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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노래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노래

SooyangLim 2021. 8. 26. 19:02

 "…왕자님 일은?"

 설참이 왕자의 안부를 묻자 장신의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 야, 지금 네가 그 쪽 걱정 할 때냐?"
 "……."

 설참은 그 말에 대답도 못할 만큼 숨을 쎅쎅 몰아쉬고 있었다. 명이 당장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것이 보였다.
 홍화가 괜히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결혼식까지 무사히 잘 치렀으니 걱정 마세요."

 설참이 안심이 된다는 듯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장신의 남자가 손이 축축한 것을 느끼고 설참을 잡은 손을 봤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야! 피! 빠, 빨리, 차, 차에 타야…!"

 옷으로 애써 감춰놓은 상처에서 피가 계속 베어 나오고 있었다.
 홍화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어서 타요."

 옆에 있던 옥실이 홍화의 차 문을 열며 말했다.
 그들은 재빨리 차에 설참을 구겨 넣듯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제발…! 제발… 어째서 그러십니까!? 어째서…!"

 홍화는 차에 타자 설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는 울부짖는 듯, 안타까운 듯, 사무치는 듯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깊이 새어 나왔다.

 "……."

 설참은 대답 없이 힘겹게 눈을 뜨고 차창 너머 구레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온 설참의 눈에 구레아의 아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 경찰의 지휘 아래 학생들이 열과 오를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곳곳에 우주 9구역에서 세운 사원들이 눈에 보였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죽이고, 가족을 죽이고, 이웃을 죽이고, 나라를 뺏고, 행성을 뺏은 이들을 위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우주 9구역은 자신들의 우주 정복과 전쟁에 대한 승전을 기원하는 참배를 강제로 시키고 있었다.

 "…얼마나 다친 겁니까?"

 홍화가 나지막히 물었다.
 홍화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옥실이 설참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신 대답했다.

 "광선포에 맞아서 도망을 제대로 못 가서 근처에서 터진 포탄의 파편들을 맞았죠?"
 "……."
 "죽었나 확인 할 때 찌르는 칼에 왼팔과 옆구리를 난자당했고요."
 "……."
 "총알도 박혀 있는 있고요. 개수는 최고 한 개 이상."
 "……."
 "살아 있는 게 기적이네요."

 옥실이 줄줄 읊자 홍화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장신의 남자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엄청 아프겠다."
 
 그 말에 지금껏 가만히 창 밖만 보고 있던 설참이 드디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모습…을 보는… 마음이… 더 아파……."

 그 말에 차 안이 침묵에 잠겼다.
 홍화가 창 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덧 없지 않습니까?"
 "……."
 "아무 의미 없는 발악 아닐까요?" 
 "……."
 "우리는 이제… 끝이 아닐까요?"

 홍화의 말에 설참이 그제야 창 밖에서 눈을 떼고 조수석에 앉은 홍화를 바라봤다.
 백미러로 비치는 홍화의 눈에는 눈물마저 마른 듯 체념으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저들은 영원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고, 우린 끝을 미련하게 붙잡은 찰나의 먼지 한 톨인 건 아닐까요?"
 
 홍화의 말에 아무도 대답 하지 않은 채 차는 홍화의 남편의 집에 도착했다.
 홍화의 남편과, 어느새 부쩍 큰 그의 딸이 마중을 나왔다. 홍화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어서 안으로 뫼십시다."

 그의 집 안에는 홍화가 9구역의 눈을 피해 몰래 데려 온 의사와 간호사가 와있었다. 

 "모두 나가 계시지요."

 의사가 의료진을 빼고는 모두 집에서 내보냈다.
 
 홍화가 그제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아이의 눈시울도 같이 붉어졌다. 홍화의 남편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

 홍화가 감정 주체 못 하고 울다 보니 가녀린 몸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붉고 여린 꽃잎이 찢어져 흐트러지는 모습 같았다. 

 "…그래도 가보셔야죠."

 홍화의 남편이 말했다.
 홍화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의미 있을까요?"
 
 이번에도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장신의 남자와 옥실은 괴로워하는 이들을 그저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홍화가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돼버린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고 밉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현실보다 언니가 더 밉습니다."
 "……."
 "그런데 더 미운 것이 뭔지 아십니까?"

 홍화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주르륵 흘러내렸다. 홍화는 다시 울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매번 이리 떠나보내고, 매번 다시 아파하면서, 매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내가 너무 밉습니다. 어쩔 때는 차라리 기다리지 못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 날도 있습니다."

 홍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차가 떠나고 나자 홍화의 남편과 아이는 식사를 준비 해야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옥실이 조용히 말했다. 

 "…가는 길이 조금은 멀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참… 그러네. 이 상황에서도 공연하고 해방 운동 자금을 대러 가야 된다니."
   
 장신의 남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홍화가 며칠 뒤에 온다고 했는데 그때까진 저 녀석도 좀 나아지겠지?"
 "나아져도 문제 아닐까요?"
 "왜?"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옥실의 말은 바로 적중했다.
 3일 만에 눈을 뜬 설참은 눈을 뜨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장신의 남자에게 말했다.

 "…도와줘."
 "어? 깼냐? 괜찮아?"
 "도와줘."
 "뭐 필요한 거 있어?"
 "으윽… 이제…기차길은… 가기 힘들어. 수색이……."
 "어?"

 설참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설참은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배로… 구해줘. 나즈로… 가야…돼."
 "뭐? 설마 또 전쟁터로 가겠다고?"

 장신의 남자가 경악하며 말했다.

 "야, 너 지금 상태를 봐! 미쳤냐?"
 "부탁…한다……."

 설참이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장신의 남자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하."

 장신의 남자가 설참의 눈을 바라보다가 인상을 잔뜩 쓰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북북 긁었다.

 "알겠어, 알겠다고. 잠깐만 있어 봐. 일단 좀 자고 있으라고. 내가 뭐 구한다 해서 바로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옷을 붙자고 있는 설참의 손목을 잡고 떼냈다.

 "잠이나 좀 자고 있어 봐."

 그의 말에 설참은 기력이 없어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다시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장신의 남자는 설참이 잠에 든 것을 확인하고 홍화의 남편과 아이가 다른 곳에 있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벽장을 열었다.

 "옥실아. 들었냐? 도와줘."

 벽장 안에서 옥실의 손이 튀어나왔다. 옥실의 손에는 장신의 남자가 평소에 늘 갖고 다니는 시계가 쥐어져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옥실의 손에 쥐어진 시계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잘 접힌 채 놓여있던 옥실의 옷을 건넸다. 그리고는 다시 벽장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벽장 문이 열리고, 옷을 입은 옥실이 벽장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갔다 올게요."



 홍화가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나흘 뒤였다.
 홍화는 화려한 공연을 마치고 개인 대기실에서 머리 장식을 제거하고 귀걸이를 빼고 있었다. 그 때 거울에 비친 장신의 남자를 발견했다. 홍화는 깜짝 놀라 뒤돌아 봤다.

 "…어떻게 들어온 거죠?" 
 "지금 빨리 가야 돼."
 
 장신의 남자가 홍화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져 주며 말했다.

 "네?"

 홍화가 그 옷을 받아 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오늘 밤에 구레아를 빠져나갈 거야." 

 그 말에 홍화는 재빨리 그의 옷을 뒤집어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갔다.

 "가죠."



 낮에 출발한 그들은 밤이 어두워지고 하늘에 푸르스름한 위성이 하늘 한가운데에 걸릴 때가 돼서야 도착했다. 그곳은 구레아 남단에 위치한 항구였다.

 항구에는 곧 떠날 준비를 하는 크지 않은 배가 정박해 있었다. 그 배에는 몸을 한껏 웅크린 이들이 배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항해사라 하기에는 민망한, 뱃사공이라고 하면 딱 적당한 이가 승선 준비를 하며 홍화의 유명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배에 오르려 하는 이들 중에는 설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참은 모포를 둘둘 싸매고는 뱃사공이 승선 준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옥실이 시큰둥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장신의 남자와 홍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차 한 대가 배가 있는 곳 근처에 급하게 들어왔다. 차에서 눈에 띄게 키가 큰 남자와, 얼굴 빼고는 싹 다 가린 여자가 내렸다. 어두운 데다 그렇게까지 가렸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의 외모 탓에 시선이 집중됐다. 

 "…온 세상이 다 알아보겠네."

 옥실이 한탄하며 중얼거렸다.
 설참은 먼발치에서 그들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아채고는 옥실에게 말했다.

 "네가 오라고 했느냐?"
 "아뇨."

 옥실이 바로 거짓말을 했다.
 설참은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넌 저들에게 가거라. 난 숨어야겠다."
 "숨긴 어딜 숨어요. 곧 배에 타야 되는데."

 옥실은 그렇게 말하고는 장신의 남자와 홍화가 찾기 쉽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옥실이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다가왔다.

 "온 세상에 다 알릴 생각이에요? 요란하게도 오시네!"

 옥실의 말에 장신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급하게 오느라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잘난 걸 어떡하겠냐?"

 홍화는 설참을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안았다.
 설참은 그런 홍화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타시오!"

 승선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승선을 기다리던 이들이 우르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설참은 홍화를 안은 채로 말했다.

 "…여기 와서 많이 바뀐 구레아를 봤다. 내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 그들은 많은 것을 바꿔 놨더구나.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봤다."
 "……."
 "덧없지 않냐고, 아무 의미 없는 발악이 아니냐고, 끝을 미련하게 붙잡은 찰나의 먼지 한 톨이 아니냐고 물었었지."
 "…언니."
 "이게 내 대답이다."

 설참이 홍화에게서 몸을 떼며 말했다.
 홍화의 눈화장이 번져 흘러내렸다.
 설참이 배에 오르자 배가 이내 출발했다. 드넓은 바다로 배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하늘에 한 조각 걸려있는 푸르스름한 위성 아래 배는 파도에 밀려가듯 점점 멀어져 갔다. 배 갑판에서 흥얼거리는 뱃사공의 노랫소리 또한 점차 멀어져 작아졌다. 하지만 홍화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차에 타고 다시 돌아가는 동안 홍화는 말 없이 차창 너머로 하늘에 걸린 위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홍화는 별안간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고 있는 홍화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미쳤나?"

 장신의 남자가 옆에 앉아 있던 옥실의 귀에 작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들었는지 홍화가 말했다.

 "비참해서요."  
 
 그렇게 말하고는 홍화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공의 노래 가물거리며…"

 서글픈 노래가 울려 퍼졌다.

 "아."

 노래를 알아들은 옥실이 탄식인지 뭔지 모를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른 홍화 노래는 얼마 뒤 구레아 전역에 울려 퍼졌다.



마타마이니 행성력 4270년, 지난국, 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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