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Daydream of prime of life 9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Daydream of prime of life 9

SooyangLim 2021. 4. 22. 19:01

 긴장된 순간이 지나고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침묵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탄식과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미경은 원하는 과목들이 다 등록된 성공한 수강신청 화면을 보자 얼굴에 환희로 가득 찼다.

 '좋았어! 이제 백제인하고 시간표 겹치…'

 미경은 기쁜 얼굴로 백제인 쪽으로 돌아봤다.
 그런데 백제인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상당히 당황한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목들의 여석을 찾느라 손이 바빴다.

 '망했구나!'

 미경은 소리 없는 절규를 부르짖었다.

 '네가 망하면 안 되지!!!'

 미경은 백제인을 따라 시간표를 바꿔야 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더 엇갈릴 가능성이 있어서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백제인을 위해 바꿔주다간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채 갈까 봐 걱정되었다. 부디 수강정정 기간에라도 백제인이 성공해서 같은 수업을 듣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 때 앞문으로 2학년 학생이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알렸다.

 "수강신청 끝나고 신입생 환영회 있습니다~ 5시까지 학교 앞 ㅇㅇ로 와주세요~"

 미경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거기 가서라도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 신입생 환영회에서 접근해서 친밀도를 올려보는 거야!' 



 "…망할."

 하지만 백제인은 그냥 집에 갔다.
 미경은 신입생들이 북적거리는 테이블에서 깍지를 끼고 이마를 괸 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몰래 욕을 중얼거렸다.

 미경은 그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빨리 빠져나오려 했다. 그래서 술 게임 설명이 시작되자 화장실부터 갔다가 온다고 하고 슬쩍 빠져나왔다. 술을 마실 수 없었기에 말리는 이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피해 빠져나왔다.

 "어휴. 겨우 안 마셨네."

 미경은 학교와는 좀 떨어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경은 차 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조수석에 던져졌다. 그리곤 차에 타기도 전에 하이힐을 벗어던졌다. 미경은 차에 타서 문을 닫자마자 귀찮게 치렁거리는 머리부터 묶었다. 그리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맨발로 브레이크를 꽉 밟고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미경이야. 이거 반장님 사모님 휴대폰 빌린 거야. 나? 차 안. 할 일 끝났어. 응. 오늘 봐야지. 그래. 저녁 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성준은 미경의 전화를 받으며 복도를 걸으며 통화하고 있었다.
 그 때 복도 저 편에서 말쑥한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배성준 법의관님이시죠?"
 "잠시만."

 성준은 미경과의 통화를 잠시 멈췄다.

 "…누구시죠?"

 성준은 묘하게 낯이 익으면서도 생소한 얼굴이라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경계부터했다. 성준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얼굴로 봐선 나이대가 좀 있는데, 그 나이대의 사람 중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모르는 업계 쪽 사람이 있는 것이 이상해서였다.  

 "아, 별 건 아니고 감사해서……. 미경 형사님이랑 같이 감사인사 드려야 하는 데 안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남자는 다짜고짜 과일이 든 바구니를 손에 쥐어줬다.
 성준은 미경이 해결한 사건들의 수혜자 중에 한 사람인가 싶었다. 성준은 순간 경계가 풀렸다. 하지만 묘하게 이상한 느낌에 일단 만류했다.

 "아, 이런 거 주시면 안 됩니다. 저희는 저희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아이, 사람이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아뇨아뇨. 진짜 괜찮습니다. 댁에 가서 드십시오. 이런 거 저희가 받으면 곤란해집니다. 법도 그렇고요."
 "아이, 그럼 미경 형사님한테라도 전해주세요."
 "아, 아닙니다. 형사님도 받으시면 곤란해질 겁니다. 마음은 전해드릴게요."

 자꾸만 억지로 과일 바구니를 손에 쥐어줘서 실랑이가 잠깐 벌어졌다.





 차 문이 닫혔다.

 "여기도 아닌가. 뭐 곧 찾을 수 있겠지."

 방금 성준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리던 남자는 도로 갖고 온 과일 바구니를 옆자리에 대충 내팽개쳤다. 

 "출발해."

 그는 본인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 운전기사에게 아주 편하게 지시했다.

 그 운전기사는 얼마 전 백도경의 자택에서 보너스를 받은 운전기사였다. 운전기사의 현재 담당은 백진회의 현재 아내인 이연자와 그녀의 두 아들 백도현과 백도진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백도경의 배 다른 동생인 백도현에게 운전기사는 자신에게 반말하는 백도현에게 깍듯이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조용한 데로."

 백도현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하늘에 노을이 지고 어둑해질 무렵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온 성준은 고급 한식당 앞에 내렸다. 성준은 으리으리한 식당 외관에 놀랐고, 들어가면서 한옥 형태의 개인 독실로 된 방이 있는 식장이라는 점에 두 번 놀랐다.

 '뭐야, 왜 이리 비싼 데 온 거야……?'

 직원의 소개에 따라 미경이 있는 개인실로 가던 성준은 미경의 전화를 받았다.

 "어, 식당 안이야. 바로 앞이야."

 성준은 방에 들어서기 전, 화면이 꺼진 휴대폰의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비춰 잘 가다듬으며 괜찮은지 확인했다.

끼익-

 성준이 문을 열었다.

 "어, 왔어?"

 방 안에 앉아있던 미경과 닮은 젊은 여자가 익숙하게 성준에게 인사했다.

 "…어……."
 
 성준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얼어붙어버렸다.

 "…예?"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현실에 성준은 밑도 끝도 없는 반문을 했다.

 "일단 들어와 앉아. 설명할게."

 성준은 당황해서 우물쭈물 망설였다. 어쨌든 들어와서 앉으라고 하니 일단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아참, 반장님도 부르려고 했는데 바빠서 못 오신대."

 눈 앞의 여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경의 말투로 그런 말을 하자 성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성준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일단 들어보기로 결심하고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노숙자들을 따라가 보니 거기가 백일제약 공장이었고 거기서 불법으로 보이는 인체실험 정황을 발견했는데 백도경한테 들켰다. 그래서 이상한 용액에 수장된 채로 폭발해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서 나한테 부탁하고 집에 갔는데 일어나 보니 그런 모습이 됐다. 그래서 증거 찾아다니다가 오늘 그런 부탁을 했었다……. 맞아요?"

 성준은 미경이 한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며 좔좔 읊었다.

 "그렇지! 역시 이해가 빠르네."

 미경이 입에 음식을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성준은 젓가락에 손도 안 대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으로 미경이 먹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미경은 성준이 그러고 있거나 말거나 딱히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인 육회를 접시 채로 가져가서 싹싹 긁어먹고 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네."

 성준은 한참 만에야 입을 뗐다.

 "설명이나 지금 눈 앞의 모습을 보면 인과관계가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믿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요. 누나가 나 놀리려고 옛날에 티비 예능에서 하던 몰래카메라 같은 거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몰래 카메라?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난 바빠서 많이는 못 봤지만. 양심 냉동고는 그래도 좀 봤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교통 법규 잘 챙겨서 좋았는데 말이야. 요즘도 그런 거 하면 좋을 텐데 왜 안 하지?"

 미경이 깔깔 웃으며 만나면 좋은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 방송국에서 하던 예능에 대한 추억을 곱씹었다.

 "…내가 누나 처음 봤을 때는 이미 누나는 30대였으니까······. 여러모로 당황스럽네."

 성준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성준이 국과수에서 일을 시작 했을 때는 이미 30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미경을 처음 봤을 때, 미경은 이미 30대 후반이었다.

 미경이 당시에 노안인 것은 아니었지만, 반장이나 반장의 아내(미경의 선배)처럼 미경을 20대에 본 적이 없기에 납득하기 힘들었다. 지금 눈 앞에 앉아있는 이 여자는 거의 10대 후반~20대 초반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성준은 그래서 차라리 미경의 숨겨둔 딸이나 조카가 미경과 함께 합심해서 놀리려고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성준의 머리는 적어도 눈 앞에 여자가 하는 말 보다 그 편이 더 현실성 있고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성준은 정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성준에겐 그 사람이…….

 "여러모로……."

 올해로 만 나이마저 40줄이 넘어선 성준은 미경에 대해서 모든 걸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긴 세월 동안 서로가 편해지고 친해진 만큼은 미경을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둔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 그래서 더 일 밖에 모르는 사람.
 성준은 그런 미경에게 어차피 모를 텐데, 어차피 무마될 텐데, 어차피 동경으로 알 텐데 하며 슬쩍슬쩍 본심을 내비쳤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니 성준은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고 몰래 다짐하던 본인의 본심을 더 숨겨야 하는 상황으로 다가왔다.

 미경은 그저 가만히 자신을 보고 있는 성준을 보면서 씨익 웃더니 말했다.

 "네가 지금 존댓말, 반말 섞어 쓰는 것만 봐도 당황스러운 건 잘 알겠네.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혼란스럽겠지."

 미경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성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웃음기 싹 가신 목소리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미안하지만, 지금 네가 믿고 안 믿고를 따질 상황이 아냐."

 수년 전 미경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리고 지금까지 한결같이 성준을 바라보던 그 태도, 그 눈빛과 그 목소리.

 "네가 도와줘야 해."

 반장은 이런 미경을 언제나 막무가내라고 한 소리 하곤 했다. 나이 들었으면 철 좀 들라고 늘 잔소리하고 혼냈다.

 하지만 성준의 눈에는 그게 열정이었다.
 성준의 눈은 잠깐이지만 놀란 듯 커졌다.

 '저 독기 서린 눈, 불도저 같은 태도. 이건 확실하네. 변함이 없어.'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턱을 괴고 미소를 씨익 지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들어는 봐줄게."
 "그래. 이런 비싼 데도 왔는데. 들어줘야지. 근데 너 안 먹어?" 
 "먹어야지."

 미경은 다시 입에 먹을 걸 집에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성준은 여전히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먹어. 비싼 거야. 왜 보고만 있어?"
 "먹을 거야. 그냥 신기해서."
 "신기할 만도 하지. 나도 아직 깜짝 깜짝 놀란다, 야."
 "누나 젊을 때는 이렇게 생겼었구나 싶네."
 "아냐. 지금이 더 나아."
 
 미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옛날엔 지금보다 퉁퉁하고 훨씬 더 선머슴 같이 하고 다녔었어. 지금은 오늘 일 때문에 화장하고 꾸며서 봐줄 만한 거야. 그땐 로션도 잘 안 바르고 다녔어."
 "하하. 누나답네. 나도 젊어졌으면 좋겠다."
 "야, 삼도천 한번 갔다 와봐라. 그 소리가 나오나."

 성준은 웃으며 드디어 젓가락을 들었다.

 "근데 내 도움이 필요할만한 게 있나? 이미 백도경 쪽에서 시체도 빼돌렸다며."
 "도와줄 일 있지. 왜 없겠어. 휴대폰 안에 물질 조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줘. 그리고 휴대폰 복구는 도움 줄만한 사람이 하나 있거든? 그 사람한테 나 대신 가면 될 것 같아. 너도 아는 사람이니까, 거기 가 줘."
 "어딘데?"



 샤워를 마친 후 느긋하게 와인 한 잔을 들이키던 백회장 일가의 차남 백도현은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에는 지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는 성준이 현재 있는 곳의 위치가 떴다.

 "허?"
 
 성준이 현재 있는 식당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식당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백도현이었다. 백도현은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백도현은 서둘러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때마침 미경이 휴대폰 물질을 조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달라는 말이 들렸다.

 "이거 재밌게 흘러가는구만?" 
 
똑똑

 그 때 노크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백도현이 잠시 이어폰을 빼고 돌아봤다.
 그의 동생인 백도진이었다.

 "엄마가 불러. 아마 아버지 일인가 봐."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해. 곧 갈게."

 백도현은 다시 이어폰을 꼈다. 하지만 미경과 성준의 대화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뷰가 아주 예술인 고급 아파트의 통유리창의 야경을 보며, 백도현과 백도진의 어머니이자 백진회의 현 아내인 이연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백도현이 다가오는 걸음 소리가 나자 말했다.

 "그 애미년이 감쪽같이 사라졌어."

반응형

'소설(Novel) > 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dream of prime of life 11  (0) 2021.04.28
Daydream of prime of life 10  (0) 2021.04.26
Daydream of prime of life 8  (0) 2021.04.21
Daydream of prime of life 7  (0) 2021.04.20
Daydream of prime of life 6  (0) 2021.04.16
Comments