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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 of prime of life 23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Daydream of prime of life 23

SooyangLim 2021. 5. 18. 19:03

 "해명해야 할 것 같아서."

 백제인은 꽉 깨물고 있던 입술을 바르르 떨며 입을 뗐다.

 "어제 그 사람?"

 미경의 말에 백제인은 더 심하게 몸을 떨었다.

 "부, 부탁이야. 내, 내 얘, 얘길 드, 들어줘."
 "…그래."

 미경은 그런 백제인의 모습에 묻고 싶은 말이 더 늘어났다. 하지만 그런 만큼 지금은 더 캐묻지 않고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나는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외국으로 갔었어. 난 기억도 못 할 때의 일이지만……."

 미경은 갑자기 왜 백제인이 태어났을 때의 일을 얘기하나 싶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백제인은 가방끈을 꽉 쥐고 여전히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엄마 말로는 아빠의 치료를 위해서라고 했었어. 하지만 난 크면서 엄마의 말이 거짓말인걸 알게 됐어."

 미경은 백제인의 입으로 백도경에 대해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줄줄 다 읊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미경은 백제인이 최대한 많이 말 할 수 있게 유도하려 했다.

 "치료라니?"
 "아, 아빠는……."

 백제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가며 말했다.

 "나,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그러니까… 아빠는… 아빠는 어릴 때 내 친구였어. 그런데… 내가 커도 아빠는 그대로였어. 아빠는 나한테 아빠이고 아빠도 내가 딸인걸 알고는 있지만……. 아빠는 이제 친구도 아니고 동생처럼 되어버렸어."
 "아……."

 미경은 백제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다.
 백제인은 이제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었어."
 "어?"
 "엄마는 나한테 엄마가 맞지만, 나한테 친구였던 적도 엄마였던 적이 없어."
 "그게 무슨…?"

 미경은 백제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제인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빠와 날 남겨놓고 엄마는 일하러 간다며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가버렸어. 우린 꽤 큰 집에 살았고, 그 큰 집에 살 수 있는 건 엄마 덕분이라고 알고 있었어. 엄마는 우리를 위해 일을 나간다고 항상 말했고,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위험하다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 그리고 난 그걸 믿었어." 

 미경은 유지연을 떠올렸다.
 백제인은 어느새 꾹꾹 눌러오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학교에 갈 무렵부터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친구라는 사람들과 회사 동료들을 집에 데려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어쩔 때는 내가 집에 있을 때도 그들을 데려왔었어. 엄마는 일 해야 한다며 아빠와 나를 엄마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라는 사람들이 와 있는 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

 미경은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백제인은 흐르는 눈물 때문에 호흡이 가빠졌다. 좀 더 침착하게 말하려고 말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백제인은 잘 되지는 않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날이 갈수록 엄마 친구라는 사람이나 회사 동료라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어. 그리고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어. 그러다가 난 아빠가 자는 동안 잠시 물을 마시러 방 밖으로 빠져나왔어. 그리고… 난 봤어. 엄마가… 그 술병이 나뒹구는 집안에서 그 사람과 바람을……."
 "아."
  
 미경은 최대한 반응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반응을 했다.

 '이거 전형적인 방치된 집안 애 같은데……. 얘 되게 좋은 나라에서 살았지 않나? 외국에서는 아동학대 이런 걸로 안 잡혀가나?'

 미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백제인의 말을 계속 들어줬다.
 백제인은 이제 심하게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난… 그냥 뭐라 해야 될지 몰랐지. 처음 봤을 때는 어릴 때라서 그게 뭐 하는 건지도 몰랐고. 그리고 크면서 그게 뭔지 알게 됐어."
 "……."
 "난 클수록 아빠가 불쌍해졌어. 그래서 결국 한 번은 엄마한테 대들었어. 그리고 그 날 난 엄마한테 배은망덕한 애라는 소리를 듣고 뺨을 맞았어. 그리고 그 이후로 집에서 나올 때까지 난 아무 말도 못 했어.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
 "뭐?"
 
 미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백제인이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미경을 바라보며 웃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 같았다.

 "하하……. 웃기지 않아? 난 그때 엄마가 몸을 팔아서 돈을 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게 다 거짓말인지도 모르고."
 "거짓말이라니…?"
 "내가 집을 도망 나왔던 날 밤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어."
 "할아버지?"
 
 미경은 갑자기 백제인의 할아버지인 백진회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다.
 백제인은 눈물을 그치고 아까보다는 평정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어릴 때는 가끔씩 엄마가 연락해서 할아버지와 통화한 적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린 연락을 안 했었어. 근데 아빠가 자주 할아버지 얘기를 해서 있다는 건 계속 알고 있었어."
 "아하…… 그렇구나."

 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제인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할아버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거든. 아빠랑 얘기를 자주 하다 보니까 나도 할아버지 번호를 외우고는 있었어. 아빠는 전화를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나는 굳이 전화 할 일이 없다 보니 연락은 안 했지만……. 근데 집에서 나가니까 갑자기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전화했었어."
 "…근데 집은 왜 나간 거야?"

 미경이 백제인이 왜 집을 나갔는지는 건너뛰었는지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아까보다 침착하던 백제인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지 않으려 눈을 감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그게… 엄마가 데려온 남자가……. 엄마가 잠든 사이에… 나한테… 강제로……."

 백제인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술 냄새 싫어하고 그때 MT 갔을 때 이상했던 게 이거 때문이었구나. 젠장.'

 미경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미경은 백제인이 더 힘들지 않게 그 일은 더 이상 상기시키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 그 일은 더 얘기 안 해도 돼."
 "흐흑……."

 백제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미경은 백제인을 안아줬다.

 '…얼마나 많이 몰래 울었으면.'

 백제인이 미경의 어깨에 파묻혀 항상 그래 왔던 듯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우는 백제인이 미경은 더 안쓰러웠다.

 백제인은 약간 더 진정되자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나인걸 알아차리시고는 반갑게 대화를 했어. 처음에 할아버지는 내가 집을 나온 걸 알고 돌아가라고 했다가 왜 집을 나왔는지 묻게 됐어. 그리고 난 모든 일을 다 얘기했고, 그 날 모든 진실을 듣게 됐어. 엄마가 우리에게 한 거짓말 말이야."
 
 백제인이 피식 조소했다.

 "그 집, 엄마가 누린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살 수 있게 했던 모든 돈이 다… 할아버지가 준 돈이라는 걸."
 "생활비를 전부 할아버지가 줬다고?"
 "응. 전부 다. 엄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매달 주는 돈으로 그러고 다녔던 거야. 생활비랑 아빠 치료비라는 명목으로."
 "세상에." 

 미경은 경악과 동시에 탄식했다.

 "할아버지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와 그 불륜한 사람이 나 빼고는 이미 모든 흔적을 지웠더라고. 그리고 다음날 바로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왔어."
 "아."
 "할아버지는 날 보자마자 안아줬어. 그리고 화를 내면서 아빠랑 나를 데려가려 했어."
 "그럴만하네."
 
 미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 엄마 편을 들었어. 엄마가 했던 거짓말을 이유로 대면서 말이야."
 "아……."
 "그리고 엄마는 지금까지 신경도 안 쓴 주제에 남편과 애를 뺏어가지 말라고 했어. 나한테 한 그, 그건… 그, 그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했어. 그냥 사고였다고. 그리고 자기 아들 이혼한 사람 만들고 싶냐고, 손녀 애미 없는 애 만들고 싶냐면서 화를 냈어."
 "하!"

 미경은 자신도 모르게 기가 차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미친년. 적반하장이네.'

 미경은 당장 유지연과 그 불륜했다는 놈을 잡아처넣고 싶었다.
 백제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데려가려 했어.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이대로 차 타고 나가서 죽겠다고, 다시 그 꼴 보고 싶냐고 하니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할아버지가 아무 말도 못 했어. 그러더니 꼭 데려오겠다고 하면서 돌아가버렸어. 그리고 난 얼마 후에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봤어."
 
 미경은 갑자기 백진회가 입원한 날이 이때구나 싶었다. 그리고 미경은 백제인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백제인은 아직 백진회의 전 부인과 딸이 자동차 사고로 죽고, 그 여파로 백도경이 그리 된 것을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 날 이후로 날 밖에 못 나가게 하고 홈스쿨링을 시켰어. 난 그냥… 아빠도 불쌍했고…….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따랐어. 그리고 3년 후인 작년에 갑자기 할아버지랑 지금 백일제약에 신 부사장님이 우리를 찾아왔어."
 "잠깐만. 3년?"
 "응. 3년. 조금 더 될 수도 있고."

 미경은 3년이라는 말을 듣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라고? 유지연 이 미친년이 진짜……. 자기 친 딸한테 이 무슨···! 어떻게 내가 못 잡아넣나?'

 미경은 머리로 열이 확 뻗치는 기분이었다.
 미경이 표정을 숨기고 있는 탓에 백제인은 미경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를 전혀 모르고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앞에 찾아 온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아니었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버티던 아빠와 엄마를 바로 이혼시켰어."
 "잠깐만.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아니라니?"

 답을 알면서도 미경이 물었다.
 백제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네가 우리 집에서 본 사람이 진짜 우리 아빠야. 그리고 세상에 알려진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야."

 '역시.'

 드디어 심증에 정답이라는 도장이 찍혔다.  

 "할아버지는 나와 아빠를 그 궁전을 가장한 감옥 같은 집에서 구해주셨어. 그리고 모든 게 끝나면 할아버지는 물러나겠다고 했어. 아빠랑 나를 잘 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백제인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네게 이 얘길 하는 이유는……. 제발 아무에게도 본 걸 말하지 말아 줘. 네가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난, 난……. 난 더 이상 살 수 없어."

 백제인의 말에 미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이 얘길 하지 말았어야지. 얘 되게 순진하네.'

 하지만 미경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정말?"
 "걱정하지 마. 네가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네. 그동안 힘들었겠다."

 미경의 말에 백제인은 다시 눈물을 쏟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미경은 백제인을 안아주며 생각했다.

 '어떡하지? 얘는 많이 불쌍한데……. 큰일이네.'

 그 생각을 하면서도 미경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일이 끝나야 된다는 거야?"
 "어?"
 "너네 할아버지가 끝나면 물러난다며."
 "모르겠어. 그냥 다 끝나면 물러난다고만 하셨어."

 백제인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자세하게는 말을 안 해 준 건가?'

 미경은 백제인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어디다 말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이제 그만 울고! 뚝! 수업도 짼 김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미경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느새 수업이 끝 날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백제인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학교를 나오는데,

 "어?"

 백제인이 갑자기 멈칫했다.

 "왜?"

 미경이 갑자기 멈춘 백제인을 보고는 백제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학교 정문 앞에 백도경, 
 아니,
 젊어진 백진회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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