졌다.



찰칵

 권총이 장전됐다.
 피의 연설을 한 9구역 사령관 중 하나인 그는 이마에는 땀이 번들번들 베어 나오고 있었다. 긴장된 그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우주 전역을 갈가리 찢고 수십만의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간 그는, 이제야 떨고 있었다. 모든 책임을 내던지기 위해, 그는 권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전 날 결혼식을 올린 그의 부인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입에 독약을 털어 넣었다. 
 그는 입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튀는 피가 멈췄다. 
 세상이 멈췄다.

 공간의 틈 사이로, 아니 어쩌면 시간의 틈 사이로, 그 장소에 화약 연기가 아닌 알 수 없는 다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탕."
 
 연기에서 소리가 났다.

 "어휴"

 저 너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한숨을 쉬었다.
 연기에서 나는 목소리가 변명하듯 말했다.

 "잠깐 봤어."
 "흠."
 "미안."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연기가 사라졌다.

 



 튀는 핏방울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 우주 9구역 주요 사령관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어두운 밤, 마타마이니의 푸르른 위성 아래 집이 한 채 있었다. 텅 빈 구레아의 전통 건축물. 그곳은 안 쓴 지 오래되서일까,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래도 주인이 안 산지 오래된 것 치고는 몇 년 전까지는 관리가 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을 사랑했던 이가 관리한 탓일 것이다.

 이 집은 나름 으리으리하고 괜찮은 집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 동안 아무도 살지 않고 비워져 있었다. 소유주가 옮겨간 후 바뀐 소유주가 일부러 비워둔 것도 있었지만, 저주가 들린 집이라는 을씨년스러운 소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의 이유는 아마 집 마당에 놓인 무덤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무덤은 비어있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9구역 사령관 중 하나가 자살했데."

 장신의 남자가 무덤 앞에서 그 무덤의 주인을 뒤에서 안고 말했다. 옥실이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옥이와 같이 살던 집에 쉬도록 놔두고 둘만 이곳에 와있었다.

 이곳은 죽은 설화의 집이었다.

 둘은 마당의 나무 아래 만들어진 무덤 앞에 서 있었다. 오래지 않은 시일 전에 제법 푸르게 새로 돋아난 잎사귀들은 구레아의 계절을 암시하는 듯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곧 구레아 탈환이 있을 거다."

 한 때 설화였던, 설참이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무덤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네 무덤을 보는 기분이 어때?" 
 "……."

 설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덤을 바라봤다.
 장신의 남자가 또 물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 어때?"
 "……."

 이번에도 설참은 아무 말 없었다.
 설참은 가만히 있다가 무덤 옆의 푸릇하게 잎이 돋아나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무에 또 잎이 돋아나는구나."
 "계절이 바뀌었으니까."
 "내년에도 잎이 돋아나겠지."
 "그렇겠지."
 
 장신의 남자도 같이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나 얼마 뒤에 왕자님 한테 가봐야 될 것 같아."
 "왕자님?"
 "응. 늦기 전에 모셔오려고."
 
 장신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주저하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응?"
 "생각해봤는데… 사실 우린 다르니까… 아니, 그러니까 우린 다르거든. 옥실이는 혹시 모르니까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장신의 남자가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한 설참이 이해를 못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음, 아니, 됐다. 여튼 다르거든. 신경 쓰지 마. 어쨌든 그래서 말인데… 음……."

 장신의 남자가 평소에 들고 다니던 시계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시계?"

 설참은 손에 쥐어진 시계를 봤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돌려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장신의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갔다 올게. 기다려줘. 그러니까 어, 음……."
 
 장신의 남자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슨 말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몰랐던 말이 있어."
 "…그게 무엇이냐?"
 "모든 걸 포기하고 남고 싶다는 말."
 "……."

 설참이 장신의 남자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장신의 남자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굳게 다짐한 듯 말했다.

 "근데 그러지는 않을 거야. 난 후회하기 싫거든. 난 너랑 같이 행복하고 싶어. 그러니까… 다시 돌아올게."

 장신의 남자가 갑자기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근데, 난 그래서 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널 많이 사랑하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설참에게 키스했다. 시간이 꽤 길어졌다. 그는 평소와는 달랐다.  

 설참은 그가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 했는 지를 눈치챘다. 설참이 잠시 그를 떨어뜨리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설참은 조용히 입을 뗐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

 장신의 남자는 설참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설참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맘에 안 드는 놈과 내가 같이 있는 건지, 어떻게 이렇게 남 속 긁는 소리를 하는 놈 앞에서 내가 말 문이 막히는 건지."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진심이다."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말에 괜히 삐진 듯 입을 삐쭉거렸다.
 설참은 그런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이해가 안 됐다."
 "응?"
 "왜 내가 굳이 네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내가 네 앞에서는 눈물 흘릴 수 있었을까? 왜 나는 내가 죽는 건 무섭지 않은 데 네가 다치는 건 무서울까? 왜 나는 네 앞에서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을까? 왜 나는 네가 없으면 이렇게까지 보고 싶어질까?"
 "……."
 "왜 나도…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네게 모든 걸 주고 같이 있고 싶었을까."
 
 설참이 그의 뺨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난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너도 그랬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근데 돌이켜보니, 너도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너도 언제나 우린 떠날 것이고, 또 떠나야 된다 라고 느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우리는 같은 생각으로 내 욕심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설참이 눈을 떴다. 마타마이니의 위성의 푸르게 흰 빛에 비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널 사랑한다. 아주, 많이."

 설참이 한 손은 그의 뒷 머리칼을, 다른 한 손은 그의 셔츠 안쪽의 뒷 목덜미로 파고들어 잡고 끌어당겼다.

 "후회하지 않게 지금 널 많이 사랑해야겠다."

 설참이 장신의 남자에게 입맞춤으로 끝나지 않을 입맞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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